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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골재 대피소-송계사[2011.1.4~5(1박2일)백두대간 제4구간 중]
지난해 11월초에 삿갓골재 대피소를 내려온 후 두 달 만에 찾아 나선다. 상고대의 눈꽃이 눈에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년 초의 산행을 덕유산으로 잡아 집사람을 종용한다. 집사람하고 같이 산행 한지가 몇 개월이 된다. 큰딸 이 아이를 낳아 산후 조리원에 있는 후 근 한 달간 딸집에서 해복간을 하느라 동행치 못했다. 그런 이유에선가 집사람이 곧잘 따라나서 동행하게 된다. 4일 삿갓골재 대피소를 예약하고 향적봉 대피소를 예약하려 전화를 해 보지만 두절이다. 계획을 변경하여 송계사로 하산을 결정한다. 교통편도 그곳이 좋다. 지난해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하산한 것은 비로 인하여 신발이 젖어 매우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황점골로 내려오는 길에 남덕유산의 가을 맛을 보았다. 산골에서는 이미 겨울을 준비하는 김장이 한창 이었다. 거창에서 황점골에 가는 버스가 2시간에 한 대꼴 거창에서 오후3시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여 삿갓골재 대피소에 6시 반에 도착 예정이었으나. 집사람의 조언으로 두 시간을 앞당겨 오후 1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할 계획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눈이 내려 주위가 하얀 소복을 했다. 아마 10센지 이상 내린 눈이다. 집에서 8시가 조금 못되어 출발이다. 도로는 눈이 있어 조심스럽다. 전주를 향하는 전용도로는 제설작업을 했지만 2차선의 도로는 1차선만이 차량 바퀴 근방이 검정색을 보일뿐이다. 차량들은 시속 60이 넘질 않는다. 전주에 다가 갈수록 눈의 양은 만치 않았다. 도로에는 제설차량이 하얀 눈보라를 만들며 도로위의 눈을 도로 밖으로 치우고 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장수를 향한다. 차량의 윈도 부러쉬가 낡아 잘 닦이질 않는다. 어제 구입한 새것으로 바뀌어 낄 요량으로 진안 휴게소에 들린다. 아침 시간 이라 휴게소는 한가한다. 하얀 눈을 맞고 있는 마이산의 모습이 추위에 떨고 있다. 돌아 나오는 길에 하얀 모습의 말귀를 담아 본다. 당초 계획은 거창을 거쳐 북상면에 차를 놓고 황점골로 향하는 계획이었다. 육십령터널을 지나 서상 나들목으로 나와 영각사 입구로 통하는 37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황점골에 갈 요량이다. 영각사 입구로 향하는 도로에서 본 남덕유산과 서봉은 눈이 오는지 부연한 모습으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고 있다. 영각사 입구에 들어서니 두 대의 관광버스에서 등산객들이 내려 산행 준비를 한다. 아이젠과 스페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도 고개를 넘어 황점골에서 등산을 할 요량이었으나 제설작업을 하지 못하여 도로가 통제되어 갈 수 없어 영각사에서 남덕유산을 향한다고 한다. 차를 돌려 거창으로 향한다. 4차선 도로는 조금 달리다 2차선으로 바뀐다. 안의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 옆에는 여러 정자들을 지난다. 여름철이면 정자의 운치가 더 하겠지만, 겨울의 정자는 스산하기 그지없다. 농월정(弄月亭) 을 지나 거창으로 향하는 3번 국도를 이용한다. 거창을 거쳐 위천면을 향한다. 지도에서 당초의 위천면을 휴천면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거창가기 전에 위천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었는데, 휴천으로 잘못알고 있어 거창까지 갔다. 되돌아 구 도로를 타고 마리면 삼거리를 거쳐 위천면으로 향한다. 위천면은 금원산을 가는 길목이라 몇 번인가를 왔지만 그때는 산악회를 따라오니 길눈을 익히지 못했다. 지난번 황점골에서 내려오는 길에 군내버스를 타고 오면서 열심히 지리를 익혔지만 오늘은 영 길이 생각나지 않는다. 길가에 있는 정비소에 들러 길을 물어 보고 다시 간다. 위천면을 지나 북상면에 이르니 11시30분이다. 과민성 대장증상인가? 조금만 긴장하면 똥줄당겨오는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아침에 화장실을 다녀왔건만 아랫배가 아프다.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다. 보건지소 앞마당에 차를 세워 놓고 지소화장실 로 향하나 화장실에 물이 나오질 않는다고 한다. 면사무소로 향한다. 화장실에 다녀와 정거장에 붙여있는 버스시간표에 황점골에 가는 11시40분 버스가 조금 전에 출발 했다. 다음 버스시간이 오후 2시10분이다. 정류장에는 젊은 조그만 부인이 아이와 함께 있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촌로가 담배를 피우는 냄새가 역겹다. 부인의 말씨가 어둔하다. 아마 동남아 여인 인 듯하다.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다. 더운 지방에서 온 여인은 한반도의 겨울이 몹시 추운가 보다. 우리나라도 농촌총각은 여자가 없어 이국에서 들어온 여인들이 자리를 메운다. 이렇게 서서히 우리도 선진국으로 가는 와중에 농촌이 제일먼저 몸살이다. 이들의 아이들이 자라서 농촌을 일구고 살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저층을 이루며 사회비용을 증가 시킬 것인가? 조금은 암울한 느낌이다. 내가 무슨 애국자 이런가? 이제 막 공직을 나온 퇴직자 신분에 주제넘게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게...
