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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성경본문 : 잠언 18: 20-21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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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목사(금란교회 원로목사)
저의 부친은 체격도 좋고 건장하신 분이셨는데 젊었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나는 환갑 전에 죽는다.”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말씀하던 대로 60세 환갑 전 해에 돌아가셨고, 저의 모친은 입버릇처럼 “나는 오래 살 거야. 지겹게 오래 살 거야.” 하시더니 93세에 소천하셨습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좋은 열매를 거두고 악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악한 열매를 거두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 같이 사람의 말도 그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작은 키가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하듯이 사람의 작은 혀가 그의 인생을 나쁘게도 좋게도 결정하는 것입니다. 혀는 가장 작은 지체이지만, 인생의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trouble maker). 미국의 한 여자는 못된 혀를 가지고 있어서 전화통을 들면 몇 시간씩 떠들어 대고는 하였는데,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 혀로 지은 죄를 회개하면서 혀를 강단에 좀 올려놓았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그렇게 큰 혀를 놓을 만한 강단은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이 혀가 인생을 잘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합니다. 교회가 성도들의 혀 때문에 부흥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합니다. 지옥의 참담한 광경을 보고 온 사람의 간증 가운데 혀로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은 장대에 혀를 못 박아 늘어뜨린 곳을 보았는데, 끔찍한 고통에서도 내려올 수가 없더랍니다.
1855년 4월 22일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이란 사람이 시카고(Chicago)를 방문했다가 구두수선공인 무디(D. L. Moody)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그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능력 있는 부흥사가 되어서 수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의 말이 남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의 힘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1장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 비판의 말(Criticism)
제일 먼저 조심해야할 말은 비판의 말입니다. 목회자들이나 성도가 짓는 죄 중에 가장 많은 죄가 남을 비판하는 말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7장에 가서 비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눈에는 들보 같은 큰 죄가 있는데, 남의 눈에 있는 먼지 같은 것을 흉보면서 그것을 빼라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① 남을 비판하는 만큼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되고
② 남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도 좋은 평가를 받고, 남을 악평하면 자기도 악평을 받게 된다(헤아림).
③ 모든 비판에 대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비판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이 기사와 이적을 행하심을 보고 “귀신의 힘으로 행한다.”고 비방할 때, “다른 죄는 다 용서받되 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 받지 못한다.”(마태복음 12장 31절) 하시고, 그러고 나서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쓸데없는 말 한마디라도 꼭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 사람은 눈앞에만 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미래까지 보시며 ? 사람은 겉모습만 보지만 하나님은 속 중심을 보십니다. 먼저 자신을 비판한 후에, 나도 죄인인데, 중심을 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는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비판해야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말
① 거짓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의 특성은 속이는 자요,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지옥)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지옥에 가는 자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단 종교나 거짓말하는 자들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들이고, 박태선과 같이 성령의 역사를 하던 사람도 거짓말을 하다보면 악령에 사로잡히게 됨을 명심해야 됩니다. 항상 무슨 말을 할 때, 내 말 속에 속임수나 거짓이 있지 아니한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는 자식들 손주들을 위해 기도할 때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합니다. 거짓된 사람은 그 믿음도 거짓된 믿음이 되기 쉽습니다.
② 참소(accuser ο?κατηγορω?ν-호 카테고론)
사탄의 하는 일은 남의 잘못을 고발하고 비난하고 들춰내고 중상모략 비방하여 불행과 고통을 갖다 주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결국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욥기 1장 6절부터 보면 사탄이 하나님께 나타나서 참소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8절)”라고 하실 때, 사탄은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재산과 복을 넘치도록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주의 손을 펴서 소유물을 쳐 보십시오. 틀림없이 주를 욕할 것입니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사탄이 욥을 치기 시작하여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불타고 도적맞고 죽임을 당했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니까, 다음에는 태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져 열 자녀가 다 죽고 그래도 원망 불평하지 않으니까, 욥의 온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렸지마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탄이 패배하여 도망하고 욥은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사람의 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방하고 중상 모략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고 매장시키며 교회를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붉은 용이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마귀가 하늘에서 성도들을 밤낮 참소하다가 땅으로 내어쫓겼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누구를 참소하다가 내어 쫓겼을까요? 죄 사함을 받고 용서받은 성도들의 죄를 들춰내고 비방하고 고발하다가 쫓겨났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첩을 얻고 거짓말을 했다고,
모세는 구스여자를 첩으로 얻었다고,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그의 남편까지 죽였다고,
사도 바울(Paul)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죽인 것,
수제자 베드로(Peter)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 등을 들춰내고 고발하고 비방하다가 결국 땅으로 내어 쫓겨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죄 없는 피를 다 쏟아, 인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죗값을 다 치르시고, “다 이루었다”(죗값을 다 치렀다는 뜻)고 하셨는데, 사탄은 지금도 끊임없이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를 이기려면 예수의 구속의 피, 대속의 피를 끊임없이 믿고 의지하고 주장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보면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절에는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에서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는 방법이 “예수의 피”와 “말씀”과 “죽음을 각오하는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참소하는 마귀”는 예수의 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의 사상인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남한의 교회들 때문에 적화통일을 못 하니까 교회를 비방, 참소하는 것인데, 이것도 모르고 기독교계 인사들까지도 사탄의 편을 들어서 교회를 같이 비방, 참소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를 비방 참소하는 것 보았습니까? 없습니다.
3. 불평의 말
사탄이 하나님께 참소하여 그 많던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빼앗아가고, 10남매가 집이 무너져 다 죽고,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니까 온몸이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흘러내리며,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는데도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겠느냐” 하는 말을 할 법도 한데, 욥은 결코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욥의 인내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목사님의 글 가운데, 어떤 기독교 가정은 주일마다 식사시간에 목사를 불에다 구워먹는다는 글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이 자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의 비판의 말, 불평의 말 때문에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고, 결국에는 지옥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장로를 세울 때,
장로님은 좋으나 그 가족들 중에 불평의 말, 비판의 말을 하기 때문에 장로를 세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로가 되었다가도 제명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12장 36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26장 20절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39편 1절에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고 다윗이 말했습니다. 시편 37편 1절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라고 했고, 다윗은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4. 더러운 말, 희롱의 말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에베소서 4장 30절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더러운 말, 희롱의 말, 음담패설의 말을 할 때, 성령님은 근심하시고 탄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아는 훌륭한 장로님 한 분은 사업도 잘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다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다방 마담에게 농담 한마디 했다가 죄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사업도 망하고 가정에 우환질고를 당해 큰 환난을 당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농담이나 희롱의 말이 마귀와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 하는 것을 알고 명심해야 합니다. 유머가 있는 것은 좋지만, 음담패설, 상스러운 말, 세속적인 더러운 말은 안 해야 됩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비판의 말, 거짓말, 참소하는 말이나 불평의 말, 더러운 농담이나 희롱의 말 등을 조심해야 됩니다. 잠언 17장 27절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과도하게 흥분하지 말고 냉철함이 필요합니다. “진실하고 성실하게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이나, 그 후손을 하나님이 귀히 쓰신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7장 19절에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라는 말씀의 “창조”는 “바라”(bara)라는 말씀인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뀝니다.
예레미야 15장 19절에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그전 번역에는 천한 것을 버리고, 라고 했음)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라고 하셨습니다. 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