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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여자 마리아
1982.01.05. 김준호 선생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는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이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시몬아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이 둘이 있었다. 한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겠지요. 하였다. 예수께서는 오른 생각이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 곳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라고 말씀하셨다.
45절의 말씀. 제가 다시 봅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 곳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 이 관대 죄까지 용서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다 아는 말씀인데 얼른 마음이 잡힌 말씀이 이 여자는 많이 사랑하였다.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이 용서받았다. 많이 사랑했는데 많은 용서를 받았다.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또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이분이 예수님의 인생 경험의 결론이신 것 같습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많이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랑용서 이 두 말귀를 우리가 기억하고 넘어갑시다. 사랑을 많이 하면 많이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저 사람이 누구 이 관대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그럼 여기 사랑 죄 용서 저 사람이 누구이 관대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이 말씀은 아주 색다른 말씀으로 바꾸십니다. 저가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니까 죄를 용서해줬다는 말은 더는 안하세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럼 죄 사랑 용서 그러던지 사랑 죄 용서 그담에는 믿음 구원 평안 그런 낱말을 우리가 발견 합니다. 그럼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죄를 많이 용서 받았는데 그럼 죄를 용서해준 사람은 예수시고 용서받은 사람은 여자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사랑해도 자식이 사랑을 안 믿어주면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엄마가 자식을 사랑했을 때 자식이 엄마의 사랑을 믿어줘야 사랑이지. 그럼 예수님이 아무리 여자를 용서해줬다 해도 용서해줬다는 사실을 안 믿을 때는 어떻게 용서해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용서해 줬다는 말보다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이 용서해준 것을 이 부인이 믿었다는 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해줬다는 것을 믿었을 때 그 영혼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 구원받은 상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몸을 가지고 살 때에는 그 영혼이 평안합니다. 구원은 무엇으로 알 수있냐하면 영혼이 평안해요. 영혼이 안심해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아라.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해서 하신 말씀인데 구원이라는 것은 영적 평안입니다. 문제는 믿음도 여러 가지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나 여기서 믿음은 직접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을 믿을 때 자기 죄를 용서해준 것을 믿었을 때 그 영혼이 얼마나 평안을 얻었을까? 사진은 예수님이 찍었지만 얼굴은 그 여자의 얼굴이지요. 용서는 예수님이 했지만 평안은 그 여자에게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의 신앙경험에서도 보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을 때 얼마나 행복해요? 그러나 아무리 나를 사랑했어도 의심했을 때 얼마나 슬프고 괴롭습니까? 그러므로 인격 대 인격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 부인을 용서해줬다는 사실은 이 부인이 예수님이 나를 천사와 동등, 성인과 동등 아주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기인 것을 믿어주는 것 나는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어졌다는 것이 곧 평화요. 구원인 것이다. 이 말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끼리끼리의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홍 선생이 말씀했어요. 자녀를 안 난 사람은 엄한 사랑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혼이 딱딱하다고 의심이 많고 그러나 자녀를 낳은 어머니나 그런 분들은 자식을 사랑해봤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을 받아봤기 때문에 그 영혼이 뭇 익어서 둥그럽다. 원만하다. 그런 말씀을 한번 했는데요. 만일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를 버렸다. 하더라도 자식만 하나 남겨놓을 수 있다면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식을 키울 때 그 엄마 자식사이에는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고 또 죄가 있겠지요? 그런데 그 사이에는 서로 믿음이 생기고 서로 위로를 받고 사랑하지요.
