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119]海左丁範祖-王右軍山陰籠鵝[왕우군산음롱아]
王右軍山陰籠鵝(왕우군산음농아)
- 海左 丁範祖(정범조)
萬古墨池留典則(만고묵지류전칙)
뛰어난 필법은 만고에 모범을 남겼고
春遊曲水有文章(춘유곡수유문장)
蘭亭의 봄놀이는 훌륭한 문장이 전하네.
換鵝非爲珍禽玩(환아비위진금완)
거위와 바꾼 것은 진귀한 새 보려고 한 것이 아니요
要學黃庭鍊骨方(요학황정련골방)
골격을 단련하는 黃庭堅의 신선술 배우러 해서라오.
丁範祖의 《海左集》15권에 왕희지가 글씨를 써 주고
사례로 거위를 받은 일을 소재로 한
〈王右軍山陰籠鵝〉시가 실려 있다.
정범조丁範祖
법세(法世), 해좌(海左), 문헌(文憲)
조선후기 형조판서, 예문관, 홍문관의 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법세(法世), 호는 해좌(海左).
정시한(丁時翰)의 현손이며, 정도항(丁道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영신(丁永愼)이고, 아버지는 유학 정지령(丁志寧)이며,
어머니는 신필양(申弼讓)의 딸이다.
세거지는 원주로 홍이헌(洪而憲)·신성연(申聖淵)·유한우(兪漢遇) 등과 친교가 깊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9년 (영조 35)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유생이 되었다가,
마침 동궁(東宮: 思悼世子)을 비난하는 유소(儒疏)가 바쳐지자 이에 반대하였다.
1763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사직서직장(社稷署直長)이 되었다가
성균관전적·병조좌랑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
그러나 왕명을 받드는 데 지체했다는 죄로 잠시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이조좌랑에 서용되고 옥구현감을 거쳐 홍문록에 뽑히자,
그 문학의 재주를 평가한 우의정 원인손(元仁孫)의 천거로 수찬이 되었다.
이어 동부승지로 발탁되었으며,
왕명에 따라 <건공가(建功歌)>·<백운고시(百韻古詩)>를
지어 바쳐 시명이 조야간에 크게 드러났 한다.
그 뒤 공조참의·풍기군수를 역임하고, 정조초에 양양부사가 되어 부세를 줄이고
유풍(儒風)을 진작시키는 등 서민 교화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겸관(兼官)으로 있던
강릉에서 목상(木商)이 소나무를 잠매(潛買)한 사건으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인 1781년 동부승지로 서용되고, 대사간을 거쳐 풍천부사가 되어 사직하였다.
1788년 예조참의로 서용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792년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나이가 많음을 들어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예조참판·개성유수·이조참판 등에 차례로 제수되었다. 2년 후 지돈녕부사가 되어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가면서 형조판서에 승진, 지춘추관사를 겸임하였다.
그 뒤 78세가 되던 정조 말년까지 조정에 머물며 예문관·홍문관의 제학으로서
문사(文詞)의 임무를 맡았다. 1800년 정조가 죽자
정종행장찬술당상(正宗行狀撰述堂上)으로 뽑혀 만장 7율 10수를 지었으며,
이듬해 실록청찬집당상으로서 『정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시율과 문장에 뛰어나 사림의 모범으로 명성을 얻었고, 또 이로 인해 영조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문체반정(文體反正)에 주력하던 정조에 의해
당대 문학의 제1인자로 평가되어 70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
오랫동안 문사의 임무를 맡았다. 남인 집안 출신으로서 정치적 자세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당시의 탕평책에는 비판적이었다.
즉, 탕평책이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균용론(均用論)만 취하는 것이어서
사의(私意)가 횡행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신 붕당을 없애기 위해서는 공정한 인사 관리와 신의 있는 시책,
분명한 정치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문집으로 『해좌집』 39권이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원문=海左先生文集卷之十五 / 詩
題屛畵
休言國步一隅偏。江左風流海字傳。山水淸輝會稽郡。衣冠勝集永和年。
淩湍杯勢洄洄遠。暎竹詩篇箇箇圓。未信名區猶似昔。秖今文物倩龍眠。
右蘭亭
繞峽雲溪萬疊昏。武陵深處是仙源。八年龍戰無消息。千落蜂房有子孫。
撩亂花紅春後浪。淺深園綠燒餘痕。逃秦不肯幾微露。譏議盧生却負恩。
右桃源
風雲龍變漭誰原。大德如愚是牝門。末運浮沉二百歲。空文約畧五千言。
流沙去路靑犉健。關樹通宵紫氣翻。尼父當時猶問禮。紛紛餘子未堪論。
右柱下史靑牛出關
歸舟恨不大夫同。終古君臣鮮始終。盖世雄圖鳴甲後。晩年身計積金中。
游齊過魯心無滯。散髮浮湖跡若空。載去西施非戀色。却憂移禍越王宮。
右鴟夷子扁舟浮湖
世外高標野鶴翔。溫劉羞競利名塲。冲年慧悟全身術。曠度爭推坦腹郞。
萬古墨池留典則。春遊曲水有文章。換鵝非爲珍禽玩。要學黃庭鍊骨方。
右王右軍山陰籠鵝
歸舟搖颺浦風吹。望裡柴桑隱約知。孤憤難鋤寄奴草。端憂空瀉責兒詩。
藏書舊屋秋山在。把酒東籬露菊垂。曠世常深執鞭願。丹靑一幅托心期。
右陶彭澤籬東採菊
天地飄然一幅巾。習池村釀夜來新。君王自少憐才念。湖海還容落魄身。
灞岸驢蹄四山雪。梅花野彴數枝春。請看短褐無瑕點。何似衣冠陷賊人。
右孟襄陽騎驢訪梅
金鑾殿闢五雲光。一日淸詞動帝王。氣岸肻饒高力士。塵埃能識郭汾陽。
星精降世應方朔。謫路隨緣偶夜郞。杯酒風流徵繪素。梧桐晴月滿襟凉。
右李翰林停杯問月
家在孤山幾疊幽。古梅踈影水悠悠。盤飛一鶴知佳客。浮到雙林信小舟。
有足何曾汴城着。無書可副茂陵求。休言勇退神仙近。此老行裝本穩流。
右林處士孤山放鶴
壬戌秋中赤壁宵。武昌山水月迢迢。一江星斗搖蘭槳。萬古興亡咽洞簫。
憂愛玉樓天上冷。榮華蓮燭夢中銷。黃州外補容踈放。勝似朝端齒舌囂。
右蘓團鍊赤壁泛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