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은 알지요 / 이남옥
은행나무 가로수가 멋지게 물들어 가는 계절이다. 이때쯤이면 똑같은 나무라도 잎의 색깔이 제각기 다르다. 어떤 것은 벌써 샛노랗게 잎을 떨궈 내고 있고 어떤 것은 아직도 푸른 채 나뭇가지에 딱 붙어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햇빛을 많이 받은 나무가 더 빨리 물이 드는 것 같다. 나무의 일조량뿐만 아니라 영양 상태나 수분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결국 은행나무는 모두 등불을 켠 듯 아름답게 물들고 잎을 떨구게 된다. 그래야 겨울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도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 조금 앞서거나 뒷설 뿐이지 대부분은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제 일을 해낸다. 그런 것을 보면 누구나 대견해 보인다. 지금까지 경쟁에서 이겨 본 적 없는 행동이 매우 느린 나조차도.
알베르게에 도착한 순서대로 떠났나 보다. 먼저 온 순례자들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전날, 팜플로나에 도착했을 때 예수 마리아 공립 알베르게는 1층은 이미 다 차 버렸다. 몇 자리 남지 않은 2층에 배정되어 씻고 빨래한 다음 도시 구경을 나섰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나서 겨우 저녁 식사를 하고 성당에 가서 축복 미사까지 참례하느라 시간이 빠듯했다. 내가 묵었던 2층은 밤새 끙끙 앓던 옆 침대 호주 할머니와 브라질에서 온 부부가 늦게 오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를 향해 출발했다. 순례길을 떠난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안 그래도 느지막이 출발했는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더 늦어져 버렸다. 겨우 순례자를 찾아서 뒤따라갔다. 도시를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고풍스러운 구도심을 벗어나서 예쁜 집과 공원이 어우러진 신시가지를 걸었다. 깨끗한 거리에는 조깅하는 사람이나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직장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걸으니 발걸음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도시의 변두리를 벗어나니 멀리 언덕이 보인다. 풍력 발전기의 풍차가 수없이 많게 줄줄이 늘어서서 장관을 이루었다. 저기 어디쯤 ‘용서의 언덕’도 있으리라.
날씨는 좋았지만 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벌써 지쳤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는데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게다가 순례자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어깨가 부딪힐 정도다. 유럽 사람들은 부활절 휴가 동안 기차나 비행기로 팜플로나까지 와서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비탈길을 걷다 보니 드디어 용서의 언덕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중세 순례자들을 철로 조각한 작품이 세워져 있었다. 이름 때문인지 순례자들은 이곳에 오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언덕을 오르면서 고해성사하기 전 무엇을 용서해 달라고 할지 나를 되돌아보았다. 그런데 등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고 걷는 것이 힘들어서인지 자꾸 생각이 끊겼다. 막상 정상에 올라서서는 언덕 아래 펼쳐진 멋진 풍경을 보고 해냈다는 기쁨 때문에 그마저도 잊어버렸다. 대신 내게 잘못한 모든 일을 내가 다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고 신이 났다. 그때까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은 트럭으로 갖다 부어 놓은 것 같은 자갈투성이였다. 자칫 잘못 디뎠다간 미끄러져 낙상하기 쉬웠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느라 배로 힘들었다. 그건 고해성사 후에 주어지는 보속처럼 느껴졌다. 언덕을 다 내려가서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가도 가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발은 부르터서 물집이 잡힐 지경이고 배는 너무나 고팠다. 배낭은 또 얼마나 무거웠는지 팍팍해진 다리를 질질 끌며 오바노스 마을을 지났다. 그런데 산후안 성당 마당에 철로 만들어진 고통에 찌든 작은 십자가상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순간 내가 받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스스로 느껴졌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길도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여왕의 다리라는 뜻인데 12세기 초 산초 3세의 부인이 건설했다고 한다. 용서의 언덕을 넘어오면 대부분 이곳에 머문다. 그런데 부활절 휴가로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남아 있는 숙소가 전혀 없었다. 일찍 도착해 카페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어떡하나 걱정하며 막막하게 다리 근처에 앉아 있는데 얼굴을 익힌 이들이 모여든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내내 궁금하던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다섯 명과 미국인 두 명이서 다음 마을인 시라우키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가게나 음식점 같은 게 아무것도 없었으나 침대는 남아 있었다. 더는 걸을 힘이 부족해서 7인승 택시로 21유로를 주고 이동했다. 그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캄캄한 밤이 되어 버렸다. 알베르게에서 준비해 준 병아리콩 수프로 요기라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겨우 씻고 잠자리에 들려다 살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보름날이었다. 환한 달빛이 오늘 하루를 살아 낸 모든 만물을 자애롭게 쓰다듬고 있었다. 힘들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