그래서 천하의 누구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어머니 있는 집으로 가는 것이 천하에서 제일 좋은 곳이 되지 않겠써요? 문제는 얼마나 사랑했냐? 얼마나 사랑을 했느냐에 따라서 믿음이 있고 서로 믿어주고 믿음이 있으면 영적 평안이 있어요. 아주 평온해져. 참 안심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성경말씀을 보면 느낌이 적지만 실제 살림살이 하면서 두 사람이 합심하는 곳에 예수님이 같이하마고 했는데 두 사람이 사랑하는 곳에 예수님이 같이 하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비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한사람이 상당한 잘못을 범했을 때 용서한다는 것 덮어준다는 것 사랑을 모든 것을 덮어주고 그런 말씀이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지 않아요? 그 사랑을 모든 것을 덮어준다는 말씀이 참 눈물겹게 감사해요. 덮는다는 것은 이불을 덮는 것같이 따순 것이 어디 있어요? 겨울에는 특별히, 따뜻한 방에 아주 몸이 얼었다든지 죽어가는 사람을 물론 다 내 자녀 같으면 누가 이불을 못 덮어주겠습니까? 길거리에서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업어다가 만일 따순 방에 덮어줬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그 몸이 따뜻해서 좋아할까요? 평안해서 기뻐할까요? 덮어준다는 것은 따뜻한 것이다. 그걸 느낄 때 감격스러워요.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 낳아서 죽도록 잘못했을 텐데요. 애기를 낳아서 그 애기를 키워서 여워서 또 일평생 병이 들어서 간호해준다든지 엄마가 그 딸을 평생을 돌봤다면 일평생 딸의 잘못을 덮어줄 때 얼마나 그 엄마의 사랑이 따뜻하겠어요? 너희는 따뜻하게 부드럽게 온유하게 그 말이지요. 따사롭고 부드럽게 해야 그럼 이불로 덮어준 것 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없다고 봐요. 요새 윗방에서 자보면 이불을 5분만 안 덮어도 추워요. 다시 이불 덮으면 얼마나 따순지,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이 아주 어려운 말이 아니다. 아주 몸에 닿아서 누구든지 심장에 스며드는 말씀이다. 싶어요. 사랑을 모든 것을 덮어준다. 제일로 우리에게 아쉬운 것이 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는 사랑 그런데 이런 말씀을 뒷받침 하는 글을 다른 분의 글을 더 읽겠습니다만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요. 60이 거의 다되도록 3사람의 말을 제 귀에 가지고 있어요. 한분은 대게 아시는 분 이야기인데요. 재옥이라고 돌아가신 순자씨의 둘째오빠이지요. 큰오빠는 순교당하시고 육이오 때 둘째오빠는 여기위에 교육관 바로 그 자리에서 임종했습니다. 육이오 후에요.
제가 같이 임종을 도운사람인데 그분의 생활비랄지 치료비는 유화래 여사께서 대시고 왜 그분 형님이 같이 전도하시다 순교하셨기 때문에 유가족이어서 그분 생활비를 그분이 대기로 하시고 간호는 제가 맡았지요. 그래 한 달이나 같이 살다 임종했는데요. 임종할 때 나이는 한 스물두 살이나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딸보다 어여쁜 얼굴을 지녔어요. 남자얼굴이지만 아주 미인이에요. 반달이 아니라 온달같이 예쁜 청년이에요. 그런데 이 선생님을 어떻게 사랑하고요. 이 선생님이 어떻게 사랑하는지 부러워 죽겠어요. 음성이 여자 같아요.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미군부대에 출근했습니다. 쵸코렛을 군인한테 얻어오면요. 가만히 싸다가 이 선생님을 드려요. 좀 잡숴보세요. 어떻게 두 분 사이가 서로 정들게 사랑하시는지요. 그렇게 건강한 분인데 결핵을 얻어서 임종할 때가 되었는데 지금 화단 쪽이지요. 저쪽 그 높은 봉우리 있지 않습니까? ‘제가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웠습니다. 마지막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그럼 방에서 하시지요.’ 소변 길도 못가는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산으로 가서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부축을 하고 애기와 같이 감싸서 중턱까지 올라가고 더는 못가고 ‘그냥 여기서 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래 기도하는 사람 옆에 앉아있을 수도 없고 해서 한발자국 밑에 앉아 엎드렸지요. 숨이 가픕니다. 결핵 말기이기 때문에 아주 숨이 가파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말은 못하고 띄엄띄엄 말씀해요. ‘제가 철몰랐을 때에 지은 죄가 바다에 모래만큼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철들어서 지은 죄가 하늘의 별만큼도 더 많습니다. 주님 용서하시기를 좋아하시는 예수님 제 모든 죄를 용서한 것을 믿사옵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꼭 그 말씀뿐이에요. 그런데 얼굴이 그러지 않아도 결핵으로 있는 사람이 대게 오후 되면 열이 있지 않아요? 얼굴이 사과같이 빨개 더 예쁘지요. 그러고 아주 얼굴에 평화와 행복이 취해요. 기뻐서 그래 보듬고 내려왔지요. 내려와서 한 이틀 후에 세상 떠났어요. 한 삼일후인가요? 그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용서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 인생 일생의 행복을 빼앗아간 청년이었어요. 예수한테 행복을 빼앗아 버렸어요. ‘나를 용서한 것을 믿습니다.’
