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1-18의 말씀에 따른 실천(복음 안에서의 교제)
성도는 전도와 선교 사역에 동참(동역)하는 '아름다운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대사명(출 19:5-6. 마 28:19-20)에 동참(동역)하는 신실한 모습을 통해 그 성도의 믿음의 진정성과 구원의 완성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Exo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Exo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Mat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Mat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Phi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9절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간구하는 바울의 첫 번째 기도이다.
바울은 사랑에는 반드시 진리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에 근거한 분별력이 겸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Phi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0절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하며, 더욱 성장하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바울의 두 번째 기도이다.
Phi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11절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게 되기를 간구하는 바울의 세 번째 기도이다.
여기서 '의의 열매'라고 할 때 '의'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삶 가운데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에 순종하는 의(義) 곧 성화(聖化)의 증거를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투옥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는 감격스러운 사실을 밝힌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건은 오히려 긍정적인 것일 수 있다(롬 8:28).
Rom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울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복음이 전파되는 일(전도와 선교)에 있었다.
빌립보서 1:19~2:11의 말씀에 따른 실천(그리스도의 겸손의 모범)
바울은 고난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도약판이 됨을 말았다. 현대 성도들에게는 바울과 같은 고난을 견디어 내는 믿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의 삶과 죽음이 오직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를 소망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일이 바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초월적 생사관).
1:21에서 '나에게는 사는 그리스도니 '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전부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한편으로는 죽어서 더 이상 고난과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완전한 교제를 누리고자 하는 열렬한 소망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성도들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신을 사로잡아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밝힌다.
25점의 ‘기쁨’은 믿음의 성장으로 인해 오는 기쁨을 나타낸다. 성도의 신성한 기쁨은 성화(聖化)에서 비롯된다. 말씀에 순종하는 구체적인 성화의 증거들이 있을 때 충만한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믿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도독 하기 워함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바른 믿음을 견지하는 성도는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
2:8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겸손의 극치와 완전한 순종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전생애는 자기 부인. 자기 헌신, 자기 희생으로 특징 지워진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성도들의 하나 됨을 위해 겸손의 덕목을 강조하며,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으시지만 종의 모습으로 낮아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완전하게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겸손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겸손의 극치와 자기 부인을 본받아 주사랑교회의 하나 됨을 힘써 지켜나가자!
빌립보서 2:12-30의 말씀에 따른 실천(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라'는 바울의 말은 공로적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 영적 성숙을 위해 노력하라(계속 성화를 위해 힘쓰라)'는 의미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분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자세(경외심)를 가질 때에 영적 성숙(성화)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음을 바울은 피력한다.
그리스도의 겸손 모범을 따라 성도들 역시 자아를 부인(부정)하고 자기를 겸손히 낮추어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성경)을 따르고자 하는 염원(念願)을 주시고. 이에 따라 자발적 의지로써 행하도록 인도하신다(염원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간절히 바람').
성도는 전영역의 모든 활동에서 불평과 시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시비 '불평으로부터 나오는 다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상 가운데서 선한 행실을 나타내고,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아 전도하는 열매 맺는 성숙한 성도들은 전도자에게 있어서 주님 앞에 서는 날 신성한 자랑거리가 된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성숙이라는 진정한 제물(롬 12:1) 위에 자기 순교의 피가 뿌려짐으로써 하나님께 완전한 예배들 드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보여주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다.
바울은 디모데의 신실함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다른 동역자들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낸다.
(빌 2: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이제 30세 가까이에 이른 디모데가 오랜 연단과 훈련을 통해 신실하며 성숙한 자로 검증되고 입증된 사역자임을 상기시킨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한 자’, ‘함께 군사 된 자', '너희 사자', '나의 물질적 필요를 돕는 자’로 높이 평가한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자신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진실한 교역자였다. 예수님의 반복된 제자도와 2:21의 말씀처럼 '무엇을 먼저 생각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죽음을 초래일 정도의 위험한 병에서 회복된 원인을 하나님께서 에바브로디도와 바울을 불쌍히 여기심에서 찾고 있다. 에바브로디도가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자기부정·자기희생).
