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를 깨고 나온 나비
동료의 부정을 못 본 척한 나는 공범자였다.
2000년대 초반, 지금은 도처에 있는 멀티플렉스영화관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
는 때였다. 당시 대학생들에게 영화관 스텝은 최신 영화도 많이 볼 수 있고 이
성친구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였다.
대학생이었던 나도 용돈벌이 겸 영화관 스텝으로 6개월 정도 일했다. 그곳은 또
다른 작은 사회였다. 학교처럼 규칙과 벌점이 있었고, 직장처럼 복지제도가 있었
다. 스텝 복지 중 하나로 한 달에 정해진 횟수만큼 무료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지각을 하는 등 벌점이 쌓이면 그달은 영화를 볼 수 없는 제도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플로어(입·퇴장 상영관 관리) 담당이었던 나는 영화관에 입장
하는 동료의 티켓을 검수하다가 깜짝 놀랐다.‘장애인 할인’이란 글자가 눈에
띈 것이다. 그는 씨-익 웃으며 들어갔고, 동료 매표 스텝이 끊어준 티켓일 텐데
내가 붙잡기도 왠지 뭐해서 모른척했다.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만 안 하면 된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는 사이 부정 영화 관람을 하는 스텝들이
들불처럼 번졌다. 꼬리가 길 뿐만 아니라, 꼬리가 많아지기 까지 했으니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결국 슈퍼바이저가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 사건으로 꽤 많은 스텝들이 부정행위로 퇴사를 당했다. 몇 달 간 함께하며
정들었던 동료들을 한 순간에 잃었다. 내부고발은커녕 소신 있게 조언 한 마디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십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이 남았다.
한 사람의 부정은 반드시 나비효과를 일으켜 부패문화를 형성한다. 작은 돈, 작
은 청탁이라고 나 하나 쯤 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하게 된다면 청렴과는 거리가
먼 사회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청렴 수기’에는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
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과연 위계질서가 가장 뚜렷하다는 군대에서, 그것도
몇 십 년 전의 경직된 군대문화 분위기 속에서 상사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기하게도 나비효과는 반대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이 부패문화를 청렴하게 바꾸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여러 수기들을 읽으면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단 한 번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탁금지법 이후 아이스크림 하나 받지 않았던 어느
공무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번 받은 것도, 여러 번 받은 것도 모두 받은 것이다’
청렴의 길로 가려면 꼭 기억해야할 교훈이다.
또한 부패는 언젠간 들통이 난다는 점이다. 어획량이 남들보다 적어도 꿋꿋이
합법적인 경로로만 고기를 잡은 어부가 벌금을 면하게 된 사연, 학생회장선거에
서 청렴한 선거절차를 치르지 않은 학생의 낙선결과가 그렇다.
하지만 들통이 날까봐 청렴을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존엄을 세우는
일은 남들의 시선과는 무관하다. 아무도 모르지만 오로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불교신도증을 만든 국립공원 관리자의 양심은 청렴이란 보
여주기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일임을 잘 보여준다.
골목길을 매일같이 청소하시던 노모는‘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
다’며 돈을 잃어버린 이름 모를 주인을 애써 찾아줬다. 어쩌면 부패는 이기주
의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청렴하게 사는 게 중요한 이유는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그로인해 자
유로워진다는 점이다. 사사로운 요청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
던 양심방역 수기의 주인공. 친한 친구의 내부문서를 빼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주인공, 회원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한 중국어 강사까지, 모두 공적인 일에 사적
인 감정을 개입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15년 전, 동료의 부정을 못 본 척 했던 나는 공범자였다.
이기주의라는 번데기에 싸여 부패를 눈감았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반성한다.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청렴문화는 한 사람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함을 기억해야한다.
이제 나도, 당신도 번데기를 깨고 나올 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