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립자 이야기
소립자의 여명기
소립자란 물질의 구성요소로서 더 이상 다른 요소로서 갈라지지 않는 입자를 말한다.
예를 들어서 전자는 더 이상 그 구성요소가 없으니까 소립자 이지만 수소는 양성자와 전자의 복합체 이므로 소립자가
아니다.
소립자의 역사는 거의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희랍시대의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및 플라톤 같은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이었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생각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관찰됨으로서 맞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19세기가 되면서 구체적인 원자모형이 나타나고 이들의 과학적인 설명으로서 “양자론”의 탄생을 이끌어낸다.
양자론이 상대론과 모순되지 않는 “디랙방정식”의 탄생을 보게 되고 이를 합리화한 “양자장론”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양자전기역학을 확장하여 약작용과 통합하는 전약이론이 생기면서 쿼크와 레프톤이 그 기본 요소로써 등장 하게
된다.
한발자국 더 나가서 쿼크의 강한작용을 이론화한 양자색소역학 (Quantum color Dynamics)이 등장하며 이를 일반상대론과 통일하기 위한 “초끈이론 (Superstring Theory)”이 논의되고 있으며 소립자의 가장 기본이고 작은 구조는 “초끈”이란 생각
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론자체를 뒷받침할 실험적인 사실이 없어서 잘 받아드려지고 있지 않다.
모택동의 양파껍질이론처럼 양파의 껍질을 벗기면 또 다른 양파껍질이 나타나듯 궁극적인 진리와 소립자의 실체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탐구를 멈추어서는 안 되고 현재까지 알려진 소립자의 모습을 알아보도록 하는 것이 이글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우주와 그 구성요소에 대해서 가장 먼저 깊은 생각을 한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우주의 기본은 숫자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서 남성은 홀수에 대응되고 여성은 짝수이며 짝수는 홀수를 2배하면 되니까 우주의 기본은 홀수라고 생각했다.
물질 역시 이런 홀수의 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질은 그 기본요소가 있을까?’ 이런 생각은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면 점점 작아진다.
이렇게 끝도 없이 쪼개어 가면 크기가 없는 점이 된다.
점은 모양이 없기 때문에 이를 다시 합성하여 모양이 다른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모양과 성질이 다른 물과 흙 공기와 불 등이 있기에 이는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물질에는 더 쪼갤 수 없는 최소단위인 원자 (Atom)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원자설(혹은 원소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홀수가 우주의 근본이라고 생각한 피타고라스는 이들을 합하면 그 합이 항상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영재들이 그러하듯이 “피타고라스”는 이러한 결과를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다.
홀수의 합을 정사각형이란 모양으로 생각하여 숫자와 모양을 연결시켰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모양을 우주를 이루는
원소와 연결시켰다.
우주의 기본물질은 네모꼴로 표현되어야하고 그 꼭짓점은 불, 공기, 물 그리고 흙으로 지정되고 중앙에는 제5의 물질을
배정하였다. 그 꼭짓점은 뜨겁고, 젖어있고 차가우며 마른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플라톤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제 5의 물질까지의 원자모양을 다섯 개 같은 면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소위 “플라톤의
다면체(Platonic Solid)”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수학에 의하면 꼭 같은 모양의 면으로 된 다면체는 다섯 개 밖에 없고 원자의 모양을 이렇게 잡은 플라톤의 통찰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피타고라스”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우주에 대한 원리도 생각했다.
그는 우리 우주는 수(숫자)와 음악이 조화를 이룬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 화음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기타의 가장 저음 즉 현에다 손을 대지 않을
때 나는 음정 E와 첫째 화음을 찾아보자.
그림에서 보듯이 다섯 번째 내접하는 원을 그리면 E의 화음 B의 파장을 찾을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생각을 발전 시켜서 케플러는 우주모형을 만들었고 그 궤도는 화음을 내는 조화로운 음악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그는 “천체의 음악(Music of heavenly sphere)” 이란 학보를 남겨 놓기도 했다.
이렇게 고대인들은 우주와 음악, 숫자와 기하학을 바탕으로 원자와 우주를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수와 기하학적 생각은 거의 3,000년 동안 긴 잠을 자다가 “아인슈타인”이란 천재가 “일반상대론”이란 아름다운
이론에서 부활 시켰다.
이와 비슷하게 잠자고 있던 원자에 대한 생각도 이 무렵에 그 구체적인 모습이 다시 논의된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 면적보다 세배나 되는 땅에 삼백 오십만의 인구밖에 살고 있지 않다.
한가한 초원에는 양떼가 풀을 뜯고 있고, 배경의 높은 산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광경은 말 그대로 그림 같다.
남부 섬과 북부 섬으로 되어 있는 이 나라의 남부 섬에서 가장 큰 도시는 ‘크라이스트처치(Christ Church)’이다.
인구 35만 가량의 오래 된 도시로서 켄터베리 대학이 이곳에 있기도 하다.
켄터베리 대학의 옛 캠퍼스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도심부에 있고, 그 옛날 이 교실들을 온갖 수공예품과 도자기 등을
파는 가게로 꾸며져 있으며, 야외극장과 운치가 넘치는 라 카페(Le Cafe)가 들어서 있기도 하다.
라 카페 뒤에는 작은 안내소가 있고 그 앞에 붙은 간판에는 ’러더퍼드(Rutherford)의 공작방’이라고 쓰여 있다.
원자핵을 처음 발견한 그 유명한 러더퍼드인 러더퍼드의 공작방에 들어서면 그가 학부 때 쓰던 방전장치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학부를 마친 러더퍼드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유학한 후 캐나다의 막길 대학(Mcgill University)에서 교수로서
연구생활을 하게 된다.
러더퍼드 경은 뉴질랜드의 넬슨이란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부를 하기 위하여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켄터베리 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할 때 성적은 600점 만점에 580점을
얻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졸업 후 영국의 유명한 캠브리지 대학에 유학했고 캬벤디쉬 연구소를 거쳐서 캐나다의 막길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는 캬벤디쉬 연구소에서 익혀둔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베크렐과 퀴리부부가 발견한 방사선의 성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를 이용한 연구는 화학 쪽에서 더
활발하였다.
왜냐하면 방사선을 쪼인 원소들은 그 성질이 달라지는데 이를 화학적인 방식으로 그 변화를 알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질량분석기 등을 사용하면 원자핵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물질의
성질이 변하는 것은 화학반응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러더퍼드는 좀 색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방사선 가운데 알파선으로 알려진 성분을 엷은 금박지에 쪼여서 알파선이 얼마만큼 통과할 수 있는지 조사해 보기로 했다. 당시의 상식으로서는 물질의(이 경우, 금의 박막)화학적인 성질과 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 할 수 있었다.
1890년대는 벌써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서 있을 때였다.
화학반응에 의한 분자설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기체가 분자로 되어 있고 이 분자들은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를 대중에서 피부로 느끼게 제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기 중의 분자들은 초속 1,000m/sec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한 과학자는 솥뚜껑만한 크기의 금속뚜껑을 만들고 그 가장자리는 홈을 파서 고무 패킹을 넣어 밀폐한 후 공기를 빼
진공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말 여섯 마리가 이 솥뚜껑을 떼어내려고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기를 다시 불어넣어 바깥과 같은 압력을 만들었을 때 누구나 손쉽게 솥뚜껑을 떼어낼 수 있었다.
