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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15
살맛 나는 세상 / 성경 벌레
요한복음 8: 1-11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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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멍에를 메운 왕
이스라엘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는 솔로몬 왕의 시대가 끝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을 때, 백성들이 찾아와서 왕에게 솔로몬 시대와 다른 통치를 요구하였습니다.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중노동과 그가 우리에게 메워 주신 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 (왕상 12:4)
그렇게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지혜를 가졌던 왕이요,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고, 주변 국가들이 부러워
하고 겁을 냈던 왕이었으며, 성전을 비롯한 수많은 토목공사를 이룩할 뿐 아니라 무역을 통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킨 왕이었으며, 중앙집권적 왕권 체제를 강화시켜 놓은 왕이었던 솔로몬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는 한 마디로 무거운 멍에를 메워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솔로몬 시대야말로 살기 좋은 시대였고, 백성들이 모두 솔로몬 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를 칭송하고 그를 기려 기념비라도 세워 놓을 법 한데, '무거운 멍에를 백성에게 메운 왕'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은 뜻밖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로몬 자신은 자기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임금으로 기리 기억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냉정하게 그를 '무거운 멍에를 백성에게 지운 왕'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예수님도 한 마디로 "솔로몬의 영광이 들꽃만도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궁에서 솔로몬 왕을 모셨던 늙은 신하들조차도 이런 백성들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르호보암에게 그 요구를 들어주라고 조언을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통치하던 시대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찬란하였지만, 결국 백성들에게 무거운 고통의 멍에를 지워 준 시대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의 왕국을 이룩한 시대로 성경은 평가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이런 요청을 받은 르호보암은 늙은 신하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젊은 신하들의 말을 따라 대답을 하였습니다.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너희에게 메우겠다. 내 아버지는 너희를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였지만, 나는 너희를 쇠 채찍으로 치겠다."
정말로 어리석고 우매하기 짝이 없는 왕의 대답이었고, 소름끼치는 독재자의 무서운 대답이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12지파 중 10지파가 떨어져 나가 북이스라엘이 되었고, 겨우 두 지파만 남아 남유다가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의 통치에 대하여 83%의 백성들이 못마땅히 여긴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 시대는 살맛 나는 세상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왕권을 강화시킨 솔로몬의 통치는 많은 업적을 이룬 것은 사실입니다. 성전을 화려하게 지어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되게 하였고, 많은 성과 요새를 쌓아 국방을 튼튼히 하였으며, 활발한 무역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왕권 중심의 통치는 왕궁을 중심한 권력자들에게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백성들에게는 강제 노역과 무거운 세금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을 뿐입니다.
솔로몬이나 르호보암 왕은 백성들의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는 요구가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나라를 생각지 않는 무지의 소치에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왕들은 자기가 이룬 업적에 도취하여 백성들의 삶을 제대로 살피지 못할 만큼 오만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오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고, 백성들이 그를 외면한 것입니다.
짜증스러운 사회
요즈음 우리는 20세기말에 이 땅에 또다시 나타난 솔로몬 왕을 보면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군부의 세력들을 잠재우고, 쌓여 왔던 과거의 부정들을 개혁하였으며,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하여 공직에 있는 동안에는 부를 축적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5, 6공화국의 전직 대통령들을 심판대 앞에 세워 군사정권에 의해 억압당하였던 국민들의 한을 풀었습니다. 이런 업적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업적들이 우리의 솔로몬 왕을 오만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의 연두 기자회견은 마치 르호보암 왕이 그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한 마디로 거절해 버리는 그런 장면을 연상시켰습니다.
"내가 나라 생각해서 다 잘하고자 하는데,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으냐? 그만하자"
무서운 오만(傲慢)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싹둑 짤라 버린 르호보암의 대답처럼, 지금의 솔로몬 정권은 노동법 안기부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노동자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통치자의 오만은 일종의 병입니다. 국민들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귀머거리병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하는 일종의 치매와 같은 병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통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주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왕상 11:9
요즈음 우리는 정말 살맛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교통은 갈수록 더 복잡해지며, 사람들은 점점 더 이악해지고, 계속되는 짜증스러운 정치 현실 때문에 스트레스는 더욱 쌓여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몰려나는 사람들과 언제 정리해고 되어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내 가족, 내 남편, 내 아버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나 미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외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무엇하나 제대로 풀려 가는 일없이 꼬여만 가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속이 상합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잿빛 하늘을 한 음산하게 추운 겨울과 같아서, 사람들은 모두가 웅크리고 어서 속히 이 추운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삭막하기만 한 겨울 풍경은 사람들의 마음을 을씨년스럽게만 합니다.
요즈음 한참 잘 읽히고 있는 책 가운데 김정현씨가 쓴 <아버지>란 소설이 있습니다. 건실한 가정의 가장이며, 문화체육부 서기관인 주인공이 어느 날 친구 의사로부터 췌장암으로 5개월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건강진단 결과를 통보 받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혼자서 괴로워합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맛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혼자뿐이라는 생각으로 더욱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그렇게 사랑하던 딸도, 그리고 그의 미래의 희망이기도 한 아들도 그의 외로움을 눈치 채지 못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에 대해 딸은 혐오감을 가지고, 아들은 무관심하고, 아내는 그 남편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맙니다.