빌 3:1-4:1의 말씀에 따른 실천(푯대를 향해 달려가라)
그릇된 사상과 교류는 성도들의 누리는 신앙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무서운 원수들이다. 반복된 교육은 성도들의 영적 안전을 위한 사전의 대비책이 된다. 바울은 '삼가고', ‘삼가고’, ‘삼가라'란 명령형 동사를 세 번이나 반복하여 유대주의(유대주의적 율법주의)에 대한 경계 명령을 주고 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을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일'이라는 매우 극렬한 표현을 사용하여 그들의 부정적인 특징을 강력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율법적 할례와 유대주의적 할례를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신약시대의 진정한 할례파가 누구인지를 밝힌다. 첫째는 (유대주의를 따라 외형적이고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요 4:24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이다. 둘째는 (유대주의라는 사람의 유전과 유산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이다. 셋째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과 같은 외적 조건을 신뢰하지 않는 자이다.
바울이 세상의 모든 유익한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고 고상하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진리의 궁극적 가치를 깨닫고 나서 세상의 모든 유익한 것을 더러운 악취가 풍기는 배설물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고 밝힌다. 만약 성도가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리스도(진리)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바울은 구원을 이미 얻었고 온전히 이루었다는 집착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한 성화의 노력을 게을리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안일한 삶의 태도를 갖고 사는 반도덕주의(자유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교훈을 피력한다.
바울 자신은 마치 마라톤의 골인 지섬를 향해 쉬지 않고 위하여 계속 달리는 마라톤 선수와 같은 모습으로 구원의 완성(성화)을 이루기 위하여 항상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는 표현 속에서 반도덕주의자들에 대한 바울의 거센 반감이 느껴진다. 십자가 정신은 자기 부인이며, 자아를 죽임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와 진리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당시 시대정신인 헬라 철학을 벗어버리지 못한 자들이 교회내로 들어와서 자기를 긍정하며,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의와 인본주의적 요소들을 교회 내에서 자랑하는 자들이었다.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반도덕주의자들의 특징적 행태를 지적한다. 반도덕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미각의 쾌락과 복부의 포만감 등과 같은 저급한 육체의 만족을 우상으로 삼는 자들이고, 성적∙물질적 욕망 등을 자제하지 못해 수치스러운 일들을 저지르는 자들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소속이 로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임을 밝힘으로써 성도들이 당시 로마인의 보편적인 방종의 삶이 아니라 그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피력한다.
빌 4:2-23의 말씀에 따른 실천(빌립보 교회를 향한 마지막 권면)
시대정신인 무한긍정주의나 무한관용주의를 주의하고 경계해야 한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 상황을 초월하여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하여 권면한다. 재림신앙과 부활신앙이 없다면 어려운 상황(고난) 가운데서 결코 기뻐할 수 없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하는데 특히 ‘감사함으로=감사함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강조한다.
감사함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 응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신 뜻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나타낸다. 즉 기도하되 그 응답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최선임을 믿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감사함으로 받겠다는 태도로 기도해야 한다는 바울의 권면인 것이다.
바울은 감사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초월적인 '하나님의 평강(the peace of God)'이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지키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성도는 무엇에든지 진리를 따르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순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한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바울은 권면한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행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처럼 바울은 성도가 신앙의 미덕들을 깊이 생각하고 행할 때에 '평강의 하나님(God of peace)‘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한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초월적’ 신비 체험을 통해서 신앙의 기쁨과 평강이 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초월하는 '초월적‘ 기쁨과 평안은 역설적으로 구체적인 신앙의 실천을 통해서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성도는 이러한 '초월적' 기쁨과 평안을 통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가난하든 부하든 어떠한 재정적 상황에서도 만족하며 적응할 수 있는 전도자임을 밝힌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진정으로 신뢰하므로 구별된 재정관(초월적 재정관)을 가질 수 있었다.
전도자를 후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 된다.
전도자를 후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물질의 우선순위를 정립하면,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