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앞으로 상제님 태모님의 천지 사업을 완성하는 일꾼들이 도장에서, 또 가정과 직장에서 어떤 마음을 갖고 신앙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 제3변 도운이 성공하는 관건이 어디 있는가 하는 문제를 『도전』 6편 71장에서 76장까지의 말씀으로 정리해 보겠다. 그 가운데 특히 6편 71장에서 말씀하신 ‘판 안’과 ‘판밖’을 중심으로, 상씨름판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온전하게 성취하는 일꾼의 성공의 열쇠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한다. 판 안 사람과 판밖 사람 상제님 진리를 만나 신앙하면서 늘 듣는 말씀이 “앞으로 천지에 새 운수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된 말씀을 오늘 공부할 성구에서 찾아보자. 판 안 사람 판 안 공부 할 수 없어 허리끈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이 지저귄다. 황계성이 죽지 털면 판밖 소식 이르리라. 내 일은 판밖의 일이니라. 가르쳐도 모를 것이요, 직접 되어 보아야 아느니라. (道典 6:73:3∼5) 상제님은 상씨름판이 종결되는 상황에서 역사의 최후 승자가 되느냐, 아니면 패배자가 되느냐 하는 것을, 종종 ‘판 안’과 ‘판밖’이라는 대조적인 언어로 구분지어 아주 쉽고도 간결하게 강조를 하셨다. 여기서 상제님은 ‘판 안 사람’을 실패자로, 그리고 ‘판밖 사람’은 새 운수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일꾼, 즉 인간으로 오신 참 하나님의 천지 사업을 완성하는 주인공으로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6편 71장, 72장, 73장, 74장을 쭉 읽어 보면, ‘판 안’과 ‘판밖’이 그렇게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런가? 상제님은 당신의 도업에 대해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道典 5:356:4), 즉 세 번 변해서 성취된다고 하셨다. 상제님은 당신의 참법이 성공하기까지 크게 세 번 변화하는 개척의 전 역사 과정에서 ‘판 안’과 ‘판밖’의 문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판 안 사람”이 누구이며, “판밖 소식”, “판밖의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가를 『도전』 전편에 기록되어 있는 천지 부모이신 상제님과 태모님의 가을 천지개벽 공사의 주제 도수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판 안’ ‘판밖’은 과연 무엇이며, ‘판 안 사람’과 ‘판밖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을 말씀하고 계신지 바르게 알 수 있다. 이 때는 새판을 여는 시대다 그러면 먼저 ‘판’이란 무엇일까? 본래 ‘판’은 ‘아, 참 그 판이 썩 좋아, 판이 잘 다듬어졌어. 그 일판은 첫 출발이 좋아.’ 이렇게 세속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다. 이 세상 인사人事-사람일-, 역사를 들여다보면 특정 분야의 사람들 또는 사회에서 서로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일판을 벌인다. 이 세상 역사를 구성하는 각양각색 인간의 움직임 속에는 어떤 일판이 있다. 상제님이 말씀하시는 판은 분명히 인간 역사의 판이다. 상제님이 ‘판’을 처음 말씀하신 게 언제인가? 『도전』 3편 11장 3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가을 천지의 도통문을 여신 후, 4월 4일에 원평 장터에서 김형렬 성도를 처음 만나시고, 9일 후인 13일에 금산사 입구 돌무지개문 위에서 김형렬 성도의 집을 향해 “형렬아, 형렬아!” 하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찾아온 태운장이 인간으로 오신 조화주 하나님, 불법佛法으로는 도솔천 하나님이신 상제님을 모시고 제비창골 집에 가서 처음 들은 말씀이 “이 때는 모름지기 새판이 열리는 시대니라.”(道典 3:11:3)는 말씀이다. 이 ‘새판’에 대해 5편 6장에서는 “내가 이제 천지의 판을 짜러 회문산(回文山)에 들어가노라.”(道典 5:6:1)고 말씀하셨다. ‘천지의 판을 짠다, 천지의 새판을 짠다’는 말씀은, 이 세계 질서에 가을의 천지 기운을 열어 주는 오선위기五仙圍碁 판을 짜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새판을 여는 중심이 지구촌 동방의 남쪽 조선, 남조선에 있는 회문산이다. 바로 이곳에 세계 역사의 기본 질서를 짜는 오선위기 혈이 있다. 이 말씀을 통해 ‘판 안’과 ‘판밖’의 ‘판’은 천지의 새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판은 더 이상이 없는 인류사의 큰 판국이다. 인류의 새 역사 판, 새 천지의 판, 가을 우주 역사의 무대인 것이다. 우리는 상제님이 쓰시는 언어의 본래 뜻을 알아야 한다.