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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문화의 원류 원문보기 글쓴이: 솔롱고
다른 시각으로 살펴 본 반야사상
금강반야경과 마하반야경
금강은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가장 강한 보석으로 여타 광물질들을 자르는데 쓰이고 여성들의 액세서리
로 인기가 높다.
금강경의 프로필을 약간 살펴 보자.
아래 인용은 김동화박사의 [선종사상사] 58 면에 있는 글이다.
" 이 경은 대승사상의 초입문적인 사상을 전하는 경이므로 그 성립도 제대승경중 제일기 소산으로서
이 경의 일대총서라고 할만한 것이 唐初 현장(서기600~664) 이 번역한 600권 본이다.
제반야경중에서 最古층에 속하는 팔천송의 소품반야 와 이만오천송 의 대품반야 이다.
그 다음 금강반야바라밀다 도 고층에 속한다.
600권본은 4회 16분 으로 성립되어 있는바 소품경은 제4분 (555권~558권) 에 대품경은 제이분
(401권~478권)
금강경은 제6분에 해당한다.
무릇 대소승 경 중에 최대의 경이 대반야경이다.
그러나 그 사상의 내용은 극히 간단하다.
최소의 반야인 심경에도 그 전사상이 유감없이 표현될수 있는 사상이다.
그 주 되는 사상은 <諸法皆空> 을 설 하는데 있다."
대소승 경중에 최대의 경 이라 하는 대반야경을 축약 한 것이 아침 저녁 예불때 신장단을 향해 외우는
반야심경이다 .
반야심경은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외운다.
색즉시공 = 색이 곧 공이다.
색은 빛색으로 물질은 빛으로 되어 있기에 색이라고 하는데 이것 이 공 이라는 것이다.
공즉시색= 공이 곧 색이다.
이제는 역으로 공이 곧 색(물질)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야심경의 공은 아인시타인의 에네르기불변의 법칙에 나오는 우주공간이 된다.
아인시타인은 공간이 응축하여 소립자로 태어 난다고 하였다.
이는 또 무가 유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노자 (이이 =이담= 노담 *담은 큰귀담자 임 ) 의 無者有之母
와 같은 사상이다.
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이 반야심경의 원제목인데 마하반야 는 큰지혜라는 말이다.
현장이 번역한 대품반야와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반야가 완전동일 한 내용인지는 필자 자신이 천학
인지라 대품반야 600권을 만나 본 적이 없으므로 그 에 대해 말 할 수 없으나 위의 김동화 박사가
대품반야 600권을 축약 한게 반야심경이라 했으니 일단 그 말을 믿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 새벽 마다 읽은 금강경 이 쉬운 번역 임에도 그 뜻은 알 수 없는 아주 해괴한? (불가사의 한
넌센스) 소리인데 비해 조석예불 때 신장단을 향해 외운 반야심경은 번역도 쉽고 그 전달 하고자 하는
뜻도 이해하기 쉽다.
공죽시색이요 색즉시공 이며 受 想行識 도 역부여시 이다 라고 하니,
역부여시라는 말을 번역하면 - 또한 다시 이와 같다 - 이다.
수는 받음으로 받음에는 苦 /樂 / 不苦不樂 이 있다.
상은 생각이다. 수를 받은후 의식이 이를 인지 하는 것이다.
행은 의식이 수를 인지 한 후 그에 따라 愛 /憎 /不愛不憎 을 느끼는것 이다.
식은 육식으로 안이비설신의 가 작용하는 것이니 눈귀코 혀 몸 정신이 각각 색(물질) 성(소리) 향(냄새)
미 (맛 ) 촉(촉감) 법(사물의 이치) 를 아는 것이다.
색수상행식을 오온이라고 하니, 오온이란 다섯가지 쓰레기 로 이루어진 쓰레기더미 라는 뜻이다.
반야심경은 오온이 그 근본은 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은 반야심경 전문 번역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원문생략)
큰반야로 저 언덕에 도달하는 마음의 경.
관자재보살께서 깊은 반야 바라밀을 행하실때 오온이 공한것을 비추어 보시고 모든 고액을 건느셨다.
사리자야 ! 색이 공과 다르지 아니하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아니하여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라.
수상 행식도 또 한 이와 같느니라.
사리자야 !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요 깨끗함도 아니니라.
더하는 것도 아니요 덜하는 것도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공 가운데에는 색도 없으며, 수상행식 도 없으며, 안이비설신의도 없으며,
색 성 향미촉법도 없으며 眼界도 없으며 내지 意識界도 없느니라.
1- 무명도 없으며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내지 늙고 죽음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느니라.
2- 苦/ 集/ 滅 / 道/도 없으며 智도 없으며 또한 얻는 것도 없느니라.
얻는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들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며, 그 때문에 마음에 걸림 이 없으며,
마음에 걸림이 없는 까닭에 공포심이 없으며, 거꾸로 된 몽상을 멀리 여의어 마침내 열반에 이르며,
삼세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는 까닭에 아누다라 삼약삼보리를 얻느니라.
고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 는 크게 신령스러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위 없는 주문이며,
짝이 없는 주문이니라. 능히 일체고액 을 제하며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느니라.
