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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격조 혹은 파격 ― 가람 이병기의 시조
권영민
1.
최남선이 1920년대 중반에 주창했던 시조부흥은 가람 이병기를 통해 비로소 현대시조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병기에 의해 시조의 시적 혁신과 그 창작이 가능해졌고 시조에 대한 이론적 탐구와 그 시학의 원리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병기는 「시조란 무엇인가」(1926), 「시조와 그 연구」(1928), 「시조 원류론」(1929) 등을 통해 시조문학의 본령을 깊이 있게 논의하였고, 「시조는 혁신하자」(1932)와 같은 글에서 시조를 하나의 시 형식으로 새롭게 인식하면서 이념적인 도그마에서 벗어나 시조 창작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창작 시조집 가람시조집(1939)은 현대시조의 가장 주목되는 성과로 손꼽히고 있다. 이병기의 시조론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시조의 시적 형식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시조의 시적 형식 문제는 오늘의 현대시조가 왜 시조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시조는 그것이 창곡으로 가창되었던 시대에도 3장의 음악적 형식에 묶여 있었고, 시로서 읽혀지면서도 시적 형식으로서의 3장 분장의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특성은 이 불변의 3장 형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시조에 대한 시학적 해명 또한 이러한 시적 형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조의 형식은 정형인 것과 고전적인 것이다. 하나 고전도 고전 나름이요 정형도 정형 나름이지 반드시 정형이라고 하여 고전을 덮어놓고 다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꼭 있어야 할 까닭은, 도리어 그 정형과 그 고전적에 있다. 한문이나 영어와 같은 외국의 문학을 맛보는 우리로서, 그래도 조선어문학의 맛을 보자면 무엇이 있나. 한시(漢詩)나 영시(英詩)처럼 발달은 못 되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조선말로써 조선말답게 적은 것이며 조선말로서의 목숨과 넋이 있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조선말에 쓰인 전형과 궤범(軌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것을 보고 일일이 그대로 모방을 하거나 인용을 하거나 할 건 아니라도 거기에서 무슨 전통이나 암시를 얻을 것 아닌가. 이것이 과연 우리들과는 남다른 깊은 관계가 있는 바이다. ― 이병기, 「시조는 혁신하자」(1932)
앞의 글에서 이병기는 시조의 시적 형식을 정형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 시조라는 시 형식의 본질적인 특성은 3장의 구성 원리에서 찾아진다. 초장, 중장, 종장으로 구분되던 고시조의 형식은 엄격하게 음악적 형식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이와 다르다. 현대시조는 음악적인 형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시적 구성 원리로서의 3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고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형식에 따라 3장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시적 형식으로서 3장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조의 3장 분장 형식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어떤 제약을 가하기 위한 외형적인 틀이 아니다. 그것이 만일 말하고자하는 것에 대해 한계를 정하고 제약을 가하는 일종의 형식적 규제 장치라면, 그것은 단조로운 행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고도의 미의식을 구현하는 시적 형식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병기가 시조의 시적 속성을 규정해 주는 요소로서 그 정형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시조는 고정적 형식의 균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 형식적 특징은 가람 시조가 추구하고 있는 시정신과 밀접한관련을 지닌다. 시조가 추구하고 있는 시적 기품과 격조가 거기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조가 하나의 문학적 형식으로 다시 창조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녀온 외형의 균제라는 형식적 특성만을 고집하면서 시인의 개인적인 시 의식이라든지 새로운 시대감각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조가 지녀왔던 특유의 기품이나 형태적 전아성을 포기한다면 시조는 결국 파괴되고 만다. 시조는 이러한 두 가지의 조건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그 시적 가능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병기가 주목하고 있는 점도 바로 여기 있다.
2.
이병기의 시조는 연작형식의 시적 정착이라는 양식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병기의 연작시조는 단형의 평시조를 중첩시켜 시적 의미를 확대시켜 놓고자 하는 형식적 실험의 소산이다. 이것은 시조의 단형적 형태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와 상통한다. 이미 연시조의 형태는 조선시대 이퇴계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나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와 같은 작품을 통해 그 시적 가능성을 입증받았던 형식이다. 최남선이 개화 계몽 시대에 새로운 시작의 실험을 행하면서 연시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시적 형식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 형식에 담아내고자 하는 내용의 풍부성을 감당할 수 있는 시적 형식의 추구에 더 큰 관심이 있었던 때문으로 이해된다.
