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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로마 가톨릭 전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성체)과 피(성혈)로 이루어진 성체성사의 제정과 신비(성변화)를 기념하는 대축일로,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내도록 제정하였습니다. 이 대축일의 제정에는 벨기에 리에즈의 ‘율리아나’ 수녀(아녜스와 쌍둥이 자매 1191년~1258년)의 환시 체험과 1263년 이탈리아 중부지방의 ‘볼세나’라는 곳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성체 성혈 안에 예수님께서 실재(實在)로 현존하심을 공언한 이 대축일의 제정은 이후 성체 현시, 성체 행렬과 같은 장엄하고 화려한 성체 공경 예식과 열광적인 성체 신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 놀라운 성찬의 성사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성체 성혈의 거룩한 신비를 공경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 아래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과 관련된 기적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1) 이탈리아 란치아노 성당에서 일어난 실체 변화 기적
8세기경 어느 날 아침, 성 바실리오 수도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던 중, 예수님이 성찬 전례 중에 실제로 현존하실까 의심하며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끝낸 순간, 갑자기 성체로 쓰인 제병이 인간의 살로 변하고, 성혈로 쓰인 포도주는 인간의 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자 너무나 놀란 신부는 이 사실을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고,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란치아노와 인근 지방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에 지역의 대주교는 조사를 시작하였고 교회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적을 일으킨 성체 성혈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보관하고 있는데, 살의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레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수정 성작 안에 담겨있는 성혈은 5개의 불규칙한 형태의 핏덩어리로 응고되어 있습니다. 전체 무게는 16.5g으로 1970년과 1971년에 이르러 해부학, 병리 조직학, 화학, 및 임상 현미경학 교수이며 아레초 병원의 수석 의사였던 ‘오도아르도 리놀리’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을 맡고 있던 프란치스코회 수사 신부들의 요청에 따라 처음으로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게 됩니다.
검사는 2단계로 나뉘어 이루어졌는데, 첫 단계는 리놀리 교수가 성체와 성혈의 샘플을 채취하여 아레초 병원의 실험실에서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단계는 완료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샘플 채취는 1970년 11월 18일로 란치아노의 ‘페란토니’ 대주교가 입회한 후 오전 10시 15분, 선임자였던 프란시스 페트라르카 주교가 1886년에 만든 봉합을 개봉했고, 교수는 성체로부터 20mg 정도, 성혈로부터는 318mg의 작은 샘플을 채취하게 됩니다.
리놀리 교수는 시에나 대학교의 인체해부학 교수였던 ‘로저 베르텔리’의 도움을 받아 약 3개월에 걸쳐 샘플을 조사하였고, 마침내 1971년 3월 4일, 기적이 일어났던 성당에 수많은 성직자와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간의 분석 결과를 발표하게 됩니다. 그는 설명과 더불어 수많은 사진과 문서를 제시했는데,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성체 기적의 피는 진짜 피이며, 살은 진짜 살이다. 그 살은 심장 근육이다. 그 살과 피는 인간의 살과 피이다. 피와 살의 혈액형은 같다. 이것은 그 피와 살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액형이 같은 두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 피 안에는 정상적인 피에서와 같은 정상적인 비율의 단백질들이 발견되었다. 피에서는 또한 염화물, 인, 마그네슘, 칼륨, 정상보다 약간 적은 양의 나트륨, 그리고 정상보다 많은 양의 칼슘 등의 무기물들이 발견되었다.”
이어 교수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덧붙였는데,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 온 것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처리를 취한 흔적은 없다. 그러므로, 그 살과 피 안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 성체와 피의 혈액형은 AB형이다.” 이후 리놀리 교수의 발표 내용은 국내외 많은 매스컴을 타게 되었고 세계의 저명한 의학 잡지들에도 실리게 되었으며, 이탈리아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가톨릭을 믿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는 란치아노 성체 성혈에 대해 1973년 별도로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하고 15개월 동안 500번에 걸쳐 자료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 “란치아노 성체는 유례없는 사례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즉 기적이라고 결론지은 바 있습니다.