북상면 주위를 둘러보고 자장면 집에 들어간다. 산촌의 자장면집이다. 세 개의 식탁 앞에 놓여 있는 연탄난로에서 가스냄새가 역겹다. 얼마 만에 맛아 보는 연탄 냄새인가? 두 명의 촌로가 난롯가에 있다가 우리내외가 들어서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벌써 점심시간인가 하며 두런거린다. 자장면을 시켜 놓고 기다린다. 아주머니가 주방장이며 서빙이며 계산원이며 사장이다. 기계에서 뺀 면발이 여간 가늘어 보인다. 여기에 자장을 넣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자장면인가? 그러나 자장면의 맛을 잃어버려 별 맛을 못 느끼겠다. 아니 맛이 없어서 일게다. 인스턴트식품으로 수타면이 있지만, 먹어보질 않아 맛을 알리없고, 자장면은 언제나 손으로 면발을 늘려 만든 것을 먹는 것이 나의 독특한 식감인데,
기계에서 뽑는 면발이 맛이 날 리 없다. 집사람은 한 젓가락 면발을 내 그릇에 넘긴다. 식사를 끝내고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시골이라 지금은 늙은 할머니만이 촌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 있고 관공소에 다니는 사람들도 거창에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시골에는 더욱 적막감이 돌 밖에, 이곳에 산지 30년이 되었다고 한다. 시집을 와서 살고 있는 것이다. 친정을 물으니 서울이란다. 당초이곳에서 살다가 모두 이사하였다 한다. 이렇게 농촌이라 산촌 어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이 먹은 우리들의 어머니 아주머니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차로 돌아와 황점행 버스를 기다린다. 차안은 맑은 햇살에 따뜻하다. 식후 오수(午睡)를 즐긴다. 1시50분쯤은 배낭을 챙겨 정류장엘 간다. 준비한 물통에 면사무소에 가서 물을 채운다. 황점행 버스는 2시가 못되어 도착한다. 방향을 틀어 지나려는 버스를 손으로 신호를 보내니 세운다. 내리는 사람도 없다. 한눈을 팔고 있던 집사람은 급한 마음이다. 버스에 오른 집사람 시간이 되지 안했는데, 벌써 도착했다고 의아한 눈초리다. 이렇게 산촌의 시간은 빨랐다 느렸다 하는 것인가? 도회의 버스는 구간 정거장에서 시간이 점검되도록 되어있어 시간을 지키도록 하는데 이곳의 군내버스는 손님이 없으면 일찍 떠나가도 민원(民怨)이 없는가 보다. 우리는 정말 민심 좋은 곳 이라 생각한다. 차비를 내려고 얼마인가를 묻는데. 기사가 무엇이라고 하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가 없다. 집사람이 알아듣고 내릴 때 계산하란다. 운전사 옆에 있는 지난번에 본 것 같은 요금 수납장이 합판으로 짜 놓여있다. 집사람 그것을 보고 어렸을 적의 버스를 생각한 모양이다. 집사람도 익산시 성당포구가 집이니 시내버스가 아닌 시외버스를 타고 통학을 한 기억이 새로운가 보다. 황점 도착시간이 2시20분이 조금 넘었다.