고로 반야바라밀다주를 설 하노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최남석이 보는 다른 시각
1> 반야사상은 소승유교를 변증법으로 도와주는 소승유교와 같은 사상인가?
번역문 1- 은 12연기 이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필라가 고향인 고타마 북방 서가모니의 성도의 주내용이다.
그런데 이것 이 없는 것이다 라고 반야심경은 말하고 있다.
번역문 2- 는 역시 중앙아시아 북방 고타마 서가모니의 소승유교 의 전반적 수도 내용이다.
고는 생노병사, 그리고 사랑은 헤어지는 고통, 원수는 만나는 고통, 구하는 것은 얻지 못하는 고통,
오음 (오온번뇌)가 자꾸 치성하는 고통,
집은 고통의 원인이 십이연기가 모인 것 이라는 것.
멸은 고통이 없어진 상태.
도는 멸을 얻는데 필요한 수단인 팔정도.
이를 사성제 라고 하는데 반야심경은 이것이 없는 것 이라 말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카필라의 서가모니를 고타마로,, 지나 남방 운남성의 서가모니를 싯다르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여 수정 했습니다. 수정한 이유는 별도의 글로 밝히 겠습니다.*
페르시아 의 허무주의 인 반야심경
반야심경은 또 이렇게 말한다.
- 지혜도 없는 것이며, 얻는것도 없는 것이다.
얻는것이 없기에 보리살타가 열반에 이르며, 삼세 모든 부처님도 위없는 최고의 바른지헤를 얻는다 -
반야의 이런사상은 지나선종의 초조 보리달마 의 주된 사상인데,
보리달마는 안식국(향지국) 의 왕자 이고, 안식은 안식향을 말하며, 안식향은 귀한 서리(貴霜) 라는
이명이 있으며, 귀상이라는 왕조가 쿠샨 왕조이다.
위치는 지금의 키르키지스탄지역 인데, 우랄 알타이의 조선 천독이 북천축으로 원천축이며,
키르키지스탄 의 향지국이 남천축이다.
이들이 차마고도로 내려가 운남성에 자리 잡으니 그곳이 후기 중천축 이고, 지금의 인디아가 서천축
이고 태국이 동천축이다.
키르키지 스탄의 의 보리달마는 원페르시아 (신강성 북쪽 지역의 소국) 의 니히리즘 (낙양가람기 참조)
을 배운 사람이다.
그리고 니히리즘은 태호복희의 離中虛 사상이고, 離는 팔괘에서 불(火) 에 해당하는 괘이다.
조석예불 때 마다 신장단을 향해 외우는 반야심겸은 신장님 과 무슨 관계에 있으며, 또 구마라집이
임금의 명을 받아서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 과 사상적으로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를 밝혀 보려는게
이 글의 목적이다.
주지 히듯 고타마의 소승유교 를 단제불교 (소도교)의 땅에 수입하여 불교라고 호칭 한 후 서기 5
세기 쯤에 반야(공)사상이 불교 속에 들어오게 된다.
오늘 날 불교계에서 공사상은 소승사상과 함께 불교의 전유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져
보면 소승유교 당시에 공사상은 소승유교 의 입장에서 이단시 되었으며,
불교가 아닌 유생들도 공사상에 매료 되어 공을 담논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소승유교와 직접 관련 없이 중앙아시아 에서 부터 지나 까지 지성인들의 철학사조가
공사상이라는 말이다.
달마가 서기 478년에 월남 을 경유하여 강남 (양자강의 남쪽) 에 자리잡은 남송을 지나 하남성 까지
올라 와 양나라 무제와 만나서 문답을 나눌 때 특유 의 무사상을 양무제에게 보여 주었으나,
양무제가 알아 듣지 못하고 오히려 격노하자 달마는 탄식하며 황하를 건너 위 나라 숭산의 소림굴
에 칩거 하였다.
그 모습을 그린 벽화가 달마대사가 한개의 갈대 를 타고 도강하는 그림 인데 웬만한 사찰의 벽화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그림이다.
양무제 가 무지 히여 달마의 無 를 못 알아본 것이 아니라, 무사상을 달마가 제일 먼저 가지고 지나로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 만큼 반야 공사상 이 소도교 와 고타마의 소승유교 입장에서는 아주 이질적이고 파괴적이고
과격한 것이였다.
달마가 지나 선종의 초조라는 것도 조계종에서 떠드는 소리이지 지나땅에는 달마보다 몆천년 앞서
호흡선을 수행하는 선도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반야심경 과 금강경 그리고 달마대사 어록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엄연히 존재 하는 것을 없는
거라고 우기는 無 이다.
필자는 이 셋을 과거의 소도교(단제불교) 와 북방 고타마 서가모니 로 부터 시작하여 역사적 발전을
한 소승有교를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세력들의 음모로 보고 있지만,
그 전에는 무사상이 소승유교 와 물과 우유 처럼 잘 화합되는 것 인 줄 알고 있었다.
