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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의 입술은 침묵하나, 창백한 손은 슬픔의 그림자를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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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uenhand
Theodor Storm
Ich weiß es wohl, kein klagend Wort
Die Hand, an der mein Auge hangt, |
여인의 손
테오도르 시토름
한 마디의 탄식하는 말조차도
내 눈동자가 계속 끌려지고 있는 그대의 손은, |
독일 작가 테오도르 시토름(Theodor Storm:1817-1888)은 짧으면서 함축성있는 시를 많이 지은 인물인데, 그 중 우리에게 알려진 시로 <7월:Juli>, <해안:Meersstrand>, <다시 한 번:Noch Einmal>, <잠잘 수 없다:Schlaflos>, <거리:Die Stadt>등이 있다. 그는 과거 덴마크의 영토였던 슐레스비히(Schleswig>에서 태어나 뤼벡(L beck)과 키일(Kiel)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베를린(BVerlin)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뒤 프러시아(Prussia) 왕국에서 행정장관을 역임하였다. 그는 생전에 두 번 결혼했으며, 여러 권의 소설과 시집을 펴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만년을 보내다가 70세에 영면하였다.
세상의 여인들은 평소의 얼굴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다. 화장으로 얼굴 주름을 가리고 입술연지로 나이를 감춘다. 그래서 그네의 삶과 처지를 한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여인은 또한 온화한 음성으로 격정을 숨기고, 아름다운 눈매로 슬픔과 절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자와 보석은 여인들의 짙은 고뇌를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고, 비단 숄과 망사 베일은 그녀들의 우수 띤 얼굴을 가린다. 여인의 분칠한 가슴과 목덜미는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게 하고, 귀부인들의 성장(盛裝)한 옷차림은 몸매를 알아내지 못하게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여인들의 태도는 내성적이고 은밀하여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정네의 앞에서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게 그 데이트 약속을 거절하는가 하면, 시어머니나 시누이 면전에서 포커페이스(Poker Face)를 취한 채 속마음을 숨기기도 한다. 세상의 여인들이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용모와 마음을 숨겨왔던 것은 그동안 인간의 역사가 가부장제의 남성이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약자의 편에 선 여인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이에게 속내를 숨겨 왔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남자들이 직설적 어법을 구사하는 반면, 여인들은 우회적으로 말을 돌리는 데 익숙하다. 남자들은 종종 "여자들의 태도란 알다가도 모른다"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여인들이 그 본심과 진면목을 다 드러낸다면 세상은 삭막하고 거친 황야로 변할지 모른다. 여성이 베일로 자신들을 가려왔기에 세상은 보다 아름답고 신비롭게 전개되어 왔었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한 여인의 고달팠던 인생 여정을 그녀의 손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인생의 항해에서 숱한 풍랑을 겪었고 좌초와 표류의 삶을 살았다. 이제 인생의 뒤안길에서 그녀는 시인 앞에 앉아 그 손과 표정으로 자신의 고단했던 여정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여인의 숨겨진 일상적 태도에 주목하기보다 그 여인의 인생과 처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시인은 지금 여기에서 한 여인을 마주 대하고 있다. 그녀는 한 늙은 성직자나 교사 앞에서 상담을 구하는 여인일 수도 있고, 딸을 시집보내며 사돈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일 수도 있으며, 혹은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장래 남편감을 만나는 처녀일 수도 있다. 그녀는 남루하기는 하나 정장을 갖춰 입었을 것이고, 예의를 갖추어 정성되이 화장을 한 채 다소곳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 정황과 사연이 어떻든, 한 여인이 한 남자의 앞에 앉아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한 소개의 말을 전한 뒤 애둘러 사연의 본질을 가린 채 일상적인 말에 몰입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잠재의식은 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처지를 십분 이해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설령 신중함과 고립의 갑옷으로 영혼의 문을 채운 여인일지라도 호의적으로 대하는 이 온화한 남성 앞에서 자신의 인생살이 몇 토막쯤은 넌지시 암시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면 시적 화자는 그녀를 탐구하고 고찰하여 알맞은 배려와 충고를 전할 것이다.
앙리 게리벡스(Henri Gervex) 작, <파리의 카페>
남성은 여인의 손에 주목한다. 얼굴이 가식(假飾)을 말하고 눈망울이 진실을 속일지라도 여인의 손은 그 감정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얼굴의 멍 자국이나 잡티는 화장으로 메꿀 수 있으나 손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된다.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분장은 백발의 노인인데 손은 청년의 것처럼 뽀얗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현실에서도 손은 그 주인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 탓에 손이 무방비 상태에서 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정직하고 강력하다. 만일 그 여인이 농부의 아내로 살아왔다면 그 손은 굴곡진 주름으로 가득할 것이며 손톱은 까맣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여인의 직업이 봉제공이라면 그녀의 손가락은 온통 세세한 상처투성이일 것이며,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면서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 중년 여성이라면 그녀의 손등은 거북이 등처럼 거칠게 갈라져 있을 것이고. 행상(行商)의 아내라면 손마디가 불거지고 손목에 힘줄이 선명할 것이다. 그렇게 손은 여인의 생애와 사연들을 상대방에게 전하고 있다.
