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망하다
W.B.-Julie.P
*
#1
이렇게 눈도 내리는데….난 오늘 3교대에서 night가 걸렸다.안그래도 피곤한데….왠지 센치해지는 날이다.
내 이름은 이세연.나는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흔히들 정신병이라는 단어에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이지만,내가 일하는 곳은 다르다.여러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정신병원은쇠창살안에 사람들이 갇혀있고,환자들은 눈이 풀린채로 소리를 질러대는 그런 병원이겠지만,내가 근무하는 곳 처럼 큰 대학병원에 있는정신병동은 그나마 정상에 가까운,경미한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온다.그리고 학교를 다니지 않고,방황하는 청소년들도 이곳에 들어온다.소아정신과 진료 환자는 중학생 까지지만,소아 정신과가 아닌 일반 정신과의 고등학생 환자들과 같은 청소년 환자들의 입원사유는 대부분 학교를 다니지않거나,가출을 하거나,부모님과 마찰이 심하거나,혹 심각한경우 자살시도를 한 아이들이다.물론 마지막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지만.
현재 병동 내 환자는 대부분 경미한 우울증 환자들이고,몇몇은 약한 조울증,정신분열,알코올 중독,ADHD,사회부적응 그리고 두명의 성 도착증 환자이다.겉으로 이상하게 보이거나,성격이 괴팍하기도 하지만 환자 개개인을 보면,절대로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그런 마음의 병이 생기기까지 힘들게 살아왔으며,현재도 힘들게 살아가고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청소년들은 사춘기에 휩쓸려 방황하느라,자신도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하게되는 자신의 행동들때문에 힘들어한다.또,나이가 있으신 환자들은 살아온 인생이 길기 때문에,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아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하지만 나는 왠지 나이가 있는 환자들보다,나보다 고작 몇살 더 어린 청소년들에게 눈이 더 많이 가고,더욱더 애틋하다.그래서 아끼던 어린 환자들이 나가면 혼자 울고는한다.하지만 이곳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대표적인 곳이고,또 퇴원을 해서 다시 입원을 하지 않는다는것은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므로 슬프지만 항상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속의 하루하루를 빌어 줄 뿐이다.
대부분의 대학병원 정신병동은 3교대로 이루어진다.오전 7시부터 오후3시까지 일하는 Day.3시부터 11시까지 일하는 Evening.그리고 11시부터 7시까지 일하는 night.
각 시간대마다 장점이있다.Day근무는 환자들의 상태가 꽤 좋은 오전에 근무를 하기때문에,별 어려움이없다.단점을 말하라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샤워를 하는 아침이기때문에,계속 왔다갔다하며 환자들이 환자복을 달라고 할때마다 옷을 꺼내주어야하는것,그리고 아침까지 상부쪽에 보고를 해야하는 많은 서류 정도.어찌보면 제일 힘든 교대는 Evening일 지도 모르겠다.대부분의 사고가 이 때에 일어난다.환자들은 대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오후5시부터 7시 사이에 많은 감정을 느끼곤한다.그래서 그 시간대가 되면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긴장을 한다.
그리고 내가 오늘 근무하는Night는 밤을 꼴딱 새야한다는 어려움이 따른다.하지만 이 근무때의 병동은 너무나도 조용하다.가끔 불면증이 있는 환자들이 일어나서 울거나,소리치지만 않는다면.아,그리고 20분 마다 병동을 돌아다니며,환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체크한다.체크하는 종이에는 환자들의 위치를 적을 수 있게되있다.그 종이들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환자가 주로 어디에 있는지,또 주로 있는곳이 분명치 않다면 환자의 불안감 정도를 추측할 수도 있다.이런 순찰을 하지않아도,곳곳에 CCTV가 설치 되어 있기 때문에 간호사실에 있는 CCTV 화면으로 환자들을 볼 수 있지만,순찰을 하면서 환자들과 대화도 나누고,처음 들어온 환자들과 경계심도 풀어간다.
CCTV는 복도,병실,안정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도 있다.대신 샤워장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된 화면으로 보이는 카메라이고,변기 위에 있는 카메라는 얼굴만 보이도록 설정해 둔다.환자들이 가끔씩 CCTV가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항의해 오는 경우가 있는데,그 때 마다 프라이버시를 침해 할 만큼이 아니라는 것과,신변 보호를 위한 일이라는 긴 설득을 마치고나서야 환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간다.