심경이나 금강경에서 조목조목 소승유교 의 모든 사항들을 들어 "" 없는것이요 """ 아닌것이요 ""'
라고 할 때 그 것은 변증법 이라는 기교를 써서 북방고타마의 사상을 밝혀 주는 것으로 착각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사상의 선종이 들어 온 후에 소도교 단제불교가 불교에서 인멸되고, 북방고타마의 소승
유교 가 지나 와 한국 땅의 불교계에서 그 흔적도 보이지 않는 오늘날 에 생각을 해보니,
달마선종은 전통불교의 킬러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 하면 소도불교 (단제불교)의 선수행자와 지금의 무사상 선 수행자들을 비교 해 보면 과거의
소도불교 선수행자 와 소승유교의 선수행자 들은 인간의 몸으로 신통력을 소유 하여 신비한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반면, 오늘 날 무사상 이나 화두선 수행자들은 기괴한 언행으로 사람들의 이목
을 끌 뿐 신통력도 없을 뿐 만 아니라 번뇌 에 끄달리는 것이 범부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
이다.
달마 대사는 황하를 갈대 한개를 타고 건넜고, 죽어서 장사 지냈는데 부활하여 파미르에서 송운이라
는 위 나라 대신과 조우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전등록의 이 부분은 달마에 관한 다른 문헌 보다 후대에 기술되었고 새로운 사실들이 첨가된 것이
므로 사실여부에 의심이 드는 부분임)
달마대사의 이런 초능력 이 없었다면 과연 달마대사가 양무제에게 무제가 평생 절을 짓고 승려들을
길러 온 공덕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양무제를 격노하게 한 그의 무사상이 그 당시에 세인에게 통 할
수 있었을까?
전등록 권 3을 보면
양나라 보통 8년 丁未歲 9월 21일 달마가 남해에 이르니 광주 자사 소앙구가 영접하여 무제에게
표문을 올리니 무제가 달마를 10월 1일 金陵에서 만났다.
무제가 달마에게 묻기를 - 짐이 등극 한 이래 조사/ 사경/ 도승한 것을 다 기록 할 수 없이 많이 했는데
어떤 공덕 이 있오?
달마가 답 하였다. - 모두 공덕이 없읍니다.
무제 왈 - 어찌하여 공덕 이 없오
달마 왈 - 이는 다만 사람과 하늘의 작은 과보인 有漏의 因 이니,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 처럼
비록 있다고 하나 實이 아닙니다.
무제왈- 어던 것이 진공덕 입니까?
달마왈- 깨끗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하여 체가 스스로 空寂 한 것이니, 이러한 공덕은 세속에서
구하지 못 합니다.
김동화 저 [선종사상사] 84면
허무주의가 보는 죄인식
다음은 달마로 부터 법을 받아 2조가 된 혜가의 무사상을 살펴보자.
보림전 권 8 승찬의 비문 을 보면,
先師(승찬) 가 可公(혜가) 에게 참회를 청 하니,
可公이 왈 - 너의 죄를 가져와라 내가 참회시켜 주겠다.
선사 왈 -죄를 찾이도 찾지 못했습니다.
가공 왈- 너의 죄를 참회 하였느니라.
김동화 [선종사상사] 98면
이 대화의 의미는무엇인가 ?
죄는 自性 (실체) 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무자성 사상은 오늘날 천수경에도 들어가 있어서
법당에서 매일 같이 외우고 있다.
그러나 전통불교의 기복신앙에서는 가피(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죄를 참회 해야 하고 참회의 방법으
로는 이참 과 사참이 있는데 이참은 죄의 진상을 잘 아는 것이고, 사참은 그에 해당하는 보상 행동을
하라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살생을 했으면 내가 누구를 언제 어디서 죽였는지 확실 하게 알고, 그 죄를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참회 하는 것이 이참이요. 사참은 살생과 반대되는 방생을 힘써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신불의 가피를 받아 소원을 이룬다 하니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
이지 혜가 와 승찬 같은 죄의식이 세상에 만연하게 되면 그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러한 니히리즘이 히틀러 나 무솔리니 에게 영향을 주어 19세기 정치허무주의가 만연하면서 파시즘
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천수경의 참회계를 번역히면,
죄는 자성이 없어서 마음을 따라 일어나니, 마음이 멸 하는때 죄또한 없어진다.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 양쪽이 모두 공하면, 이를 이름하여 진참회라고 한다.
최남석의 비평
마음이 멸한다고 하는 것은 한 생각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호흡선의 중요단계이다.
그러나 그상태가 도의 최종목표는 아니다.
마음이 멸 하면 죄 도 없어 진다면 죄를 짓고 나서 무념만 수행하면 참회가 된다는 것이니,
이는 죄를 짓고도 하나님에게 성금 내고 기도하면 된다는 아주 반사회적인 사상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상의 고찰 로 반야심경과 달마는 엄연 한 有 를 無라고 우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에 따르느 폐단도 알개 되었다.
다음은 금강반야 바라밀경 과 혜가의 어록에서 소승유교 가 숭배하고 있는 부천님 과 성인들을 어떻
게 무시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
허무주의가보는 종교적 신앙대상 (원문생략 하고 번역은 최남석이 했음)
어떤 사람이 혜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성인 이 됩니까?
답- 모든 범부 와 성인은 모두 망상계교(헛된 생각으로 추측하는것) 가 만들어 낸 것이다.
또 묻기를 - 모두 망상이면 무엇때문에 도를 닦습니까?
