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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1-5절
וַיֹּ֤אמֶר יְהוָה֙ לְנֹ֔חַ בֹּֽא־אַתָּ֥ה וְכָל־בֵּיתְךָ֖ אֶל־הַתֵּבָ֑ה כִּֽי־אֹתְךָ֥ רָאִ֛יתִי צַדִּ֥יק לְפָנַ֖י בַּדֹּ֥ור הַזֶּֽה׃
מִכֹּ֣ל׀ הַבְּהֵמָ֣ה הַטְּהֹורָ֗ה תִּֽקַּח־לְךָ֛ שִׁבְעָ֥ה שִׁבְעָ֖ה אִ֣ישׁ וְאִשְׁתֹּ֑ו וּמִן־הַבְּהֵמָ֡ה אֲ֠שֶׁר לֹ֣א טְהֹרָ֥ה הִ֛וא שְׁנַ֖יִם אִ֥ישׁ וְאִשְׁתֹּֽו׃
גַּ֣ם מֵעֹ֧וף הַשָּׁמַ֛יִם שִׁבְעָ֥ה שִׁבְעָ֖ה זָכָ֣ר וּנְקֵבָ֑ה לְחַיֹּ֥ות זֶ֖רַע עַל־פְּנֵ֥י כָל־הָאָֽרֶץ׃
כִּי֩ לְיָמִ֨ים עֹ֜וד שִׁבְעָ֗ה אָֽנֹכִי֙ מַמְטִ֣יר עַל־הָאָ֔רֶץ אַרְבָּעִ֣ים יֹ֔ום וְאַרְבָּעִ֖ים לָ֑יְלָה וּמָחִ֗יתִי אֶֽת־כָּל־הַיְקוּם֙ אֲשֶׁ֣ר עָשִׂ֔יתִי מֵעַ֖ל פְּנֵ֥י הָֽאֲדָמָֽה׃
וַיַּ֖עַשׂ נֹ֑חַ כְּכֹ֥ל אֲשֶׁר־צִוָּ֖הוּ יְהוָֽה׃
וְנֹ֕חַ בֶּן־שֵׁ֥שׁ מֵאֹ֖ות שָׁנָ֑ה וְהַמַּבּ֣וּל הָיָ֔ה מַ֖יִם עַל־הָאָֽרֶץ׃
와요메르(이르시되) 야훼(여호와께서) 레노아흐(노아) 보(들어가라) 앝타(너와) 웨콜(모든) 베트카(네 집은) 엘(~로) 하테바(방주) 키(~움이니라) 오트카(네가) 라이티(보았다) 차티크(의로움을) 레파나이(내 앞에서) 바도르(세대에) 하쩨(이) 믹콜(모든) 하베헤마(짐승은) 하트호라(정결한) 틱카흐(너는 취하여) 레카(네게로) 쉬브아(일곱) 쉬브하(일곱) 이쉬(숫컷) 웨이쉬토(암컷) 우민(그리고) 하베헤마(것은) 아세르(관계사) 로(부정) 테호라(정한) 히(~이다) 쉐나임(둘씩) 이쉬(숫컷) 웨이스토우(암컷) 감(~도 취하여) 메오프(새) 핫사마임(공중의) 쉬브아(~씩을) 쉬브아(일곱씩) 자카르(수컷) 운케바(암컷) 레하욭(유전케하라) 쩨라(그 씨를) 알(~에) 페네이(면에) 콜(모든) 하아렛츠(땅) 키(관계사) 레야밈(이면) 오드(지금부터) 쉬브하(칠) 아노키(내가) 맘티르(비를 내려) 알(~에) 하아레츠(땅) 알바임(사십) 욤(낮) 웨아르바임(사십) 라일라(밤) 우마히티(쓸어버리다) 에트(격조사) 콜(모든) 하예쿰(생물을) 아세르(관계사) 아시티(나의 지은) 메알(~에서) 페네이(면에) 하아다마(땅) 와이야스(준행하다) 노아흐(노아) 케콜(모두) 아세르(관계사) 차봐후(자기에게 명하신) 야훼(여호와)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완수하였더라』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넘녀 일곱씩 부정한 것은 남녀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얼굴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수정안)
방주(하테바)는 하나님의 덮어주심, 지성소의 시은좌라고 할 수 있다. 방주라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노아를 의롭다 여겼기 때문이다.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넘겨받는 의가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가 된다. 창세기 6장의 표현과 7장은 차이가 있다. 6장에서는『아들과 아내와 며느리』라고 했으나 7장은『네 온 집』이라고 표현했다. 집이라는 의미는 좁은 의미에서는 가족의 단위를 두고 말하지만, 넓게는 국가(이스라엘)을 두고 말하기도 한다.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방주는 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5장 32절에서『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11장 10절에서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성경의 근거로 보면 노아가 600세 되던 때에 아르박산이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노아가 600세 되던 때에 홍수가 났다. 홍수가 거의 1년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홍수 후, 2년에 셈이 아르박산을 낳았다고 말한다. 사실상 노아가 셈을 502세에 낳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아가 500세 때에는 셈을 낳지 않았는데, 낳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Noah was five hundred years old: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kjv) 오백이라는 말의 의미는 오(5)는 은혜를 상징하고, 십(10)은 은혜가 담겨져 있는 말씀이고, 또 다른 십(10)은 은혜가 성취되어 졌다는 의미다. 셈 함 야벳은 노아가 500세에 되던 해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날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즉 셈 함 야벳은 노아와 함께 방주에 탈 자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다. 방주에 탄 자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동물에 대해서는 6장에서는『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그런데, 7장에서는『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6장(19-20절)에서는 종류대로 각기 둘씩이었지만, 7장(2-3절)에서는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방주에 들어가게 했다. 그런데, 새는 암수 일곱을 들어가게 했다. 하나님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구분하여 들어가게 하셨다.