주차장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동네 길로 접어든다. 지난11월에 이곳으로 하산할 적에는 김장이 한창이었는데. 그때 거둔 무청을 엮어 말리느라 음식점 아래채 처마 밑에는 시래기 북풍을 맞으며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다. 요새 웰빙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시래기 이다. 한 20여년 전 일본사람이 채소를 이용하여 만든 야채스프라는 것을 만들어 건강에 좋다고 하는 책을 본 기억이 있다. 집사람도 몇 년 전에 앎은 대상포진의 휴유증이 있는 후로 야채물을 복용하고 있다. 이렇게 옛날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구황식품으로 먹던 식품이 이제는 건강식으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와 건강을 돕는다. 주차장을 지나 관광버스가 한 대 서 있다. 하산하는 등산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등산로 입구에 놓여있는 벌통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을의 신사답게 노오란 레인코트를 입고 추남의 우수를 한껏 발하던 낙엽송은 이제는 검정색 코트로 갈아입고 지난밤에 내린 눈을 밟으며 서성이고 있다. 어디를 갈 요량인가 보다. 한 무리의 등산객이 발간 볼을 하고 입김을 내며 내려서며 즐거운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다시 아이젠을 하고 출발이다. 시간은 3시가 다가온다. 삿갓골재 대피소 4.2km이다. 약 두 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다. 계곡물은 추위에 얼어붙어 얼음장 밑에서 졸졸거리는 소리가 가냘프다. 물도 추위에 떨고 있다. 지난가을에는 콧노래며 합창을 즐기던 삿갓수도 유랑의 발걸음 멈추고 쉬고 있는지 그저 침묵만이 계곡을 지키고 있다. 집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발길을 옮기다 보니 대피소 에 오르는 계단 밑에 도착해 있다. 주위의 나무들은 하얀 솜옷을 입고 겨울을 나고 있다.
참샘의 하얀 파이프는 물줄기를 멈추고 있다. 플라스틱 통이 놓인 자리에 발자국이 어지럽다. 계단을 올라서는데, 4시 25분 발전기의 팔랑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바람을 가른다. 골 진 곳에 자리한 대피소는 풍력발전이 제격이다. 대피소에 들어가 접수를 한다. 예약한 것을 알고 직원이 누구냐고 한다. 오늘 대피소에 머무는 사람들은 15명 안 밖이다. 참샘물은 얼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북상에서 물을 떠오기를 잘했다라고 생각한다. 등산객 하나가 물이 있는곳을 직원에게 물으니 참샘을 알려주며 플라스틱 통을 열고 고여 있는 물을 떠와야 한다고 한다. 내가 얼지 안 했는냐고 하니 얼지 안했다고 한다. 휴대용 물주머니를 들고 참샘을 향한다. 한사람이 물을 뜨고 있다.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등허리를 감싸는 윗도리가 땀에 젖은 흔적이 뚜렷하다. 한겨울에 저렇게 땀을 흘리며 등산하면 감기 걸리기 십상인데, 하며 남 걱정이다. 대피소 하층에 있는 주방은 개수대의 청소로 인하여 냄새가 많이 나니 밖에서 식사준비를 하란다. 내려가 보니 역겨운 기름 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한다. 라면을 끓이고, 집에서 가져온 찬밥을 말아 먹는다. 식사가 끝나가는 시간에 젊은 커플 한쌍이 들어온다. 시간은 6시가 조금 넘었다. 황점에서 올라온다고 한다. 4시 넘어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억센 경상도 말씨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삼십대와 사십대가 있는 5명이 한 팀 그리고 우리내외 가 전부 인 것 같다. 식사를 마친 시간이 7시 대피소의 긴 겨울밤을 지내야 한다. 바닥은 따뜻하다. 실내가 매우 건조하다. 집사람은 연신 콧물이 흘러 감기 증상이 있다고 호소한다. 등이 뜨거우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집사람이 걱정이다. 7시가 넘어서 한 사람이 커다란 배낭을 옆자리에 내려놓고 자리를 뜬다. 배낭 옆구리에는 커다란 삽이 매달려 있다. 비박을 위한 도구이다. 이 겨울에 비박을 하며 홀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가 보다. 젊음이 좋다. 대구에서 온 부자는 말이 없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은 초저녁부터 누워 있다. 아버지와 대화가 전혀 없다. 억지로 따라나선 것인가 보다. 남덕유에서 삿갓재방향을 통재 하였다고 하는데, 그 눈길을 뚫고 온 것이다. 대답한 체력이다. 5명의 일행들도 영각사에서 남덕유산으로 해서 올 생각이었으나 통재하여 황점에 차를 두고 우리내외보다 조금 전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도로의 통재로 거창으로 돌아 왔는데, 그 사람들은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왔다고 한다. 눈을 치워 다닐 만 했다고 한다. 그들의 행선지는 역시 향적봉이다. 대구의 부자도 향적봉을 향한다고 한다. 젊은이 커플은 남덕유산을 향할 계획이었으나 통재로 인하여 계획을 변경할 것 같다.