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 하나님이 쓰시는 우주 경영, 우주 통치, 우주 조화권의 중심 언어를 알아야 한다. 5편 7장을 통해서 본 ‘판’의 의미 이 성구를 보면 ‘판’이 여러 번 나온다. 1절에 “내가 이제 천지의 판을 짜러 회문산(回文山)에 들어가노라.”, 3절에도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6절에도 “바둑을 마치고 판이 헤치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가리니” 이렇게 네 번 나오는데, 그 의미는 각기 조금씩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 잘 생각해 보라. 그 다음 7장에서는 판에 대한 말씀이 가장 많이 반복된다. 이 7장은 5편 천지공사의 총론이다. 또 어머니 하나님이신 태모님의 10년 천지공사 내용인 11편 말씀을 뚫어 꿰는 밑그림이 되는 말씀이다. 다 함께 『도전』 5편 7장을 보자.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세속에 가구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漏泄)한 것이니 내가 천지공사에 이것을 취하여 쓰노라.” 하시니라. (道典 5:7:1∼6) 1절만 해도 ‘씨름판’,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해서 판이 네 번 나온다. 그 다음 3절에서는 ‘씨름판대’, ‘세계 상씨름판’, 또 4절에서는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5절에서는 ‘노름판’, ‘판몰이’해서 판이라는 언어가 도합 열 번 나온다. 그런데 상제님 말씀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아, 이 말씀은 일꾼 중심으로 일꾼 판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것은 일꾼들이 몸담고 있는 객관적인 역사 상황, 역사의 조건을 판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판이 바로 그런 의미의 판이다. 그럼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는 말씀에서 ‘판’은 무엇일까? 이 ‘판’은 선천 인간역사의 판 전체, 즉 선천 오만 년 세상의 전 역사 과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판을 마친다’는 말씀은 선천 인간의 역사를 완전히 종결짓는다는 뜻이며, 나아가 선천 우주를 문 닫는다는 무서운 말씀이다. 그 문 닫는 때가 언제인가?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소 1,001마리를 이끌고 삼팔선을 넘어 북으로 갔다. 바로 이때부터 상씨름판이 실제로 종결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그 다음 5절의 “열다섯 수가 차면 판몰이를 한다.”는 말씀에서 ‘판몰이’의 ‘판’은 또 무엇을 말씀하신 걸까? 이것은 선천 봄여름철의 분열된 세상 판을 뜻한다. 오색 문화권이 꽃피고 또 그것이 자체 분열을 해서 기독교만 해도 수백 파, 불교도 나라마다 계파가 나뉘고, 유교는 유교대로 학통에 따라서 계보가 갈라진, 분열된 선천 문화의 판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판몰이’는 궁극으로 동서 문화의 천하 통일을 뜻한다. 하늘과 땅, 인간과 신명의 역사, 우주 역사를 통일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도운 중심의 판이 아니라, 선천 인간 역사의 수백, 수천억의 갈등과 원한, 대결 구조, 그 모든 상극의 시비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 대통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6편 71장 ‘판’의 의미 다 함께 6편 71장을 보자. 구릿골에 계실 때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과 같으니라. 상씨름 딸 사람은 술이나 먹고 잠이나 자면서 누워서 시치렁코 있다가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들을 칠 때, 그제야 일어나서 판 안에 들어온다. 다리를 둥둥 걷고 징검징검 들어가니 판 안의 씨름꾼들 여기저기 쑤군쑤군. @본문윤명조120:들은 체도 아니하고 샅바 잡고 한 번 돌더니, ‘상씨름 구경하라. 끝내기 여기 있다. 갑을청룡(甲乙靑龍) 뉘 아닌가. 갑자(甲子)꼬리 여기 있다. 두 활개 쭉 펴면서 누런 장닭 두 홰 운다. 상씨름꾼 들어오라.’ 벽력같이 고래장 치니 어느 누가 당적할까? 허허, 헛참봉이로고. 소 딸 놈은 거기 있었건만 밤새도록 헛춤만 추었구나. 육각소리 높이 뜨니 상씨름이 끝이 났다.” 하시니라. (道典 6:71:1∼8) 여기서 ‘판 안’과 ‘판밖’은 궁극으로 무엇을 뜻하는 말씀일까? 먼저 1절을 보자.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과 같으니라.” 이 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상씨름 씨름판’은 단순히 애기판, 총각판에 비교되는, 즉 지난 1, 2차 세계 대전쟁이라는 두 번의 전쟁 판 다음에 오는 세 번째 전쟁, 제3차 대전쟁의 역사 판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과 같으니라.”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이 말씀에서 ‘나의 일’이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이 뜻하시는 일을 말한다. 