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대개 장거리 울트라 레이스 훈련을 한다. 큰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연이어 들로 산으로 또 쉼없이 달린다.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도 커진다. 건강증진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내가 자주 찾는 그 호숫가에 1톤 트럭으로 만든 이동식 카페가 하나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그 카페로 가서 꼭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격한 운동을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기엔 '카페라떼'가 최고였다. 그런데 갈 때마다 내겐 그 카페 이름이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름이 뭔지 아는가? 바로 '時失里'다. 한자만 놓고 보면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또는 세월이 늦게 흐르는 동네'란 뜻이다. 마음에 들었다. 영어나 한글로 표기했더라면 감흥이 반감됐을 뻔했다.
지중해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 '이탈리아'. 그 나라 남서쪽에 있는 큰 섬도 이런 이름을 갖고 있다. 원래는 'CICILIA'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영어식 발음으로 더 많이 회자되면서 지명이 왕왕 'SICILY'로 불려지고 있다. 어쨌든 어감도 좋고 발음도 상큼해서 좋았다.
나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이동식 카페 쥔장에게 말을 걸었다. "커피의 맛도 좋지만 카페 이름이 너무 위트있고 좋아요. 제가 한자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한자로 표기하니 복합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여 좋고, 사장님의 기지와 넉넉함이 묻어납니다"
그랬더니 쥔장이 그랬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면서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행복감이 밀려들잖아요. 분주한 일상을 잊고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겠지요. 단 몇 분이라도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다. 그의 멘트도 멋졌다.
카페 쥔장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달리면서 혼자만의 사유를 이어갔다. '지친 영혼에 한 떨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동네'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늘 시간에 쫓기며 정신 없이 사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울림을 주는 작명이라고 생각했다.
조그만 송판에 음각으로 새겨진 그 이름 - 時失里. 주인의 센스가 빛나 보였다. 그래서 일까?
나만의 느낌인 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카페보다 커피의 맛이 더 진하고 구수한 것 같았다.
'시실리' 덕분에 그 호수 주변에서 훈련할 때마다 나는 더 깊은 행복과 감사가 넘쳤다.
작은 마음의 배려와 섬세한 무언의 울림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산소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깊은 산 속에서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늘 깨끗하게 흐르는 옹달샘처럼 말이다.
이동식 그 카페 사장님께 감사의 박수를 전하고 싶다. 사업도 더 잘 되고 돈도 많이 버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