가끔 응급을 통해서 입원해 오는 환자들이 있다.이러한 입원 환자들은 대게 청소년들이다.가출한 뒤 붙잡혀서 새벽에 응급실로 끌려와,입원을 하는….청소년들의 특성상 이런 어린 환자들은 입원할 때도 곱게 들어오지않는다.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것을 깨닫는 것인지,도망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것인지 거칠게 반항하고,부수고,소리지르며 협박한다.그래서 매번 응급실 의사들은 소아정신과 환자들 때문에 곤경에 처한다.그리고 늘 그렇듯 그 아이들은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끌려온다.울부짖으며.그렇게 붙잡혀온 어린 환자를 간호사나 의사들이 말하는 안정실,환자들은 독방이라고 부르는 그곳에 눕히고,안정제를 놔주면 씨끄러웠던 병동은 다시 잠잠해진다.늘 그렇듯 힘없이 쓸쓸한 공기와 함께,안정제를 놓으면 자신이 언제 그 난리를 쳤냐는 듯이 환자는 조용해진다.그리고 이내 깊은 잠에 빠진다.물론 사람에 따라 빨리 깨어나기도,하루를 꼬박 자기도 한다.
어린 환자들을 안정실에 눕히고,심할 경우 몸을 묶은채로 안정제를 놓고 문을 잠그고 나오면 간호사들 입에서는 옅은 한숨이 새어나온다.얼마나 괴로울까.저렇게 썰렁한 방에서 잠을 깨 혼자 눈을 뜰때는 얼마나 외로울까.실제로 그렇다.어린 환자들은 안정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운다.이런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감싸 줄 부모님이 없다는 것에 버려진 느낌이 드는거겠지.버려진느낌….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도 안된다.
버려진다…버려진다….
지금은 2시.간호사실에는 Night때 늘 그렇듯 2명의 간호사,간호 조무사 1명이 있다.간호사는 여자고,조무사는 남자.우리가 하기에 힘든 일들을 해주시는 분이니 늘 고맙고,듬직하다.그렇게 우리는 강화유리로 둘러싸인 간호사실 안에서 서류들을 정리하고있었다.그 때 조용하던 정적을 깨고,간호사실로 전화가 왔다.나는 조희정 간호사를 대신해 전화를 받았다.보나마나 청소년 환자 입원이겠지.또 한바탕 씨끄러워 지겠는걸….이번엔 어떤 학생이 들어오려나....호기심이 생겼다.힘들어서 들어오는 환자에게 호기심이나 갖다니….그래도 어쩔 수 없다.매번 새로운 학생들과 만나는건 즐겁고 신나는 일이니까.나는 한껏 기대를 품고 수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내 정체를 밝혔다.
"네,178병동 이세연 간호사입니다."
"아.이세연 간호사선생님!여기 응급인데요."
"아….응급환자 들어왔어요?"
"네.지금 수속 끝났습니다."
"소아정신과 소속 환자인가요?"
"아니요.일반정신과 18세 여자 환자입니다."
"네,그럼 안정제랑 안정...실ㄹ..."
"아니요.일반 병실로 바로 갈 거 같은데요.워낙 조용해서요."
"...아.네.그럼 일반 병실에 침대시트랑 이불,베게 준비시키겠습니다."
"네.환자복두요~"
"그럼요~그럼 잠시 후에 뵈요."
"아아...난 못올라가요.끝내야 할 일이 있어서.최현석 간호조무사가 데려 갈 겁니다."
"네.알겠습니다."
안정제와 안정실 정리를 해놓으려고 했던 나는 일반 병실로 바로 온다는 김종태 의사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예상 밖이다.
어째서 순순히 입원에 응한걸까.누군지는 몰라도,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렇게 조용히 입원을 허락치 않는다.비록 내가 이 정신과 병동으로 발령 받은지 5달 밖에 되지않았지만,처음 있는 일이다.재 입원 환자면 몰라도,신규가.