바로 인류를 구원하여 우주의 꿈의 낙원을 하늘이 아닌 땅 위에 세우시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 언어로 말하면 “천국이 가까워 왔나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이 아닌 땅 위에 아버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직접 건설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구원론의 총 결론인데, 그 하나님의 천국 건설 사업이 상씨름 씨름판에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상제님은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이다.”라고 하시지 않고 “상씨름 씨름판과 ‘같다’.”고 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상씨름 씨름판’에 하나님이 뜻하시는 모든 일이 다 들어 있다. 선천 상극의 고통의 역사, 분열의 역사, 비극의 역사, 원한의 역사를 완전히 끝막는 역사 경영과 하나님이 이루려 하시는 총체적인 인류 구원의 역사 비밀이 남북의 상씨름판에 있다. 그래서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판 안’의 의미 그 다음 2절을 보자. 상씨름 딸 사람은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들을 칠 때 그제야 일어나서 판 안에 들어온다. 직접 눈으로 봐야만 믿는 게 현실을 사는 세상 사람들의 인심이다. 때문에 상제님은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들을 치는 때를 배경으로 판몰이 도수를 붙이셨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이끗에 매달려서 돈만 좇는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盡滅)의 경계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利)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오.”(道典 2:45:2) 하고 흐느껴 우신 것이다. 하나님의 천지 사업이 상씨름판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인생을 내어 길러서 가을철에 그 인생에게 궁극의 성공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천명을 내리셨다. 그것이 남북 상씨름판의 마무리 역사에 있다. 그런데 역사의 성공자, 최후에 성공을 하는 인생사의 챔피언들은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들을 칠 때’, 상씨름이 터진다고 술렁술렁할 때 그제야 판 안에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다음 3절을 보자. 다리를 둥둥 걷고 징검징검 들어가니 판 안의 씨름꾼들 여기저기 쑤군쑤군. 이 3절에서 말씀하신 ‘판 안’은 2절의 ‘판 안’과 기본 뜻은 같지만 속뜻은 전혀 다르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 번 정리를 해 보자. 첫째, 2절의 ‘판 안’은 상씨름꾼들이 성공하는 판을 말한다. 이 말씀은 지구촌의 전문가들이 너도나도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떠들어대고 역사의 상식으로도 알 수 있는 때가 되면 상씨름을 딸 사람, 즉 상제님의 천지 사업을 마무리 지어서 하나님의 대이상향인 후천 오만 년 선경낙원을 건설할 사람들이 판 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판 안’은 우리 일꾼들이 성공하는 판, 상씨름꾼들이 모여서 천지 사업을 완성하는 판이다. 둘째, 3절에 있는 ‘판 안의 씨름꾼들’에서 ‘판 안’은 본래의 판 안쪽을 말한다. 즉, 이미 조성되어 있는 신앙 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남보다 일찍 도문에 들어와 ‘상씨름이 언제 넘어가려나? 넘어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이리 더디냐?’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신앙하는 일꾼들의 판을 뜻한다. 이 ‘판 안’은 속된 말로 잡탕 판이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일심으로 일하는 일꾼들과 좀 열심히 하는 일꾼, 그냥 오락가락하면서 개인 신앙하는 보통 사람들, 즉 평신도들이 뒤섞여 있는 판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한 번 질문을 해 봐야 할 것이다. “나는 과연 판 안의 씨름꾼인가? 하나님의 천명을 완결하는, 성공하는 신앙인인가?” 하고.
