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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테일 에디터: 김옥돌)
여기, 만 90세인 적지 않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 영화감독이 있다. 1928년 벨기에 출생의 아녜스 바르다는 이미 전 세계 영화계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귀엽고 소탈한 매력을 지녔다. 동글동글한 바가지 머리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뽐내는 매력 가득한 할머니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와 사진작가이자 그래피티 아티스트 JR이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지난 6월 14일 개봉했다. 9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며, 좋은 작품을 선보인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발자취를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따라가 보자.
1. 누벨 바그 운동의 대모
누벨바그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물결’이란 의미이다.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사이에 유행한 영화 운동으로 현실과의 밀착, 장면의 비약적 전개, 즉흥 연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아녜스 바르다는 감독, 각본가, 사진작가, 배우, 다큐멘터리 감독, 비주얼 아티스트 등 다방면에서 예술가로 활동해왔다.
아녜스 바르다는 루브르에서 예술사를 공부했다. 사진작가, 촬영기사로 활동하던 중 영화 [라 푸앵트 쿠르](1954) 연출을 맡아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누벨바그를 장 뤽 고다르, 앙리 조르주 클로조, 르네 클레망, 자크 타티 등과 함께 이끌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4), [방랑자](1985),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 등의 다수의 작품을 만들었다. 누벨바그 감독들과 함께 관습화 된 영화 언어를 해체하고, 작품에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그리며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대안적 방식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현대 영화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룬 독특한 예술가로 평가받으며 196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198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최고상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00년 시카고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2009년 제35회 LA 비평가 협회상의 다큐멘터리상, 2015년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 90세, 현역, 여성 영화감독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은 아녜스 바르다의 신작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세계 영화사를 여성 중심으로 다시 쓴다면,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굉장한 무게감과 상징성을 자랑하는 인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르다는 영화감독뿐 아니라 각본가, 편집자, 배우, 제작자, 설치 예술가, 사진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색깔을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선명하게 구축해왔다.
바르다는 영화계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숨기지 않는다. 바르다는 [여성은 좋은 영화를 만든다]라는 독일 단편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전 세계 영화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평등하다고 언급했다.
여성 영화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를 논할 때도 아녜스 바르다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공을 인정받아 2015년 제68회 칸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 (일종의 공로상)을 받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바르다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을 상영했다. 여성영화제,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등에서 여러 번 특별전을 개최할 정도로 여성 영화계에서 갖는 의미 또한 크다.
3.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원래 제목은 [FACES, PLACES (얼굴들, 장소들)]이다.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이 여행을 떠난다. (영화 촬영 당시 기준) 88세인 바르다와 33세인 JR은 55살 나이 차이가 나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둘 만의 하모니를 자랑한다. 두 사람은 여행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포토 트럭을 타고 프랑스 구석구석을 누비며 만난 시민들의 얼굴과 삶의 공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는 단순히 여행을 기록한 영상이 아니다. 바르다와 JR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대형 프린트로 출력해 마을의 광장, 담벼락, 건물 벽, 컨테이너에 크게 프린트한다. 또한 JR은 바르다를 사진에, 바르다는 JR을 영화에 담는다. 사진을 찍고 프린트하는 과정 자체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사랑과 우정을 말한다. 바르다는 노동계급과 빈곤계층, 자연, 사람을 향한 관심을 영화를 통해 꾸준히 드러내 왔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도 바르다는 프랑스 북부의 낡은 탄광 마을의 주민의 얼굴을 포착하고, 교대 근무하는 화학 공장 노동자의 얼굴로 벽면을 장식한다. 폐광촌에 남은 마을 주민들, 평야에서 혼자 일하는 농부를 비추기도 한다. 카메라는 바르다와 JR이 마주친 익명의 얼굴과 공간을 기록한다. 감독은 여전히 작고 소외된 존재를 향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의 모습을 그들이 속한 공간에 새기는 설치작업은 장소에 얽힌 사람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버려진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여정을 통해 바르다는 자신과 함께했던 여러 동료와 남편을 그리워하며 누벨바그의 추억을 떠올린다. 함께 활동했던 장 뤽 고다르와 누벨바그, 세상을 떠난 남편(자끄 드미)을 향한 그리움, 여행 동료 JR을 모두 아끼고 보듬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방랑자] 등의 이전 영화에서도 아녜스 바르다는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잊힐 세계를 담아냈다. 바르다의 시선은 늘 작은 존재들을 향해 있었다. 바르다와 JR은 따뜻한 시선으로 언젠가 사라질 풍경과 사람들을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는 고전 영화를 오마주한 장면들이 등장해 관객에게 이를 감상하는 즐거움 또한 선사할 것이다.
4. 유쾌한 예술가
장편영화 [우리들]로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윤가은 감독은 “누벨바그의 거장 감독 아녜스 바르다처럼 할머니가 돼서도 영화를 찍는 게 제 꿈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녜스 바르다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도 현역으로 일하며, 자신이 만든 영화를 들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레드카펫을 밟는 모습은 많은 여성 영화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바르다는 말했다. “나의 영화가 겉으로 진중한 주제를 다룬다 해도 영화를 찍는 즐거움이 그 안에 녹아들어 관객에게 드러나기를 바라요.” 바르다는 꼭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구경거리가 아니더라도 인생이 힘들 때 잔잔한 즐거움을 주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유쾌한 예술가 할머니, 아녜스 바르다의 발걸음을 눈여겨보자.
첫댓글 저는 이거 재미있게 보면서도 저 사진들이 또한 또다른 공해가 될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도 했지요. ㅎㅎ
그렇긴 하죠. 바닷물에 씻겨간 거 보면. 사람들의 놀라움, 즐거움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얼굴들이 그렇게 멋지다니.^^
@바람숲 그 영화 보니 늙어가는 내 얼굴도 좋게 보이더라고요.
늙으면 늙은대로 젊으면 젊은대로 자기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게 참 멋지게 느껴졌지요.
@산초 샘은 지금도 멋있지만 나이 들면 더욱 멋있을 거예요. 내가 장담하는데...^^
@바람숲 헤벌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