『틱카흐(너는 취하여) 레카(네게로) 쉬브아(일곱) 쉬브하(일곱) 이쉬(숫컷) 웨이쉬토(이샤:암컷)』이쉬와 이샤는 남자와 여자라는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으나, 돕는 베필, 도움이 필요한 베필이라는 차원에서는 동물(정결한 것)에게도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새의 경우에는 자카르(수컷) 운케바(네케바: 암컷)로 사용되었다.
정결한 짐승에게 이쉬와 이샤로 표현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영적 존재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노아는 첫사람 아담의 역할(그리스도)이며, 짐승은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나뉘어지나 결국 모두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정결한 짐승은 희생제물로 부정한 짐승은 희생의 대가로 방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출애굽 사건과 연계시키면 이스라엘 백성이건 이방인이건 모두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에 들어가 있으면 출애굽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나안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이스라엘 사람)과 갈렙(이방인) 두 사람 뿐이었고, 나머지는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 뿐이었다.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모두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쉐바(일곱), 쉐바(일곱)으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쉐바는 정결, 완전한 의미를 갖는다.
기본적인 의미는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이쉬)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이샤)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에베소서 5장 31절에서『그러므로 사람(안도로포스)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귀네)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이쉬(안도로포스)와 이샤(귀네)와의 관계를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설명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산제물로 드려짐이 곧 정결한 자가 되는 것이다.
첫째, 정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thee by sevens, the male and his female), 부정한 짐승은 암수 한쌍씩 들어가게 했다. 정한 동물은 제물로도 사용하므로 추가된 것이다. 기본으로는 한 쌍씩인데, 정한 동물만 일곱쌍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둘째, 레위기 11장에서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별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구별을 의미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닌 자를 대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천하만민의 모델로 택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멸해지는 모든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으며, 부정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정한 존재가 된 것이다.
어떤 동물이 정하고 어떤 동물이 부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은 모두가 다 같은 동물이다. 그러나 정한 동물을 특별히 구별하였기에 나머지 동물이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왜 구별하셨는가? 사람들은 위생적인 문제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부정한 동물은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으므로 부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세상적인 생각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동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깊히 새김질하듯이 통찰하라는 것이다. 또한 굽이 갈라지듯이 구별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이다.『새김질하는 동물, 굽이 갈라진 동물』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별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닫기를 원하신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이 왜 이 땅에 살고 있으며, 왜 죄인이 되었으며, 왜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백성들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소망은 가지고 있었지만, 힘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죄를 대속할 메시야가 아니라, 핍박받던 상황에서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우마히티:마하흐4229)』칠이 등장한다. 칠은 완전 수이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창조를 끝내시고 안식하셨다. 칠은 안식을 의미한다. 안식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육적인 것이 다 죽고 나면 새 창조가 시작된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사십은 광야의 사십일,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기 전의 광야에서 주린 기간이다. 즉 영적 존재가 흙에 갇혀 이땅에서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야는 물이 없는 메마른 땅이다. 첫사람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흙은 물(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설 수 있는 존재가 됨을 말해주신다. 첫사람 아담(그리스도)는 광야(흙)에서 태어나시고, 마지막 아담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광야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광야를 의미하는 사십 주야는 모든 물질로 되어 있는 모든 생물(혼)은 다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셔서 옛사람을 쓸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창조해 주신다.
4229는 기본어근;본래 의미는 ‘쓰다듬다’, 또는 ‘문지르다’함축적으로 ‘지우다’또한(기름 등으로)르다. 부드럽게 하다’, 즉 ‘기름치다’, 또는 살찌게 하다;또한 ‘만지다’, 즉 다다르 다:-폐하다, 없애다, 파괴하다, 기름진, 다다르다, 내보내다, ×전혀, 닦아내다, 일소하다 등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모든 생물이라고 했는데, 모든 얼굴(영적 존재)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수한 것이다. 여기에서 노아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성부 하나님 말씀을 완수하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이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는 것이다.
첫댓글 4229어디 사전입니까?
좀 사전 출처 아시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