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별주부전(鼈主簿傳)과 장끼전이 수록된 책을 고서점에서 발견했는데, 그 가운데 두껍전과 서옹전도 들어있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들춰봤는데 꽤 재미가 있데요. 특히 ‘쥐전’ 또는 '서옹전(鼠翁傳)'으로도 알려진 ‘서동지전(鼠同知傳)’은 분량도 적지 않은 데다가, 우화에서 잘 나오지 않는 송사(訟事)를 다루고 있다는 게 특이했지요. 약삭빠르고 교활한 다람쥐가 자신을 도와준 쥐를 상대로 배은망덕하게도 송사를 건다는 스토리입니다. 이와 다소 닮은 이야기가 일본과 중국에도 있다지만, 이 순수 한글본과는 내용상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하네요.
때는 바야흐로 당 태종 이세민이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의 주인공 서대주는 일족을 거느리고 적국 창고로 잠입하여 군량미를 갉아먹어 당나라를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에 이세민은 그 공로로 큰 벼슬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자축하는 거창한 잔치가 이 우화의 서두를 장식합니다. 이 중 서대주의 사랑채를 묘사한 부분이 재미있어 올려 볼까 합니다. 여기에는 초당(初唐) 시절 요절한 천재 시인 왕발(王勃)의 불후의 명문이라는 등왕각(滕王閣)를 비롯하여, 시선(詩仙)이라는 별호가 따라다니는 이태백의 호방한 시들이 등장합니다.
큰 잔치가 열리는 사랑채
“사면의 벽을 살펴보니, 동쪽에는 당우(唐虞) 시절 허유(許由)가 요임금이 준다는 천하를 마다하고 영천수(潁川水)에 귀를 씻고, 소부(巢父)는 자기의 깨끗한 소를 귀 씻은 더러운 물 안 먹인다고 상류로 올라가는 형상을 그려져 있다. 서쪽 벽에는 황석공(黃石公)이 의자에 걸터앉아 장자방(張子房)이 두손으로 신을 들어 황석공의 맨발에 신기는 모양을 그렸고, 남쪽 벽에는 한종실(漢宗室) 유황숙(劉皇叔)이 제갈공명 보려 와룡강 남양초당(南陽草堂)을 풍설(風雪) 중에 찾아 삼분천하를 의논하는 삼고초려(三顧草廬)가 보인다. 북벽에는 풍채 좋은 두목지(杜牧之)가 일륜거(一輪車)에 높이 앉아 주사청루(酒肆靑樓) 지날 적에 노류장화(路柳墻花) 기녀들이 얼굴을 보려고 동정호 누른 귤을 다투어 던지면서 불러대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원앙지상(鴛鴦池上)에 쌍쌍비(雙雙飛)요 봉황루하(鳳凰樓下)에 쌍쌍도(雙雙渡)라. 화동(畫棟)에 조비남포운(朝飛南浦雲)이요, 주렴(珠簾)은 모권서산우(暮捲西山雨)1)라. 백년 삼만육천일에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盃)2)요, 청천일장지(靑天一張紙)가 사아복중시(寫我腹中詩)3)라. 이런 풍류 글씨가 전자팔분(篆字八分)4)으로 쓰여져 붙여있다.
註1) 초당(初唐) 천재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滕王閣) / 전반
滕王高閣臨江渚 등왕*이 세운 높은 누각 강가에 서 있는데
佩玉鳴鸞罷歌舞 옥소리 방울 소리 울리던 가무는 사라졌네.
畫棟朝飛南浦雲 아침에는 남포의 구름이 그림 기둥을 지나가고
珠簾暮捲西山雨 저녁엔 주렴을 말아 올려 서산에 내리는 비를 보노라.
*등왕(滕王) ; 당태종의 동생 이원영(李元嬰)
註2) 이태백의 양양가(襄陽歌) 일부
傍人借問笑何事 옆 사람이 무슨 일로 웃는가 물으니
笑殺山翁醉似泥 산에 사는 노인이 곤죽으로 취해 웃어 죽겠다네.
百年三萬六千日 백년 삼만육천일
一日須傾三百杯 하루에 모름지기 삼백 잔을 마신다나.
註3) 이백의 오로봉(五老峰*)
五老峰爲筆 三湘*作硯池 오로봉으로 붓을 만들고 삼상으로 벼룻물 삼아
靑天一張紙 寫我服中詩 푸른 하늘 한 장 큰 종이에 내 마음의 시를 쓰고파
*오로봉(五老峰) : 중국 여산(廬山)의 다섯 봉우리
*삼상(三湘) : 동정호(洞庭湖)로 흘러 들어가는 세 강물
註4) 예서(隸書) 2푼과 전서(篆書) 8푼을 섞어 만든 한자 서체. 한나라 채옹(蔡邕)의 창작
조선 후기 세도가나 부호들이 사랑채의 벽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기둥에는 어떤 글을 쓰고 꾸미고 살았는가(살고 싶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때까지도 중국 문화가 우리나라 상류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에 새삼 놀래지 않을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