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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장모 박덕남씨가 6·25 전쟁 당시 ‘여성동맹 진전면 위원장’으로 좌익활동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터넷 매체 ‘독립신문’은 22일 ‘1973년 대검공안부가 펴낸 ‘좌익사건실록’에 박씨의 좌익활동이 기록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독립신문은 좌익사건실록의 기록을 소개하며 "박씨는 1950년 9월 21일 창원군 진전면 대방부락에서 여성 동맹 진전면 위원장으로 피임(어떤 자리에 임명됨)되었고 죄상이 경미하고 개전의 정(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르게 고쳐 먹음)이 현저해 불기소 처분됐다고 적혀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그러나 한 대공 관계자는 (박씨가 불기소 된 사실상의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헌법은 온정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부부나 부자를 함께 구속시키지 않기 때문에 노 대통령 장모도 불기소 처분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경우 함께 구속시킨다”며 “이 얼마나 무서운 법이냐”라고 덧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독립신문은 “좌익사건실록은 박씨의 본적을 노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 씨와 같은 ‘창원군 진저면 오서리 628번지’로 기록하고 있어 동명 이인이 아닌 노 대통령의 장모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좌익사건실록을 살펴보면 당시 여성 동맹 소속회원들은 북한 관련 전쟁 정세 선전 및 시국 강연, 포스터 배포와 부착, 유치장 간수, 식사 제공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진전면 위원장이었던 박씨가 이런 활동을 지휘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권양숙 여사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우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좌익 활동으로 공격을 받은데 대한 심경을 털어 놓은 바 있다. 권 여사는 당시 “제 나이가 서너살 정도여서 기억 날리 만무하고 현재 팔순을 넘긴 어머님도 기억력이 흐릿해지셔서 정확히 여쭈어 볼 수도 없습니다.”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독립신문은 피살양민 유족대표 변재환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권여사의 발언을 간접적으로 반박했다. 변 박사는 독립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3년 권여사 친척을 통해 모친 박덕남씨가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만 불편할 뿐 기억력도 좋고 아주 정정한 편이라고 들었다”며 “노 대통령 장모 박씨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주변에서 치마만 두른 남자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독립신문은 변 박사가 “좌익사건실록에 박씨의 기록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고 스스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바랬기 때문에 함구하고 있었다”며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박씨는 죄를 고백하고 싶었겠지만 주변의권유로 말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내용을 전했다. 이어 변 박사는 “권 여사는 이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친 박씨가 살아있고 문건상에도 (부모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고 유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데 대해 사죄해야 한다”며 “특히 박씨는 아직 정정하기 때문에 당시 사건에 대해 알고있는대로 정확히 공개하고 진술하라”고 주장했다고 독립신문은 보도했다. 한편 독립신문은 “이 좌익사건실록에 노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가 창원군당 선전부장 및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양민 학살에 가담해 국가보안법 제 1조와 3조 위반 및 살인죄등으로 장기 복역한 것과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아버지 허도녕씨가 백변섭씨를 반동 분자로 규정해 불법체포 감금하고 시가 10만원 상당의 물품을 무상 몰수했으며 살해를 계획했다는 기술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주영 기자] |
첫댓글 대단한 가계입니다. 김정일이가 좋아할 진성골수분지네요.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 인민재판장, 권양숙의 친정어미 박덕남 [여맹위원장]... 그래서? 노무현 정권에 위원회가 셀 수 없이 많은 건가?
오! 통재라 하늘아래 이런 집구석이/대를 이은 충성의 백미로다/와 찍었던가 엉 엉 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