그러는 중에도 자기의 괴로움을 감싸 안아 주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 위로를 받습니다. 그는 병을 통해 인간이 고독한 존재임을 깨닫게 됨과 동시에 그런 고독을 감싸줄 사람이 필요하게 됨을 깨닫습니다. 결국 그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후회하는 가족들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게 되자, 친구에게 부탁하여 사람답게 죽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고민하던 친구는 결국 그의 부탁을 들어 그를 편안하게 죽게 만들어 준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두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모두 따뜻한 정을 간직한 사람의 냄새를 맡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두가 정신없이 뛰느라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되었고, 결국 우리가 열심히 달려왔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돌이킬 수 없는 회한과 고독뿐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암선고를 받고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은 날들을 외로워하며 살고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종말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종말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기 속에 감추어 둔 사랑을 밖으로 펼쳐 내지 못한 채 아둥바둥 싸우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사랑하며 살자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이제 사랑하며 살자. 내팽개쳐 둔 지고지순의 아름다운 사랑을 연인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벗에게 나누며 살자. 그러기 위해서 어딘가에 감춰 두었던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되찾자.…
당신에게도 그런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을 펼치면 그 향기로운 사람의 냄새가, 또 따뜻한 정의 훈기가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다움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기에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기계같이 냉정하고 정이 없어 추운 겨울처럼 찬바람만 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추운 겨울을 녹일 따뜻한 정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호보암에게서 이런 사람 냄새를 맡고자 했던 것입니다. 백성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약속 한 마디를 듣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오만은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원했던 사람의 따뜻한 정 대신에 괴물의 무서운 독소를 뿜어냈던 것입니다.
추운 겨울 사람들이 데모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증발해 버린 사람의 정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사는 살맛 나는 세상을 원하기 때문에 성명을 발표하고 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노동법이나 안기부법이나 모두 사람을 의심하고 서로 기계처럼 대하게 만든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통치자의 사명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을 모두 의심하며 살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되찾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속에 깊이 묻힌 사랑을 일깨워 주시고, 그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 13:34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를 모두 우리에게 내어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섬김과 희생을 통한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속에 깊이 묻힌 사랑은 우리 자신을 깨트릴 때에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의 두꺼운 껍데기를 깨트리지 않는 한 사랑은 우리 속에서 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의 이야기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예수님은 묵묵히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그리고 재촉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셔서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씀하시자 결국 하나 둘씩 다 물러가고 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칼날 같은 율법을 들먹거리며 살기가 등등한 유대 지도자들과 대조적으로 온화한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따라 엄격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따라 자유롭게 사는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감시하고 억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며, 생명을 북돋우어 주는 것입니다.
법만이 통치 수단이 되는 사회는 억압된 사회이며 살맛 나지 않는 사회입니다. 반면에 법보다는 정이 통하는 사회가 오히려 자유로운 사회이며 살맛 나는 세상입니다. 우리 사회는 후자에 속한 사회였는데, 언젠가부터 살벌하고 냉기가 도는 사회로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검찰과 경찰력으로 통치되는 사회는, 결국 그것이 뿜어내는 최류까스 만큼이나 맵고 눈물나는 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도 모두 메말라 있습니다. 사랑방이 없는 가정, 이웃들이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랑방이 사라져 버린 현대의 가정은 모두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이웃과 상관없이 살아가기에 모두 정이 메마르고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족들도 제 각기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들어와 잠만 자는 집,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기에 대화가 없는 가정, 여기에 정이 있을 리 없고 사랑이 솟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도시의 삶은 사람을 몹시도 분주하게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을 빼앗아 버리고 맙니다. 도시의 삶이, 그리고 이 사회의 냉기류가 우리의 가정에서 사랑을 증발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그리스도를 모시자는 것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자는 뜻입니다. 사랑의 새계명을 주신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에 다시 모실 때 우리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던 사랑들을 끄집어내면서 찡그렸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며,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고,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기쁨과 즐거움을 찾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정이 메말라 버린 우리 자신의 종말적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우리가 어디서 사랑을 잃어버렸는지, 우리의 정을 어디다 감추어 두었는지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아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의 정치가 추운 겨울 바람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럴수록 따뜻한 사랑의 불을 지펴서 그 추위를 극복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울수록 서로의 손을 잡아 따뜻한 정을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속에 자리잡은 욕망과 이기심과 오만을 벗어 던지고 이웃을 만나며, 사랑으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선교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짜증스러운 삶이 변화되어 정말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삶으로 변화되도록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를 모십시다.
'채찍으로 다스리는 세상'을 '사랑으로 섬기는 세상'으로 바꾸시는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십시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이 변할 것이며, 마침내 우리 사회에서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서 잃었던 사랑을 찾아내어 함께 나누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펴온 글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