상씨름꾼의 신앙 주제 상씨름 딸 일꾼들이 판 안에 들어온다면 이 판은 성공하는 판이다. 판몰이로 들어가는 주역들이 들어와서 일을 벌이는 곳이다. 그 판은 칠성 도수 포교를 완수하는 일꾼들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나간다. 들은 체도 아니하고 샅바 잡고 한 번 돌더니, ‘상씨름 구경하라. 끝내기 여기 있다.’ 그 일꾼들이 들어오자 그동안 도판 안에서 나름대로 신앙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도 포교해 봤어. 나도 일심 갖고 해 봤어.” 하면서 여기저기서 쑤군거린다. 그러나 새 역사를 창조하는 상씨름 일꾼들 귀에는 그런 저런 잔소리가 일체 들리질 않는다. 그들 신앙의 주제는 오직 상씨름이다. ‘증산도의 진리를 보니 상씨름이 있다. 그 상씨름을 넘기려고 샅바를 잡는다’ 하고 승부수를 걸고 신앙을 한다. 막판 상씨름의 역사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다 걷어붙이고 칠성 도수를 단박에 짜 버린다. 앞으로 그런 대세몰이 판이 벌어진다. 상제님은 하나님의 천지 사업을 이루는 큰 일꾼의 심법과 기개, 배짱, 대세를 보는 안목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일꾼들은,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道典 5:7:3)고 하신 바 상씨름은 이 세계 운명이 결정되는 대전쟁이요, 지구촌의 역사 나아가 선천 상극의 우주를 문 닫는 대개벽의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잘 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천지전쟁이 있다.”(5:202)고 하신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인식을 할까요?” 라고. 물론이다. 그들은 신교를 받아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조상의 음덕이 크고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안목을 키워 자기 나름대로 신앙적, 진리적 판단을 하고서 들어온다. 때가 되어서, 때를 맞추어 들어오는 일꾼 재목의 인물들이므로 그 상황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므로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들을 치는 이때, 판밖 사람을 인도하는 판 안의 일꾼들 또한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정말로 무섭게 진리의 칼날 위에 선 신앙을 하지 않으면 판밖에서 밀고 들어오는 미래 상씨름 일꾼들에게 밀려나고 만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씨름꾼 들어오라 그 다음 구절을 보자. ‘두 활개 쭉 펴면서 누런 장닭 두 홰 운다. 상씨름꾼 들어오라.’ 벽력같이 고래장 치니 어느 누가 당적할까? 지난 시간에 상제님 천지 사업의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한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우리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공사의 결론 주제어이자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 통치자 하나님의 인간 구원 사업을 이루는 강력한 구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자리에서 대뜸 그 대답이 나왔다. 그 말씀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외쳐 보자. “상씨름꾼 들어오라!” 이 말씀이 일꾼의 신앙의식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단순히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 이 말씀이 우리 상씨름꾼 조직 속에 자리를 잡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상씨름꾼 들어오라! 이 여덟 글자 속에 천하창생을 구제하고 후천 오만 년 조화 선경 낙원을 건설하는 일꾼들 신앙의 성패가 다 들어 있다. 상씨름꾼! 그는 상제님 천지 역사를 완결하는 판몰이 도수를 여는 일꾼, 선천 상극의 세상을 문 닫고 가을철 성숙의 새 세상, 신천지 상생의 조화 낙원을 여는 새 역사의 주인공이다. 이 ‘상씨름꾼 들어오라’는 말씀이 인사로, 상제님 도판에서 조직의 틀로 정립되면서 판몰이로 들어간다. 지난 백 년의 묵은 시대를 마무리 짓고, 새 역사의 진리 혼백이 담겨 있는 『도전』을 통해 진리의 틀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가을 천지의 문을 여는 일꾼들을 중심으로 마무리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면 그 상씨름꾼들은 과연 어떻게 일을 할까? 72장 3절을 보자. 상씨름에 뜻하는 자 끝판에 나아가 한 판으로 상씨름판을 매듭짓느니라. 이 말씀처럼 그들은 단 한 판으로 일을 끝낸다. 한 판으로 끝낸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법 경계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고 파란만장한 개척의 역사를 단순화시켜서 상제님 천지 사업이 무슨 이적이라도 터져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끝판에 나아가 한 판으로 상씨름판을 매듭짓는다! 상씨름꾼이 끝판인 판 안에 들어와서 끝매듭 짓는 상황이 그렇다.
