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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열등감을 극복하라/출 4:10-17
성경본문 : 출애굽기 4:10-17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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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이야기 중에 마녀가 나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예쁘니?" 라는 장면입니다. 놀라운 것은 거울이 백설공주라고 대답을 하는 것보다 마녀가 거울을 본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누가 예쁜 지를 말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게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화장하지요, 가장 어려운 화장은 화장 안한 것처럼 화장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면서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성형수술을 합니다. 어떤 분은 성형수술을 해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반면에 더욱 불만을 가지고 계시기도 합니다. 얼굴 성형수술 전문가인 멕스엘은 얼굴수술 노하우를 가지고 <새로운 미래를 소유한 새로운 얼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외형적인 얼굴 수술 보다 마음의 얼굴을 수술이 더 어렵다고 말입니다. 이해됩니다.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사실은 자기 스스로입니다. 그러나 타인이 자기가 싫어하는 부분을 지적하면 팽팽 토라집니다. 본인도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왜냐구요? 열등감 때문입니다. 저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바로 여기서 열등감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일 이라는 코메디언이 있습니다. 진자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나와서 인기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가? "이렇게 생긴 것에 뭐 도와 준 거있냐?" 라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이긴 경우입니다. 이 열등감은 영성과 밀접합니다.
마귀가 인간이 죄를 범하게 할 때 열등감을 건드렸습니다. "누가 먹으라고 하더냐? 안 죽어! 바보들 아니야!" 하였죠. 그러자 자존심 상한 아담과 하와는" 그래 먹어버리자" 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열등감은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끊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교회를 다니면서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같은 불만!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삽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없어요, 그러니 당당한 크리스챤의 모습이 아니지요,이런 자아상을 보면서 슬퍼하고 몹시 노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알맞은 얼굴과 키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난조차도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신앙이 허물어집니다.
어떤 분은 자전거에 부딪혀서 다쳤는데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렸다는 등 말씀합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도 나쁜 것이지만 자기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더 무서운 질병입니다. 물론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열등감을 극복하느냐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열등감으로 가득 찬 모세가 있습니다. 모세는 날 때부터 외모가 준수한 사람입니다. 성장배경도 공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열등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열등감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할 정도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다“(출 3:10) 그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멍청한 소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데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말을 못하는데요.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다섯번씩이나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해서 크고 분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하나님께선 열등감에 사로잡힌 모세에게 분노하신 것입니다. 열등감은 본질적으로 영성 지수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열등감이 나쁜가요?
첫째, 열등감은 우리 속에 있는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달란트를 주셨는데 "난 안되!" 라고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꿈, 희망을 꺾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쓸모없고 나약한 패배자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든 세상이 더러운 세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둘째, 열등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공격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강한 열등감 때문입니다.
셋째, 열등감은 하나님의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훌륭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못해' 라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하고 포기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이면서 하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 되서야 "껄껄"하고 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말아야 할텐데 이러한 열등감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내적으로 오는 열등감과 외적으로 오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첫째, 내적인 요인에서 오는 열등감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받은 가정과 사회의 영향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등한 존재입니다. 도움을 받아야 삽니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은 '나는 의존하고 사는 존재구나!' 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 '네 형은 공부를 잘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하면서 형제간에 비교시킵니다. 또 학교에 가면 공부가 잣대입니다. 그러니 공부 잘하는 아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 열등감 가지고 사는 것이지요,
둘째, 자기 스스로 만든 내적 열등감이 있습니다.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죄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더 심하게는 '나는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야' 하면서 자기 자신을 한없이 정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 내 자녀야!"라고 해도 "아닙니다. 저는 벌레보다 못합니다."라고 자학해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고 격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저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야!" 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열등감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는 창조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11절)
개그 콘서트에서 여자대 여자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여긴 어디? 공원 내가 여기온 이유는 ?"하면서 결론은 "나는 나니까!" 라고 합니다. 상당히 신앙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 ! 현재 나의 현실, 나의 가문, 신체적인 조건, 나의 기질, 나의 성장배경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천성적으로 입이 어눌하고 혀가 둔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완전하게 우월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약점이 있고 장애가 다 있습니다. 이것을 열등감으로 자기를 비하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과제입니다. 막연하게 기도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를 세워주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는가'라고 물지 말고 '하나님은 왜 나를 여기서 이렇게 태어나게 하셨을까'라고 바꾸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12절). '네 입이 둔하냐 내가 네 입과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약점이 있습니까 주께서 한마디를 더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 말은 그 약점을 함께 함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입니다. 장점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열등감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분명히 주님께서는 열등감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면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고후12장에서 자신이 약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강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열등감이 오려고 할 때마다 '이 열등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구나' 라고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약점이 있습니까? 공부를 많이 못했습니까?
