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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람
예배일자 : 2023-11-05
[목회기도]
은혜의 하나님!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아 주시고 하나님만 섬기려는 마음을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세상 그 무엇에도 우리의 우선순위를 빼앗기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여기에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위로 하시고 평안케 하셔서 승리의 삶을 살게하여 주옵소서.
객지, 외국, 군대, 병상에 있는 성도들 … 이시간 전국에 있는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 …
돕고 있는 선교지, 선교사들에게도 평안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구합니다.
부족한 종이 말씀을 들고 단 위에 섰습니다.
부족한 모습은 가려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사탄 마귀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지켜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야고보서 3:1~12.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평안하신가요?
늘 ~ 기쁨으로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특별히 김목사님 매일 새벽 두세시에 일어나셔서 수개월이 지나도록 부도 안내시고 일을 잘 하셔서 첫째 전도사님이 두번째 본인 김목사님이 세번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계십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항상 반갑고 아주 기분 좋고 행복한 그런 만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합니다. 춥다고 하지 마시고 내복 입으시고 건강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 목회자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사시기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기독교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종교’, ‘체험의 종교’, ‘역설의 종교’…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말씀’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말씀’으로 우주사람라만상은 물론이고 우리 인간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3)
창세기 1장에서만 “하나님이 이르시되”, “말씀하셨다”라는 표현이 11번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시편 33편 6절에도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 33:6) 했습니다.
그리고 신약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고 하며, 예수님은 곧 하나님 말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 (요 1:14) 라고 하며,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도 하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말씀을 선포하셨고, 말씀대로 사셨으며, 말씀으로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마 8:16)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심이 곧(열어서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는 ‘말씀’을 선포함으로, 말씀을 전하므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구원을 베푸는 능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은 때때로 사람들을 실족케 하고,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합니다.
‘말’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기도 하지만, ‘말’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쓰러뜨리기도 합니다.
잠언 18장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 (잠 18:21) 했고,
오늘 본문 8절에도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8) 했습니다.
어느 병원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개에 물려 다친 사람은 반나절 만에 치료하고 돌아갔습니다.
뱀에 물려 다친 사람은 3일 만에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言)에 다친 사람은 아직 입원 중입니다.”
아프리카 모로코의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답니다.
말로 입힌 상처는 칼로 입힌 상처보다 깊다.”
여러분은 남을 세워주는 말, 힘을 주는 말, 살리는 말, 격려의 말을 하고 사십니까?
아니면 힘 빠지게 하는 말, 넘어지게 하는 말, 인격이나 신앙을, 삶을 죽이는 말을 하며 사십니까?
죽인다는 말이 칼로 사람을 찌르고, 총으로 쏴야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그 사람의 신앙을, 살아온 삶을 무너뜨리는 것도 죽이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주로 어떤 말을 하셨나요?
전화 통화를 했거나 친구들을 만났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셨을 텐데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그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나요? 용기를 주는 말이었나요? 격려하는 말이었나요?
아니면 사람의 힘을 빼고, 넘어지게 하고 죽이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입으로 사람을 멸시하고 저주하고 죽이는 말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사를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지요.
목사의 인격, 영적인 삶, 그의 평생의 삶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고, 있습니다. 이 세상 참으로 무서운 세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어떤 걸 잘했다고 칭찬을 받으셨나요?
학창 시절에 ‘상(賞)’을 받아 보셨나요? 많이 받으셨나요?
제가 기억하기로 제가 어렸을 때는 학교 결석하지 않고 잘 다니면 <개근상>을 줬습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는 개근상은 학생이 꼭 받아야 되는 상으로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파도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어려움을 당하느니 차라리 학교 가는 게 편했습니다.
그래서 개근상은 늘 탔습니다.
어쩌다가 결석을 하면 정근상을 주고, 공부 잘하면 우등상을 줍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상 종류가 많더군요.
‘예쁜 마음 상, 푸른 솔직 상, 너무 잘한다 상, 서로 잘 도와 상, 뭐든 잘 지켜 상’등 과 같이
아이들의 긍정적인 행동을 격려하는 상들도 많답니다.
제가 아는 친구의 손자가 미국에 이민을 가서 초등학교 가자마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영어를 조금 알아듣기는 하지만 아직 영어를 잘 못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상을 탔다는 겁니다.
역시 애가 저희 할아버지를 닮아서 총명하구나 생각을 했는데 무슨 상이냐고 했더니 ‘선샤인상(sunshine award)’이라는 겁니다.
‘선샤인(sunshine)’은 ‘햇빛’이라는 뜻도 있지만, ‘명랑, 쾌활’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됐고 아직 영어도 잘 못하는데 늘 웃고 다니니까
명랑, 쾌할상을 준 거 같습니다. 뭐 줄 게 없으니까 만들어 줬겠지요.
사실 상장은 별 것 아닙니다. 하얀 종이에 글씨만 몇 자 쓰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상 자체는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상 받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영화제 시상식의 트로피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트로피라도 진짜 금은 아니기 때문에 값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트로피가 갖는 의미는 대단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도널드 르델마이어’ 교수는
영화배우들에게 주는 ‘아카데미 상’의 영향력을 연구하여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아카데미 상은 영화의 흥행은 물론이고 배우의 건강과 수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아카데미 주연상 및 조연상 후보로 지명된 적이 있는 남녀 배우 762명의 건강과 수명을 비교 분석했는데,
상을 탄 배우의 평균 수명은 79.7세였고, 상을 못 탄 배우의 수명은 75.8세였다고 합니다.
대략 4년 정도의 수명 차이가 납니다.