그럼 이 부인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예수님이 네 죄를 용서한다. 예수님이 한 말을 이 여자가 믿어요. 예수님이 네 죄를 용서한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그 말을 믿어요. 용서한다는 것을 믿었을 때 그 영혼이 구원받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러니까 옛날이야기 보다는 아까 재옥씨의 영혼 사정을 목격할 때 이 말씀이 무엇이다. 그걸 제가 믿습니다. 알아듣겠지요? 현재 산사람이 믿는걸 보니까 너무 행복해요. 그런 사람은 죽음이 없습니다. 한 삼일 후에 죽어도 죽음이 없어요. 젊은 나이에 죽어도 슬픔이 없어요. 부덕씨라고 어머니 계셨지요? 돌아가시기 일주일전에 어머님 오셨지요? 어머니가 보고 떠날 때 ‘어머니, 이 불효자식이 먼저 가겠습니다. 어머님, 뒤로 오세요.’ 그러니까 부덕씨가 ‘저 것 봐라. 제가 먼저 간다고 하네.’ 먼저 가겠다고 하니까, 어쩌면 그렇게 믿음이 좋아요? ‘이 불효자식은 먼저 가겠어요. 어머니 뒤로 오세요.’ 그 말 남기고 제 철몰라서 지은 죄가 바다의 모래만큼 많습니다. 제가 철들어서 지은 죄가 하늘의 별만큼 많습니다. 그러하오나 용서하시기를 좋아하시는 예수님 제 모든 죄를 다 용서한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그런 기도를 제가 들었다면 제가 얼마나 행복합니까? 배웠다면요. 그 음성 소리는 가사 저 같은 사람은 지금 그 말을 들은 지 35년 전일이지만 지금같이 들려요. 그 행복한 음성소리 또, 한 가지는 제가 목격한 글인데요. 12살 먹어서 같이 살았지요. 그리고 19살까지 잘 있다가 서울로 취직 갔어요. 잊어버릴만한 데 편지가 한 장 왔어요. ‘제가 그 단체에 머물고 있으면서 많은 성경말씀을 배우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제 가슴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네 죄를 용서해 준다. 그렇게 가르쳐 주던 그 말씀만이 제 가슴을 지탱하고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 편지사연이 왔어요. 제가 늘 그 이야기 합니다. 그 편지를 받은 지도 한 7년 전인데 19살 처녀라면 죄가 없을 텐데 뭔 죄를 지었기에 용서해준다는 말이 그렇게도 좋은가? 그 이해하기가 어렵더라 이거에요. 그러나 지금쯤은 이해가 되요. 아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으면 용서해준다는 그 말이 자기에게 위로가 됐을까? 그 마음에 큰 무슨 서광이 비쳐요. 하나님의 영광이 비쳐요. 용서해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그 영혼이 행복할까? 또 요새 한 달 못되었습니다.
한 25일전에 20살 먹은 청년에게 들은 말입니다. 내년에 제가 군인에 갑니다. 그런 사람이 만났는데요. 첫인사에요. 자기를 소개하면서 하늘이 용서하고 땅이 용서해도 제 마음이 저를 용서 못 할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소개해요. 저는 나이가 60이 다되도록 예수 믿었어요. 내 죄를 용서했다고 안심하고 살았는데 이 사람은 20청년인데 자기가 자기 죄를 용서 못한다니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런데 부러워요. 20이 된 청년이 저렇게 영혼이 건전할까? 희망이 있다. 하늘이 용서하고 땅이 용서해도 내 마음이 나를 용서 못할 사람입니다. 그 사연이 참 좋습디다. 그래서 한 3일 같이 있다 갈렸는데 갈릴 때는 천하가 다 용서 안 해도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한 것을 믿습니다. 그래요. 천하의 모든 천지만물이 다 용서 안 해도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신자가 되겠지요? 예수님을 몰랐을 때 하늘땅이 다 용서해도 내 양심이 나를 용서 못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용서한다는 걸 믿었을 때 얼마나 행복해요? 얼마나 평안하겠어요? 그러니 몸을 가지고 땅위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희망 그것을 지금 증거 했지요. 남의 말보다 자기 자신을 살펴볼 때 더 그래요.