왜 그럴까?
1리터의 공기 속에는 1023(아보가드로의 상수라고 하며 1리터 속에 들어 있는 분자수), 즉 10조의 10조의 또 삼천배의
좁쌀 인간이 기를 쓰고 솥뚜껑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다면 여섯 마리의 말의 힘으로도 뗄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되는
것이다.
즉 수없이 많은(1023개)공기 분자가 1000미터의 초속으로 솥뚜껑 밖을 때려서 양쪽 솥뚜껑을 안으로 미는데 솥뚜껑
속은 진공이므로 밖으로 밀어내는 분자들이 없기 때문에 말 여섯 마리가 달려들어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두 솥뚜껑 사이에 공기를 불어 넣으면 바깥 공기의 분자가 안으로 미는 힘이나 안의 공기 분자가 밖으로 미는
힘이나 같으므로 누구나 손쉽게 두 솥뚜껑을 떼어 놓을 수 있다.
아마 이만큼 장황한 설명을 들었으면 공기는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이 원자의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 19세기 과학의 큰 과제였다.
지극히 작은 원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많은 과학자들이 온갖 상상을 하였다.
콩알같이 생겼을까? 또는 호떡처럼 생겼을까? 미식 축구공처럼 생겼을까?
상상이 아닌 과학적인 논리로서 원자모형을 이 세상에 처음 선보인 사람은 일본인 나가오카 한타로(長岡半太郞) 였다.
그는 얼마 전 영국인 물리학자 톰슨이 발견한 전자(電子)는 물질에서 나왔으므로 물질의 근본 요소인 원자 속에서 튀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음전기를 띠고 있지만 물질은 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중성이기에 전자가 원자속의 구성성분이라면 이를 중화
시키는 양전기 역시 원자의 구성성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전기를 띤 구성요소와 음전기를 띤 전자가 두루 분포되어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기고 자기네들끼리는 미는 힘과 맞비
겨서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러더퍼드 경의 생각으로는 정말 원자가 가벼운 전자들과 역시 가벼운 양전기를 띤 입자의 혼합체라면 무거운 알파입자와
충돌하면 마치 무거운 트럭과 사람이 충돌하는 교통사고처럼 사람은 튕겨나가고 트럭은 끄떡없듯이 알파입자의 진행
방향이 금의 박막을 뚫고 나오더라도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알파입자는 그 방향을 유지하고 나왔지만 간혹 많이 휘어져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과를 두고 러더퍼드 경은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긴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장님과 접시
지난번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되풀이해보자. 뉴질랜드 태생의 러더퍼드경은 그 당시 발견된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알파입자선(뒤에 판명되지만 알파입자는 헬륨의 원자핵이다)을 금의 박막에 쪼여보았더니 대부분의 알파입자는
그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나왔지만 가끔 그 방향을 크게 바꾸어 통과하는 알파입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해석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러더퍼드경은 나가오카 한타로(長岡半太郞)의 원자모형처럼 가벼운 음전기를 지닌 전자와 역시 가벼운 양전기를 지닌
입자가 서로가 서로를 밀며 다른 종류끼리는 잡아당기면서(쿨롱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자연의 법칙에 의함)
평형을 이루는 반죽모형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거운 알파입자(알파입자는 전자보다 수천 배나 무거운 입자임이 알려져 있었음)가 튕겨서 방향을 크게 바꾸는
현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트럭이 가벼운 사람이 부딪쳐서 사람이 미는 힘 때문에 그 방향이 바꾸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원자 속에도 양전기를 띤 무거운 물체가 있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무거운 두 대의 트럭이 충돌하면
둘 다 튕기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금박을 그대로 통과하기에 원자는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겉보기에는 꽉 차 있는 금박지도 아주 배율이 높은 확대경으로 본다면 그 사이에는 빈 공간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꽉 차있는듯한 쇠뭉치도 쇠를 이루고 있는 원자와 원자사이는 많이 비어있고 원자 역시 대부분 비어있는 공간이다.
러더퍼드는 원자란 마치 초미니 태양계처럼 티끌우주로서 중심에는 양전기를 띤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마치 지구, 화성, 금성, 목성 등이 돌고 있듯이 전자들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자가 돌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원자핵의 양전기에 이끌려 음전기를 띤 전자는 원자핵에 빨려들게 될
것이다. 마치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처럼…….
전자는 돌고 있기에 그 원심력 덕분에 태양계처럼 안전한 궤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정말 오묘한 것이다.
거대한 소우주인 태양계나 티끌우주인 원자의 세계나 엇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 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알려진 것이지만 지구처럼 원자핵 주변을 공전하는 전자는 역시 지구처럼 자전한다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도 태양계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원자핵은 얼마나 큰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 크기를 잴 수 있을까? 러더퍼드경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자만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보다도 더 작은 원자핵은 볼 수도 없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잰다는 말인가?
이는 마치 부엌 벽에다 접시를 걸어놓고 장님에게 부엌에 들어가지 말고 그 크기를 알아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
이다.
앞을 못 보는 장님이 어떻게 접시의 크기를 먼 데서 알 수 있을까? 다가가서 만져본다면 물론 그 크기를 알 수 있지만
원자 속에 사람이 못 들어가는 것처럼 장님 역시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있을 때 접시의 크기를 알아낼 길은
도저히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하는 곳에 길은 있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한다. 그 길은 어렵지도 않다.
가령 장님이 콩알을 많이 가지고 부엌 벽을 향하여 팔매질을 한다고 하자.
앞을 못 보는 장님이기 때문에 접시를 겨냥하여 콩을 던질 수는 없지만 그냥 벽을 향하여 콩을 던질 수는 있을 것이다.
콩이 접시를 맞히면 튕겨 나가는 날카로운 소리와 벽을 맞았을 때 나는 둔한 소리는 장님의 예리한 귀로 구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10만 번 콩을 던졌더니 접시에 맞는 소리가 1000번, 벽이 맞는 소리가 9만9천 번 들렸다고 하자.
그렇다면 접시의 크기(면적)와 벽의 면적의 비율은 1000/1000+99000 즉 1:100일 것이다.
(노파심으로 확률을 모르는 독자를 위하여 잔소리를 늘어놓아 보자.
만약에 접시의 크기가 벽면의 반을 차지한다면 콩을 10만 번 던지면 접시에 맞는 것이 5만 번, 빈 벽에 맞는 것이 5만 번
정도가 될 것이고, 이때는 접시의 면적과 벽의 면적의 비율은 50000/50000+50000 즉 1:2가 될 것이다.