답- 도가 무슨 물건이기에 닦는다 하는가? 법에는 고하의 상이 없으며 거래의 상이 없느니라!
김동화 [ 선종사상사] 96 면
다음은 금강경 에 나오는 여래의 보신불을 부정하는 글이다.
수보리야 네 뜻은 어떠한가?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보는것 이 옳은가?
수보리 말하되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하시되 - 수보리야 만약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진댄 전륜성왕도 여래 이겠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대-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 하신 말씀을 이해 하기로는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겠습니다.
이때에 세존이 게송으로 말씀하시다.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거나 소리로써 나를 구 한다면, 이사람은 삿된 길을 걷는 것 이니 능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
금강반야바라밀경 법신비상분 제 26
최남석의 비평
삼십이상 팔십수형호는 많은 생을 육바라밀을 수행하여 그 과보로 받은 몸이다.
아주 훌륭한 관상인데, 이 관상을 가지고 태어나면 전세계를 덕으로 다스릴 수 있고 도를 닦으면
부천이 된다. 수없는 생에 육바라밀을 닦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런걸 떠나서 마음이 부처이다 해서 마음을 부처로 본다면, 부처 아닌 사람이 어디 있곘는가?
이런 사상들은 단제불교와 소승유교의 유명한 도승들의 권위를 붕괴시키고, 원페르시아의 니히리즘
으로 세상을 파탄에 빠트리려는 악마들의 의도이다.
소리로 부처를 구하면 삿 된 길을 가는 사람이라 했다.
그런데 오늘 날 한국불교가 전통불교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기도 법을 보라!
오대산 적멸보궁에서는 서가모니를 소리소리 외치며 찾고 있고, 전국 사찰에서 관세음보살과 지장
보살을 소리소리 외치며 기적을 보여주시라고 기도 하고 있다.
----------- <필자 역시 이런 방법으로 백일기도 를 올리는 중입니다>
세상은 그 근본이 공이므로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고 모든 개념에 속지 말라는 반야교가 소원
성취를 위해 주술을 하며, 고성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창념하는 주술기복 불교를 어떻게 생각 할지는
그 들에게 안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실지로 현금의 조계종 승려들 중 일부는 기복불교의식을 배우지도 않을 뿐더러 기복불교는 불교가
아니라고 까지 하고 있다.
달마대사가 시종일관 내세운 것은 無를 藥으로 사용하여 얻어지는 安心 인데,
안심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이 안심은 안식국의 안식향 (쿠샨) 의 약리적 효능인데 안식 이라는 말과 안심이라는 말은 같은 말
이다.
우리가 잘못 배운 소승과 대승의 개념에서 반야사상은 대승에 들어 있다.
반야 뿐 만 아니라 화엄도 대승에 들어있다.
주술(전쟁을 하는 호국불교)도 대승에 들어 있다.
이렇게 소승유교 와 관계없는 불교는 모두 대승불교 에 들어 있다.
무엇을 들어 우리가 잘못 배웠다고 하는가 ?
우리는 반야대승 사상이 소승유교 와 연결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병아리가 소승이고 병아리 가 커서 대승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소년이 커서 어른이 되면 술 담배 하고 기집질도 하드시 소승이 역사적 발전을 하면서 엄격한 계율을
조금 부드럽게 하여 세속과 교류하는 것이 대승이라고 잘못 배웠다.
동대 불교학 교수들은 상좌부는 돈을 가지지 않는 계율을 계속 고수 하여 소승불교로 동남아로 들어
갔고 대중부는 금전 계를 어기어 상좌부에서 축출되어 히말라야로 올라가 신장성을 통과하여 중국
북부의 대승불교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도 이 설에 오래도록 속아 살았다
그러나 이제 다시 말한다
몸속의 불을 다스려 佺人(수퍼맨) 이 되는 유라시아 의 소도교는 환인 환웅 단제 새부루(서가불) 들의
父天敎 이다.
몸속의 불을 다스리는 그 기술로 마음속 탐진치 의 불을 지혜의 불로 바꾸는 가르침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필라의 왕자 고타마서가모니 것이고 이 가르침이 소승有교 이다.
장작불을 섬기다가 불속에 들어 있는 空 (이중허)을 발견하고 니히리즘에 빠진 원페르시아 (신강성
북부지역으로 태호복희의 활동지역임) 의 조로아스터교 와 그 조로아스터교를 배운 보리달마의 허무
(공) 사상이 고타마의 소승有교 속으로 들어 와 대승반야사상으로 이름된다.
필자도 고독한 세월 을 장작불을 보면서 버텨왔다. 지금은 물난리에 없어진 집이지만 필자가 설계한
집은 자연순환 방식으로 폐수를 완전 정화 하며 장작불의 재 와 인분을 유기농 비료로 하는 완벽 한
생태순환기능 을 가진 집이다.
이런 집에 살면서 침대 에 앉아 장작불로 불장난 하며 불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그 불빛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 해지고 세속 잡사에 초연해졌었다.
달마가 가져 온 사상도 그런 것 임을 장문이 되더라도 글 로써 밝혀 보고자 한다.
그리고 불이 타면서 물이 나오 듯 배화교에서 기독교( 오행으로 기독교는 물에 해당함) 가 나온 것도
아울러 밝혀 볼 것이다.
