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움직이는 거야
어쩌다 ‘연애 리얼리티 쇼’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올 때가 있다. 연락한 사람의 성의를 봐서 고민하는 척하며 뜸을 들이기도 하지만 결국 거절한다.
리얼리티 쇼는 말 그대로 리얼리티를 가미한 쇼다. ‘쇼’가 주된 재료이며 ‘현실’은 양념이다. 떡볶이 위에 치즈를 많이 뿌린다고 해서 그게 갑자기 피자가 되지 않은 것처럼, 리얼리티 쇼에 리얼리티적인 요소를 많이 섞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현실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쇼는 마른 수건 쥐어짜듯 재미를 추출한다. 오로지 재미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폭주하는 기관차다. 도중에 멈출 수 없는, 가속이 붙을수록 목적지를 향해 더 빠르게 내달리는.
가장 별로인 건, 쇼에 출연하는 남녀의 사랑을 연출하려 든다는 점이다.
다르다는 사실에 끌릴 때가 있고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소중한 게 남녀 사이의 감정인데 리얼리티 쇼는 이를 깡그리 무시한 채 우리에 갇힌 동물을 바라보듯 출연자가 주고받는 감정을 관람한다. 그러는 사이 시청자를 ‘감정의 사파리’로 안내한다.
감정은 연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청률과 바꿀 수 없고 돈으로도 구매할 수 없다.
감정은 비매품非賣品이다.
혹자는 감정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건 진짜 사는 게 아닐 것이다. 가짜 감정을 잠깐 대역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여는 반환을 전제로 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듯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는 몸서리치며 절규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질문 같기도 하고 탄식 비슷하기도 한 이 문장을 듣는 순간 우린 피식 웃게 된다.
사랑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진한 사랑일수록 그 그림자도 짙다는 사실을, 태영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사랑도 시간 속에 스러진다는 것을, 설령 사랑이 변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사람이 변하고 만다는 것을.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이모션emotion의 어원은 라틴어 모베레movere다. ‘움직인다’는 뜻이다. 감정은 멈추어 있지 않고 자세와 자리를 바꿔 가며 매 순간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별 또한 사랑의 전개 과정이라고 사랑이 기승전결起承轉結을 거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어쩌면 우린 사랑이 한결같을 거란 믿음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쇠퇴와 소멸을 감지할 때 지난 사랑의 생채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고 새롭게 다가온 사랑 앞에서 용기를 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연애 리얼리티 쇼는 이러한 사랑의 기승전起承轉을 생략하고 오로지 사랑의 결結에만 조명을 비추는 방식으로 사랑을 바라본다.
그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요리해야 제맛이 나는 사랑이라는 슬로푸드의 재료를, 당장 맛은 좋을지 몰라도 몸에 이로울 리 없는 패스트푸드로 대충 조리해서 먹는 것과 같다. 심히 애통한 일이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말글터,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