다시 옮겨심어 분에 두고 보는 파초(芭蕉) 설레는 눈보라는 창문을 치건마는 제먼저 봄인 양하고 새움 돋아 나온다
청동(靑銅) 화로 하나 앞에다 놓아 두고 파초(芭蕉)를 돌아보다 가만히 누웠더니 꿈에도 따듯한 내 고향을 헤매이고 말았다 ― 「파초(芭蕉)」 전문
이병기의 연시조 「파초」는 파초 가꾸기의 일상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파초의 널따란 잎을 볼 수 없다. 겨울나기를 위해 잎과 줄기를 잘라내고 대궁만 남겨 뿌리를 화분에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파초는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잎이 타원형으로 크게 자란다. 그 잎의 싱그러움을 사랑하여 예전부터 관상용으로 많이 가꾼다. 옛 그림에도 ‘파초도(芭蕉圖)’가 많다. 원래 중국 남방 지역 온난한 땅에서 자라는 다년초로 우리나라로 옮겨진 ‘귀화식물(歸化植物)’이다. 겨울 추위를 지낼 수 없기 때문에 밖에 그대로 두면 뿌리가 얼어 죽는다. 그러므로 늦가을에 이를 캐내어 화분에 심어 실내로 옮겨 놓아야 한다. 「파초」의 1연에서 초장인 ‘다시 옮겨 심어 분에 두고 보는 파초’는 파초의 겨울나기를 요약적으로 제시한다. 늦가을까지 넓고 푸른 잎을 자랑하던 파초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줄기와 잎이 모든 잘린 채 화분에 옮겨 심은 상태로 실내에 놓여 있다. 중장에서는 바깥의 눈보라를 보여준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찬 겨울의 험한 날씨를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종장에서 시적 분위기가 전환된다. ‘제 먼저 봄인 양하고 새움 돋아나온다.’ 시조의 격식(3.5.4.3)을 지키면서 표현의 변화를 살린다. 놀랍게도 실내에 들여다 놓은 파초의 대궁에서 새 움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파초의 넓은 잎이 자랑하는 기품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 작은 새싹을 통해 생명이 움트고 있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재를 발견하고 거기에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는 솜씨가 놀랍다. 2연으로 이어지는 시상의 흐름도 흥미롭다. 바깥의 추운 날씨를 다시 강조하는 뜻으로 청동화로가 등장한다. 시적 화자는 파초 화분을 살피다가 화로 옆에 누워 잠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종장에서 파초와 시적 화자가 그대로 하나가 되어 따뜻한 고향을 헤매게 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병기의 「파초」는 연작시조라는 시조의 형태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긴장과 이완, 통합과 균형의 미를 자랑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짜임새를 연작의 기법이라는 차원에서 좀더 세밀하게 분석해 보면, 시적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예사롭지 않은 긴장을 내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연작의 형식은 시조의 특성으로 자리잡은 형태적인 요소로서 단형시조의 시적 확대를 의미한다. 시조가 담아야 하는 시적 의미 내용이 그만큼 다양하고 포괄적인 것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 각각 독립된 두 편의 평시조를 병렬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텍스트의 구조 자체가 통합된 하나의 작품을 위해 견고하게 짜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조에서 연작을 통한 형식적인 확장에 전체적인 균형을 부여하며 시적 긴장을 이끌어 가는 것은 형식적 고안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적 주제의 응축과 그 확산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내적인 질서에 의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개방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연시조 형식의 창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3.