또 글로보고 참 믿음직한 말씀이 하나 있어요. 81세에 세상을 떠나신 어느 교황님께서 하신 글인데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임종 하실 때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이 종교도 많지만 교황쯤 되는 사람은 일평생 사적을 훌터 보고 인간적인 실수가 없는 사람 아니겠어요? 평생 동정이고 조건이 많잖아요? 대죄를 범치 않은 사람 믿음이 확실하고 거룩한 사람 그런 사람이 교황이 된다고 하는데 그분이 80넘어 임종할 때 최후의 말이 ‘저는 죄인입니다. 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할 말이 없어서 그 말을 하고 죽겠습니까? 그래서 아 참 진실로 영혼이 깨끗하고 양심 있는 영혼이라면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나보다 하고 믿음직해요. 얼마나 적나라한 참말인가? 그러니까 그분이 교황이셨구나. 믿음직해져요. 그런 말씀을 들을 때면 인생이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가 죄가 많고 부끄러워도 임종할 때 제가 하고픈 말이 있다면 저는 죄인입니다. 얼마나 그 말이 참말로 해방해주는 말인가?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 기도가 얼마나 희망스러운 기도인가?
그런 벗이 있고 그런 선배가 있다니 아무리 땅위에서 어려운 실수가 많이 있다고 치더라도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임종이 두렵지 않아요. 그런 어른을 본받은 다면 나도 구원받겠다. 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또 오늘은 한 번씩 모이면 봤던 구절인데요. 똑같은 구절을 왜 또 보냐하면 진리니까, 진리는 믿어야 진리지요. 테레사 자서전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읽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왜 감사하냐? 작년보다 금년 일 년이 더 지났는데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요 일 년이 더 살아지면 상처가 더 생깁니다. 가시에 찔렸어도 한 번 더 찔렸고요. 마음에 상처가 받았어요. 또 더한 번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세월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 상처가 많지 않아요? 전도서 1장 13절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군요. 하늘아래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아보아 지혜를 깨치려고 무척 애를 써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킨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다. 이 솔로몬이 아주 나이가 많아서 이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까?
땅위에서 사업에 성공했다. 무슨 사업에 성공했다. 무슨 영광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결론을 살펴보면 하늘아래 벌어지는 모든 이를 알아봤어요. 천지창조이후에 오늘까지 지혜를 깨치려고 무척 애를 써보았지만 결론을 알고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킨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다. 아마 이 말씀을 여기 백 장로님 와계시만 백 장로님 일생 이야기를 해보라면 눈물을 뚝뚝뚝 흘릴 거예요. 이 백 장로가 환갑이 다 넘도록 고생이나 실컷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끊김)
마지막 결론 맺을 말씀입니다. 이제는 결론으로 이제는 지극히 사랑하는 이의 향기란 무슨 뜻인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일생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무엇일까?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님의 향기란 무슨 뜻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으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남기신 발자취밖에는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발자취는 얼마나 빛나고 얼마나 향기롭습니까? 복음 성경 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오늘밤에 본 누가복음 7장도 복음 성경이지요. 오늘밤에 본데만 봐도 예수님의 생애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고 그래서 어느 쪽으로 달려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향기를 맡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할까 어느 쪽으로 달려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제가 올라가는 것은 첫 자리가 아니라 곧 끝자리입니다. 저는 바리새파 교인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에 믿는 마음으로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엇보다도 막달라 마을의 마리아 의 행동을 본받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놀랍기보다도 차라리 사랑가득한 대단한 그 정이 대담한 그 마음이 제 마음을 끄는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그 놀랍기보다도 차라리 사랑 가득한 대담성이 제 마음을 끄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알아들을 만 해요. 한 예를 들어봅시다. 이 본원에 살면서 깨끗이 삶을 마친 자매들 계시잖아요? 원장님을 조심하고 쳐들어 건너다 못보고 그렇게 사는데 아들 딸 한 두 사람 데리고 온 자매가 그냥 원장님을 찾아가서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웃어 싸면 그건 대담성입니다. 원장님을 믿기를 예수님같이 믿고 의지하는 거 아무 그 마음에 의심이 없어요. 원장님이 나를 아이를 낳아 데리고 왔다고 뭐라고 한다는 의심이 없어요. 가정으로 말한다면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원에서 원장님을 조심하고 사는 자매들이 볼 때에는 부러운 것이지요. 그걸 본받고 싶어요. 나도 원장님 찾아가서 악수도 해보고 그리고 웃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그런 심정으로 하신 말씀이거든요.
