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아 떠난 인도여행
박경선
네팔과 라오스에 굿네이버스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그 국경 근처에 있는 인도를 그리워해 왔다. 인도에만 가면 신비한 영감을 지닌 사람들이 도처에 앉아 있을 것만 같고. 명상의 눈이 뚫릴 것만 같아서…. ‘몽골’에 갈 때는 비자 발급 절차도 없었는데, ‘인도’는 비자 발급부터, 최근 십 년간 다녀온 30개국 이름과 여행 기간도 다 적어내라니, 은근히 까다로웠다. 까다로운 만큼 얻어올 것도 더 많겠지.
<첫날 비행기 안에서의 좌석 등받이>
모닝캄 회원이라서 일찍 델리행 대한항공을 탔다. 자리에 앉아 앞좌석의 등받이에 붙어 있는 TV를 켜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화면 위를 잠바가 덮었다. 뒤늦게 들어온 인도인 남자가 잠바를 벗어 자기 좌석에 턱 하니 걸치고 비행기 선반 위에 가방을 올리는 중이었다.
‘아차! 자기 잠바가 내가 보는 영화를 가리는 걸 모르는구나. 코미디 글감인데?’ 하며 쳐다보며 웃으니 그도 멋모르고 따라 웃는다. ‘그래, 나는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이런 자잘한 잘못을 저지른 예가 없는가?’
<아그라 센키(아그라 왕의) 바올리(계단식 우물)와 갠지스강>
세계 인구 최다국이면서 종교 역시 지역과 민족별로 섬기는 신이 삼천삼백만 개 정도라니! 초콜릿을 바치며 병이 낫기를 비는 사원, 출국 비자를 받기 위해 장난감 비행기를 바치는 사원, 흰쥐가 먹다 남긴 음식을 신성시해서 사람들이 먹는다는 카르니마다 사원!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으로 제대로 온 것 같아 동화의 확산적 발상에 도움이 될 듯. 그뿐 아니라, 내가 믿는 하느님이 아니면 터부시하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나 되돌아 보였다. 절에 다니는 친구에게 큰 일이 닥쳤을 때는 ‘아이구 하느님, 부처님도 함께 도와주소서!’ 하며 기도해야 신들의 미움을 사지 않을 것 같다.
<계단식 우물과 델리 거리와 갠지스강>
델리에서 <별에서 온 얼간이> 촬영지인 계단식 우물을 찾아갔다. 가을 햇살 내리쬐는 108계단 가운데에 앉아보니, 길이 60m, 너비 15m 계단식 우물이 거꾸로 서 있는 궁전처럼 신비롭게 보였다. 물 부족국이라서 우물을 깊게 파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내려가 계단으로 연결했는데, 화려한 장식으로 보아, ‘계단 아래 왕국’이 건설되어 있을 것만 같아 우선 ‘계단 아래 왕국’으로 동화 글감을 잡아두었다. 2019년 3월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오픈한 <베슬(The Vessel)>이란 조형물도 이 인도 고대 라자스탄의 계단식 우물과 찬드라 바올리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는 기사를 보고 온 터라 ‘내가 보려고 찾아온 세계는 세계 속 영감으로 떠돌며 더 빛나는 작품으로 발전해 가고 있구나!’ 싶어, 창작의 숲에 들어선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죽음을 맞는 갠지스강 바라나시의 화장터>
화장터로 가는 길목에 저마다 신을 만날 재물을 팔고 있었다. 쌀과 갠지스강 강물, 주황색 꽃잎 중앙에 납작 초를 놓아 강물에 소원을 빌며 띄워 보내는 ‘디아’ 등! 이 중에 신이 어떤 제사 선물을 받고 좋아하실지. 4km 계단식 목욕 시설에서는 전생과 이생의 업이 씻겨 내려가기를 기원하며 목욕재계하는 사람들! 하늘의 붉은 해가 물에 담겨 어둠이 내리자, 갠지스강의 화장터에는 시체가 올려지고, 시체 위에 다시 장작이 올려지고 불을 붙이고, 같은 장소에서 15구의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십 년 전 네팔의 오지 초등학교에 굿네이버스 봉사활동을 갔을 때, 그 학교 아이가 죽어서 강에 떠내려 보냈다던 이야기까지 살아와 덧붙었다. ‘지금은 내가 살아서 지켜보고 있지만, 나도 저렇게 불에 태워지는 시신이 되리라!’ 죽음과 삶이 한 공간에 공존하던 밤이었다.
5. <타지마할 사원과 내가 만난 신>
사자 한 왕이 아내 문타즈 마할을 위해 22년에 걸쳐 2만 명의 노동자와 장인의 노동력을 들여 완성한 묘지 성격의 사원이란다. 하지만, 아들들은 공사로 재정이 궁핍해지자 왕위 계승 다툼을 벌이며 아버지를 아그라 성에 유폐시켰다. 왕은 건너편 아그라 성에 갇혀 하얀 거탑 타지마할을 건너다보다 숨졌다니, 덧없는 영광이 하얗고 거대한 거품으로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아소카 대왕이 인도 대륙을 정복하며 전쟁의 끔찍함을 느껴 마음의 위로를 찾다가 비폭력과 불살생을 강조하는 평화의 메시지로 불교를 전파했다니 다소 온기가 느껴졌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 버스에서 여행 때마다 챙기는 나만의 의식을 준비했다. 같이 여행한 여행객들에게 ‘좋은 인연에 감사합니다.’하며 바나나를 사 와서 돌린 뒤, 가이드의 수고를 감사 편지에 담아 동행자들의 박수를 모아 전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눈을 감으니, 인도 길거리에서 마주친 동물과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머리에 터빈을 쓰고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피리를 불며 둥근 바구니를 흔들어가며 코브라를 춤추게 했는데, 청각이 발달하지 못한 코브라라서 악기를 부는 사람의 다리 진동이나 바구니의 진동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춤이라는데 가장 인도스러웠다. 길에는 낮잠을 즐기는 개, 다리 다쳐 비실거리며 돌아다니는 개, 목줄 없는 개들!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도로 한편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배를 채우던 소들! 러닝셔츠 앞섶에 콩알 감자 한 알 담아와 내어 보이다가 사탕 한 움큼 쥐여 주자 차창 밖에서 떠날 때까지 손 흔들어주던 사내아이! 릭샤를 공짜로 타고 다니며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그림을 사라던 인성 좋은 녀석! 엄마 아빠는 뭐 하시냐고 묻자 ‘no Father, no Mather!’ 이라고 해서 가슴만 먹먹했지. ‘그래, 지금은 부족함을 이겨내어 살아남는 것만이 참 인간의 길이겠지. 매미, 잠자리, 메뚜기, 나비 같은 곤충들도 엄마. 아빠 품을 모르는 알로 깨어나 혼자 씩씩하게 잘살고 있단다. 힘 내라 힘!’ 내 눈에 밟히는 이들이 모두 내게는 인도의 신이었다. 아픈 가슴을 쓰다듬으며 그들을 위해 빌고 싶었다. 인살라!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