이병기의 시조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시조의 형태적 고정성을 벗어나기 위해 파격을 추구했던 사설시조에 대한 실험이다. 시조의 장르 변화 과정에서 볼 때, 평시조의 극복 양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사설시조의 형태적 특성이 이병기의 시조에 와서도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되는 현상이다. 모든 예술의 형태는 그 독자적인 생명력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시대적 위상에 조응하기 마련이다. 사설시조의 등장은 조선 후기 서민의식의 성장과 새로운 미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사설시조에서 볼 수 있는 고정적인 율격 파괴와 산문화 경향은 조선 후기 사회 서민층의 미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게 보통이다. 사설시조는 비교적 고정적인 율격을 지켜 나가려고 하는 부분(초장, 그리고 종장의 첫머리)과 고정적인 율격을 파괴하고자 하는 부분(중장, 그리고 종장의 첫머리를 제외한 부분)이 서로 결합되면서 형식상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설시조의 특성에 이병기는 어떤 방식으로 현대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지 다음의 두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해만 설핏하면 우는 풀벌레 그 밤을 다하도록 울고 운다 가까이 멀리 예서제서 쌍져 울다 외로 울다 연달아 울다 뚝 그쳤다 다시 운다 그 소리 단조하고 같은 양 해도 자세 들으면 이놈의 소리 저놈의 소리 다 다르구나 남몰래 겨우는 시름 누워도 잠 아니 올 때 이런 소리도 없었은들 내 또한 어이하리 ― 「풀벌레」 전문
날마다 날마다 해만 어슬어슬 지면 종로판에서 싸구려 싸구려 소리 나누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갓쓴 이 벙거지쓴 이 쪽진 이 깎은 이 어중이 떠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기정기 흥성스럽게 오락가락한다 높드란 간판 달은 납작한 기와집 퀘퀘히 쌓인 먼지 속에 묵은 갓망건 족두리 청홍실붙이 어릿가게 여중가리 양화 왜화붙이 썩은 비웃 쩌른 굴비 무른 굴비 무른 과일 시든 푸성귀붙이 십전 이십전 싸구려 싸구려 부르나니 밤이 깊도록 목이 메이도록 저 남산 골목에 우뚝우뚝 솟은 새 집들을 보라 몇해 전 조고마한 가게들 아니더냐 어찌하여 밤마다 싸구려 소리만 외치느냐 그나마 찬바람만 나면 군밤 장사로 옮기려 하느냐 ― 「야시(夜市)」 전문
앞에 인용한 이병기의 「풀벌레」와 「야시」는 전형적인 사설시조의 형태를 보여준다. 「풀벌레」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면 시적 텍스트에서 이미 초장, 중장, 종장을 명확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 초장은 날이 저물고 울기 시작하는 풀벌레 소리를 시상의 발단으로 제시한다. ‘해만 설핏하면’이라는 말은 해가 저물녘에 사방이 어둑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밤이 다하도록 그치지 않는다. 사방이 소란스럽다면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을 리 없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상의 흐름을 도와주는 시간적 배경과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중장은 ‘가까이 멀리’에서부터 ‘다 다르구나’까지에 해당한다. 중장에서 사설시조의 서술성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낸다. 시적 진술에는 대조, 열거, 반복, 지속, 영탄의 방법이 모두 동원된다. 풀벌레 소리를 때로는 설명하고 때로는 묘사하면서의 그 특징적 인상을 잡아내어 다채롭게 들려준다. 풀벌레 소리의 거리감과 그것이 들려오는 장소(가까이 멀리 예서제서)를 먼저 헤아리고 그 소리의 특징(쌍져 울다 외로 울다 연달아 울다 뚝 그쳤다 다시 운다)을 가늠한다. 저절로 음악적 가락이 살아난다. 이 과정에서 밤의 고요와 적막이 깨진다. 풀벌레들이 들려주는 합창의 한가운데에 시적 화자가 들어서 있다. 이 작품의 시적 주제가 암시되는 부분은 종장이다. ‘남몰래 / 겨우는 시름’에서 3음절과 5음절의 음수를 지킴으로써 시상의 전환이 이 부분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시적 화자는 밤에 홀로 자리에 누워있다.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고달픈 세상살이에 혼자서 시름이 없지 않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에 들지 못한다. 밤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것이 바로 풀벌레 소리다. 화자의 마음속의 시름도 그 소리만큼 많을 것인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화자의 시름에 더해지고 어지러운 머리에 가득해진다. 세상의 온갖 잡사(雜事)의 시름이 풀벌레 소리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풀벌레 소리를 시조의 시적 형식에 담아 사설조로 풀어낸다. 이 파격의 사설이 하나의 시적 풍경을 만들어내고 실감의 정서를 자아낸다. 