성경을 읽으십시오.
얼굴이 못생겼습니까?
웃으십시오. 남들이 못생겼다고 해도 웃는 얼굴은 굉장한 매력이 있습니다.
좋은 옷을 못입었습니까
친절의 옷을 입으십시오.
재능이 없어 교회 봉사 못합니까?
기도하십시오.
헌금 못해서 목사가 안 알아준다고 자학합니까?
예배에 참석해서 앞자리에 앉으십시오.
말이 둔해서 전도 못합니까?
전도지 가지고 가서 놓고만 오십시오.
우리들은 얼마든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 있습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목사님에게도 열등감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저에게도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입이 둔한 편이고, 자신감이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참 부족한 부분입니다. 특히 논리적이질 못합니다. 그래서 설교단에서면 늘 저희 아내에게 점검을 받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았지만 요모양 요꼴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부인에게 "여보, 설교를 들으면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줘"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이 설교할 때 사투리를 쓴다든지 표정이 밝지 않으면 메모해서 고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목사님에게는 열등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모가 펜만 들면 기가 죽어 설교를 더 못했습니다. 남편이 설교를 못하게 되니까 사모가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일날 목사님이 설교할 때 메모를 하지 않고 '아멘 아멘' 하면서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이 내려가서 "여보, 오늘 뭐 잘못한 것 없소" 하니까 아내가 "아니에요. 당신 설교가 너무 은혜로워서 적을 것도 없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더욱 힘을 얻어 능력있는 설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은 좀처점 생각하지 않고 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만을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세계의 비극이며, 역사상의 모든 질병, 전쟁보다 더 큰 불행을 안겨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셋째 현재 있는 것으로 열등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요사이 프로그램에서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계를 고쳐주는 것입니다. 내부와 맛을 바꿔 줍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바꾸는 것은 열등감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길거리에가서 소리를 지르게 합니다. 현실을 이기기 위한 것입니다. "저! 장동학입니다. 잘 봐주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라 너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하라"(출 4:12)
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하라고 하십니까?
'네가 말로 못하면 내가 네 지팡이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말로 못한다고? 네 손에 지팡이가 있지 않느냐 내가 네 입의 둔한 것을 지팡이의 권능으로 대신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로 큰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입으로 못하고 다른 능력으로 일하셨습니다.
지팡이의 능력을 주셔서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습니다. 반석을 깨뜨려 생수가 흘러나왔습니다. 지팡이 하나로 수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지팡이를 높이 들면 수많은 군중들이 그 지팡이를 보고 따라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체적인 열등감이 있었고 말이 둔한 자였습니다. 그가 말로 했으면 2천년 전 소아시아의 설교자로 끝나버렸을 것인데 글로 써서 교회에 보낸 것이 13편의 서신이 되었습니다.
유미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 아쿠타와 상을 수상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고백했습니다. 중학교때 자살을 시도하고 난 후 산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송구스런 마음이었어요. 나는 어려서 가족도 잃고 학력도 중졸밖에 되지 않아 "내겐 아무 것도 없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내겐 아무 것도 없어요.단 하나 가진 게 있다면 내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뿐이죠. 남보다 두 배는 강한 이 욕구가 내가 사는 원동력이며 내가 글쓰기에 매달리는데 큰 도움을 주는 힘이에요.
넷째 ,열등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16절) 하나님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나의 약점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습니까? 병을 고쳐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제가 하나님인 줄 압니다. 그저 저는 정말 부족하고 약한 사람입니다. 무기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너무 열등하게 하고 패배자로 좌절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열등감을 십자가에서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당당하게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당당한 그리스도인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 시간 그 열등감을 잡아주시길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할 수 없다는 말 대신에 할 수 있다는 말로, 불평하는 말 대신 감사의 말로, 못났다는 말 대신에 쓸모 있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성지수를 한 단계 올릴 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