(2) 13세기 이탈리아 볼세나의 성체 기적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성체 기적 중 하나인 “볼세나의 성체 기적”은 교황 ‘우르바노 4세’가 재위(1261-1264)하던 시절인 1263년 이탈리아 볼세나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체코 프라하의 성직자였던 ‘베드로’ 신부는 성체 성혈이 진정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혀 1263년 로마 성지순례에 나서게 되는데, 주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던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찾아 흔들리는 신앙을 추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로마로 가는 길에 볼세나를 지나던 중 미사를 봉헌하기 위하여 ‘산타크리스티나’ 성당에 들러 성찬 전례를 거행하던 중 성체를 쪼개며 또다시 “이 성체와 성혈이 진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베드로 신부가 쪼개던 성체에서 피가 뚝 뚝 흘러내리더니 손가락을 적시고 제대에 깔려 있던 성체포로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는 깜짝 놀라 미사를 중단하고 급히 볼세나에서 가까운 ‘오르비에토’에 거주하고 있는 교황 ‘우르바노 4세’를 찾아가 이 모든 사실을 보고하기에 이릅니다. 오르비에토는 로마에서 약 120km 떨어져 있는 도시로, 당시 로마가 정치적으로 불안한데다 전염병이 번져 위험했기에 교황들의 임시 거주지가 되었던 곳입니다. 교황은 오르비에토의 ‘지아코모’ 주교에게 베드로 신부가 보고한 일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지시했고, 주교는 그것이 주님의 뜻으로 일어난 기적임을 확신하고 그 성체포를 가져와 교황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의 성혈이 새겨진 성체포는 오르비에토에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3) 13세기 포르투갈 산타렘에서의 성체 기적
13세기(1247년에서 1266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 포르투갈 산타렘에 살고 있던 한 부인은 방탕한 남편 때문에 크게 낙담하며 비참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유다인 점쟁이를 찾아갔고, 점쟁이는 성체 하나를 자신에게 갖다주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질 것이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독성죄임을 알고 있던 그녀는 한참을 망설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결국은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그녀는 성 스테파노 성당으로 가서 마음을 숨긴 채 고해성사를 받은 후 이내 미사에 참례하였고, 영성체 순서가 되자 제대 앞으로 나가 사제가 성체를 그녀의 혀에 놓아주자 재빨리 고개를 돌려 입에서 성체를 꺼내 미사포에 싼 다음 성당을 나와 서둘러 점쟁이의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허겁지겁 달려가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그녀가 어딘가 다친 것으로 여길 만큼 많은 피가 미사포를 적시며 길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참 뒤, 왜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느냐는 행인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며 깜짝 놀라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달려갔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나무상자에 성체를 숨기게 됩니다. 그날 밤늦게 돌아온 남편에게 그녀는 그날 있었던 일을 숨기며 잠을 청하게 되었고, 한밤중에 부부는 동시에 잠에서 깨어나 성체를 숨겨둔 상자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남편에게 털어놓았고, 그날 밤 부부는 상자 안에 모신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밤을 보내게 됩니다.
날이 밝자 그녀는 성당으로 달려가 사제에게 지은 죄를 고백하였고, 사제는 지체없이 부인의 집에 와 성체가 든 상자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마을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는데, 상자 안에서 피를 흘리며 빛을 내뿜는 성체의 기적을 보려고 숱한 사람들이 여인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사제가 성당으로 성체를 모시고 갈 때는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이후 사제는 성체를 작은 밀랍 상자에 넣어 감실에 모셨는데, 얼마 후 사제가 감실을 열어보니 밀랍 상자는 깨어져 있었고, 그 뒤 성체는 특별히 제작된 크리스털 성합 안에 모셔졌으며, 성합은 황금 명판이 붙은 은으로 만든 성광 안에 모셔졌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산타렘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하여 이 성당을 찾고 있습니다.
(4) 스위스 에스티빌 성령 성당의 성체 기적
1447년 성체 성혈 대축일에 스위스 에스티빌 성당 사람들은 성체를 도난당했는데, 신자들은 즉시 성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며 기도를 드렸고, 얼마 후 어렵게 성체를 훔쳐 간 여인을 잡게 됩니다. 이 여인에 따르면, 성체를 훔쳐 도망가던 중 성체의 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해 결국에는 들고 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어나 풀숲에 성체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범인은 잡았지만, 성체를 찾지 못했던 신자들은 이를 찾기 위해 기도하던 중, 들판에서 돼지를 기르던 ‘안나 슐마이스터’라는 소녀가 성체를 찾게 되는데, 이는, 소녀가 들판에서 돼지들을 몰아가고 있을 때, 돼지들이 어느 한 곳에 이르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무릎을 꿇으며 꿀꿀거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여 소녀가 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버려진 성체가 있어 이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체른 지방의 에스티빌에 있는 ‘성령 성당’은 스위스에서 일어났던 성체의 기적 사건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으로, 1947년 성체 기적 사건 500주년을 맞아 ‘비오 12세’ 교황은 이곳을 찾는 신자들에게 전대사(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아 놓은 공로로 잠벌을 전부 면제해 주는 것)의 특별한 은총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5) 스페인 이보라의 마리아 성당의 기적
서기 1010년 어느 날, 스페인 솔소나 교구 내 이보라 가까이에 있는 마리아 소성당 주임신부였던 ‘베른하르트 올리버’ 신부가, 란치아노 성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변화에 대한 깊은 회의에 잠긴 채 미사를 봉헌하던 중, 절차에 따라 포도주에 대한 축성을 마치자마자 성작(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잔)에서 매우 많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제대보와 제단 위뿐만 아니라 제단의 디딤팔 위에까지 쏟아져 내려가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고, 소성당의 종들이 일제히 저절로 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 현장에 있었던 제대보와 성유물 등은 현재도 전해져오고 있으며, 교황 ‘세르지오 4세’(재위 : 1009.7.31~1012.5.12)에 의해 공경이 인가되었습니다.