그 대담성이 그 막달라 마을에 살던 마리아라 하는 사람은 별명이 붙은 여자 아닙니까? 그런데 어쩌면 예수님과 그렇게 사이가 좋습니까? 그렇게도 두 사람의 정이 가득한 사이인지 부활해가지고도 이리 저리 다 숨지 않아요? 누가 나타나면 그러나 기어이 먼저 마리아가 가서 만나지 않아요? 아주 두 분 사이에 사랑을 하시거든요. 그런 점이 막달라 마을에 살던 그 마리아는 그 대담성이 부럽단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에 의심이 없어요. 한 번도 죄를 안 지은 천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 그렇게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이가 없어 두 분 사이에는 두 몸이 한 몸이에요. 그렇게 좋은 사이가 없어요. 그 대담성을 본받는다. 그 말씀이지요. 저는 무엇보다도 막달라 마을에 살던 마리아의 삶을 본받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해서 자기만 만나주려고 숨어서 나타날 때 예수님을 꽉 붙잡으려고 달려들지 않아요? 손목을 붙잡으려고 그게 대담성 이지요?
사랑은 둘이 아니에요? 둘이서나 열이서나 사랑은 하나이지요. 한사람이에요. 너는 없어. 그런 점을 본받겠다. 그러셨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놀라웁기보다 사랑 가득한 대담한 그 마음이 제 마음을 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자기 심정을 설명하시지요. 이 말을 하는 수녀님은 15세에 수녀가 되시고 아 2살에 수녀지원하시고 15세에 수도원에 들어가시고 24세의 나이에 청춘에 죽은 수녀님인데 인간적으로는 대죄를 짓지 않았어요. 소죄도 없답니다. 동기로도 죄를 지어보지 못한 깨끗한 영혼이었어요. 그 영혼이 비록 죄라는 죄는 모두 마음에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저는 뉘우침으로 터지는 가슴을 안고 예수님의 품으로 달려 들거라 믿깁니다. 누구를 본받겠다. 그랬지요. 막달라 마리아를 본받겠다. 그랬는데 저는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간다는 뜻이 전혀 없어요. 땅위에 있는 죄를 혼자 다 지었다. 하더라도 저는 뉘우친다. 아까 교황님 기도같이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뉘우치는, 뉘우치는 탄식을 하고 임종했다는 거 뉘우침으로 제가 잘못했습니다.