다섯명의 젊은이들은 식사가 끝난 후 가져온 맥주를 마시며 권한다. 집사람이 하얀 스치로풀 에 들어있는 딸기만 두 개 집어 들어 하나를 나의 입에 물린다. 내일 계획은 아침 7시반에 출발 예정이다. 송계삼거리에 12시 이전에 도착하면 중봉에 있는 주목군락지를 둘러보고 다시 내려와 송계사로 하산할 계획이다. 8시에 소등이 되는 대피소 초저녁에 잠이 들어 12시가 되어 잠이 깨었다. 맹렬한 바람소리 팔랑개비 돌아가는 소리 대피소가 떠나갈듯 골아대는 코골이 소리 이층에서 누가 자나 대피소 천정이 들썩 거릴 정도이다. 뒤척이다. 옷을 입고 화장실을 향한다. 바람은 더욱 거세져 눈보라를 이룬다. 얼얼한 추위와 바람에 정신이 없다. 대구의 부자(父子) 중 아버지는 코를 골던 숨소리를 멈추고 깨어 앉아 있다. 이 긴 겨울밤이 언제나 셀 것 인가? 연신 시간을 체크 하다. 4시 반에 5명의 젊은이 들이 기상을 재촉한다.
젊은 사람들이 서두르는 것을 보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한다. 어제 저녁에는 주방쪽(북쪽)에서 저녁을 준비했지만 오늘은 입구 쪽에서 아침을 준비한다. 어제 데워놓은 물을 보온병에서 내어 밥을 안친다. 젊은이들의 반하는 무색휘발유를 사용하는 바하이다. 압축을 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소리가 요란하다. 나는 지난번에 이곳에서 산 가스를 사용한다. 그리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새로 구입한 작은 소형 가스반하이다. 점심까지 하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인다. 집사람 몫까지이니 지난번 혼자 등산할 때보다 시간과 정성이 두 배이다. 겨울철 야외에서 밥하기는 정말 정성이 많이 든다. 삼층밥이 안 되게 하려면 말이다. 여섯시에 출발한다는 젊은이들이 6시 10분쯤 출발하고, 우리는 6시 45분에 출발이다. 집사람은 스패치가 없어 조금 걱정이다. 무룡산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서는데, 아직도 주위는 컴컴하다. 나만 렌턴을 하고 집사람은 뒤에서 따른다. 무룡산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오늘은 눈길이라 예상치 못하겠다. 날씨는 연신 바람이 거세고 바람에 날리는 눈보라로 앞이 잘 보일 질 않는다. 동쪽의 황점골과 월성마을의 빨간 가로등 불빛이 부지런을 떨고 있다. 먼저 간 젊은이들이 낸 발자국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7시 반이 되어서야 주위가 훤해 진다. 렌턴을 벗어 주머니에 넣는다. 집사람은 조심조심 발자국의 자리를 찾느라 속도가 나질 않는다. 장갑도 내가 쓰던 고어택스를 주고 나는 장갑을 두 개 겹쳐 낀다. 엊그제 양키시장에서 구입한 스키마스크를 했건만 왼쪽 광대뼈가 시리고 아프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여러 겹 접어 눈 밑으로 하여 광대뼈를 감싼다. 스키마스크는 두 눈과 코 부위가 뚫려 있어 김이 서리지 않아 좋다. 예전에 있던 것은 눈 부분만 뚫려 있어 입김이 얼어 얼굴에 동상 입기 십상이라, 이번에 새로 구입한 것이 긴요하게 쓰인다. 가격은 한 개 5000원이다. 한 시간을 넘게 갔지만 무룡산 정상은 아직 도착치 못했다. 무룡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8시 20분이다. 향적봉 8.4km, 동업령까지는 4.1km 약 두 시간이 거린다. 날씨는 간간이 해가 비치나 안개로 인하여 밝지 못하다. 하얀 눈보라를 맞고 서 있는 이정표가 추위에 떨고 있다.