선행을 부정하는 금강경
전장에서 금강경이 여래의 보신불 을 무시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하였다.
보신은 법신 보신 화신 인 삼신사상의 하나이다.
보신은 과보의 몸이라는 뜻으로 여래의 외모에는 관상학에서 말하는 서른 두가지 모양이 있고 여든
가지의 장점이 몸에서 발견되는데, 이러한 관상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를 덕으로 다스리고 도를 배우
면 부천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런 관상이 저절로 그렇게 된게 아니라 수 많은 생을 거듭하면서 보시 바라밀 등 육바라밀을
실행하여 그 과보로 받아난 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금색으로 빛나는 피부는 인욕을 한 결과이고, 긴 팔은 중생을 위해 일을 많이 한 결과이며,
애니 사슴의 궁댕이 같이 원만한 부처님 히프는 중생에게 업무의 지식을 잘 교수 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을 실생활에서 사실여부를 검증해 보았다.
히프가 처진 사람들 은 남녀 공히 자기의 지식을 남에게 전해주는 능력이 없거나 아예 전해줄 생각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인데 비하여 히프가 동그라니 예쁜 사람들은 센스 있고 남을 가르치는 기술이 좋
으며 적극적으로 남을 가르친다는 것을 발견 하였다.
부처님께 귀의 하는 것을 귀의불 양족존이라 한다 양족이란 두가지 가 만족 하다는 말이며,
부처님의 두 발은 복과 지혜를 상징하므로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는 것이 절하는 방식인 것이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복은 수 많응 생을 통하여 기부 (물질적 보시) 를 많이 하신 결과 라 한다.
그런데 금강경에서 이를 부정하고 있다.
원문생략 하고 번역해 보자
수보리 야 네 뜻에 어떠하냐 ?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보시에 사용하면
이사람은 이러한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이러한 인연으로 얻는 복이 심히 많을 것 입니다
수보리야! 복덕이 실지로 있다면 여래는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 복덕이 없기에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하느니라.
금강경 법계통화분 제 19
히피즘의 원류가 된 보리달마의 사상
금강경의 이런 글 들이 사람들에게 무슨 효과를 가져다 주는가?
유와 무의 경계를 헐어 버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개념에 구속되는 것과 집착에서 오는 스트레쓰를 해소
해 준다.
금강경을 보고 이런 변화를 얻는다면 그 사람 또한 수준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필자는 다시 말한다 속박에서 해탈을 얻으라고!
금강경 과 반야심경 의 이런 사상 때문에 무소유 와 무집착을 실행하는 수선납자 들이 사람이면 응당
해야 하는 경제 행위를 하지 않고 재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누더기를 입으며 스스로 거지를 자처
한다. 무집착을 한 답시고 부모형제를 버리며 인간관계에 공을 들이지 않고 방랑생활로 살아간다.
- 30 여년 전 만해도 이런 류의 승려 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보기 힘듭니다.
필자 도 그런 식으로 살은 사람 입니다 -
원페르시아 의 허무주의는 서양에서 유발승 인 히피를 만들어 냈지만,
동양에서도 역시 히피를 만들어 냈으니 바로 거지행색의 수선납자 들이 바로 그 들이다.
서양의 철학도 중에 견유학파 가 그러 하였고, 그 중에 서 단연 독보적 인 존재가 예수이다.
동양에서 운남성의 싯다르타 와 원페르시아 의 보리달마가 허무사상의 큰 인물 이라면 서양에서는
예수가 허무사상의 큰 인물이다.
예수의 천국개념 은 운남성 의 싯다르타의 열반과 같으며 보리달마의 空寂 과 같은 것이다.
-글이 번거로울까바 예수의 천국 개념은 소개 하지 않습니다 -
전장에서 반야심경을 논했다. 거기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 지혜도 없으며 또한 얻는 것도 없다. 얻는것이 없는 까닧에 보리살타 가 반야바라밀을 의지하며
반야바라밀을 의지하는 까닭에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으며 전도몽상
을 머리 여의고 마침내 열반을 얻나니 "
최남석의 비평
지혜도 없다는 것은 소승유교 의 지혜를 없는 것이다 한 것이다.
얻는것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 에 의지 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이게 무슨 말이냐 ?
예를 들어 회사 정문을 지키는 수위가 들고 나는 회사 임원 들에게 열심히 거수경례 를 하지만 그
직책을 그만 두었다 하자 그러면 거수경례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식으로 허무주의 반야사상을 배운 사람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 ! 배고프고
옷이 거지 같아도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고 모든 것은 항상 공하고 항상 평등하므로 구하려 하지 말고
인연따라 살아라 ! 이런 말이다 이것이 히피즘이 아니고 무엇인가?
최남석의 비평이 믿어지지 않으면 보리 달마의 이입사행론을 인용하여 더 일아보자
보리달마의 이입사행론
<너무 많아서 인용생략하고 김동화 저 [선종사상사] 86~89면 참조 를 권하며 최남석이 간단하게
정리하면,
理入有四
1> 불보원행 - 원수를 갚지 않으며 원망하는 마음도 품지 아니 함.