뉘우침으로 터지는 가슴을 안고 예수님의 품으로 기어간다. 그랬으면 쓰겠는데 달려 들것이라. 그래 서양식이니까 달려들면 어쩌겠습니까? 꽉 껴안든지 손목을 잡던지 퍽퍽 울던지 그러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품으로 달려들 것이라 믿겠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당신에게로 돌아온 탕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에 본문 말씀은 자기 앞에 나타났던 자매를 사랑하고 계신 장면이지요. 하나님께서 어여쁜 사랑의 자애를 앞질러 베푸시어 제 영혼을 대죄에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뭔가 하니 내 믿음으로 천국 간다. 내 사랑으로 천국 간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낳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사랑을 앞질러 베푸시어 제 영혼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미리미리 대죄에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자기에게 공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죄가 없다. 죄를 안 지었다. 나는 아무 죄를 모른다. 만일 그런 자기 일생이 영혼이 보호된 점이 있다한다면 그건 하나님의 작품이고 예수님이 하신 능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 믿음이 좋아서 내 사랑이 많아서 하나님께 올라간다. 그렇지는 않겠다. 자기에게는 일체의 자기의 공이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공이 없다고 했어요. 이 말씀을 보고 동서양에 큰 영혼들이 굵은 영혼들이 아, 이 소녀의 신앙이 예수님을 바로 믿는 믿음이라면 나도 믿고 구원을 받겠다. 라는 희망을 가진답니다. 이 말이 아무리 강팍한 영혼도요, 이 수녀가 믿고 예수를 사랑할 수 있었다면 나도 예수를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안심을 얻는다는 구절입니다. 복음적인 신앙이라고 그럽니다. 은총으로 믿는 복음적인 신앙, 이 말씀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이야 전부 그 말씀 아니겠습니까? 디모데후서 2장 9절 말씀. 뒷받침으로 한 절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 1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거기까지 9절 말씀인데요. 이 영혼을 구원하신 은총은 천지 하늘과 땅을 만들기 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랍니다.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이제는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보면 이 성녀님의 믿음이 어디에다가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기가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수도생활을 하고 믿음이 좋다거나 사랑이 있어서 천국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미리서 애기도 되기 전에 낳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앞질러 베풀어주신 그 그리스도의 사랑 예수님의 은총에 의해서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로 간다는 그 말씀입니다.
테레사 성녀는 공경하올 예수 안에서 온전히 말씀드려서 미완성된 원고를 끝마치게 되었다. 이것은 제 삼자가 쓴 주어요. 본인이 영험으로 글로 쓰지 못하셨어요. 왜 손에 힘이 진해서 손가락으로 연필을 들 수 없었어요. 입에 힘이 남았기 때문에 입으로 하신 말씀이에요. 원장님 제가 온갖 죄를 범했을지라도 저는 늘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 수많은 죄도 이글이글 타는 화로 불에 떨어진 물 한 방울 같은 것이라고 느낀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랑으로 죽은 회개한 죽은 이의 이야기를 원장님이 제 대신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 수녀님이 언니한테 유언하면서 그 죄녀 이야기를 해주라고하신 그 이야기를 저녁에 같이 들읍시다. 그러면 성녀 테레사가 유언하면서 언니를 통해서 이야기 하라는 이야기 전문입니다.
회개하여 사랑 속에 죽은 여인 이야기. 미끼앙수마렝 저서 동방광양의 성부들의 이야기 중에서 각양자남양의 기록을 여기에 옮긴다. 불행의 죄에 빠졌던 처녀의 회개는 그의 애덕의 열매의 하나였다. 그 이야기는 교훈이 되는 것이며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진심으로 주께 돌아올 때에 주의 자비하심을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기에 아주 적당한 것이다. 그 처녀의 이름은 빠에시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는데 자기의 재산을 자선사업에 쓰고자하여 집을 구호소로 내놓았고 수사들이 만든 물건을 팔려고 그곳에 오던 은 수사들을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이 자선사업이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써 천국에 보화를 장만한다는 것은 마음이 뜸악 해 졌을 때 이런 심경의 변화를 결정적으로 굳히는 자들이 없지 않았다. 오래지않아 그들은 좋지 못한 권유요. 그 처녀로 하여금 덕에 실증이 나게 하여 마침내 이 처녀는 아주 죄악 속에 빠져들어갔다. 그때 수사들은 이렇게 타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몹시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일러주는 모든 방법을 써서 그 처녀를 그가 빠져들어간 구덩이에서 꺼내고자 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기울여 그 처녀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기를 힘써 청했다. 요한은 그 집으로 갔다. 그러나 문 앞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의 길을 막고 은수자들이 자기네 여주인을 파산시켰다고 비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요한은 실망하지 않고 그 처녀에게 말을 건네게 해달라고 졸랐으며 그 여자는 조금도 후회할 거리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그는 여자의 방으로 인도되었다. 요한은 그 여자 곁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버리고 자기도 아는 참담한 처지에 빠져 버렸으니 대체 예수께 대해서 불평불만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첫 번 말을 듣고 그 여자는 감동하였고 마음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성인은 은총이 일할시간을 남겨두려고 얼마동안 입을 다물고 눈물을 흘렸다. 이 말씀 볼 때에 이 말씀이 좋습디다. 전도를 한다. 권면한다. 위로한다. 하지만 성령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둔다는 거 사람이 전부하지 않고 이것을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어요.
