小株密植(소주밀식): 모주수는 2,3개 간격은5치9치.
68년도 도에서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양평군 청운면사무소 직원으로 임용 발령되어 산업계에 소속 양정담임으로 근무하였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따라 자급자족을 부르짖으며 양곡을 배가 생산해야한다는 정책으로 통일벼 식재로 전환하는때이다 못자리부터 양이 많이 생산되는 통일벼로 전환하고 이삭은 9치에 5치 간격 소주밀식을 반강제적으로
전농민들에게 게도하는데 농민들은 매년해오던 식으로 익숙한데 이해가되지않아 일부농민들은 자기들 방식대로 사방 7치 간격으로 고집 식재한다.
본답에 모내기가 한참일 5월달 우리 청운면 서기들은 하나같이 손에 9치5치 규격 막대를 들고 출장 마을 논 모내기하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못줄도 제공하기도하며 정부에 방침대로 따라 줄 것을 열심히 계도하여도 듣지않는 농민들이 있으므로 난감할때가 많았다.
갈운2리 어느한 농가는 정부방침을 거역하고 자기 멋대로 7치간격으로 모내기를 보란 듯이 완료하여 배짱을 내밀며 너히들이 어쩔것이냐며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대강?
우리들 면서기들은 인근 갈운 초등학교를 방문 학교장에게 현정부에 정책방침을 설명하고 학생들을 총동원하여 방금 모내기한 전면적의 모를 모두 뽑아 버렸다.
답주는 기가막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지? 노발대발 망말로 우리 면서기들에게 가진 욕설로 분을 참지못하고 대하며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설마 너히들이 어쩔것이냐 했는데!
막상 초등학생들을 동원 정식한 모를 뽑을줄 상상도못하였으나 다시 모를 심을 수 없는 처지, 예비 모도없는터라
답주는 올해 논농사는 폐농으로 생각하고 고집을 세우고 그대로 방치하고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벼의 생명력은 강했다.
시간은 흘러. 다뽑아버린 논바닥에는 푸르름이 점차 이어지더니 논 한가득히 모가 채워저 다른 논과 다름없이 성장
수확시기에는 오히려 잘여물어 미출에 차질이 없었다한다
한편 나는 양정담임으로 마을마다 방앗간을 순회하며 도정하는 도정미를 점검한다.
역시 정부 정책에 따라 양곡 자급자족 원칙에 의하여 하얗게 9분도는 지양하고 현미에 가까운 7분도로 도정할 것을 지시 이를 위반할시는 도정을 못하도록 현미기에 사용금지 테푸를 붙여 이를 위반시는 제제를 가한다.
이렇다보니 이몸은 마을 방앗간 주인장에게는 밋보였다.
통일벼 (I R 667)를 식재 첫수확해보니!
키는 작고 이삭은 수량이 월등이 많으며 잎속에 파묻치고 귀가여려 탈곡할 때 낙곡이 많으며 밥맛은 끈기가없어 와르르 혜지나 수확량은 월등하여 정부정책은 대성공이다,
결론적으로 박대통령의 과감한 양곡정책은 대성공적으로 후에 모두가 평가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