무룡산의 표지석도 얼굴에 분칠을 하고 서 있다. 집사람을 표지석 앞에 세운다. 알카이다(중동 무력 단체이름) 여전사 같다. 나무들은 모두 하얀 겨울옷을 입고 자랑이다. 어떤 놈은 사슴뿔을 하고 있고, 어떤 놈은 바다 속 산호처럼 산속의 산호를 하고 탐방객의 눈을 호사 시킨다. 아~이렇게 자연의 조화를 어떤 말로 표현할 거나 글제주가 없는 것을 탄한다. 북서풍을 안고 가는 길이라 수건으로 싸맨 광대뼈는 여전히 얼얼하다. 바람막이 모자를 쓴다. 조금은 덥고 왼쪽 광대뼈는 시리고 콧등을 싸매니 앞이 잘 보이질 안아 눈초점이 더욱 아래로 향하니 고개가 아프다. 발자국만 살피니 주위의 산호와 사슴뿔 구경과 적설의 신비함을 만끽하질 못한다. 연중 한번 하는 적설 산행 상고대의 아름다움보다. 항상 추위에 시달려 아름다움 자연의 조화를 반감한다. 무룡산에서 한 시간여 내려온 길에 주목이 하얀 외투를 입고 서서 우리를 반긴다. 아니 속옷까지 하얀 와이샤스에 넥타이도 하얀 색이다. 하늘은 조금씩 햇빛을 비추나 부연 눈보라가 북서풍을 타고 저 거창들판을 향한다.
동업령 2.0km을 알리는 이정표는 깨끗이 세수를 하고 반긴다. 앞서간 5명의 일행들이 세수를 시킨 모양이다. 이마는 잘 씻기지 않아 손이 덜 간 흔적이다. 시간은 9시30분 열시반이 넘어야 동업령에 도착할 것 같다. 능선의 언저리는 하얀 이불을 둘러쓴 모양이다. 이렇게 겨울에 하얀 꽃을 피우는 자연의 조화(彫花)를 인간들은 그저 감탄할 뿐이다. 등산로 에 떡가루같이 뭉쳐진 눈을 뿌린것 같은 모습 마치 떡방앗간의 기계에서 막 떨어져 나온 쌀가루가 넙적하게 떨어지는 모습과 같다. 이 고운 떡가루에 서리태(검정콩)를 넣어 쇠무리 찰떡을 해 먹고 싶다. 아침 먹는지 4시간이 지나니 배가 고픈 모양이다. 고운 눈가루를 보고 떡을 생각하니 시야가 멀게 보이질 않아 지리를 분간키 어렵다. 전망대가 만들어진 곳에 텐트가 쳐져 있다. 옆에는 간이 중계소가 서 있다. 동업령이다. 시간은 벌써 10시40분을 넘고 있다. 조금 쉬어갈 요량으로 텐트 로 향하는 젊은이한테 들어가 수 있는지 물으니 좁아서 어렵다고 한다. 무순 텐트냐고 물으니 자기들이 친 비박 장소란다. 나는 이동식 안테나를 점검하기 위한 고정 천막인줄 알았다.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물으니 안성으로 하산을 할 계획이란다. 이정표는 향적봉 4.4km 안성 4.5km 삿갓재대피소 6.2km 남덕유산 10.5km를 알린다. 동업령의 회오리바람을 피하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등산로는 한결 눈이 다더져 발길이 쉽다. 스페치를 안한 집사람이 조금은 안심이다. 향적봉으로 향하는 발길에 몇몇의 등산객이 마주 오는 사람들이 있다. 동업령을 지나 11시가 넘으니 날씨가 맑아져 쪽빛의 하늘이 보인다. 설화와 쪽빛 하늘의 만남은 눈이 부시도록 파란색이 발하여 보라색을 띠는 것 같다. 발밑만 보고 걸다. 이제부터는 눈길(초점)이 하늘을 향한다. 야~ 야~ 감탄사를 절로 내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머리를 들어 눈꽃 속에 비치는 파란창공을 향하여 입을 벌린채 감탄사를 연발한다. 마치 바다 속의 하얀 산호 군락지를 헤엄치며 유영하는 느낌이다. 손에 잡은 스틱은 작살이며 등에 맨 배낭은 산소통, 그리고 스키마스크는 수중 마우스피스이고 잠수복이며, 아이젠을 한 발은 오리발을 한 모습으로 착각이다. 이렇게 황홀한 기분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바다 속을 헤엄치듯 발길을 놓는다. 작년에 찾아온 느낌과 또 다른 설레 임이다. 