성인은 성총이 일할 시간을 남겨두려고 얼마동안 입을 다물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점을 우리가 배워야겠어요. 사람이 말할 때 같이 성령이 같이하지요. 사람이 말을 그쳤을 때에 성령이 먼저 마음속에 일을 해 주셔야지요. 그 여자는 왜 우느냐고 요한에게 물었다. 너무 말씀을 안 하고 요한 사도가 수도자가 울어싸니까 민망해서 그 처녀가 물어봤지요. 아 마귀가 얼마나 당신을 속이고 조롱하는지를 알면서 어떻게 울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 처녀는 자기 죄가 무섭고 징그러운 생각이 들어 요한에게 말했다. 신부님 제게도 아직 속죄를 할 길이 있겠습니까? 물론 있고말고요. 하고 성인이 대답하니까 그러한 죄 보석하기에 적당하다고 신부님이 생각하는 곳으로 저를 데려다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요한이 즉시 일어나자 그 처녀도 일어나 집안을 조금도 정리하지 않고 누구에게 무슨 말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그를 따라나섰다. 성인은 이것을 보고 그 처녀가 자기의 회개에만 마음을 쓰고 속죄하는 일에만 전심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알고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요한이 그 처녀를 어디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종종 어떤 여자 수도원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광야에 들어가 있었고 벌써 밤이 가까워지기 때문에 요한은 모래를 긁어모아 베개처럼 만들고 그 위에 열십자를 그었고 거기서 자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저만큼 떨어진 곳으로 가서 기도를 드리고 잦다. 그러나 한밤중에 잠이 깨어서 보니 한줄기 빛이 위에서 내려오고 빠에시에게 위에서 내려오고 여러 천신들이 그 빛줄기를 타고 그 영혼을 하늘로 옮기고 가는 것을 영시로 불 수 있었다. 영적 눈으로 보았지요. 이 광경에 깜짝 놀라 곧 일어나 처녀에게로 가서 죽었나 보려고 흔들어 보았더니 과연 처녀는 숨을 거둔 것이었다. 동시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이렇게 들려왔다. 이 처녀의 한 시간 동안의 회개가 이 처녀의 한 시간 동안의 속죄가 다른 사람들이 오래 동안 수십 년 하는 회개보다 속죄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더 들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 처녀만큼 열심히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 처녀만큼 열심히 속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것이 전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원장 수녀님에게 언니에게 부탁해서 내 대신 말씀해주라 하신 어느 여인의 회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다 읽고 제 나름대로 소감이지요. 이런 신앙은 일반교회에서 교리로 얻은 신앙은 갖고 있어요. 다 그런 신앙인데 이렇게 단정하면서 깨끗이 산분들은요. 이 성녀 소화 테레사의 복음적인 신앙 내 공으로 구원받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복음적인 정신을 본받아야 하겠다. 그런 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아무리 깨끗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그 영안이 뜨면 아까 그 교황님의 최후의 유언의 기도와 같이 저는 죄인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런 말이 나와야 사람이지, 그런 말이 안 나온다면 그건 비정상적인 사람이에요.
천사였던지 그렇지 아니하면 위선자이던지 참말로 진실한 사람이었다면 인생을 살다보면 이 소화 테레사 만양 땅위에 있는 죄를 제가 지었다. 하더라도 지었어요. 저는 안심하고 주님 품으로 나는 달려들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안심하고 세상을 떠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씀을 안 읽어도 좋다. 그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내 것을 삼아서 자기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우월감이랄지 그릇된 신앙이 병적인 신앙이 치료를 받는 것은 얼마나 인생성공인가 또 완전한 믿음인가? 또 완전한 인생성공인가 하는 것을 희망을 품고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슨 노래나 찬송 불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