즉 접시에 맞는 확률은 접시의 면적과 벽의 면적의 비율이 된다. 다시 말해서 접시가 크면 클수록 맞는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그런데 장님은 부엌에 들어가지 않고도 부엌문이 있는 벽의 면적은 손으로 만져서 재어볼 수 있고 부엌 속 벽의 면적은
이와 같을 테니 접시의 크기를 곧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벽의 면적이 2미터×3미터 즉 6제곱미터였다면 접시의 크기는 0.06제곱미터이며 반경이 약 14센티미터 정도
되는 접시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리더퍼드모형인 초미니 태양계 모형에 우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비밀이 숨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거운 원자핵이
있다는 사실은 실험결과이므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러더퍼드경의 실험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원자란 초미니 태양계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자는 그 중심부에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
원자핵의 크기는 반경이 10-13cm(0.0000000000001cm)정도이고 전자가 돌고 있는 궤도의 반경은 10-8cm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 역시 태양계처럼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고 원자핵이 차지하는 체적은 원자 전체의 (10-13/10-8)3 즉 101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는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8세기에 완성된 전기와 자기의 물리학인 전자기학에 의하면 전기를 띤 물체가 가속운동을 하면 반드시 전파가 나오게
되어있다.
따라서 미니 태양계를 이루는 원자계에서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전자는 전파(물리학자들은 전자파로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전파는 전기장뿐 아니라 자기장의 파동이기도 한 까닭이다)를 발산하기 마련이다.
워낙 가벼운 전자는 빨리 돌고는 있지만 많은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전자가 전자파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운동에너지를 깎아먹고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전자의 질량이 10-31kg, 전기량이 10-19쿨롱, 궤도반경이 10-8cm등 구체적인 값을 써서 어렵고 골치 아픈 물리
계산을 해보면 10-20초란 짧은 시간 동안에 전자는 자기 자신의 모든 운동에너지를 방출하고 원자핵에 빨려 떨어져버
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천천히 에너지를 방출하다가 소용돌이치는 물의 중심부에 빨려 들어가는 조각배처럼 원자핵에 잡히는 마지막
순간에는 순식간에 모든 에너지를 잃고 양전기를 띤 원자핵에 빨려서 잡히게 된다.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전자는 순식간(10-20초)에 원자핵에 빨려들어 합쳐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는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것이며 이는 원자로 된 물질의 불멸성에 위배된다.
우리들 눈앞에서 쇠뭉치가 갑자기 수축하면서 없어진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이란 말도 되지 않는다.
사실상 일본인 나가오카 한타로는 이 문제 때문에 반죽형 모형을 내놓은 것이다(J. J,톰슨도 같은 모형을 발표했지만
나가오카보다 늦었다고 함).
그의 모형에서는 가벼운 양전기를 띤 것과 음전기를 띤 가벼운 전자가 밀가루 반죽처럼 서로서로 고루 섞여서 밀고 잡아
당기는 힘이 엇비끼고 있기에 움직이지 않는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정지하고 있는 대전체(전기를 지닌 물체)는 전파를 방출하지 않는 까닭에 이모형에서는 러더퍼드모형의 불안정성을
염려조차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러더퍼드의 실험에서 엄연히 드러난 무거운 핵의 존재와 텅 빈 공간을 부인할 수는 더더욱 없다.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울고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신파극고 k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 물리학자들은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다.
즉 ‘百聞이 不如一見’의 원칙이다. 아무리 근사한 이론이라도 실험을 통하여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면 믿지 말라는 철칙이다.
이런 지침에 따르면 러더퍼드의 기본적인 틀인 무거운 원자핵이 있다는 것은 실험으로 확인한 사실이고, 나가오카의 모형은 실험에서 부적함 판정을 받았기에 당연히 러더퍼드모형을 따라야 한다.
아마 러더퍼드모형인 초미니 태양계 모형에 우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비밀이 숨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거운 원자핵이 있다는 사실은 실험결과이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 당시 물리학자들의 고민은 그 뿐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원소에서 흡수되는 빛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많았다.
그 당시는 분광학이 유행된 시대였다.
분광학이란 프리즘을 통해서 빛을 분사시키면 겉보기에는 색깔이 없는 빛깔도 여러 가지 색깔로 갈라지는 기법을 써서
빛의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였다.
영국인 맥스웰에 의하여 전기와 자기의 파동이 가능하고 이 전자기파의 속도는 빛의 속도인 30만km/초임이 이론적으로
밝혀졌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헤르쯔는 전기와 자기의 파동인 전파를 인공적으로 만들었고 이태리인 마르코니는 이를 먼 곳에
보내어 수신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전파의 속도가 30만km/초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빛 역시 전파이며, 다만 빛은 진동수가 큰(파장이 짧은)전파란 것이 알려졌다.
우리들이 듣는 FM방송은 100메가 헤르쯔 정도이어서 파장이 약 1미터 정도인데 비하여 붉은 색은 0.00003cm정도의 파장
인 것 외에는 둘 다 같은 전자파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각해볼 때 프리즘을 통한 빛은 그 파장에 따라서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스위스의 과학교사인 발머가 빛에 수소가스를 통과시켜서 프리즘으로 분산시켜 보았더니 까만 흡수선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흡수선이란 빛이 물질을 통과할 때 그 파장의 전자파가 원자에 흡수되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발머계열이라고 불리는 이 흡수선이 선택된 파장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사실상 발머계열 파장이 3/4,
8/9, 15/16 등의 비율로 불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수소원자는 선택된 파장만 흡수할까?
이것 역시 러더퍼드 모형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파를 원자가 흡수하면 궤도를 돌고 있는 전자에 흡수될 것이고 전파 즉 빛에너지를 흡수한 전자는 에너지를 얻어서 조금 더 빨리 돌면 될 텐데 왜 선택된 에너지를 가진 파장만 흡수할까?
물론 전자가 돌 수 있는 궤도가 제한되어 있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우리들 공간은 어디에도 제약이 없고 전자 역시 어느
궤도에서도 돌고 있을 수 있다.
뒤에 밝혀지지만 에너지 자체가 띄엄띄엄 변하고 공간 역시 제한 조건이 있어서 가능한 궤도와 그렇지 않은 궤도의 제약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천재들이 수많은 세월을 고민 속에서 지새웠고 그들의 노력이 마침내 20세기의 과학을 열게 된다.
어떤 것일까?
그 첫째 실마리는 아인슈타인이 빛을 새롭게 이해하는데 서부터 시작된다.
러더퍼드경은 원자핵의 크기를 알아내는데 장님의 경우와 똑같은 방법을 썼다.
러더퍼드경의 벽은 금의 박막이었고 그의 콩알은 알파입자인 것만이 장님과 달랐지만 원자핵의 크기를 알아내는 논리와
사고는 장님의 경우와 똑같은 것이었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백억 개의 알파입자를 금박지에 던지만 1개정도가 그 방향을 크게 바꾸는 것을 알았다.
이는 원자의 대부분은 비공간이고 원자핵은 원자의 단면적(옆에서 본 면적)과 비교할 때 백만 분의 일이고 반경으로 따질
때는 1:10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원자의 크기는 그 반경이 10-8cm정도임이 알려져 있었기에 원자핵의 반경은 10-13cm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정리해서 보면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 역시 태양계처럼 중심부에는 태양에 해당하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마치 행성처럼 돌고 있다.
외곽전자가 돌고 있는 원의 반경과 원자핵의 반경은 10-8cm와 10-13cm 정도인 초미니 태양계이다.
전자는 빠른 속도로 궤도를 돌면 원자핵이 잡아당기는 전기적인 힘과 엇비껴 가면서 그 궤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은 치명적인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이 곧 밝혀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또 한 번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하겠다.
