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마중 나선 3월도 어느새 막바지다. 삼월의 끝자락, 서울 도심 하천을 따라 떠나는 라이딩을 계획했다. 이번 여정의 키포인트는 옛 미아리텍사스촌의 스러진 흔적과 우리 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아리랑고개다. 출발지인 한양대 둔치 살곶이체육공원으로 향했다. 오늘 모인 인원은 전체 회원 여섯 중 단 셋, 저마다 사정이 겹쳐 빠진 친구들이 많았다. 람보림, 오벨로 부부는 방시혁 하이브 대표 부친의 기수(88세) 잔치 초대로 반얀트리호텔로 향했고, 아스트라전(인구)은 고향 합천의 벚꽃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길을 떠났다.
비록 오붓한 세 사람만의 출발이었지만, 마음만은 든든했다. 낮 기온은 9도에서 20도 사이.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청명한 하늘까지 더해지니 길을 나서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봄 향기를 코끝으로으로 맡으며 청계천으로 들어섰다. 세계에서도벤치마킹을 할 만큼 서울의 대표 명소가 된 청계천변에는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어우러져 활기가 넘쳤다. 고산자교를 지나자 내부순환로 아래로 정릉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산 계곡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11,9km의 정릉천은 대부분 복개되어 지금은 관로공사가 한창이다.
자전거길을 따라 회기로에 다다르니 홍를수목원과 세종대왕 기념관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얼마전까지는 월곡IC 이전에 자전거길이 끝나 차도로 우회해야 했지만, 최근 자전거길이 2km 가량 연장되어 훨씬 안락한 라이딩이 가능해졌다. 종암사거리를 지나며 미아리텍사스촌 옛 터를 지났다. 1950-60년대부터 형성되어 80년대에는 350여 곳에 달했던 성매매 집결지.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쇠락을 거듭하더니, 형성된지 70년 만에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는 신월곡 1구역 재개발 지구로 묶여 철거가 진행 중이며, 2026년 말이면 최고 45층 높이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가림막으로 둘ㄹ싸인 미아리 골목을 빙 돌며 길음역으로 향했다. 스머프차는 1959년 말부터 몇 년간 이 근처 길음동에 살았다. 학창시절에는 미아리극장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당시엔 이 텍사스촌의 존재조차 몰랐다가 1972년 수경사령부 소대장으로 부이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추억이 서려있던 미아리극장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정릉천 변은 도로 확장을 위해 복개되어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이 만감으로 교차하는 순간이다. 복개천을 따라가니 아리랑고개 입구교차로가 나온다.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서 주인공이 순사에게 잡혀가며 노래를 부르던 그 장소.
원래 '정릉고개'라 불리던 이곳은 영화 이후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리'는 크고 높은 것, '랑'은 고개를 뜻하니 그 자체로 삶의 험준한 고개를 의미한다. 오늘날 테마공원과 정보도서관이 들어선 이곳은 최근 BTS가 컴백 라이브에서 '아리랑'을 불러 전 셰계 190여 개국에 울림을 전했던 의미 깊은 성지가 되기도 했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페달을 밟아 넘어서자 성신여대입구역이 반긴다. 성북천으로 들어서 성북구청과 대광중고를 거쳐 다시 청계천으로 되돌아왔다.. 천변에는 매화와 산수유, 개나리가 화려한 봄의 색채를 수놓고 있었고, 버드나무는 갓 돋아난 연둣빛 물결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완연한, 참으로 아름다운 봄이다.출출해진 배를 움켜지고 마라톤킴의 안내로 낙원상가 '일미식당'으로 향했다. 유명 방송에도 소개되었던 이곳은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자랑한다. 깊고 구수한 해물된장찌개와 향긋하고 아삭한 더덕구이가 상에 올랐다. 땀 흘려 여행한 뒤 나눈 식사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미각과 시각이 모두 호사스러우니 행복이 다름 아닌 이것이다. 감사하게도 쉐도우수(김명수)가 솔선수범하여 식비를 모두 부담해 주었다.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 덕에 마음까지 한층 훈훈해졌다. 식사 후 마라톤킴(김경식)과 쉐도우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왕십리로,
스머프차는 종로3가역에서 전철을 타고 각자의 둥지로 향했다. 세 친구가 함께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따사로운 봄 정취를 만끽한, 참으로 오붓하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