(6)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의 성체 기적
1730년 8월 14일 이탈리아 시에나의 대성당에서 성모승천 축일을 맞아 특별한 전야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축제의 혼란한 틈을 타 ‘성 프린치스코’ 교회에 도둑이 들어 축성된 성체 수백 개가 담겨있는 황금 성합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자, 이틀 뒤 시에나의 또 다른 교회에서 사제들에게 상자를 하나 보내주게 되는데, 사제들은 도착한 상자에서 무언가 하얀 것이 삐져나온 것을 발견하게 되고, 급히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잃어버렸던 성체들이 거미줄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채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사제들은 그 성체들을 깨끗하게 씻어 정리한 후 새로운 성합에 안치하여 복원과 경배의 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당으로 옮겼고, 기도를 마친 후 성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온전히 그 상태로 모셔두기만 했습니다. 그 후 몇십 년이 지나 확인을 위해 성합을 열었으나 그때까지도 성체들은 변함없이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는데, 현재도 이 성체들은 이탈리아 시에나의 성 프란시스 바실리카 성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7) 아르헨티나 성모 마리아 성당의 성체 기적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화가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목하던 ‘알레한드로 페세트’ 신부는 1996년 8월 오후 미사를 집전하며 성체 분배를 끝낼 무렵 한 신자로부터 “촛대 아래 성체가 버려져 있다”라는 말을 듣고 그곳을 보니 성체가 하나 떨어져 있었고, 신부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얼른 성체를 주워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담가 감실 안에 모시게 됩니다. 얼마 뒤 감실 문을 연 신부는 성체가 온통 붉은 빛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즉시 당시 교구장이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게 되는데, 추기경은 즉시 전문 사진가를 불러 성체를 찍은 뒤 이후 3년 동안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감실 안에 모셔지게 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성체가 부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추기경은 과학적 분석을 의뢰하게 되는데, 당시, 검사가 편견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본의 출처가 성체라는 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분석을 담당한 심장전문의이자 법의학 병리학자 ‘프레데릭 쥬기브’ 박사는 그 표본이 “인간 DNA를 가진 살과 피이며, 살은 심장 근육 일부이다. 또한 피에서 백혈구가 발견되었는데, 죽은 생명체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백혈구가 나온 것은 표본채취 당시 심장이 뛰고 있었음을 의미한다.”라고 발표하게 됩니다. 이에 추기경은 조사의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두 번째 조사를 ‘리카르도 카스타뇬 고메즈’ 박사에게 의뢰하게 되는데, 그 결과 표본은 인간의 혈액으로 혈액형은 AB형이었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습니다. 한편, 이탈리아 란치아노 성당의 성체를 조사한 바 있는 리놀리 교수는 란치아노 성체의 표본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성체의 표본이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8) 폴란드 소쿠카의 성 안소니 성당 성체 기적
비교적 최근인 2008년 10월 12일, 폴란드 포들라스키에 주에 있는 소쿠카라는 도시의 200명 정도가 다니는 성당에서도 성체성사의 기적이 일어났는데, 실수로 사제가 떨어뜨린 성체를 수녀님이 주워 물그릇에 담가 금고 안에 보관했고, 1주일 뒤인 10월 19일, 어딘가에서 누룩을 사용하지 않은 빵 냄새가 난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수녀님이 금고를 열어 물그릇을 확인해 보니 성체가 물에서도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성체 가운데가 붉은색으로 변해 있는 것을 목격하고 즉각 관할 교구에게 알리니 주교님과 관련 신부님들이 달려와 직접 확인하게 되었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더 지켜보자며 성체가 담긴 물그릇을 다시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10월 29일에는 성체를 본당 사제관 안의 자비의 경당으로 옮기고 성체를 물그릇에서 꺼내어 성체포 안에 보관하게 됩니다. 다음날 다시 관찰하니 포 안의 성체가 마치 핏덩이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어 이를 잠금장치가 있는 감실로 옮겨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관할 비아위스토크 대교구장 에드워드 오조로프스키 대주교는 일을 철저히 조사하라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3월 30일 마리아 소바니에흐 로토프스카 교수 등 의과대학 교수 2명을 포함한 조사팀이 꾸려지면서 각자 따로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후 조사팀이 발표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이 물질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 근육 조직이며, 매우 흥분하거나 임종 직전의 상태로 보이며, 조사한 심장 조직의 세포 구조와 누룩 없는 빵의 세포 구조는 동일하고, 보관을 위해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첨가한 흔적은 없으며 위 모든 사실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란치아노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적을 떠올리게 하는 결과였던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예수님께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마태 13, 57~5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작년 자료는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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