흑체복사로 불리는 복사열은 사실상 용광로 속에 들어 있는 광양자의 가스가 새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스가 원자로 된 것이라면 이 광양자 가스는 광양자로 되어있는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이 지닌 불안전성에 관한 이론적인 해결은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이루어졌다.
드브로이, 아인슈타인, 보어, 슈뢰딩거, 프랭크 등 20세기 과학의 거두들이 모두 동원되었고 마침내 ‘양자론’이란 과학의
혁명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야기의 시초는 독일과 프랑스가 보불전쟁을 끝낸 지 얼마 안 되는 시절로 돌아간다.
석탄이 많이 나는 알자스 로렌스 지방은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여파로 기계공업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었다.
따라서 제철공업이 기간산업이었으며 석탄이 많이 나는 알자스 로렌스 지방 역시 철광공업이 발달하고 있었다.
좋은 철강을 만들려면 용광로의 온도조절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어떤 온도에서 얼마만큼 철광을 제련하는가에 따라
생산되는 철의 강도 및 탄성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당시 본(BON)대학의 물리학교수였던 막스 프랭크(Max Planck)박사는 용광로의 온도를 빛의 색깔에 따라 온도를 알아
내는 숙련공들의 감각을 좀 더 과학적인 이론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복사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법칙은 영국인 레리와 진스(Raylic & Jeans)에 의하여 저온에서는 초보적인 이론이 완성되어
있었고, 고온에서는 빈의 법칙(Wien’s Law)이라는 이름의 경험법칙이 있었다.
그러나 저온과 고온을 연결하는 부분의 이론이 없었고 많은 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으로 설명이 가능한 이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시험문제의 정답을 이렇게 저렇게 꿰어 맞추어 보다가 우연히 알아내듯이 프랭크는 연결부분의 공식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아냈다. 그렇지만 그 공식이 왜 그런지를 몰라서 고민하고 있었다.
기초과학에서는 그 결과보다는 도출되는 과정과 그 논리가 더욱 중요하나 프랭크 박사는 ‘왜 그런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연의 연속성에 대하여 혹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빛이 전자파라면 그 강도는 파동의 진폭에 관계되고 얼마든지 조절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랭크 박사는 빛의 강도가 띄엄띄엄 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갖게 되는지 검토했다.
띄엄띄엄한 것과 연속적인 것을 재는 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한 말의 공과 물이 있다고 하자. 물은 연속적인 액체이고 콩은 알갱이로 되어 있다.
콩은 하나 둘 셀 수가 있지만 물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콩처럼 띄엄띄엄한 불연속적인 양은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헤아려서 보태어 나가면 그 양을 셈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물처럼 연속적인 양은 합하는데 ‘적분’이라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미분 적분’으로 알려진 이 기법을 좋아하지 않고 어렵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앞에 말한 영국인 레리와 진스는 빛의 강도는 연속적이라 생각하여 그 총합을 구하는 데 ‘적분’을 써서 그 총합을 구한
것이었다.
빛의 강도가 불연속이라면 모든 사람이 당연히 쓰던 적분을 하지 않고 대신에 단순히 산술적으로 합하여야 한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렇게 한 결과 놀랍게도 공식을 도출할 수 있었다.
프랭크 박사는 몇 주일을 망설이다가 자기 생각을 발표하게 되었다. 복사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고 불연속
적이며 최소단위가 되는 ‘양자(量子)’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자론’으로 알려진 이 이론은 이 세상의 에너지는 최소의 에너지양인 h의 배수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프랭크상수로 알려진 이 에너지의 최소단위인 h는 그 크기가 6.63×1034의 에너지를 1초간 공급하는 만큼을 말하며 이러한 프랭크상수의 에너지 뭉치가 1036개(즉 10억 배의 10억 배의 또 십억 배의 또 십억 배이다)가 있어야 30w짜리 전등
하나를 1초 동안 밝혀 놓을 수 있는 작은 에너지에 해당되고 이보다 더 작은 에너지뭉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랭크의 양자(量子)개념을 곧 다른 곳에 응용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른 사람 아닌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강도가 불연속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처음으로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빛은 그때까지 믿어오던 전자파인 파동이(뒤에 나오는 ‘빛과 그림자’를 참조하기 바람)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빛의 알갱이인 양자로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빛은 파동이 아니라 빛의 양자 즉 알갱이(영어로는 Photon이라고 하며 물리학자들은 이를 광양자(光量子)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빛을 반투명한 거울에 비추면 반은 통과하고 반은 반사한다.
다시 말해서 한번 통과하면 빛의 강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 빛의 강도는 점점 약해져서 마지막에는 단 하나의 빛의 알갱이인 광양자가 남을 것이다.
마치 물질을 쪼개어 나가면 최소단위인 원자를 얻게 되는 것처럼, 아인슈타인의 생각으로는 복사열 역시 빛과 같은
전자파이므로 광양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흑체복사로 불리는 복사열은 사실상 용광로 속에 들어 있는 광양자의 가스가 새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스가 원자로 된 것이라면 이 광양자 가스는 광양자로 되어 있는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광양자로 되어 있는 가스이기 때문에 알갱이 하나하나의 불연속성은 당연하고 실제로 흑체복사의 법칙은
광양자가스로서 설명이 된다.
프랭크의 양자론이 왜 그렇게 획기적이고 현대물리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더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우선 광양자의
존재를 잘 나타내는 실험사실 하나를 먼저 보도록 하자.
사진1은 3천개의 광양자뭉치로 비추어 본 여인의 얼굴이고 아래쪽 끝은 2천팔백만 개의 광양자로 본 여인의 얼굴이다.
에너지뭉치인 광양자(光量子)가 잘 보이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대형가수 패티김이 히트시킨 지나간 대중가요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아마 사랑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설레는 기쁨과 가슴을 쥐어짜는 듯 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모순된 이중성을
노래한 것이라 하겠다.
빛이 이런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는 이중성(Duality)을 지니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러한 혼돈의 실마리가 풀리기는커녕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 생겼다.
미국의 두 물리학자 저머와 데이비슨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동이라고 믿어오던 빛이 입자처럼 행동
한다면 입자인 전자도 파동처럼 행동하고 있는 일면이 있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곧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엷은 금속막에 전자선을 쬐어서 그 뒤에
형광판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빛은 작은 바늘구멍을 지나오면 회절무늬를 일으키나 전자는 바늘구멍보다 작은 원자들의 배열에 의하여 회절하리라는
것이 그들의 기대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회절무늬를 얻게 되었으며 빛의 회절무늬와 비교할 때 전자 또한 파동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옛날의 과학은 상식에서 오는 판단으로서 설명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점점 폭넓고 깊이 있는 실험사실이 축적됨으로써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생기고 이를 설명하려면
상식으로는 추리도 할 수 없는 이론이 생긴다.
빛, 전자, 혹은 다른 모든 작은 입자의 세계에 적용되는 이 이중성의 근본적인 해결은 1926년에 이르러 여러 천재들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이론을 양자론(quantum theory)이라고 한다.
양자론이란 무엇일까? 그 설명을 필자가 독자적으로 하는 대신 저 유명한 화인만 교수가 한 강연 중에서 양자역학적인
자연관을 소개하는 것으로서 시작하겠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의 일을 이해하려면 지극히 조심스러운 관찰과 추리를 통하여 추측해 나가야 한다.
