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맛
예부터 오미(五味)의 으뜸은 단맛이다. 그리고 단맛은 오방색의 중앙을 차지하는 황색, 왕, 황제를 상징한다. 이는 황제나 왕만이 맛볼 수 있을 정도로 귀한 맛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단맛을 내는 재료들은 매우 귀하게 여겨 지체 높은 집안이나 최고 연장자나 되어야 접했을 정도였다.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귀한 맛으로 사랑받아온 단 맛의 정체는 과학적으로 보면 탄수화물의 일종이다. 탄수화물은 인체의 에너지원으로 가장 먼저 쓰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포도당은 뇌의 유일한 에너지로 쓰이며, 인체는 섭취된 음식물을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순으로 분해하여 에너지로 사용한다. 그러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최근 탄수화물(당) 과다 섭취가 이슈가 되고 있다. 탄수화물(당) 중 이용되고 남은 것은 글리코겐으로 저장되는데 과다하면 이는 중성지방으로 저장되며, 과잉 섭취하면 당뇨를 비롯하여 충치, 주의결핍 등의 부수적인 질병에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당 섭취량은 서구에 비해 낮은 수준이나 증가속도가 빠른 것이 우려할만한 점이다.
이제는 진짜 달달한 이야기
인간이 다른 맛에 비해 유독 단맛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채집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에게 쓴 맛은 독을, 단 맛은 먹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존의 문제와 결부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엄마의 향기에서 기억하듯이, 유당이 들어있어 단 맛을 내는 포유동물의 젖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단 맛의 대표주자인 설탕은 기원전 수백년경 인도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고도의 정제기술이 필요하여 원재료인 사탕수수에 비해 전래 속도는 더디었다. 인도의 사탕수수가 중국으로 전래된 것은 기원전 800년 경이나, 설탕이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5세기 경이다. 인도의 사탕수수는 동쪽의 중국뿐만 아니라 서쪽의 페르시아로도 전해졌으며, 이후의 전파에는 이슬람의 교세 확장이 관련된다. 이후 콜럼버스가 사탕수수를 아메리카로 가져가면서, 설탕의 역사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했다. 한편 벌꿀은 설탕보다 단 맛이 한 수 위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신들의 식량’, 로마인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로 추앙받았고, 기원전 수천년 전의 수메르인들에게는 꿀이 복용약과 연고로 이용되었다. 우리의 엿은 찹쌀, 멥쌀, 옥수수에 엿기름을 섞어 당화(糖化)시켜 졸여서 만드는 것으로 설탕이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우리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예부터 엿은 세찬(歲饌)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음식으로, 겨울철이 되면 각 가정이나 지방마다 엿을 만들었다. 경기의 무릇곰, 양평가마솥칡청, 강원도의 황골엿, 충북의 무엿, 칡조청, 충남의 구절초엿, 송화쌀엿, 경북의 매화장수쌀엿, 호박 오가리엿, 경남의 수수조청, 전북의 고구마엿, 밤엿, 전남의 창평쌀엿, 흰엿, 제주의 꿩엿, 돼지고기엿 등이 유명하다. 한편 설탕과 사카린의 유해성을 둘러싼 논란은 아스파탐,수크랄로스, 스테비오사이드 등을 탄생시켰다.
시사점
매년 서구에서 새로운 건강관련 소식이 나올때마다 국민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국가의 침착한 대응이 중요하다. 우리 고유의 식습관과 전체 섭취량 등을 고려하여 서구의 사례를 제대로 해석해주고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임무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의 전통 식습관을 발굴·보존하면서 상품화하거나 지식 재산화할 필요가 있다.
參照(農村振興廳 資料 引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