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철학적인 이유
농부가 옥수수 고랑 사이로 한발자욱 옆 걸음으로 디디면서 잡풀과 옥수수 잔가지를 치고 있다.
묵직한 뜨거운 기운이 땅에서 올라와서 농부의 얼굴을 문지른다. 뒤통수는 초여름 여름햇살이 밀짚모자를 뚫고 따가울 정도이다.
농부는 오로지 게걸음으로 규칙적으로 옥수수밭을 점령해 간다. 이마에 흐르는 땀에도 농부는 무표정이다.
뒷산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다.
"뻐꾹 뻐꾹 뻐꾹"
그 소리도 무심히 흘려보낸다.
앞 개울 북동천 뚝으로 마을 사람이 큰 개 한마리를 끌고 간다. 잠시 후, 개의 단말마 비명 소리가 들린다.
"깨깽 깨깽 깨갱"
역겨운 개털 태우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간다. 그래도 농부는 무심하다. 벌써 초복이 되기도 전에 성급하고 못난 인간이 자신이 키우던 개를 보신탕으로 잡는 모양이다.
시골은 이렇다. 뻐꾸기 소리에 상념에 젖다가고 개 죽이는 살륙도 서슴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농부는 그런 양 극단 사이에서도 무심해야 한다. 어느 쪽에서도 감상에 빠지거나 분노를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무심히 농사짓는 농부는 철학적이다.
무심한 것이야말로 철학적이다. 우직한 것이야 말로 삶의 방법이다.
세상에 미련을 버려야 한다.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만의 삶을 고집해야 한다. 그래야 농부가 될 수 있다.
농사는 삶의 방법이자 철학이어야 한다.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인문학이고 살아가는 방법을 설명하는 경제학이다.
농사가 농업이 되는 순간, 농사에 있어서 모든 철학적 인문학적 경제적 가치가 사라졌다.
http://cafe.daum.net/gumjinhang|http://cfile268.uf.daum.net/image/99A6B23C5DC7A2022910C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