과학추리소설처럼 실제로는 일어나고 있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빛과 전자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만약 전자가 입자처럼 행동한다고 해도 틀리는 말이 되겠고, 파도처럼 행동한대도 역시
틀리는 말이 되겠다.
구태여 표현한다면 양자역학적으로 행동한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빛이나 전자가 같은 행동을 하며 둘 다 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감상하려면 뛰어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어떤 것과도 달리
상상이외의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가 어려울 줄 믿는다.
그러나 어려움은 주로 심리적인 갈등이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반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구나가 자기가 잘 아는 경험을 토대로 다른 일을 판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고집으로 인하여 사물을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편견을 버려주기 바란다.
내가 이야기 할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편안한 자세로 그냥 들어주기 바란다.
따라서 여러분의 동감을 얻는 것보다는 단순히 ‘자연’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겠다.
여러분이 자연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연이 얼마나 멋있고 근사한지를 보게 될 것이다.
거듭 이야기하겠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라고 자기 자신에게 묻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왜 그러한지 모를 뿐만 아니라 물어본다 해도 점점 더 모르게 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들이 입자라고 생각했던 전자나 양성자 등이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우리가 파동이라고 알고 있던 전파는 작은
알갱이인 입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시의 세계에서는 파동과 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파자(波子: wacle, 즉 파동과 입자를 겹쳐서 줄여 만든 조어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존재는 입자와 파동인 이중성을 지니고 있고, 우리는 ‘파자’가 어느 곳에서 존재하는가를 확인하면 파동의 특성을
못보고 파동의 특성인 방향과 그 운동량을 확실히 측정하면 입자의 특성인 한 장소에만 존재하는 그 지점을 모르게 된다.
거시적인 입자는 여기에 있으며 동시에 저기에 있을 수 없다. 왕십리에 있는 김 서방이 동시에 종로에도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양자역학에 의하면 미시적인 세계애서는 관측하지 않으면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있을 수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여기에 있으며 동시에 저기에 있을 확률은 0이고 저기에 있으면 동시에 여기에 있을 확률은 0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자연은 그렇지 않다.
자연은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존재하는 확률이 각각 50%인 그런 존재를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시적인 세상에서는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있는 존재가 오히려 상식이다.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여기와 저기에 존재하는가를 나타내는 ‘1파동함수’라는 것을 어려운 방정식으로 풀어서 얻어내고
이를 토대로 여러 가지 일들을 알아낸다. 어떤 것들일까?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입자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따른다. F=ma로 나타내는 이 방정식은 모든 고등학교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내용 중의 하나이지만 혹 이를 잊어먹은 독자를 위하여 또 한 번 되풀이해보자.
힘으로 물체를 밀면 움직인다.
더 큰 힘을 주면 더 빨리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힘 F 와 질량(보통은 무게라고 부른다)m, 그리고 가속도(속도의 변화)a를 나타낸 것이 뉴턴의 방정식 F=ma
이다.
그런데 극미의 세계에서는 보통 입자는 없고 웨이클만 있게 되므로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그대로 쓸 수 없을 것이 짐작된다. 파동처럼 퍼져있는 웨이클의 위치는 ‘여기’와 ‘저기’가 동시에 가능하다는데, 그렇다면 위치의 시간적인 변화인 속도나 또
그 변화인 가속도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이런 것들의 실마리는 우선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관계를 찾는데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귀족인 드 브로이(De Brogie)백작은 파동의 성질인 파장(波長) (파동의 골과 산과의 간격)과 입자의 성질인 운동량(질량과 속도를 곱한 양)이 앞서 말한 프랭크의 상수 h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가 그런 영감을 얻었는지는 그만이 알 일이다.
어쨌든 ‘빛과 그림자’편에서 본 것처럼 전자 역시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그 간섭무늬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동그란 간섭무늬의 간격은 파동의 파장에 따라 그 간격이 달라진다.
역으로 간섭에서 나타나는 동그란 무늬의 간격을 재어보면 그 간섭무늬를 일으키는 파동의 파장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본 (‘빛과 그림자’편) 저머와 데이비드슨이 얻은 간섭무늬에서 간격을 재어 파장을 구했더니 전자의 속도와 질량
(무게)의 곱인 운동량과는 역비례 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서 전자의 속도와 질량을 알면 웨이클의 파동적 성격인 파장을 알 수 있다는 결과이다.
이러한 파동의 특성인 파장과 입자의 특성인 운동량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인 웨이클의 운동방정식으로 승화시킨 사람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인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였다.
그는 파동과 입자의 공통성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들 주변에서는 많은 파동현상을 볼 수 있다.
조용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동그란 파동이 퍼져나간다. 바닷가에 가 보면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볼 수 있다.
출렁이는 파도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얼핏 보면 바닷물이 먼 데서부터 파도를 타고 움직여 밀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닷물은 조금은 움직이지만 거의 제자리에서 위로 아래로 움직일 분이다.
멀리 있는 배를 보면 파도가 칠 때마다 아래로 가라앉아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지만 배는 제자리에 있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이처럼 파도를 따라 움직여 가는 것은 바닷물이 아니라 물의 출렁거림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보면 파도를 따라 움직여 가는 것은 물을 출렁거리게 할 수 있는 에너지인 것이다.
전파 역시 그렇다.
전기장과 자기장을 출렁거리게 하는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클은 맹렬한 속도로 원자핵 주변의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궤도모양처럼 퍼져서 존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정상궤도(定常軌道)에 있는 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퍼져 있기에 전자파가 나가지도 않고
에너지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전파(또는 빛)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때는 ‘웨이클’이 전달되는 것이고 이는 분명 파동 성질을 지니고 있다.
뉴턴같이 고전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입자가 운동 에너지를 지니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때 입자 자체의 이동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에너지의 이동에 초점을 맞추면 파동이나 입자나 모두 그 에너지를 한 곳
에서 다른 곳으로 전달한다는 데는 차이가 없이 똑같다.
이렇게 생각할 때 웨이클은 뉴턴의 운동방정식 F=ma가 아니라 ‘에너지의 운동방정식’을 따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왜 러더퍼드 모형에서 돌고 있는 전자가 에너지를 잃으면서 원자핵을 향하여 소용돌이치면서 떨어져버리지 않는
가를 설명할 수 있다.
웨이클은 맹렬한 속도로 원자핵 주변의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궤도모양처럼 퍼져서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정상궤도(定常軌道)에 있는 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퍼져 있기에 전자파가 나가지도 않고 에너지도
잃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웨이클은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상궤도에 있고 우리가 그 위치를 확인하면 마치 입자가
미니태양계의 지구처럼 궤도상 모든 곳에서 발견되기에 마치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미시의 세상에서는 ‘여기’와 ‘저기’에 같은 시각에 존재하는 것도 상식이다.
원자 속의 전자가 그렇고 사실상 모든 양자역학적인 입자 웨이클(WACLE)은 그렇게 ‘여기’와 ‘저기’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한가한 어느 공휴일 오후, 김 변호사는 새로운 과학 ‘양자역학’을 알고자 <알기 쉬운 양자역학>이란 물리학 서적을 읽어
보기로 했다.