작년에는 일행들과 앞뒤로 서서 번잡을 떨고 지난 길을 오늘은 이렇게 호젓이 바다한가운데를 유영하듯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집사람 하늘의 청색이 더욱 파란 해 붉은빛이 도는 것 같다고 한다. 11시가 넘으니 배가 고파진다. 백암봉(송계사거리)을 앞에 두고 바위로 가려진 곳에서 짐을 내린다. 점심을 할 생각이다. 아침에 한 밥에 라면을 끓여 말아 먹을 양이다. 저 앞쪽으로 우리보다 앞선 5명의 일행들이 백암봉 능선에 오르고 있다. 그들도 시간을 볼 때 점심을 끝내고 가는 모양이다. 등산로에서 반하를 피우고 라면을 끓이는데, 지나는 등산객이 한마디 한다. 라면냄새 끝내준다. 아~ 하며 시장 끼를 발한다. 같이 쉬었다 먹고 가자고 인사를 한다. 식사를 하는 중에 대구에서 온 부자(父子)가 하얀 입김을 토하여 지난다. 집사람은 라면국물을 좋아하질 않아 밥에 물을 부어 삶아 먹는다. 날씨는 더욱 맑아져 백암봉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의 허리가 노란 노루 등을 하고 엉금 거린다. 점심을 끝내고 백암봉으로 향하는 바위능선을 오른다.
저 남쪽으로 아침부터 걸어온 길들을 살핀다. 삿갓재 넘어 남덕유와 서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오늘도 남덕유의 머리는 하얀 구름을 이고 있다. 그 맨 왼쪽 구름위에 고독히 서 있는 봉우리가 지리산 천왕봉이고 남덕유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반야봉 같다. 망원렌즈까지 갖추고 삼각대를 받친 등산객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인가 보다. 천왕봉과 반야봉 그리고 남덕유와 서봉을 한데 어울러 스카이란을 형성한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촬영 중이다.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1시 향적봉 2.1km 송계사6.2km 신풍령(빼재)11km이다. 중봉으로 향하는 길목의 오르막에는 사람들의 꼬리가 물려 있다. 중봉을 넘어 주목군락지를 보고 올 요량이었으나. 그곳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시간이 1~2시간이다. 그러면 송계사까지6km 약 4시간 2시간을 합하면 7시가 넘어야 송계사에 도착할 것 같다. 송계사로 향하는 길목은 사람은 다니질 않아 눈길이 더욱 험하다. 주목군락지를 포기하고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백암봉에서 송계사로 향한다. 덕유산 눈꽃 산행의 백미(白眉)를 빼놓고 하는 기분이라 몹시 서운하지만 어찌 하랴? 차량이 북상면에 있어 오늘 돌아가야 하니 향적봉 대피소에 예약이 되었다면 여유로운 산행이 되었을 텐데, 이번의 계획은 조금 미흡하지만 하는 수 없다. 소사재 넘어 동쪽을 바라보니 힘센 장정의 하얀 육살이 힘차게 뻗치어 있는 곳. 민주지산과 삼도봉이 허연 어깨를 들어내고 바디빌딩을 하며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저 멀리 동쪽의 민주지산과 삼도봉을 지나 우두령을 넘어 김천골의 황학산아 내 곳 가마하며 스스로 위로를 한다. 백암봉(송계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송계사로 향한다. 등산로는 두 세 사람의 발자국이 길을 내놓아 그 곳을 따라 향하다. 무릎이 넘게 빠지는 곳에서 집사람이 걱정이다. 한 시간여를 내려와 쉬고 있는데, 한 무리의 등산객이 뒤를 따른다. 점심을 후 두 시간이 지나 간식을 먹으려 스키마스크를 벗고 있는 중이다.