이병기가 아니고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시적 실험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야시」는 일상적 생활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전통적인 사설시조가 보여주었던 풍자와 야유와 해학의 장면과 그 느낌까지도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서울 장안의 명물이 된 야시장의 풍물 속에 일제 강점기의 삶의 현실과 그 모순에 대한 풍자와 조소까지 곁들여 놓고 있기 때문이다. 초장은 ‘날마다 날마다 해만 어슬어슬 지면 종로 판에서 싸구려 싸구려 소리 나누나’가 된다. 평시조의 초장에 요구되는 3.4.3.4라는 음수율의 고정된 격식에 약간의 파격을 가하고 있다. 야시장의 시공간적 배경을 그려내면서 ‘싸구려’라는 장사치들의 목청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중장은 시장에 구경 나온 사람들과 장사꾼들의 행색, 그리고 가게에 늘려 잇는 물건들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사설시조에서 사설을 개방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부분이 중장이다. 여기서 사설시조의 열거와 반복, 대조와 비교, 해학과 비판이 살아나야 한다. 먼저 시장거리의 사람들의 행색이다. 갓 쓴 사람과 벙거지를 쓴 사람, 머리에 쪽을 진 아녀자와 머리를 단발한 사람, 이런 저런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오고간다. 앞뒤 구절을 서로 짝 짓고 맞세워 자연스럽게 리듬이 생기도 가락이 살아난다. 야시장에서 물건을 가게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납작한 기와집에 간판만 높다랗게 달았다. 진열해 놓은 물건이라고는 먼지 쌓인 ‘묵은 갓망건 족두리’처럼 이제 한 시절 지나버린 것들이거나 ‘청홍실붙이 어릿가게 여중가리 양화 왜화붙이’처럼 싸구려 잡화들이다. ‘청홍실붙이 어릿가게’는 여성들이 바느질이나 수놓기에 필요한 색실이나 바느질 도구들을 파는 가게이다. ‘여중가리 양화 왜화붙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동사니들인데, 물 건너온 양화(洋貨), 서양 물건들과 일본에서 들어온 자잘한 왜화(倭貨)붙이가 대부분이다. 식료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썩은 비웃 쩌른 굴비 무른 굴비 무른 과일 시든 푸성귀붙이’가 대부분이다. 생선이라고는 다 상해가는 청어와 절인 굴비뿐이고 과일과 푸성귀는 이미 무르고 시들었다. 그래도 장사꾼들은 싸구려를 외친다. 이 작품의 종장은 ‘저 남산 골목에 우뚝 우뚝 솟은 새 집들을 보라 몇 해 전 조고마한 가게들 아니더냐 어찌하여 밤마다 싸구려 소리만 외치느냐 그나마 찬바람만 나면 군밤 장사로 옮기려 하느냐’라는 시적 화자의 말로 끝맺는다. 종장의 첫 구절 ‘저 남산 / 골목에 우뚝’은 ‘3.5’의 음수를 고정하는 사설시조의 형식적 틀을 그대로 지켜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첫 구절에서 시상의 전환이 가능해지고 시적 주제의 결말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저 남산 골목 우뚝우뚝 솟은 집’은 1920년대 서울의 주거지역과 상권의 형성을 알아보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강점 후 서울의 남산 기슭은 모두 일본인들이 차지한다. 남산에 신사(神社)를 짓고 후암동 일대에는 일본 군대의 주둔지(지금의 미군기지)로 삼았으며, 남산 북쪽 기슭은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단장했다. 일본 총독이 사는 관저도 거기에 세웠으며 현재의 명동 충무로 일대를 일본인 상업지역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 골짜기에 ‘우뚝 우뚝 솟은 집’이 꼴사납게 보였을 것은 분명하다. ‘어찌하여 밤마다 싸구려 소리만 외치느냐’라는 시적 화자의 말 속에는 같은 서울 장안이면서 번창하는 일본인들 구역과 여전히 가난에 찌들어 있는 우리네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이 모순의 현실을 비아냥대는 조소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제 찬바람이 나면 이 초라하고도 궁색스런 야시장도 문을 닫는다.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4월부터 10월까지만 야시장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장사꾼들이 일터를 잃게 된다. 그러니 ‘찬바람만 나면 군밤장사로 옮기려느냐’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찬바람 부는 길거리로 내몰려 군밤장사로 살아야 하는 궁핍한 삶의 현실을 확인하는 셈이다. 「야시」는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에 개설된 야시장의 풍물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결코 시장거리의 흥성스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적 화자가 야시장의 초라한 행인들과 보잘 것 없고 궁색스런 가게의 물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것을 장사꾼의 목이 메도록 외치는 소리 그대로 ‘싸구려’라고 옮겨 놓는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 그려진 야시장에는 생동감이 없고 삶의 활력이 보이지는 않는다.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는 허름한 가게에는 보잘 것 없는 잡화들만 늘어놓고 있다. 썩은 청어, 무른 굴비는 전혀 신선할 리가 없고, 무른 과일, 시든 푸성귀는 초라한 삶의 모습과 그대로 일치한다. 이 초라한 야시장의 풍경을 더욱 초라하게 하는 것이 남산 골짝의 높이 솟은 새 집들이다. 서울 장안에서 남산골과 종로통이 부자와 빈자의 공간으로 구획되는 것은 우리네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 현실이 만들어낸 삶의 모순구조가 서울 장안을 그런 식으로 편 갈랐던 것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노리고 있는 것은 그런 현실의 음울(陰鬱)이 아닐까 생각된다.