골치 아픈 소송을 맡은 김 변호사는 머리도 식힐 겸 실사회와는 동떨어진 생각을 많이 하는 과학자들이 그렇게 오묘하다고 하는 ‘양자역학’이란 자연관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면 혹 자기가 맡은 소송사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알기
쉬운 양자역학>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책을 들고 처음에는 흥미롭게 읽다가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있을 수 있고, 여기에 몇 % 저기에 몇% 있을 수 있는 확률이 파동함수라는 어려운 방정식의 해답으로 주어진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복잡한 수식이 이해도 되지 않으려니와 논리적
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골치만 아프고 지루해지면서 어느새 깊은 낮잠에 빠져들어 갔다.
김 변호사는 자기 자신이 감옥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른 일도 없는 자신이 감방에 갇혀 있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나서 큰소리로 간수를 불렀다.
억울하게 감방살이를 하는 자기 자신이 이해도 되지 않고 화도 나서 담당검사를 만나면 한바탕 따지고 행정착오를 범한
검찰청도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리 외쳐도 대답이 없어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른 김 변호사는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몸을 부딪쳐보고 튕겨 나오면 또
부딪치는 행동을 되풀이했다. 얼마동안이나 그랬는지 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자기 자신이 감방이 아니라
검찰청 검사실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리둥절해진 김 변호사였지만 가방에 갇혀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 검사에게 검찰이
무슨 이유로 어떤 근거에서 자신을 체포하고 감방에 가두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평소 잘 알고 있던 이 검사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나와 같이 여기서 줄곧 법리논쟁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감방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요?
우리는 11시부터 12시까지 줄곧 이곳에서 같이 있지 않았소?”
그러나 자기가 강방에 있을 때 벽에 몸을 부딪치면서 언뜻 본 시계가 1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기억하는 김 변호
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 검사, 나는 분명히 11시 20분에는 감방에 있었는데 당신과 있었다니 도대체 말도 안
되오.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 작정이요?”
그러나 이 검사는 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김 변호사! 우리 비서가 11시 20분경에 차를 가지고 왔으니 비서를 불러
확인해 봅시다.”
벨을 누르니 미스 박이 들어오면서 웃는 얼굴로 “김 변호사님, 오늘은 11시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시간을 계시니 우리
검사님하고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논의하시는 모양이죠?”
“검사님, 왜 부르셨지요?” 라고 말하는 순간 김 변호사는 너무 어이가 없고 아찔해지면서 잠을 깨고 보니 <알기 쉬운
양자역학> 이란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깊은 잠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변호사가 꿈에서 본 상황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법원이나 감방이 아니라 극미의 세계인 원자핵과 전자 그리고 소립자의 세계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다.
방사선이 그 한 예이다.
α입자 같은 핵자는 원자핵이란 감방 속에 갇혀 있지만 항상 그 속에서 움직이며 원자핵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화난 김 변호사가 감방의 벽에 몸을 부딪치던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 실제로 김 변호사의 경우 방방 벽에 1060번 즉
1000조의 1000조의 1000조의 1000조 번 부딪치면 한번은 벽의 저쪽에 나타날 수 있다.
확률이 1/1060 인 것이다.
두꺼운 벽을 뚫지도, 지나지도 않고 홀연히 유령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터널링(tunnelling)이라고 하며 미시의 세계에서는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거시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확률이 김 변호사의 경우처럼 1060번 시도하면 한번 정도 가능
한데, 1060번 벽에 부딪쳐보는 것은 도저히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시의 세계인 원자핵의 세상은 이와 사정이 판이하게 다르다. 원자핵의 벽은 감방과 비교하면 훨씬 얇다.
따라서 터널링이 일어날 확률이 특수한 원자핵에서는 1060에서 10-25정도로 크게 될 수 있다.
이런 원자핵은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동위원소의 경우가 되겠다.
원자핵의 크기는 그 반경이 10-13cm정도 (1000조의 1cm)정도이다.
그 속에서 알파입자는 빛의 속도에 가까운 1010cm/sec(초속 1조cm)로 움직이고 있는 까닭에 초당 1023번 원자핵의 벽에
부딪치게 되고, 100초만 지나면 (1분 40초) 핵 속의 알파 입자가 원자핵 밖으로 유령처럼 원자핵의 벽을 뚫지도 않고 나타
난다.
이럴 때 우리들은 방사성동위원소에서 알파선이 나왔다고 하며, 이는 우리들이 병원에서 암 치료에도 쓰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김 변호사의 꿈은 미시의 세계에서는 현실인 것이고 또한 상식인 것이다.
미시의 세상에서는 ‘여기’와 ‘저기’에 같은 시각에 존재하는 것도 상식이다. 원자 속의 전자가 그렇고 사실상 모든 양자역학적인 입자 웨이클(WACLE)은 그렇게 ‘여기’와 ‘저기’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 1060은 10을 60번 곱한 10의 60제곱인 큰 수이다.)
채드윅은 벨리륨선을 여러 가지 물질에 쪼여서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속도와 원자핵 자체가 부딪쳐서 움직이는 것을 관찰
함으로써 벨리륨선의 성분은 양성자와 비슷한 질량을 가진 중성입자 즉 중성자라는 결론을 얻었다.
보데나 퀴리부부가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벨리륨선을 감마선이라고 단정했기에 중성자 발견과 노벨상의 영광은 채드윅
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원자를 어느 정도 이해한 과학자들은 원자핵의 연구에 눈을 돌렸다. 음전자와 양전자의 반죽모형인 나가오카 한타로(長岡
半太郞)(또는 톰슨)의 원자모형을 버리고 러더퍼드 모형이 받아들여진 그 당시로서는 자연적인 추세였다.
원자핵의 구체적인 이해는 ‘중성자’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의(異議)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자핵 속에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의 입자가 있으리라는 예감을 처음 얻은 사람은 역시 러더퍼드였다.
그가 원자의 구조를 알기 위해 사용한 알파입자(헬륨의 핵)는 양성자 4개와 전자 2개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양성자와 전자가 합친 중성인 요소가 원자핵 속에 있다는 생각이었고 어쩌면 새로운 중성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감했다.
러더퍼드는 1920년 왕립학회가 주관하는 베이커강연 (Baker Lecture)에서 자기의 예감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구의 실마리는 독일인 보데(Bothe)와 백커(Baker)의 실험에서부터 풀려나갔다.
보데의 법칙으로 알려진 보데와 백커는 벨리륨에 알파선을 쪼이면 투과성이 강한 방사선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감마선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 방사선이 벨리륨에서 나오는 까닭에 이를 ‘벨리륨선’이라고 이름 지었다.
새로운 방사선에 관한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의 퀴리부부(유명한 퀴리부인의 딸과 사위)는 이 벨리륨선을 수소가 많이
들어있는 파라핀에 쪼여봤더니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퀴리부부는 벨리륨선이 감마선이라는 믿음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퀴리부부의 실험결과를 ‘콩트랑쥬(파리과학아카데미의 학술지)’를 통하여 알게 된 케벤디쉬 연구소(Cavandish Laboratory)의 채드윅(Chadwick)에게 번득이는 영감이 왔다.
