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도 봄은 오고
강성희(리디아)
매화는 언제 피었었던지 벌써 지고 있다. 산수유도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모란도 겨우내 죽은 듯이 메말라 있던 대궁이 위로 빨간 새싹을 밀어 올려 우리 가까이에 봄이 오고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코로나가 점령한 이 땅에도 봄은 오고 있는데 봄을 반겨 맞이하는 사람이 없다. 누구 하나 그 매화꽃을 사진에 담으려 꽃그늘 아래로 모여 들지도 않고, 산수유 꽃가지를 손끝으로 잡고 예쁜 미소를 담아 인증샷을 찍는 그 흔하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간간이 하얀 마스크를 장착하고 온 몸을 전투복처럼 감싼 사람들이 흘낏 매화꽃, 산수유 꽃에 눈길을 급하게 주고는 바쁜 걸음으로 꽃그늘을 지나쳐 갈 뿐이다. 며칠 전의 동네 공원의 풍경이다. 작년 이맘때 그 극심한 미세먼지 속에서도 매화 축제다 산수유 축제다 하며 꽃피는 마을을 인파로 덮었던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TV를 켜면 아나운서나 패널들, 질병본부 관계자들,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결같이 코로나, 신천지, 마스크, 확진자 수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치적 발언들, 코로나를 이겨낼 안전 수칙들...... 모든 채널이 단일 방송으로 생중계를 하듯 종일 같은 단어만 쏟아내는 앵무새 같다.
인터넷 속 메인 뉴스도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다. 한 달 전 쯤 서울에서 확진자가 몇 명 나타났느니, 확진자수가 줄어들고 곧 코로나19가 종식될 거라느니 하는 뉴스를 접할 때만 해도 남의 나라, 먼 나라 일 같았다. 청정의 도시 대구에 내가 살고 있음을 뿌듯해하며 별 걱정 없이 친구들과 봄맞이 여행을 계획하고 봄옷 쇼핑 계획을 세우고 여느 해 봄과 전혀 다름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렸다.
요즘의 세상,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대구.경북 지방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점령군 코로나19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감히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진 듯 대구신천지를 포격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대구를 포격한 지 하루 이틀 만에 대구 전역을 점령하고 시민들의 일상을 순식간에 바꾸어버렸다. 피폭자만 만나도 같이 전염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과 위기감 속에서 누가 피폭자인지, 누가 잠복기 감염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은 사람이 사람 만나기를 무서워하고 이웃까지 경계하는 최악의 일상을 만들었다. 도시의 거리들은 텅텅 비어 유령의 도시가 되어 가고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을 넘어 공포로 인해 피폐해가고 있다. 내가 지금 잠복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에 달력을 보고 마지막 외출 날짜를 계산해 본다. 2m 거리 안에서 내가 누구와 만났는지, 길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누구와 마주쳤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날이 늘어가는 코로나의 감염자 속에 내가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감염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나를 스스로 자가격리 시키며 우리 안에 갇힌 외로운 짐승이 되기를 자처한다.
대구의 첫 코로나 피해자 소식이 언론에 등장하던 날, 낮에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어디세요? 집이죠? 뉴스 보셨어요? 절대로 바깥에 나가지 마세요. 당분간 집에만 계셔야 해요.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도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으면 잘 연락하지 않던 무던한(?) 두 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번차례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엄마, 생수, 쌀, 고구마, 라면은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대구 집으로 택배 발송시켰어요. 마스크는 주문했는데 주문 취소가 되었으니 다시 주문해 볼게요. 또 필요 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나니 불안하던 마음이 한층 진정이 되고 가슴이 따뜻해온다. 두 아들은 매일 매일 틈 날 때 마다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안전 수칙만 지키면 괜찮으세요. 필요한 건 제가 인터넷 주문해서 보내드릴테니 마트에는 절대 가시지 마세요. 두 번 세 번 다짐을 받는다.
그래, 우리 걱정은 하지 마, 우리 같은 은퇴 노인들이야 집에 있으면 되지만 너희들은 생계활동 때문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없으니 너희들이 걱정이다. 마스크는 있니? 비상식량은 있니? 가능하면 사람들 만나지 말고, 만나더라도 꼭 마스크 쓰고 멀리 떨어져서 이야기 하고, 식당에도 사람 많은 시간은 좀 피하고......
내가 저희들 걱정을 하면
저희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저희들은 면역성이 엄마보다는 강하니까 걸린다고 해도 그냥 감기예요. 하며 엄마를 안심시키는 말을 해준다.
아들과 통화를 하고 나면 전에 없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가족이구나. 그래서 부모 자식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평소에는 표현도 잘 하지 않는 두 아들이 믿음직하고 고맙다.