2> 수연행 - 인연을 따라 살면서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3> 무소구행 - 구하는 것이 없이 살아라
4> 칭법행 _ 모든 모양들이 공한 것이므로 오염되지 말고 집착도 하지 말며 피차도 없이 살아라
行入有四
1> 안심 - 수심 하되 벽을 관하여 밗으로 모든 인연을 끊고 안으로 껄떡 대지 않아서 장벽과 같은
마음 을 닦는것
2> 발행 _ 理入을 실행하는것
3> 순물 - 순종을 보여 주어 주위의 비방과 의심을 막는것
4> 방편 - 자기를 항상 드러내어 허무주의를 포교 하는 것
위 행입유사에서 3번과 4번은 보리달마가 혜가 와 도육이라는 제자에게 내려준 지시사항으로
원페르시아의 허무주의 를 소승유교 의 터전위에 뿌리 내리기 위한 특별한 행동강령 이다.
이러한 지시사항을 혜가는 열심히 임무수행을 하였다.
동위 효정제 천평 원년 (양중대통원년 서기 534) 업도(하남성 영덕부)에서 기반을 잡았는데, 크게
세력을 떨쳤던 모양이다.
아래 인용은 혜가를 두고 한 말이다.
" 기변이 종횡하여 학자를 풍미하지 않음이 없었고 명상배들은 그의 설을 마설이라 하여 시비가
분분하고 비방이 격심하였다 "
김동화 저 <선종사상사 93면>
- 한국 땅에서는 조계종 고승 들이 이러한 기변을 수없이 해 대도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국의 불교는 여성으로 이루어진 맹신기복 불교라서 고승들의 이러한 언동 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_
고려의 열 여섯명 되는 국사 가 지금의 조계종 고승들 처럼 신통력이나 앞일을 멀리 내다보는 역술
이나 사회를 리드 하는 력량이 없는데 전쟁으로 바쁜 고려의 왕들이 국사로 모시며 "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 같은 空門의 空談에 빠져 살았다고 생각한다면,
그사람 자체가 비 현실적인 공상가 인 것이다.
소승유교 의 삼법인 사성제 와 금강경의 관계
1> 북방 고타마 서가모니의 소승유교 는 어떠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가?
ㄱ, 우리가 배운 삼법인은 불교의 대표적 사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행무상은 모든것이 덧 없다.
제법무아는 모든 것은 주체가 없다.
열반적정 은 열반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이것이 삼법인의 내용인데 모든 것이 덧 없다는 제행무상은 모든 것 들이 시시각각 변천되어 제모
습을 지키지 못하다가 결국은 소멸되는 것 이라는 말이니,
예를 들면 소년이 늙은이로 변하여 추해지다가 결국 백골이 된다는 얘기 이다.
모든 법은 주체가 없다는 제법무아는 모든사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까지도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여러
개의 존재로 이루어졌다는 내용이니, 예를 들면 사람의몸이나 여타 생명체의 몽은 수십조개의 세포와
각종 균들이 어우러져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여 생을 영위 한다는 것이다. 외계 의 자연환경도 곤충에서
시작하여 먹이 사슬의 최상층에 있는 사자 또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서로에계 절대적으로 필요
한 존재라는 것이다.
열반은 편안하고 고요하다 라는 열반 적정은 시시각각 변화하느라 고요하지 못한 무상과 수많은 관계가
얽혀서 야기 되는 갈등 그 자체인 무아가 열반 속에는 없다 라는 말이다.
ㄴ, 삼법인중에서 중요한 것은 열반적정이고 나머지는 불교가 아닌 일반적 지식이다.
인생이 무상하다라는 것은 범부인 우리도 아는 얘기이고, 제법무아는 물리학자 나 의학을 전공 하거나
생태학자들이 승려들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지식이다.
그러나 열반적정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제행무상이나 제법무아 같은 썰렁한
얘기가 불교의 중요철학인거 처럼 삼법인에 들어 있는 이유는 육사외도 들이 열반적정에 반하는 잡설
들을 유행시키고 돌아 다닌 관계로 열반의 의미를 다지기 위해 무상과 무아를 강조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방고타마서가모니 가 도를 닦아서 깨달은 내용은 열반적정 하나이고, 나머지는 그 당시
의 보편적 지식 인데 불교가 이를 받아 들여 이용 하였다 라는 뜻으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는 열반적정
을 얻기 위해 피땀을 흘려야 하는 이유에 불과하다 는 것이다.
ㄷ, 그러면 열반적정을 얻기 위해 고타마 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고집멸도 사성제를 논부 의 유명한
조사들이 어떻게 해설하고 허무주의 는 그것을 어떻게 무효화 시키고 있는지를 [대비파사론]과
금강경 <일상무상분 제 9 > 에서 알아보자.
*[대비파사론]의 이부분이 무척 방대 하므로 김동화 박사의 [선종사상사]를 기초로 필자가 주관적
으로 요약 정리 하였습니다.
제일은 방편도이니 방편이란 현도 (見道) 하는데 필요한 예비조치 이다.
방편에는 오정심 별상념주 그리고 총상념주 가 있다 이것을 다 닦으면 삼현 외범위라 칭한다.
