榛嶺
김식(金湜, 1482~1520)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 청풍. 자: 노천(老泉). 호: 사서(沙西)·동천(東泉)·정우당(淨友堂). 시호: 문의(文毅). 부제학, 대사성을 지냄. 사림의 영수로 숭앙받던 조광조, 김안국과 학문적·인간적으로 깊은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그는 훈구세력 제거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조광조와 함께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미신타파, 향약 실시, 정국공신의 위훈삭제등 개혁정치를 폈다. 중종 14년 훈구파인 남곤(南袞) 일파가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일당은 죽고 거창(居昌)에 도피하여 <군신천세의(君臣千歲義)>라는 시를 짓고 자결하였다. 기묘명현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披榛拂柳歷崔嵬 俯瞰群山波作堆
피진불류역최외 부감군산파작퇴
片片雲從脚下起 星星人向空中回
편편운종각하기 성성인향공중회
東呼西應聲難辨 高去低來力易摧
동호서응성난변 고거저래력이최
家在帝鄕何日轉 三千里外一徘徊
가재제향하일전 삼천리외일배회
잡목을 헤치고 버들을 스치며 언덕을 지나
굽어보니 뭇 산들이 물결처럼 겹겹이구나.
조각구름이 발아래에서 피어오르고,
드문드문 사람들은 하늘 속에서 오가는 듯하네.
동쪽에서 부르면 서쪽에서 응하니 소리 분명치 않고
높고 낮은 데를 오르내리니 기운이 지치네.
집은 임금 계신 도성에 있는데 어느 날에 돌아갈 수 있을까.
삼천 리 밖에서 홀로 배회할 뿐이로다.
披榛(피진): 榛(개암·잡목)을 헤치다. 길 없는 산길의 개척을 암시.
拂柳(불류): 버드나무를 스치다. 낮은 지대의 식생에서 고개로 오르는 과정.
崔嵬(최외): 산이 높고 험준한 모양.
俯瞰(부감): 굽어 내려다봄波作堆: 파도처럼 무더기로 쌓인 모습. 산세를 해파(海波)에 비유.星星(성성): 드문드문 흩어진 모양.
東呼西應: 여기저기서 서로 응답함. 공간적 확산감.
帝鄕(제향): 임금이 있는 곳, 곧 도성(서울).
三千里: 과장적 거리 표현. 유배·외직·유랑의 정황을 암시.
봉령은 개성(송도)에서 한양으로 오가거나 한양에서 개성·서북 지방으로 향하는 길목의 고개로 조선시대 장단부(長湍府)로 임진강 유역에 위치한다. 현재의 경기도 파주시 북부 및 개성 인접 지역으로 오늘날 대부분이 비무장지대(DMZ)라 갈 수는 없다. 우리의 영토가 많이도 좁아진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이 시는 높은 산을 오르고 있는 느낌을 실감 나게 그리고 있다. 마지막 구에서 삼천리 밖에서 배회한다고 하는 구절로 이 시가 쓰여진 배경이나 시기가 모호해진다. 그러나 ‘진령’은 유배객들이 한양을 떠나 멀고 험한 변방으로 갈 때 마주하는 절망적인 경계선을 상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