T.V 화면에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마트 밖에 줄지은 인파의 모습이 보이고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뉴스가 나왔다. 미세먼지에 예민해서 평소에 미리 준비해 둔 마스크가 꽤 여러 장 남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않아 마트에 마스크를 사러 갔다. 마트 개장 시간에 맞춰서 가면 그래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봄비 치고는 빗살이 제법 굵은 비 속에 누가 그렇게 일찍 나다닐까? 내 생각만 하고 도착한 마트에는 벌써 100m는 될 듯한 긴 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꼬리에라도 서 있어 보자고 줄을 섰더니 모두들 손에 표를 한 장 씩 들고 있다. 무슨 표냐고 물으니 그들은 모두 새벽에 나와서 미리 받은 구매권이라고 한다. 구매권이 없으면 줄을 서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에 허탈감과 함께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며 눈물이 나온다. 빗속에서 우산은 저마다 받쳐 들고 하염없이 마스크를 기다리는 긴 사람들의 띠가 그렇게 처량하고 슬퍼 보일 수가 없다.
명절 장보다 많은 인파가 무서워 얼른 그 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또 다시 마트를 방문해야 한다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일 것 같아 나온 김에 장을 보기로 했다. 냉장고에서 떨어져 가는 야채, 과일, 생선 같은 신선 식품도 담고 생선통조림, 견과류 같은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을 식품을 급하게 카트에 담고 남편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남편이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 이 전쟁터 같은 공간에 잠시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은데 남편은 나타나지 않고 방금이라도 폭격기가 지나갈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갑자기 마트 직원이 마스크를 10매씩 판매한다고 마스크 실은 수레를 끌고 왔다. 구매권이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다는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몰려들어 난장판이 되었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나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또 남편과 길이 어긋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육이오 전쟁 때 이랬을까? 지금의 상황과 전쟁 피난 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그 많은 피난 인파 속에서 가족 누군가의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다시 찾을 수 없어 이산가족이 그렇게 많이 생겼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휴대전화가 있으니 그럴 걱정은 없겠지만, 실제 전쟁이라도 나면 통신체계는 제대로 운영이 될까? 짧은 시간에 별의 별 걱정을 하며 상상하고 있는데 남편이 나타났다.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이 반갑다.
돌아오는 길, 차 창 밖의 가로수도 잦은 봄비에 한껏 물이 올라 나뭇가지 끝마다 연두를 품고 있다. 가로수 아래 명자나무도 벌써 빨갛게 꽃을 피웠다. 봄은 벌써 우리 속으로 들어와 있지만 우리네 마음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사람들은 얼마나 이 봄을 호들갑을 떨고 반가워했을까? 겨울을 이기고 피워낸 첫 꽃들을 칭송하고 환영하는 몸짓을 보냈을까? 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제 이 코로나의 겨울은 끝이 날까? 생명의 봄이 밀어낼 수 있는 코로나의 겨울이기를 기대해본다. 환하고 밝은 봄 햇살과 봄꽃, 새 희망의 기운이 코로나를 제압하고 승전의 깃발을 올리는 날이 너무 멀지 않았으면......
가까운 날, 그리운 사람들이 다시 만나 오늘의 이 코로나의 전쟁을 옛이야기처럼, 무용담처럼 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봄이 오면 겨울은 저절로 끝이 날 터이니, 춥고 불안한 우리 맘 속에 봄을 들이자. 우리가 맞이한 희망과 생명의 봄은 코로나19의 겨울을 역사의 한 장으로 만들어 주겠지.
손을 자주 씻고, 외출을 자제하고, 꼭 필요한 외출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그리고 또 필요한 것, 긍정의 마음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봄을 맞이할 것. 그리고 꼭, 꼭 이길 것,
(끝) 2020.03.01.
첫댓글 지금 대구의 풍경, 대구 사람들의 생각에 100% 공감합니다.
읽으면서 가슴에 이는 분노를 삭이느라 애썼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적나나하게 펼쳤습니다. 반드시 이기고 지나갑니다. 모두 힘을 냅시다. 효자 아들이 엄마를 잘 보호하고있습니다. 기급적 외출은 당분간 줄이는게 좋습니다. 글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총성없는 전쟁터 코로나 코리아, 격전지 대구 경북 계절의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는데 마음은 한 겨울로 되돌아 가는 느낌입니다. 수성못 가를 산책해 보았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오듯 멀잖아 염병도 살아지리라 기대합니다.
학교에 유치원에 학원에도 못가고 집에 고립되어 있는 손자 손녀를 챙기느라 하루가 바쁘고. 고령자라 불안한 마음 금할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서 어서 코로나의 겨울이 물러가고 희망찬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