판밖 소식의 의미 그 다음 71장 4절을 보자. 황계성이 죽지 털면 판밖 소식 이르리라. 이 말씀에서 판밖은 판 안과 정반대되는 뜻이다. 세계 질서[世運]가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의 제1차, 2차, 3차 세계대전으로 삼변을 거치면서 오선위기 도수로 전개된다. 조선을 바둑판으로 하여 주변의 4대강국이 훈수를 하면서 선천 상극의 판을 마치는 것이다. 도운도 제1변 차경석 성도에게 갑오 동학전쟁 때 억울하게 죽어간 신명들을 해원시키는 동학역신해원 도수를 붙이시어 7백만 대부흥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해방 후 제2변 도운도 진리보다는 개안 공부를 한다든지 치병을 한다든지 하는 체험 신앙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제2변 도운 때 진리의 원본이 나왔다. 종도사님이 우주1년 인간농사 짓는 우주원리를 직접 도표로 그려서 그것을 바탕으로 근본신앙 교육을 하셨다. 그러나 2변 도운은 우리 한민족의 최대 비극인 상씨름 초반 전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20년 휴계기休契期를 거쳐 마침내 상씨름 판을 종결짓는 도운의 상씨름판, 제3변 부흥기의 새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황계성이 죽지 털면 판밖 소식 이르리라.” 이 말씀은 ‘닭이 울면 날이 샌다’(道典 5:362:3)는 말씀처럼 해가 떨어지면서 남북 상씨름 끝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간, 결정적인 운명의 시간이 시작됨을 상징한다. 그리고 도운도 판몰이 도수로 들어간다. ‘판밖 소식’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판 안과 판밖 신앙 그럼 여기서 판 안과 판밖에서 일꾼들이 신앙하는 대세를 한번 정리해 보자. 사실 지난 백 년 도운사 전체가 판 안이다. 제1변 도운도 판 안이요, 해방 후 제2변 도운도 판 안이다. 제3변 도운 출발점 전까지가 판 안의 1차적인 뜻이다. 그리고 2차적인 뜻은 제3변 도운의 마무리 과정에서 상제님 진리의 원본 틀이 『도전』 완간본으로 정리되어 나오기 전, 즉 해 떨어지는 시간대 이전까지가 판 안이다. 이렇게 지난 백 년 도운사 전체가 판 안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태모님께서는 “상씨름판에는 콩밭[太田]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道典 11:413:4)고 하셨다. 또 “앞으로 태전太田이 서울이 되느니라.”(道典 11:365:6)고도 하셨다. 그리고 이에 앞서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하라.”(道典 11:365:3)고 명령을 내리셨다. 이 말씀은, 제3변 도운은 태전에서 도운의 상씨름판을 연다, 이때는 용봉 도수가 열려서 상씨름판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6편 71장 5절과 73장 3절 말씀과 연관이 된다. 즉, “갑을청룡 뉘 아닌가. 갑자 꼬리 여기 있다.”는 말씀과 같이 청룡 도수에 의해 용이 나오고, “판 안 사람 판 안 공부 할 수 없어 허리끈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이 지저귄다.”는 말씀에 따라 봉황 도수가 열린다. 그렇게 해서 용봉 도수가 나오는 것이다. 정리를 하면, 제1변 도운도 판 안이요, 해방 후에 종도사님이 홀로 개척을 하신 제2변 또한 판 안이다. 해방 후부터 상씨름 초반전인 남북 전쟁이 휴전 상태로 들어가는 그 때까지가 제2변 도운으로서 과도기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상제님께서 판밖에서 일이 된다고 하신 바, 남북전쟁이 나서 제2변 도운의 주인인 종도사님의 개척판이 흔들리고, 또 세월이 흐르면서 신도들도 늙고 병들어 끊임없이 이산되고 다 무너졌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후, 판 안 사람들이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이 지저귄다. ‘봉황이 지저귄다’는 것은 제3변 추수 도운, 다시 말해서 상제님의 천지 사업을 이루는 새 역사가 실제로 시작되는 출발점을 뜻한다. 그리고 상제님의 원 끝판인 제3변 도운의 마무리 과정에 용봉 도수가 붙어 가을 천지의 정음정양 도수가 인사로 제자리를 잡으면서 도성덕립이 되는 것이다. 판밖에서 일이 된다 판 안은 작게는 선천 문화를 말한다. 즉 아버지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내려 보내신 석가, 공자, 예수 등 선천 성자들의 종교, 문화를 뜻한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생각과 꿈, 삶의 목적, 그 모든 것이 판 안에 있다. 그리고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의 후천 선경 건설을 위해 우리 일꾼들이 몸담고 있는 제3변 도운 또한 상제님 진리의 완결본 『도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크게 보면 다 판 안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늘 “내 일은 판밖에서 된다. 내 일은 판밖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태모님도 항상 “내 새끼들 중에서는 안 되고 판밖에서 성도하여 들어오리라.”(道典 11:159:1)고 하셨다. 어느 날 고민환 성도가 “늘 그와 같이 말씀하시는데 오늘은 왜 판밖에서 성도하여 들어오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태모님이 아무 대답도 않으시고 “흥!” 하신다. 