* 용어해설은 너무 방대하므로 생략 합니다
그 다음 사선근을 닦으니 1,연선근 2, 정선근 3, 인선근 4, 세제일법 으로 이를 완수 하면 내범위라고
하는데 연선근 . 정선근에서16행상을 닦고 인선근에서 16행상을 감연감행하고 세제일법에서 4제
32행상을 일찰나 에 관하게 된다.
제이는 見道이니 현도라고 읽는다. 상대방이 나타내는 거는 現 이라고 쓰고 내가 나타내는 것은 見
인데 예를 들어 곤충이 보호색을 나타내는 것은 見으로 쓰고 현으로 읽는다.
자기 실력을 나타내는 것도 見으로 쓰는데 법학에서 表見대리라는 용어도 現자를 쓰지 않고 見을
쓰면서 표현이라고 읽는 이유도 같은 이치에서 그러한 것이다.
현도는 수행자가 자기 심중에서 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방편도 에서는 수행자가 도를 찾아 다니며 배웠지만 현도에서는 재차 사제를 광관 하는데 소현하게
드러나므로 현(見) 道 라고 한다.
이곳에서 忍 과 智 라는 二無漏心을 일으켜 88使의 見惑을 단멸 한다.
혹이란 迷惑 인데 이러한 미혹을 끊고 이치를 나타내는 證理를 얻는다.
見道에서는 고법지인과 고법지라는 두가지 능력으로 신견/ 변견/ 사견/ 계금취견/ 건취견 등 오리사를
斷 하고 탐/진/치/ 만/ 의/ 등 오둔사를 斷 한다.
그다음 그 능력을 색계와 무색계로 옮겨 고류지인 과 고류지 라는 두가지 정신능력으로 색계 와 무색계
의 오리사 오둔사를 斷 한다 이런 식으로 삼계에 존재하는 사성제의 見惑을 끊는데 모두 15가지의
정신능력으로 88使의 미혹을 斷 한다.
제삼은 修道이니 제2 현도가 수도의 프로그램을 사전에 완전 숙지 하는 거라면 수도에서는 실지로
수습하는 것이다.
欲계의 아홉가지 때를 탕척하고 色界의 四禪定에 남아있는 36가지 때를 , 그리고 무색계 사선정에
남아있는 36가지 때를 탕척하는데 필요한 능력은 無間道와 解脫道 라는 두가지 정신능력이고
이 능력으로 162心을 닦는 것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수다원향에서 見도의 前 15심
수다원과에서 見도의 第16심
사다함향에서 욕계修惑 상상품으로 부터 중중품까지 단한다
사다함과에서 욕계수혹 중하품을 단하고
아나함향에서 욕계수혹 하상품으로 부터 하중품을 단한다
아나함과에서 욕계수혹 하하품을 단한다
아라한향에서 색계 무색계의 수혹 下地九品 과 비상비비상처의 전 8품을 단하며
아라한과에서 비상비비상처의 제九 하하품을 단한다
이상 이 설일체유부의 소승사과 의 수행점차 이다.
금강경에는 다른 해석도 있는데 소개하면,
수다원은 입류이니 성인의 경지로 들어 온다는 뜻.
사다함은 일왕래 이니 천상에 한번 태어났다 가 인간계에 다시 온다는 뜻.
아나함은 불래 이니 다시는 인간계에 오지 않는다는 뜻.
아라한은 실무유법이니 실지로 법 있음이 없음 이라는뜻 이다.
최남석의 비평
고타마부처님 살아 계살 때 가섭 이나 아난 또는 목련 과 사리불 등이 모두 아라한 이다.
금강경 대로 라면 이들이 모두 허구가 된다.
수다원이 일 학년 이면 사다함 은 이 학년 이고 아나함은 삼학년 이고 아라한은 사학년인데,
삼학년 때 지구를 떠난 가섭 이나 아난 등이 어떻게 사학년인 아라한으로 지구에서 고타마 부처님의
제자로 살았을까?
위 설은 어불성설 이다.
ㄹ, 아라한에 대하여 최남석의 견해는 이러하다.
호흡선 에서 보면 아라한과는 無漏 인데 무루는 새는 것이 없다라는 뜻으로 눈 /귀/ 코 / 혀/ 몸/ 뜻
으로 새는 것이 없다 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번뇌가 나오지 않는다 라는 말인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양기(에너지) 가 새지 않는다 라는
뜻이다.
도를 닦지 않은 범부는 안이비설신의로 업을 지으면 바로 양기를 소비하게 되어 오염물질 (번뇌)이
나와 고통을 받지만, 아라한은 오염물질이 나오지 않으므로 양기를 간직하게 되어 영생을 누리는
법신이 되는 것이다.
소승사과의 최고 경지인 아라한의 멸진정을 [대비파사론 권 152]에서 정의하고 있는거를 보면,
" 멸진정은 무색계에 속하며 有頂地에 있으며 성자의 경지가 상속 되며 止息想을 作하며 受想을 멸하
고자 하며 무색계의 심과 심소를 멸하며 무색계의 이숙 (異熟= 다르게 변화하는것) 을 초래하며 후생
을 따르지만 이숙을 받지 않는다. "
위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금강경의 소승사과 와 상이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글을 최남석 이 해설 하면,
무색계= 정신물질로 이루어진 세계.
유정지 =비상비비상처정.
