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분 법회가 열리게 된 동기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아들
소명태자(昭明太子, ?~531)라는 분이 일찍이
『금강경』을 연구하여 32분의 단락으로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매 단락마다 내용을 요약하여 그 단락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 32분법은 오늘날까지
『금강경』을 이해하는 데는
가장 좋은 분류법으로 삼아오고 있습니다.
제1분은 법회가 열리게 된 동기입니다.
『금강경』이 어떤 동기에 의해서
설해지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부분입니다.
대개 경전(經典)은 제자들의 질문에 의하여
깨달으신 분이 말씀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가끔은 제자의 물음이나 요청이 없이
부처님 스스로 가르침을 펴기도 하셨습니다.
이 『금강경』은 특수한 일을 동기로 삼은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동기로 삼았습니다.
매일 하는 일이며,매일 보는 일입니다.
부처님만의 일이 아니요,
모든 사람들도 또한 매일 하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만인의 일상사(日常事)를
공(空)의 가르침을 펴는 경전의 동기로 삼았습니다.
즉 모든 사람의 일상사가 『금강경』 내용의 동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일상 생활 속에
『금강경』의 진리가 있다고 하겠으니
『금강경』이 곧 나의 일상생활이요,
나의 일상생활이 곧 『금강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회인유분 후반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俱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 고독원에서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인과 함께 계시었다.
이 말은 경전을 편집한 사람의 말입니다.
모든 경전은 부처님, 즉 '깨달으신 분'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기수급고독원'은
기원정사((祇園精舍)라는 유명한 절이 있는 동산입니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하여 급고독장자가
기타태자의 기름진 동산에 절을 지어 바쳤다는
신심이 지극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부처님게서는 이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안거(安居)하셨기
때문에 수많은 경전이 이 기원정사를 무대로 하여 설해졌습니다.
한 권의 경전이 시작되는 데는
여섯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예로부터 '육성취(六成就)'라고 합니다.
믿음을 나타내는 '이와 같이'와
들은 대로 기록한다는 '들었다'와
'한 때'라는 시간과
설법의 주인인 '부처님'과
설하시는 '장소'와
모여서 듣는 '청중'입니다.
거의 모든 경전은 공통적으로 서두에
이 여섯 가지 조건을 반드시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서(通序)라고 합니다.
이 조건을 갖춤으로써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다른 불교 경전의 특색을 나타내게 됩니다.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그때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걸식하시었다.
부처님께서는 하루에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 한 때만 공양하셨습니다.
공양은 언제나 걸식(乞食)으로 해결하시는데
걸식하러 나가실때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부처님께서도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나가셨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하시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걸식하여 공양하시는 일상적인 일을
『금강경』의 서두에 올려두고
이 경을 설하시는 동기로 삼았습니다.
‘걸식(乞食)’이란 다름 아니고 바로 밥을 구걸하는 일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면
보통사람으로서는 매우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라는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그 천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삼일 굶어서 도둑질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라는 체면과 아상(我相)을 버리지 못한
범인(凡人)으로서는 훔치는 일보다도
구걸하는 일이 몇 배나 더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신분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일국의 왕자로서, 만인의 스승인 부처님으로서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철저히 비운 무아상(無我相)이 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깨어 있는 눈에 비친 모든 존재는 인간을 위시하여
그 어떤것도 실체(實體)가 없습니다.
고정불변한 어떤 주체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텅 비었습니다.
저 높디 높은 가을하늘처럼 휭하니 비었습니다.
무상(無相)이고 공(空)입니다.
사물은 말할것도 없고 사람도, 사람의 마음도,
그 마음이 일으키는 온갖 지식과 감정들도
모두 텅텅 비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볼 줄 아는‘깨어 있는 눈’이 바로
반야 지혜(般若 知慧)의 안목입니다.
『금강경』은
모든 존재의 무상(無相)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그 무상의 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걸식입니다.
‘걸식’이라는 말에서
『금강경』이 다 설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라는 알량한 상이 있어서는
걸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의 서두에 걸식을
부처님의 일상적인 일 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등장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그 성중에서 차례대로 걸식하시고 나서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드셨다.
걸식(乞食)은 칠가식(七家食)이라고 하여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든지 시작한 곳에서부터
차례대로 일곱 집에서 음식을 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큰 제자 가섭존자(迦葉尊者)는
조그만한 복이라도 짓게 하느라고
가난한 집만을 찾아다녔습니다.
반면에 수보리(須普리)는 신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부잣집만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것을 보고 유마 거사(維摩 居士)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가난하다 부자다 하는 차별을 내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한 처사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선별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에서
차례대로 일곱 집에서 걸식하셨습니다.
마음에 상(相)이 없으면 차별(差別)이 없으며,
차별이 없으면 차례대로 여법(如法)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을 떠난 반야 지혜의 안목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시었다.
경전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이야기는 단순히
그 이야기로만 그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이야기라도 반드시 그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읽을 때는 그 말을 쫓아가지 말고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의의불의어(依義不依語)',
즉 뜻을 의지해야지 말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고 나서 자리를 펴고 앉으신 것은
철저히 반야의 도리를 나타내보이신 소식입니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금강경을 설하신 날만 씻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씻었습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사를 굳이 금강경 섣에 밝혀놓은 것은
우리들의 '나에 대한 집착', '나로 인한 자존심과 체면'
즉 마음의 때를 철저하게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는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앉아 보인 소식에서 벌써 상근기 제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알아 차렸을 것입니다.
몸을 편히 놓고 앉듯이 마음도 같이 푹 놓아두고
무념(無念)으로 참된 자기 자신과 마주앉으라는 것입니다.
몸은 앉아 있지만 마음은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니게 하지 말고
철저하게 몸도 마음도 함께 오로지 않아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반야(般若)의 큰빛이 있다면
이 일로써 충분히 드러날 것입니다.
걸식하고 발을 씻고난 뒤 자리에 가서 앉는 소식에서
벌써 공(空)의 도리가 환히 드러났습니다.
식사를 마쳤거든 가서 그릇을 정리하십시오.
그리고 손발을 씻으시고 자리에 편안히 앉으십시오.
이 이상 달리 더 반야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나와 그리고 삼라만상이 연기(緣起)요, 공(空)이요,
무상(無相)이요, 무아(無我)임을 아는 반야의 빛은
여기에서 그 빛이 다 발휘되었습니다.
앉으십시오.
몸도 마음도 철저히 앉으십시오.
온 우주와 혼연일체가 되어 앉아 보십시오.
거기에는 나도 없고 남도 따라 함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어떤 아픔도 슬픔도,
그 어떤 괴로움도 찾을길이 없을 것입니다.
괴롭고 싶고 슬프고 싶더라도 그렇게 되지않을 것입니다.
오직 광명만이 다이아몬드처럼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반야의 태양이 환히 빛나는 곳에
어두운 먹구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를 떠나 보낸 뒤에 나타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이
빛나는 반야를 설하시게 된 동기를
'걸식(乞食)'으로 시작하여
'세족(洗足)'과'부좌이좌(敷座而坐)'로써
전부 다 나타내 보이셧습니다.
이것은 이 경(經)의 동기이면서 종지(宗旨)입니다.
『금강경』의 모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