만약에 벨리륨선이 정말로 감마선이라면 잘 알려진 ‘콤프턴 산란’처럼 가벼운 전자는 튕겨낼 수 있어도 무거운 양성자를
튕겨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퀴리 부부의 실험에서는 양성자만 나왔지 많은 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벨리륨선의 성분이 전기량을 띠지 않고 중성이면서 양성자 정도의 질량(무게)을 가진 입자라고 가정한다면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같은 무게의 두 입자가 충돌하면 상대방을 튕겨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양전기를 띤 원자핵으로
부터 전기적인 힘을 받지 않기에 방해를 받지 않고 물질 속을 잘 투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채드윅은 벨리륨선을 여러 가지 물질에 쪼여서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속도와 원자핵 자체가 부딪쳐서 움직이는 것을 관찰
함으로써 벨리륨선의 성분은 양성자와 비슷한 질량을 가진 중성입자 즉 중성자라는 결론을 얻었다.
보데나 퀴리부부가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벨리륨선을 감마선이라고 단정했기에 중성자 발견과 노벨상의 영광은 채드윅
에게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보데는 동시계수법의 기술을 이용한 보데법칙의 발견으로 1954년도 노벨화학상을 받았으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중성자가 발견되자 그 중요성을 처음 인식한 사람은 이탈리아 태생 물리학자 페르미(Earico Fermi)였다.
그는 러더퍼드가 쓰던 알파입자는 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원자핵에 접근하기가 어렵지만(같은 전기를 가진 물체는 서로 밀어낸다는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는 훨씬 접근하기가 쉬운 까닭에 원자핵을 탐색하는 데는
새로 발견된 중성자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로마대학의 분수가 솟고 있는 못 속에 그의 실험 장치를 설치했다.
그 이유인 즉 벨리륨선, 즉 중성자선의 에너지를 낮추면 원자핵과 부딪쳐서 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빈도가 더 잦아진다는 것을 알았고 중성자의 에너지를 낮추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중성자와 무게가 비슷한 양성자와 충돌시키는 것인데*,
물은 두 개의 양성자(수소핵)와 산소로 되어있으므로 가장 값싸고 흔한 양성자의 보고인 까닭이다.
페르미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실험 장치를 악어(Crocodile)라고 불렀다. 이 장치가 원자력 시대를 열게 된 서곡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서곡인지 다음 호에서 알아보자.
(* 당구를 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무게가 같은 서 있는 빨간 공과 큐로 친 흰 공이 정면으로 부딪치면 흰 공은
서고 빨간 공이 튕겨간다.
이렇게 흰 공이 정지되므로 그 에너지를 잃게 된다. 중성자를 흰 공, 양성자를 빨간 공으로 생각하면 된다)
핵 하나가 붕괴하여 두 개의 중성자를 내고 그 두 개의 중성자가 각각 핵분열을 일으켜서 네 개의 분열이 일어나고 여덟
개 그리고 열여섯 개의 분열이 뒤따르면 금방 수천만의 핵분열이 연쇄 반응적으로 일어난다는 생각, 이렇게 많은 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 인류가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를 원자핵으로부터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코페르니
쿠스적인 발상이 지랄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1933년 9월 어느 날 레오 지랄드(Leo Szilard)는 런던 볼룸스배리가의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빛으로 변하면서 지랄드는 길을 건너는 순간 훗날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되는 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
갔다.
순간적이었지만 그 생각은 메아리처럼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9년 뒤 시카고 대학의 엔리코 페르미와 함께 인류역사
상 처음으로 원자로를 개발하여 원자핵 속 깊숙이 묻혀 있는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헝가리 태생 물리학자인 지랄드는 두 달 전 나치독일을 탈출하여 이곳 런던에 와 있었다.
러더퍼드경에 의해 원자핵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1년 전인 1932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하여
원자핵의 정체가 한 겹 한 겹 그 본질을 드러내고 있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콕크로프토와 윌턴이 원자핵을 인공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가속기를 만들어서 원자핵의 구조가 양성자와 중성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수소원자핵은 양성자 하나로 되었고 헬륨원자핵은 두 개의 양성자와 두 개의 중성자가 모여서 이루어져 있고 더 복잡한
원자핵은 더 많은 양성자와 중성자로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로마대학에 있던 엔리코 페르미교수가 개발한 중성자를 이용하여 새로운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일은 당시의 시류를 타서 여러 곳에서 연구되고 있었다.
지랄드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란 대충 이런 것이었다.
핵 하나가 붕괴하여 두 개의 중성자를 내고 그 두 개의 중성자가 각각 핵분열을 일으켜서 네 개의 분열이 일어나고 여덟
개 그리고 열여섯 개의 분열이 뒤 따르면 금방 수천만의 핵분열이 연쇄 반응적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많은 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 인류가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를 원자핵으로부터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이었다.
지랄드의 이러한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다가왔다.
1938년 가을 독일의 카이제르 빌헬륨 연구소(Kaiser Willeim Institute)에서 일하는 오토 한(Otte Hahn)과 프릿즈 슈트라스만
(Fritz Strassman)박사팀에서는 종전과는 판이한 핵분열현상을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로마대학의 페르미교수팀은 방사성동위원소들을 중성자로 폭격해보면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동위원소가 생기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로 생긴 동위원소와 원래의 동위원소 사이에는 몇 개의 중성자수가 달랐었다.
그러나 ‘한’박사팀이 빨리 움직이는 중성자를 늦게 움직이게 하여 우라늄 동위원소와 부딪치게 하였더니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을 알았다.
우라늄은 92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는데 새로 생겨난 원소는 바륨으로서 56개의 양성자를 가진 원소였다.
페르미 교수팀에서는 기껏해야 중성자수가 한 두 개 다른 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데 그쳤지만 오토 한 박사팀의 결과는
우라늄이 말 그대로 거의 반쪽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이트너와 프리쉬교수는 우라늄 핵이 둘로 갈라진 핵반응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을 때 막대한 에너
지가 방출되고 1킬로그램의 우라늄이 핵분열을 일으키면 20,000톤의 다이너마이트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떻게 핵분열이 일어나는 것인가? 왜 우라늄이 느린중성자를 쬐면 핵분열이 일어나고 빠른중성자를 쓰면
그렇지 못한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보통 핵들은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모여서 럭비공이나 좀 짓눌린 축구공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라늄처럼 양성자와 중성자의 숫자가 240개 정도가 되면 서로가 묶여 있는 것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마치 쇼핑백에 너무 많은 상품을 담으면 곧 터질 듯 불안한 상태가 되는 것처럼 자연계에는 많이 있는 우라늄광은 92개의
양성자와 146개의 중성자를 지닌 핵으로 되어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합이 238이란 뜻으로 기호로는 U-238로 표시된다.
그런데 이런 상태의 우라늄 외에도 0.7%정도의 우라늄광은 우라늄 235, 즉 U-235로 되어 있는데, 오토한 박사팀에 의하여
발견된 핵분열은 이 우라늄 235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확인되었다.
빠른중성자가 우라늄 235에 부딪치면 튕겨나가면서 우라늄 235핵에 충돌에너지를 전달함으로써 핵 전체가 진동을 일으
키다가 그 에너지가 식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빠른중성자는 우라늄-235핵을 진동시키는데 그 친다.