성자상속= 성자의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무색계의 心과 心所 를 멸= 무색계의 때를 청정하게 하는 것.
무색계의 이숙을 초래= 무색계에서 더 수승한 곳으로 과보를 받음.
후생을 따르지만 이숙을 받지 않음= 후생이 있지만 자기는 변화하지 않는다.
최남석의 비평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 함은 법신을 증득 한 것이며, 후생을 받는다 함은 법신으로 삼계 의 다양한
세계를 자유자재로 왕래 하는 것이다.
법신을 얻지 못한 범부의 후생은 업력에 구속 되어 나쁜 곳에(또는 좋은 곳에) 태어나는 변화가 있지만
아라한은 무색계의 이숙을 한번 받은 후 더 이상 이숙을 받지 않는다.
여기서 후생이 끊어 졌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의 변형이 남방 싯다르타의 멸업열반 이다 멸업열반 사상
은 나지 않아야 죽음도 없다는 사상으로 나는 원인을 짓지 않는다 하여 선업까지 포함하여 모든 업을
짓지 않음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세속을 떠날 수 밗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설일체유부]인 소승有교의 사상이 아니다.
소승유교의 사상은 욕계의 때를 정화해 그 업으로 색계에 태어나고 색계의 때를 정화해 무색계에 태어
나고 무색계의 때를 정화해 불계에 태어 나는 것으로 청정업을 계속 짓는 것이다.
이는 선업 과 악업이 모두 없고 오염과 청정이 모두 없다는 원페르시아 의 허무주의 와 다른 것이다.
금강반야 나 마하반야는 원페르시아에서 발상한 조로아스터교의 니히리즘 이고 불을 숭배한다는 점
에서 광의 의 불교 이지만 소승유교는 아니다.
왜냐 하면 이 둘의 사상은 고집멸도와 고집멸도의 수행단계인 소승사과를 모두 없는 것 (허상) 이라
고 하기 때문이다.
( 후일 에 가서 달마와 혜가를 이은 삼조 승찬은 신심명에서 유가 무이며 무가 유라고 변명 했지만
페르시아 의 니히리즘은 북방의 단제불교와 그를 이은 소승유교 그리고 이들 종교의 비호를 받고 있는
북방 천자들의 기세를 꺽기 위해 지나로 수입 된것이다.)
소승유교가 욕계에서 색계에 태어나려는 이유는 욕계는 제법무아 의 세계로 다른 개체와 분리 될 수
없기에 관계에 구속되는 부자유가 있고 부자유 때문에 하고자 하는 欲求가 있어 괴롭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색계는 신묘한 물질의 세계이므로 욕구가 필요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색계는 욕계로 타락 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시 무색계 를 지향하는 것이니 무색계는
물질의 재료인 정신물질(일체유심조)로 이루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색계 역시 색계로 타락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계인 열반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얻은 열반은 성불열반으로 니히리즘의 공적(허무)열반 과 다른 열반이며 남방 의 멸업열반과
도 다른 것이다.
2 > 소승사과는 허구라고 궤변하는 금강경.
그러면 원페르시아 에서 달마가 가져 온 니히리즘인 금강경 일상무상분 을 보자.
원문생략
수보리야! 니 생각은 어떠한가?
수다원이 이런생각을 하되 내가 수다원과를 얻었다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이유는 수다원은 입류(성자의무리에 들어옴) 라고 하지만 들어온 바 가 없음
이니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가지 않음을 수다원이라고 하나이다.
수보리야! 니 생각이 어떠하냐?
사다함이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다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이유는 사다함은 일왕래 라고 하지만 실지로는 왕래가 없으므로 일 왕래
라 하나이다
수보리야! 니 뜻에 어떠하냐?
아나함이 이렇게 생각하되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다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이냐 아나함은 불래라고 하지만 실로는 불래가 없음으로 이런 까닭으로
아나함이라고 하나이다.
수보리야! 니 뜻에 어떠하냐? 아라한 이 능히 이렇게 생각하되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이냐 하면 실로는 無有法을 아라한 이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라한 이런 생각을 지어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 된 것 입니다.
최남석의 비평
금강경에서 법 (만물과 사람) 있음이 없는것이 아라한 이라 하였고,
소승유교에서는 법신으로 영생하며 육신통을 가지고 시방세계에서 자유자재로 사는 것을 아라한이라
하였다.(아라한의 멸진정 참조)
이렇듯 금강경은 소승사과 를 소승유교 와 다르게 설명하면서 설상가상으로 소승사과가 허구라고
하였다.
때문에 금강경을 소의경전(중심사상)으로 하는 한국불교는 소승유교의 교리를 공부하지 않는다.
필자도 본사 승가대학에서 원문으로 토론식 교육을 6년 동안 했지만 소승교리를 만나보지 못하였고,
승려생활을 통해 인습 된 사상은 히피즘 과 기변 뿐 이였다
불교가 북방 과 남방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식민사관을 벗어나면서 알게 되었고, 지금은 환인
환웅 단제 새부루(서가불) 의 오리지날 불교인 주술밀교에 뜻을 두고 있다.
(최남석)
첫댓글 내가 쓴 글인데 나한테는 없는거 같아서 펌해 왔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또 다른 깨달음이 있군요 자꾸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