또한 상을 2번 이상 받은 배우는 그렇지 못한 배우에 비해 무려 6년을 더 오래 살았답니다.
그 교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동료 영화인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명백한 사인(sign)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활력과 여유를 주고,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와 고통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준다.”
<2005.02.28. 연합뉴스 기사 참조.>
이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 인정 받고 격려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늘 만나고 대하는 우리들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서 살아야 될까요?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고, 기분 좋아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힘을 북돋우는 말 … 잘할 수 있다는 격려의 말 … 잘하고 있다는 응원의 말 … 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문자나 편지를 보내고, 다른 사람이 보낸 것을 다른 곳에 전송하는 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힘을 북돋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나 때문에 기뻐하고
‘야 참 좋은 사람 만났어.’하는 느낌이 들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부흥회를 나가면, 보통 부흥회 하는 교회에서 호텔로 숙소를 정해놓습니다.
그리고 방에 꽃을 갖다 놓고 ‘강사님 큰 은혜를 기대하겠습니다.’라고
써 놓은 교회도 있고, 3일 동안 갈아입을 셔츠와 넥타이를 다림질까지 해서 준비해 둡니다.
그러면 호텔 방을 청소하는 사람이 이 방을 쓰는 사람이 누군지 압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팁을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방에서 쉴 수 있게 청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행복한 날이 되세요.”라고 메모를 남깁니다.
그러면 어떤 종업원은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남깁니다.
그 방에 들어와서 청소하는 분이 제 얼굴을 못 봤지만 얼마나 기분 좋았겠습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 직접 얼굴을 대하지 않았더라도
여러분의 흔적을 보는 사람에게 어떤 것을 남기시겠습니까.
성경은 ‘말’에 대해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삶을 가르치고 그 사람 속에 담긴 인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에 대한 설교를 자주 합니다.
왜냐하면 말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야고보서 3장도 ‘말에 대한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먼저 1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했습니다.
초대교회 많은 성도들이 ‘선생’이라는 명성을 갈망하였습니다.
또한 유대 아이들도 랍비 선생이 되는 것을 최고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선생이라는 자리가 영향력과 지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 4:11)
… 한 것을 보면 교회 안에서 교사의 지위가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선생’은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새신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쳤고, 성도들을 믿음으로 세워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세상적인 동기’ 때문에 차지하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 전체를 생각하고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보다 …
자신의 명예와 명성만을 위한 수단으로 ‘선생’이라는 자리를 노렸습니다.
그래서 일부 선생들은 교회에서 파당을 형성하거나
가르치는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거나 복음의 메시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서
교회 내에서 분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LAB 주석시리즈-야고보서>, 성서유니온선교회, p.141~142.참조.
그래서 야고보는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고 하며
선생이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선생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느 사회나, 어느 조직이나 선생이나 지도자 같은 리더는 필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중간 지도자가 없다면 교회 질서가 유지되겠습니까.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고, 무질서해질 것입니다.
선생된 사람, 지도자가 된 사람, 어떤 책임을 맡은 사람은 그만큼 책임감이 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선생이나 리더가 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위치이기 때문에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야 되고,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영적인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지요.
교회에서 저를 비롯한 목회자들, 장로님들 …속회 강사, 선교회장 등등.
지금 맡고 있는 직분이나 직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나의 자랑, 나의 명예를 위한 것이라면 빨리 그만둬야 합니다.
그런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가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런가 하면 간혹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착각에 빠진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그 일을 꼭 해야 된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지도자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말속에 그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말속에 그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리더는, 일하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실수를 합니다.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아주 차분하고 아주 세심하고 발걸음을 하나 옮기는 것도 조심해서 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말에 실수가 없도록 혀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본문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 3:2)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선생’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일하는 사람, 리더는 말에 실수가 없는 … , 즉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온전한 성도, 온전한 지도자로 섬기며 살려면
말에 실수가 없도록 혀를 잘 통제하며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본문에 혀가 얼마나 대단한 힘이 있는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메시지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말의 입에 물린 재갈이 말의 온 몸을 통제합니다.
큰 배라도 능숙한 선장의 손에 작은 키가 잡혀 있으면,
그 배는 아무리 거센 풍랑을 만나도 항로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찮아 보이지만,
그 말은 무슨 일이든 성취하거나 파괴할 수 있습니다.” (약 3:3~5, 메시지)
아무리 힘이 센 야생마라도 입에 작은 재갈을 물리면
말을 탄 사람에게 순종하는 명마가 됩니다.
재갈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짐승이나 사람의 입에 물리는 물건을 말합니다.
온전한 성도는 입술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말을 죽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큰 배도 작은 키에 의해 방향이 좌우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입술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기 때문에 말을 하되 하나님 마음에 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4장 6절에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0~11절에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약 3:10~11) 했습니다.
우리 입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입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입술로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심지어 남을 죽이는 말까지 한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겠습니까.
세상에는 험한 말, 악한 말, 힘빠지게 하는 말, 남을 죽이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입술을 가진 우리는
선한 말, 힘을 주는 말, 살리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친구들끼리도, 성도들도 서로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 그 사람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처럼 말하고 말에 승리하는 삶에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찬송하고 기도하는 입을 가진 우리들
선한 말, 힘주는 말, 살리는 말을 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세상 삶이지만 열심히 일하여 소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십일조를 구별하는 용기를 가졌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선교헌금, 건축헌금, 일천번제 헌금,
여러 가지 제목으로 정성을 다해 예물을 준비한 이들을 기억하시고 저들의 가정과 일터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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