그게 답이다. ‘가르쳐 주면 알겠냐? 가르쳐 준다고 믿겠냐? 받아들이겠냐? 너희들이 용납을 하겠냐?’ 이런 뜻이다. 판 안은 판밖을 전제로 한 역사 과정 신해(辛亥 : 道紀 41, 1911)년에 태모님이 정읍 대흥리에서 포정소를 열고 상제님의 도업을 창업하셨다. 그러나 차경석 성도의 배신으로 대흥리를 떠나 조종골로 가셔서 11년을 계셨다. 그리고 상씨름판 도운을 열어 주시기 위해 조종골을 나와 정읍의 안씨 집성촌인 왕심리로 가셔서 2년을 사셨다. 그 후 미륵 신앙의 본거지인 금산사 아래 김제 용화동에서 2년 가까이 지내시다가 오성산으로 들어가셨다. 해방 후, 제2변을 개척하신 종도사님도 용화동에서 기두하셨다. 이처럼 도운이 1변도, 2변도 전부 전라도 중심이었다. 그러나 제3변 도운은 상제님의 공사에 따라 전라도를 떠나 새 역사의 중심지, 상제님의 오만 년 조화 낙원의 성도인 충청도 태전으로 들어왔다. 임인년 4월 4일, 상제님이 원평 장터에서 김형렬 성도를 만나셨을 때, “내가 지금은 충청도에 볼일이 있어서 가야 된다.”(道典 3:8:13)고 하신다. 이미 충청도를 상제님 천지 사업의 중심지로, 오만 년 역사를 여는 진리의 성도, 거룩한 도읍지로 못을 박아놓고 공사를 보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판 안은 판밖을 전제로 한, 즉 전라도 판은 충청도 판을 전제로 한 난법 도운의 역사 과정이었던 것이다. 진정한 판밖, 진주가 계시는 곳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태모님은 “상씨름판에는 콩밭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 “앞으로 태전이 서울이 되느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주聖主와 현인군자賢人君子를 모셔 오는 공사(道典 11:121:9)와 사진주四眞主 공사(道典 11:251:2)를 보시면서 ‘성주’, ‘진주’라는 표현을 쓰셨다. 태모님의 이 말씀을 중심으로 상제님의 공사 내용을 들여다 볼 때 진정한 판밖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 해답이 6편 74장에 나온다. 자, 다함께 보자. 상제님께서 평소 성도들과 노실 적에 종종 ‘가구(假九) 진주(眞主)치기 노름’을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다 터라.” 하시고 투전을 들고 탁 치시며 “○씨가 판을 쳤다!” 하시고 다 거두어들이시며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다 죽는다. 잘못하다가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니라. 알겠느냐? 도로 본자리에 떨어진단 말이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 봉사 잔치란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누가 가르쳐 주랴. 제가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끝판에 ○씨가 있는 줄 몰랐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끝판에 ○씨가 나오니 그만이로구나. 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라.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하시니라. (道典 6:74:1∼7) 2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투전을 들고 탁 치시며 “○씨가 판을 쳤다!” 하시고, 6절에서는 “끝판에 ○씨가 있는 줄 몰랐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끝판에 ○씨가 나오니 그만이로구나.”고 하신다. 바로 상제님의 천지 대업을 완성하는 주인공, 진주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 “상씨름판에는 콩밭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고 하신 태모님 말씀을, “내성아 너는 내 도의 아내요, 나는 너의 남편이니라.”는 76장 말씀과 연계해서 들여다보면, 상씨름판에서 상제님 천지 역사役事에 생명의 젖, 진리의 젖, 깨달음의 젖, 성령의 불기둥을 내려주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나온다는 말씀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이 안내성安乃成 성도다. 이에 내 자에 이룰 성 자, 내성은 상씨름판에서 하나님의 천지 역사를 완성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연관된 공사가 바로 『도전』 5편 341장에 나오는 천지의 일등일꾼[一等方文] 출세 공사다. 그 공사를 보실 때 상제님은 “내성아 내 몸을 묶고 세게 내리쳐라.” 하시고 “담뱃대를 들고 나를 향해 총 쏘는 흉내를 내며 꼭 죽인다는 마음으로 ‘탕탕’ 소리를 내라.” 고 하셨다. 이것이 이등방문을 뿌리 뽑는 공사로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시어 이 세상 각 분야에서 잘났다고 하는 인물들, ‘내가 세상을 건진다. 내가 이 세상의 영웅이다, 내가 이 세상을 다 도둑질해 보겠다’며 머리를 굴리는 세속의 작은 영웅들의 운수를 뿌리 뽑아 버리신 것이다.