4.
이병기는 현대시조의 시적 형식에 감각성이라는 고도의 미의식을 부여함으로써 현대시조가 추구하는 시적 모더니티를 온전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병기의 시조는 전아한 기품을 자랑하고 있지만, 기실은 단조로움에 빠져들기 쉬운 시적 진술에 특유의 감각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병기는 시조를 통해 우리말의 음절량과 그 이음새에서 나타나는 말의 마디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면서 율격을 지켜나간다. 이것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어떤 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주는 요건이 된다. 「난초」와 같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감각을 이병기 시조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1.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 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볕이 발 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 「난초 1. 2. 3. 4」 전문
‘난초’는 흔히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일컫는다. 그 고결한 자태와 향취가 빼어난 학식과 인품을 갖추고 있는 군자에 비유된다는 뜻이다. 정지용이나 김영랑도 난초를 노래했고, 신석정의 시에도 난초가 등장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난초’의 시인이라면 누구나 이병기를 손꼽는다. 평생을 시조 사랑으로 살았던 이병기는 그 곁에 늘 난초를 두고 아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는 ‘고서 몇 권과 술 한 병, 그리고 난초 두서너 분이면 삼공(三公)이 부럽지 않다.’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난초를 좋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병기는 난초의 고절한 기품에만 만족한 것이 아니다. 그는 난초에 섬세한 감각을 불어넣는다. 그가 그리는 난초는 군자니 고절이니 하여 관념화되어 버린 난초가 아니다. 이병기는 자연 속에서 호흡하고 꽃을 피우고 바람에 꺾이고 꽃이 떨어지는 살아 있는 난초를 찾아낸다. 그의 시조 속에서 난초는 살아 움직인다. 앞에 인용한 「난초 1」부터 「난초 4」를 보면 난초의 새로 꽃이 피어나고 새 잎이 자라다가 바람에 꺾이기도 하고 그윽한 향기를 흩어내는 모습 난초를 곁에 두고 아끼는 시적 화자의 심경을 함께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난초 1」은 평시조의 형태로 난초의 개화를 간략하게 그려낸다.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라는 짤막한 구절에서 난초가 자라나 꽃을 피우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적당한 그늘과 바람이 난초를 키우는 것이다. 「난초 2」는 전체 2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에서는 난초의 새 잎이 바람에 꺾이는 모습을 그려낸다. 차마 눈을 뜨고는 그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로 난초의 모습이 애잔하다. 여기서 난초는 고결함이라든지 지조라든지 하는 관념과는 아무 상관없는 하나의 힘없는 풀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난초에 깃들인 작은 생명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바람이 그 연한 새 잎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바람에 연한 새 잎이 꺾이는 모양에서 인생을 발견하다. 모진 바람과 힘없는 난초는 세파(世波)와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그 모습이 한없이 안쓰럽다. 눈을 뜨고 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2연에서는 난초의 향기를 그려낸다. 난초는 새 잎이 꺾인 채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는다. 그 향기에 취하여 잠시도 그 곁을 떠나기 어렵다. 「난초 3」는 비가 오는 날 다시 한 대 꽃이 피어나면서 향기를 전하여 우울한 시적 화자의 마음을 달래준다. 