일행 맨 앞에 선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 최옥술이다. 순간 보더니 야 용구 아니야 하고 반긴다. 쉬는 날이라 산악회를 따라 등산을 왔다고 한다. 리조트에서 곤도라를 타고 올라와 송계사로 향하는 길이란다. 하면서 이곳으로 가면 송계사가 나오냐고 묻는다. 곧장 가면 된다고 알려 준다. 당시에는 친구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우리를 앞지른다. 횡경재에 다다른 시간이 오후3시 송계사 3.0km을 알린다. 신풍령(빼재)로 향하는 길목은 폐쇄되어 있다. 이제는 갓 빠른 내리막이다. 남쪽의 비탈면은 눈이 녹아 검정 흙을 들어내 놓고 있다. 여덟 시간 이상 눈길을 걸은 후라 무릎도 아프고 장단지며, 허벅지 까지 아프다. 집사람은 발바닥이 아프다며 쉬기를 바란다. 골 깊은 기울어진 산비탈의 언저리에 마지막 남은 햇빛을 받고 있는 곳에서 집사람이 등산화를 벗고 휴식을 한다. 지나는 등산객 중 한 사람이 라면을 끓인 사람들이라고 하며 인사를 하고 지난다. 라면을 끓일 때 감탄을 하고 간 사람이다. 이렇게 짧은 산행에 스쳐가는 길이지만 또 다시 만나는 것이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미소 짓는다. 횡경재 1.6km 을 알리는 곳에서 몇 사람들이 얼음장 밑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로 목을 축으며 갈증을 해소한다. 아직도 송계사는 1.4km가 남았다. 시간은 오후 4시 20분이다. 송계사에서 5시에 버스가 있는데, 그 차를 못 탈것 같다. 비탈진 산자락에는 벌써 해는 산으로 넘어가 저 앞산의 봉우리는 붉은빛으로 술 취한 얼굴을 하고 있다. 송계사에 이르는 시멘트 도로에 나오니 4시50분 아이젠이며 스페치를 벗어 넣는다. 5시차를 못 탈것 같아 송계사엘 둘러보고 가자고 하니 집사람 혼자나 다녀오란다. 망설이다. 나중으로 미룬다. 얻자피 다시 찾아야 하는 곳 다음으로 미룬다. 왼쪽에 계곡을 끼고 절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 있다. 계곡 언덕 소나무사이로 절이 보인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만 절인 것 같다. 송계탐방지원센터 앞에는 관광버스두 대와 군내버스가 서 있다. 전북 번호판을 단 관광버스는 이내 출발하고, 경북 번호판을 단 버스는 출발을 하려나 하산주 상을 정리하고 있다. 군내버스에가 묻는다. 5시10분 출발이란다. 경북에서 온 산악회에서 군내버스 기사에게 팥떡과 감귤을 은박지에 담아 전한다. 아마 시산재를 지낸 떡인가 보다. 산정에서 쇠무리 찰떡이 생각났는데, 경북 산악회 일행한테, 떡 한쪽을 못 얻어먹는 것이 조금 서운하다. 송계사를 출발한 버스는 북상면에 올 때까지 한사람도 태우지 않고 우리가 전셀 낸 격이다. 방학 철에는 6시 차가 막차란다. 평시에는 8시까지 있다고 한다. 집사람은 운전사 옆에 싸놓은 요금수납장이 신기한지 다시 말한다. 그래 이렇게 옛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어 여행을 하는가 보다. 횡경재에서 신풍령으로 향하는 등산로의 눈이 녹을 즈음에 다시 찾아 대간의 마루금을 확인해야겠다. 끝.
첫댓글 잘 감상하고 잘 읽었습니다. 친구는 객지에서 자주 만나시는구려 나하고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나더니.. 그동안 적적 하였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복 된 하류가 되시길!
새해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메세지를 받고도 답장을 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올해 계획했던 모든일이 이루어지길 기원 합니다. 감사 합니다.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눈 덮힌 산의 신선함이 화면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입니다.
회장님 새해 건강하시고 항상 많은관심과 애정 감사 합니다. 임진년 한해 행복한 나날을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