진리의 주인을 만나야 또 상제님은 6절에서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하시고, “현하대세가 가구(<\f>N?판 노름과 같으니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는다.”(道典 5:357:4)고 하셨다. 선천 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나름대로 자기들이 높은 끗수를 잡았다고, 자기가 마지막 패를 들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승리하는 주인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패를 다 돌리고 나서도 한 사람이 남는다면, 바로 그 사람이 먹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해 상제님은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는다.”고 하셨다. 그 주제가 74장 1절의 ‘가구 진주치기 노름’이다. 가구는 거짓 끗수, 열매 맺지 못하는 끗수, 성공을 못 하는 끗수를 말한다. 그리고 원 진주가 있다, 진주, 참 주인이! 태상사부님께서도 제1변 도운 보천교에 몸을 담으셨다. 바로 그것을 짚어주시기 위해 태모님이 도통하시자마자 일어나셔서 당신의 이종 동생인 차경석 성도에게 “경석아, 나는 낙종(落種) 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移種) 물을 맡으라. 추수秋收할 사람은 다시 있느니라.”(道典 11:19:10)고 하신 것이다. 그 추수할 사람이 바로 도운의 생장 과정을 끝내고 마무리를 하는 주인공,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원 판밖의 그 인물이다. 그리하여 상제님은 추수 진리의 주인공에 의해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소식을 꼭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72장에 있는 “바둑도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 ‘남모르는 공부’를 하고 기다리라.”(道典 6:72:1)는 말씀이다. 남모르는 공부가 바로 진리의 주인을 만나는 공부다. 그 주인을 태모님께서 ‘진주眞主’, 또는 ‘성주聖主’라고 하신 것이다. 성주는 거룩한 주인이라는 뜻이다. 진리의 주인은 모든 것을 이루게 해 주는 새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성주다. 태모님은 또 성주를 모시고 천지 사업을 완전하게 이루는 주인공들을 현인군자라고 하셨다. 그리고 일꾼들에게는 “일만 이천 속에서 빠지지나 말라.”(道典 11:68:11)고 당부하셨다. 『도전』 완결본 발간 이후 ‘판 안’ ‘판밖’의 참 의미 첫째, ‘판 안’은 지난 백 년 도운사, 나아가 선천의 전 인류 역사가 다 판 안이다. 둘째, “봉황이 지저귄다.”는 말씀처럼 용봉 도수로 상제님 태모님의 대행자인 지도자가 나와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제3변 추수 도운 판을 개척하고, 그로부터 30년 만에 상제님 태모님의 천지공사 진리의 틀을 잡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도전』 완결본을 성편하였다. 『도전』 완결본 발간 이후 판 안에는 진리 중심 신앙 도수가 붙었다. 그리하여 이 판 안은 더 이상 과도기의 판 안이 아니라 ‘실제 상씨름꾼들이 모여들어 상제님의 꿈을 이루는 판의 중심으로서 판 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그 ‘판 안’은 “해 떨어지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간다.” 고 하신 말씀과 같이 해 떨어지는 시간을 역사의 분기점으로 하여 실제 상씨름꾼들이 들어오는 판을 말한다. 그 ‘판 안’이 바로 진정한 ‘판밖’인 것이다. 정리를 하면, 상씨름꾼이 상제님의 천지 사업을 완결 짓는 성공자, 인류 구원자로서 뛰는 역사의 출발점, 즉 『도전』 완결본이 나온 이후 판 안, 판밖은 내내 같은 판이다. 상제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 판! 어떤 이유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도장 살림이 내 살림이다.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과 같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내 말이요 내 신앙의 혼이다. 상씨름판은 내 일이다. 내 손길에 의해 상씨름판 역사가 완성된다.’는 확신을 가질 때, 그 말씀은 더 이상 상제님의 말씀이 아니고 상제님 도업을 이루는 주인공 일꾼의 생활 신앙 언어가 된다. 그 판은 그냥 오락가락하면서 취미 생활하듯 신앙을 하는 죽어 있는 판이 아니라 상제님 역사를 반드시 이루는 일꾼들 중심 판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 안, 판밖이다. 이것을 잘못 해석해서 판 안, 판밖을 함부로 만들거나 거짓을 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지 역사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천지에서 뿌리를 뽑는다. 상제님 말씀 그대로 천지신명이 다 뿌리를 뽑아 버린다.