난초와 친화하는 자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난초를 향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이다.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라는 구절은 이미 시적 화자와 난초가 서로 하나로 동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난초 4」의 1연에서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라는 표현은 섬세한 언어 감각이 이루어낸 절묘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초장에서는 시각적 요소와 촉각적 요소를 결합했고, 중장은 ‘자짓빛 대공’과 ‘하얀 꽃’의 색채 감각이 선명하게 대조된다. 종장에서 ‘이슬’과 ‘구슬’의 비유는 더욱 정교하게 이미지를 배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감각적 묘사를 통해 난초는 그 섬세하게 피어나는 꽃임에도 전통적으로 덧씌워져 있던 가치와 이념의 외피를 완전히 벗어난다. 난초는 이렇게 연약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향기롭고 기품 있는 꽃으로 다시 태어난다. 2연에서는 바로 이러한 난초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그 정결한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이처럼 이병기는 시조의 시적 형식에 감각성이라는 고도의 미의식을 부여하고 있는데, 연시조 「난초」가 바로 그 구체적인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시조는 그 형식적 특성 때문에 전통적으로 지켜온 전아한 기품만 가지고서는 시적 모더니티를 온전하게 구현하기 어렵다. 이병기는 고정된 시조의 시적 형식과 그 진술 방법에 특유의 감각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우리말의 음절량과 그 이음새에서 나타나는 말의 마디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면서 율격을 살려낸다. 이것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어떤 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주는 요건이 된다. 「난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감각을 이병기 시조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5.
이병기는 현대시조가 연작성에만 안주함으로써 시적 형식의 압축미를 얻지 못한 채 기교와 수사에 얽매인 산문으로 기울고 있는 점을 문제삼아 시조의 ‘격조’를 강조한 바 있다. 이병기가 내세운 ‘격조’ 문제는 현대시조가 도달해야 하는 궁극의 지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조에서의 격조는 그 작자 자기의 감정으로 흘러나오는 리듬에서 생기며, 동시에 그 작품의 내용 의미와 조화되는 것이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딴 것이 되어버린다. 공교롭다 하여도 죽은 기교일 뿐이다. 그러므로 ‘격조’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시적 상상력의 감각성을 의미한다. ‘격조’는 시조라는 단형의 시 형식에 동원되는 모든 단어에 생기를 넣어주며 사고와 감정의 기저에까지 침투하는 감각을 말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물론 언어와 그 의미를 통해서 작용하지만 시조의 경우 전통적 의식과 가장 현대화된 정신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병기는 ‘격조’를 내세움으로서 현대시조의 문학적 성격을 미학적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병기의 현대시조가 시조로서의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시적 감각을 살려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병기의 현대시조는 시조의 부흥이 아니라 새로운 시적 형식과 감각의 발견에 해당한다. 이것은 시조라는 형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고 그 주제에 적합한 새로운 시적 형식과 언어와 감각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발견이라는 말이 이 모든 과정 또는 수사적 방법을 지칭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발견으로서의 형식과 감각은 고정된 틀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적 형식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시적 대상을 새로운 언어로 사고하는 방법이며 과정이다. 이병기의 시조에서 확인되는 시적 형식과 그 감각은 일상어의 시적 활용이라는 점에서 현대시조의 새로운 탄생과 직결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체의 관념어를 배제하고 감각적인 일상어만으로 이루어진 이병기의 시조는 시적 언어의 감각적 구현에 있어서 현대시조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궁극의 지점에 도달해 있는 셈이다.
※ 이 글은 ≪현대시학≫ 2018년 7, 8월호 특집 ‘시조와 정형성의 미학’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