시인은 시의 전반부에서 그와 같은 정황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는다. 시인은 그 통찰과 예지력으로 여인을 바라본다. 시인에게 그녀는 말못할 슬픔과 비애를 지닌 가련한 여인이다. 여인이 지닌 그림자의 골은 깊고 선명해 시인의 마음까지 아프게 만든다. 짧은 만남의 순간이 끝난 뒤 시인은 여인의 처지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시인의 잠 못 이루는 밤에 여인의 삶의 나날과 이야기가 별처럼 쏟아져 내린다.
프랑스의 문인 모파상(Guy de Maupassant:1850-1893)은 단편 <목걸이:La Parure>를 통해 19세기 프랑스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의 아내 마틸드(Mathilde Loisel)가 허영에 뜰떠 친구에게 고가(高價)의 진주 목걸이를 빌려 무도회를 다녀 왔는데, 그 와중에 목걸이를 잃어버려 집을 팔고 빚까지 내어 변상하였다. 마틸드 부부는 그 이후 10년 동안 빚을 갚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비참한 생활을 했다. 빚을 다 갚을 즈음에 마틸드의 모습은 고단한 삶에 찌들어 나이보다 늙고 쇠락해 보였다. 그 상황을 소설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설거지를 하고 기름때가 낀 사기 그릇과 냄비 밑바닥을 닦느라 분홍빛 손톱이 다 닳았다. (중략) 그녀는 궁핍한 살림 때문에 억세고 거친 여자가 되었다. 머리 손질도 잘 하지 않고, 치마는 비뚤어지게 입고, 손은 빨갛게 부어 올랐다."
리처드 레드그레이브(Richard Redgrave) 작, <하녀가 되러 갑니다>
모파상이 소설을 통해 표현한 여주인공의 손은 한 사람의 인생이 찰나의 실수로 인해 얼마나 달라지고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한 명의 교양 넘치던 여인이 숱한 고생과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떻게 변모하고 몰락해 가는지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렇게 여인들은 화장대의 거울을 보듯 손으로 지난날의 고생을 말하고, 고목의 나이테처럼 세월의 고달픈 흔적들을 새기는 것이다.
여인의 손은 남자의 손보다 더 위대하다. 여인은 그 손으로 자녀를 보살피고 남편을 건사한다. 아무리 남자가 가정에 헌신한다 하여도 여인이 평생동안 가족을 위해 손으로 봉사하고 희생한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 TV 프로그램 중에 <6시 내고향>이라는 농어촌 프로가 있는데, 고향 땅을 떠나지 않고 늙어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사연이 많이 방영된다. 그 중 얼마 전에 방영된 내용에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과 극적인 드라마가 소개되었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에서 땅콩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박봉례 할머니의 운명은 각박하고 한스러웠는데, 그녀는 꽃다운 시절 중매장이의 말만 듣고 이 벽촌(僻村)에 시집을 와서 고향도 한 번 찾아가지 못하고 딸만 여섯 낳아 장성시켰다. 그 할머니는 방송 취재팀에게 자신이 꾹꾹 눌러 왔던 기막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계속 딸만 낳다가 이번에는 아들을 기대하고 출산을 했는데 엉겁결에 보니 딸이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아이고, 계집애가 방정맞아 하필 모 심는 날 태어났노" 하면서 야단을 쳤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며느리는 하도 속이 상하고 애가 끓어 탯줄도 떼지 않은 아기를 문 앞에 내어 던졌는데, 다행히도 쌀가마 틈에 떨어졌다. 박 할머니는 "내가 그 딸애를 던졌을 때의 마음이 오죽하겠소."라고 자책하면서도 "그렇게 키운 애가 다들 잘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또한 박봉례 할머니는 33년 전에 남편을 살리기도 했는데, 머리 뒤통수에 호박만한 종양이 생겨 서울의 대학병원에 찾아갔더니 고치기 어려워 2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만 들은 후 돌아오는 길에 남편 김인기 씨가 강물에 빠져 죽겠다는 것을 어찌어찌 설득해 집으로 끌고 왔다고 하였다. 그 때부터 그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하루에 세 번씩 200여 번 뜸을 떴는데, 그러기를 45일 째가 되니 남편이 "이제 더 이상 뜸뜨기 싫다"고 일어나더니 넙죽 큰 절을 아내에게 올렸다고 한다.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두 달도 버티지 못한다는 중병을 다 떨쳐 내고 자신과 아내 모두를 살린 것이다. 여인들이 솔선하여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데 앞장선다는 미담(美談)들은 전국 도처에 깔려 있다.
지난 세월 우리 여인들은 어렵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의 시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젊은이들이 상처와 주름 투성이의 어머니 손, 마를 날이 없는 아내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릴 수 있을 때 모성의 의미와 가족사랑의 정신이 고양되어 우리나라를 밝게 비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