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상씨름꾼들이 모여드는 판몰이 도수 과정에서 『도전』 강독을 하면서 상제님 진리가 제대로 우리의 생활 속에 뿌리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꼭 상제님 판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을 낳아 길러서 성인으로 만들려면, 사회에 뭔가 뜻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건전한 인생으로 가꾸어 내놓으려면, 한 생애를 다 바쳐야 한다. 상제님 도판에서도 한 일꾼을, 진리의 눈을 틔워서 상제님 말씀을 그런대로 한 토막 전해 줄 수 있는 정도로 길러 내려면 수 백, 수 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토록 어렵게 상제님 진리를 만났건만 신앙도 제대로 안 하고, 사람 살리는 살릴 생 자 포교도 안 하는 사람은 궁극으로 가을 천지의 일꾼이 될 수가 없다. 우주의 법칙이 생장염장生長斂藏 아닌가! 봄에는 낳고 여름에는 기르고, 가을엔 거두어서 겨울에 쉰다. 지금은 천지에서 인간농사 지은 것을 추수하는 가을 개벽철이다. 하늘땅은 손발이 없다. 하늘땅의 대역자로서,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상제님의 도를 만나, 그 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천지의 사람농사 추수 사업에 주인공 노릇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일꾼의 사명이다. 이제 제3변 도운의 판밖 신앙 시대, 상씨름꾼을 길러 내는 상씨름 신앙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도 아직껏 의식이 판 안에 머물러 있다? 처음 입도할 때의 맹세는 다 잊어버리고 상제님 일을 취미 생활하듯 하면서, 일꾼 신앙은 뒷전이고 개인 신앙으로 난법 시대의 판 안 신앙을 계속하겠다? 이런 신앙 행태에 대해 상제님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라고 경계하신 것이다. 물론 6편 71장 이후 여러 말씀은 상제님 천지 사업을 완성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상제님 진리를 세상에 펴는 일꾼들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도통판을 열어야 상제님은 당신이 뜻하시는 본래의 판을 끝마무리 짓는 해결자, 완성자, 인류 역사를 상극 천지에서 가을철 상생의 조화 세계로 인도하는 참 구원자 판을 ‘끝판’이라 하시고, 다른 말로 ‘도통판’이라고 하셨다.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道典 6:74:7) 도통판이란 상제님 진리를 체험하는 진정한 일꾼판, 상씨름꾼의 도운 판을 말한다. 이제는 도통판을 열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신앙이 진리 중심으로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자녀들도 정말로 무섭게 진리 중심 신앙을 시켜야 한다. 내가 진리 중심으로 신앙을 하면 가족도 진리 공부를 한다. 그게 안 되면 다 헛바퀴 도는 것이다. ‘상제님 천지 사업이 내 삶의 중심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상제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렇게 될 때 진정한 진리 중심 신앙으로 간다. 가을 천지의 정의감으로 진리 중심의 무서운 신앙을 해야 이번 가을 개벽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진리 체험을 하기 위해서, 천지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도장에 나와 진리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도장 중심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도장이 우주의 중심이다. 가정의 운명도 도장에 매이는 것이다. 도장이 인간 역사의 큰 집이란 말이다. 인간 역사의 꿈이 도장에 있고, 이 세상 역사의 소망이 도장을 중심으로 열려 나간다. 때문에 도장 문을 드나들 때마다 새 역사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도장에 나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또한 진리 중심 신앙을 위해 태을주 읽고, 기도 하고, 아침저녁 청수 올리고 절하는 것을 꾸준히 생활화하라. 7일 도수, 21일 도수, 49일 도수, 100일 도수로 해서 청수 잘 올리고 정성껏 절을 하다 보면 신앙 양심, 신앙 의지가 크게 트인다. 그리고 매우 성스러워진다. 그러면서 『도전』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자꾸 읽고 싶어진다. 그런 심법을 바탕으로 칠성 도수가 열려 살릴 생 자 포교도 제대로 되는 것이다. 천하를 건져내는 진짜 신앙은 이제부터다. 우리 모두 상제님 천지 사업을 마무리 짓는 일꾼으로서 『도전』 공부를 통해 상제님 진리의 맥을 체계적으로 잡고, 진리를 체험한 상씨름꾼 신앙으로 성성하게 깨어져서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자. 그리하여 상제님 진리로써 천지 대세를 돌려 보자.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7.0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