그런데 느린중성자인 경우는 다르다.
느린중성자는 우라늄-235원자핵에 잡혀서 흡수된다.
중성자가 하나 더 많아진 상태의 우라늄 원자핵은 배탈이 난 동물처럼 못 견뎌서 꿈틀거리면서 격렬한 진통을 일으킨다.
그 진통이 너무나 심하여 원자핵은 둘로 갈라지면서 핵에너지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그 해의 노벨물리학상은 페르미교수에게 돌아갔고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수상식에 참가한다는 구실로 그는 전
가족을 데리고 출국하여 그 해 12월에 노벨 수상식에 참여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미국에 도착한 페르미는 컬럼비아대학에 정착하여 연구를 계속하게 되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지랄드’박사 역시 컬럼비아
대학에 합류하게 된다.
의기투합한 페르미와 지랄드는 원자로의 실현을 위하여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많은 난관이 닥쳐
왔다. 어떤 것들일까?
시카고파일
CP-1이라고 이름 붙인 세계 최초의 원자로는 시카고대학 운동장의 서쪽편에 있는 스쿼시 코트에 설치키로 하였다.
연쇄반응이 성공하려면 400톤의 흑연을 벽돌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2만 2천개의 막대기 모양의 우라늄 봉을
끼워놓은 작업을 해야만 했다.
지랄드는 자연계의 우라늄의 대부분이 우라늄-238이고 0.7%만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이지만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페르미와 함께 우선 핵분열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느리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지난달 호) 보통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형식의 중성자 방출은 그 속도가 너무 발라서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그냥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핵분열을 일으키는 데 소용이 없다. 중성자의 속도가 빛 속도의 13분의 1정도인
빠른 속도에서 1만분의 1정도로 감속시켜야 한다.
핵분열이 일어나는 과정을 되풀이해서 설명해 보겠다.
보통 원소들은 중성자와 양성자가 동수로 들어 있다.
그러나 원소번호가 올라갈수록 중성자의 비율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산소는 양성자 8개, 중성자 8개로 이루어져 있고,
실리콘은 양성자 14개 중성자 14개로써 역시 양성자와 중성자의 숫자가 같다.
그러나 원소번호가 올라가서 은이 되면 양성자가 47개인데 중성자는 60개나 된다.
우라늄-238은 양성자가 92개인 반면 중성자는 무려 146개나 된다. 이렇게 되면 원자핵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약한 쇼핑백에 너무 많은 상품을 담아서 곧 터지려는 현상과 같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은 중성자가 있는데, 또 다른 중성자와 부딪치면 핵은 진동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빠른중성자가 우라늄 핵에 부딪치면 그냥 쇼핑백을 스치고 지나가는 효과뿐이어서 우라늄
원자핵이 심한 진동을 하지만 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느린중성자는 우라늄이란 쇼핑백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핵이 중성자를 먹고
배탈이 난 것처럼 어쩔 줄 모르다가 몇 개의 중성자를 설사하는 사람처럼 배출하고 자기 자신도 둘로 갈라진다.
다시 말해서 바른 중성자를 느리게 만드는 것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조건 인 것이다.
핵분열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일으키려면 물론 우라늄-235의 비율로 높이면 좋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는 우라늄-238과 우라늄
-235를 분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포기한 상태였다.
이론상 감속재로는 수소가 많이 들어있는 물질이 좋다. 왜냐하면 수소는 양성자 하나를 원자핵으로 한 원소이다.
그런데 어떤 물체를 감속시키려면 자기 자신과 무게가 같은 물체에 부딪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당구를 쳐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무게가 같은 빨간 공에 같은 무게의 흰 공이 정면으로 충돌
하면 흰 공은 그 자리에서 서고 빨간 공이 튕겨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값이 싸고 수소가 풍부한 물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구상에 가장 많은 물이다.
따라서 그들은 감속재로 물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많은 원자로에서 물을 냉각수로도 쓰고 역시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재료로서 동시에 쓰고 있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미흡한 그 당시로서는 물로 감속시키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페르미와 지랄드는 감속장치의 원료로서 흑연을 택하였다. 그들은 원자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50톤의 흑연과 5톤의 우라
늄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그 당시의 가격으로는 약 3만5천 달러라는 거금이었다. 그 많은 돈을 구할 길이 없는 두 물리학자들은 정부에 건의해보기로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오토 한이 독일에 남아서 핵분열을 이용하여 원자탄 연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그들은 더더욱
핵분열의 연쇄반응유도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지랄드는 동료 물리학자이자 같은 헝가리 태생인 유진 와그너 박사와 의논하여 아인슈타인 박사를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인슈타인 박사로 하여금 그 당시 대통령인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연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경고하기로 하였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편지는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난 뒤 5주 만에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지만 결과는 지랄드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원자탄의 가공할 만한 위력에 감을 잡지 못한 미국정부는 겨우 6천 달러의 연구비를 전달해오는 데 그쳤다.
그러나 몇 개월 뒤에 영국의 정보기관을 통하여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펄스와 오토 프리쉬가 희귀 동위원소인 우라늄-
235의 대량생산, 그리고 폭탄제조의 방법과 그 가공할만한 위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보고서를 접하고 미국 정부의 태도가 돌변했다.
지랄드와 페르미의 연구 프로젝트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풍부한 연구비를 지급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연구도
급진전을 보게 되었다.
길이, 폭, 높이가 2.5미터나 되는 30톤의 흑연에 8톤의 우라늄을 넣은 ‘파일’을 만들어서 베리륨과 라듐을 1차 중성자 원천
장치로 만들었다.
연쇄ㅔ반응의 중요성을 깨달은 정부는 그 당시 미국물리학계의 대부이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콤프턴을 위원장으로
한 국가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원자로 프로젝트를 콤프턴의 고향인 시카고대학으로 옮긴지 두 달 뒤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CP-1이라고 이름 붙인 세계 최초의 원자로는 시카고대학 운동장의 서쪽 편에 있는 스쿼시 코트에 설치키로 하였다.
연쇄반응이 성공하려면 400톤의 흑연을 벽돌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2만2천개의 막대기 모양의 우라늄 봉을
끼워놓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흑연의 검은 가루가 온몸을 덮고 땀을 흘리고 나면 땀구멍까지도 흑연가루로 막혀서 목욕을 하고 난 뒤에도 곧 잘 흑연
가루가 몸에서 베어 나오기도 했다.
거의 1년이 지나 1941년 12월이 되어 CP-1은 완성 되었다.
페르미 교수의 지시에 따라 시운전에 들어갔고 중성자계측기에 모두의 신경이 쏠리고 있었다.
연쇄반응이 너무 급격히 일어나면 막대형의 제어장치를 넣어 그 반응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였다.
시운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중성자계측기가 많은 중성자가 나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페르미는 이 중성자계측기가 헤아리는 중성자수가 시간에 따라 지수함수(급격히 증가하는 기하급수의 일종으로 수학
에서 많이 쓰이는 함수)처럼 불어나는 것을 확인한 후 제어봉을 써서 인류최초의 원자로의 운전을 제어했다.
잔잔한 감동이 스쿼시 코트를 꽉 채웠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연쇄반응이 실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