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 제30편]
ㅡCIOFFㅡ
[국제민속축제협의회]
(댓글주시면 교정하겠습니다.)
우리 단체는 78년도 유럽공연은 정부에서 왕복항공료를 부담했기 때문에 해외공보관이 요청한 스케줄로 움직였지만 주로 CIOFF (국제민속축제협의회) 회원국의 민속축제에 참가했다.
CIOFF(Conseil lntemaattional des Organisations de Festivals de Folklore at Darts Traditionn-els)는 1970년 프랑스의 지방도시 공풀랑의 국제페스티벌의 주체자인 앙리 꾸르사제씨가 주동이 되어 시작한 조직으로 각 나라간 민속의 교류를 통하여 상호우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처음 유럽중심으로 시작한 이 조직은 지금 동서진영 54개 회원국으로 확대되었고 여섯 개 지역회의
(중앙유럽지역, 북부유럽 지역, 남부유럽 지역, 북미주 지역,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 지역, 아시아 지역)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78년도 업저버로 참석했다가 80년 5월에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였고, 아시아 지역 9개 회원국의 의장국을 맡기도 하였다. 86년과 88년에는 10여 개의 회원국의 민속공연단을 초청하여 국제민속축제를 개최하였고 88년에는 서울에서 제19차 CIOFF세계총회를 개최한 바도 있다.
유럽에서는 벨기에 스코틀랜드 페스티벌과 프랑스의 콩폴랑 페스티벌 그리고 가나(Gannat) 페스티발이 있는데, 프로그램 중에 퍼레이드(길놀이)를 통해 시민들을 유도하는 최고의 중요한 행사의 첫부분으로 진행되었다.
(즉 예로 광주는 문화제(축제)를 알리는 파발교 경안시장(소상공인)에서 남한산성까지 길놀이(퍼레이드)의 필요성)
또 스코텐 국제민속축제는 매년 7월 중에 개최되며, 야외무대는 5천 석, 천막 안 무대는 2천 석의 관객석이 마련되어 우천에 대비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2백 프랑, 1백 프랑, 50프랑의 등급이 있으며, 총경비는 3백만 프랑이 든다고 한다. 참가팀은 무보수며, 교통편의와 숙식만 제공했다. 프로의 악사들로 구성된 여러나라 팀들이 불평, 불만이 많았다.
보통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숙박했지만, 참석자들은 숙박시설이 없는 시골축제에서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야전침대를 놓고 1층은 남자, 2층은 여성들이 숙식을 했다.
야외무대에서의 정규공연이 끝나면 천막 안으로 옮겨 밤늦게까지 각국의 밤공연으로 각국 대표와 관객들이 어울려 맥주와 스낵 등 들며 그 나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본인은 축제기간동안 밤마다 왈츠, 차차차 등 외국춤을 배웠다. (그래서 귀국하여 기업체 초청강의 및 사회단체에 동ㆍ서양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에 수강자들에게 옛과 현대의 만남을 만끽하게 했다.)
모든 일과가 끝나면 강당에 주최측이 오른 쪽은 턴테이블이 있어 음악이 나오고 반대 쪽에는 맥주티켓 3매씩 참석자들에게 제공되었고 그 외는 각자 사먹게 했다.
[한국의 밤]에는 아리랑을 합창하고 강강술래를 추었다. 그 때 프로그램 담당위원인 페르빌렌 씨로부터 [너희나라 민요와 민속춤은 어째서 우리 서양사람들에게도 익숙하게 느껴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故 이두현 교수는 가슴이 뜨끔했다고 저서에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민속의 보편성이 아니겠느냐? 고 대답했지만 ㅡ
우리가 부른 아리랑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 맞춰 서양악식으로 20년대에 편곡된 것이고 강강술래도 일행 중에 무용교사가 있어 급히 마스게임식으로 어레인지한 것이다.
얼마전에 한국대표단체가 해외공연했을 때, 외국의 평론가가 ㅡ
"너희나라 것 없어! 왜? 우리 것을 따라하는가? 너희 것 좀 보여다오!"~
그래서 귀국해서 단체장이 본인에게 요구해와 탈춤 및 산대놀이 등을 무용단원들에게 지도해준 바 있다. 본인의 기획 {컬럼} 번호 3번 [국내외 기획하는 방법]을 fb에 올려 실수하지 않게 후배ㆍ제자ㆍ일반인들에게 제시했다.
아무튼 이곳 주민들은 20년간을 매해 각국의 민속공연을 보아왔으므로 안목이 높았다.
9개국 공연단 중에서 포르투갈 그룹은 한마을의 남녀노소가 몽땅 와서 추는 시골춤으로 추웠다.
10일간의 민박과 페스티벌 참가를 끝내고 떠나던 마지막 날 밤공연은 봉산탈춤 15분 공연에 이어 주민들과 아리랑을 합창하고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추고,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며 눈물의 축제! 작별을 하였다.
페스티벌 참가팀은 반반 나눠서 서로 다른 반대방향으로 순회하며 한 달 후에 다른 지역 및 나라에서(6월~9월 3개월 동안)또 함께 만나게 스케줄 관리가 되어 있었다.(연재 ~)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세종문화회관 뮤지컬기획담당(실장)
전 한예종 교수 연희학과장
사진 설명
ㅡ프랑스 콩폴랑 축제 포스터와 관객
ㅡ길놀이(참가국 전체 퍼레이드) 중간에 기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