조희정 간호사는 응급이냐고 물었다.나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몇 살이냐고 다시 물어오는 그녀에게 나는 18살 환자라고 말했다.그러자 조희정 간호사도 순간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했다.그녀도 스스로 입원요구를 꺼낸 성인 환자라고 생각했으리라.이렇게 조용히 입원수속을 밟는 그 환자가 학생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겠지.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정실로 안가냐고 물었다.나는 그렇다고 했다.순순히 입원하는데에 동의한 것 같다고.조희정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짤막한 대화를 끝냈다.재미없는 조희정 간호사 같으니.매사에 저렇게 진지하고,일에 몰두하니까 애인이 힘들어하지….
시간이 멈추어버린듯했다.그 환자를 조금 더 빨리 보고싶었다.예외라는 경우를 만들어버린 그 환자를.나는 환자들 하루 일과에 대한 보고서를 정리하면서도,계속해서 시계를 올려다봤다.그렇게 궁금증만 계속 커져 갈 때쯤 병동에 초인종이 울렸다.나는 서둘러 전화기 화면에 찍힌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렸다.최현석 간호조무사와 그 처럼 마른 체구에,키마저 작은 여자아이를 봤다.그리고 나는 수화기를 들고 '네'라고 말한뒤 문열림 버튼을 눌렀다.그리고 입구로 걸어가 가슴에 달려있는 전자 명찰카드를 문에 갖다댔다.삑.하는 전자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이세연 간호사님!"
"네.잘 지내셨죠?"
"저야 뭐 늘...하하하"
"항상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하하 그런가요?아.이 학생은 김주연이에요.뭐 이미 입원수속한 서류 받아서 아시겠지만…."
최현석 간호조무사는 늘 그렇듯 환환 미소로 인사했다.우리 둘이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아이는 밤이라 불을 꺼둔 병동 탈의실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묵묵히….그런 아이가 자꾸 눈에 밟혀 나는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가리키며 '저 곳에 가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시면 되요.'라고 말했다.아이는 고개조차도 끄덕여 주지 않고 그대로 탈의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조용한 아이인가….
아이는 무척이나 하얗고 뽀얀 피부를 가지고있었다.하지만 얼굴에 보이지 않을만큼 작은 흉터들이 많았다.길고 두꺼운 옷들 때문에 아이의 다른 곳은 살펴보지 못했지만,왠지 온몸에 그런 작은 상처들이 많을것만 같다.
이만 가봐야겠다며 말하는 최현석 조무사를 배웅하고 나는 병동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놓고,탈의실 앞에서서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렇게 5분을 넘게 기다려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나는 순간 병동에서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 떠올랐다.
혹시….
나는 황급히 탈의실 문을열었다.다행히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아이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로 사물함만 보고 서있었다.문을 거칠게 열었음에도 불구하고,아이는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처럼 그렇게 계속 사물함만 보고 서있었다.나는 천천히 다가가 말했다.
"주연양.옷 갈아입어야죠..."
내가 그렇게 조용히 말하자,아이는 내 쪽으로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아이는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주연이라는 아이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내가 왜 우냐고 물으려하자,아이는 씨익 웃었다.단지 '왜...'라는 단어만 꺼냈을 뿐인데.그리고는 옷 갈아입게 나가달라고 말하며 다시 사물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탈의실을 나왔다.
이세연,많이 당황했나보다.울 것 같더니 금새 웃어버리는 아이때문에 혼란스러웠다.점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저 아이는 누구일까.그리고 어느새 나는 그 아이의 눈물맺힌 눈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쓸쓸해 보이던 미소도 함께.
그렇게 밖에서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자,이내 아이는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두꺼운 옷을 벗고,얇은 환자복을 입자 아이의 왜소한 체격이 더 눈에 띄었다.변함없는 하얀 피부도.아이는 문앞에 서있는 나를 흘끔 올려보더니 '안가요?'하고 물었다.아이의 눈에 빠져있던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아,아 그래.가야지...'라고 허둥대며 미리 열어놓은 문으로 아이를 이끌었다.그러자 아이는 묵묵히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병동으로 들어와,아이를 여자 2호실로 안내해주었다.닫힌 문앞에 서서 아이의 자리를 안내해주었다.아이는 문에 달린 창문을 통해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는,아까와 똑같이 고개도 끄덕이지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말 말이 없는 아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렇게 약한 빛만이 비추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나는 아이가 침대에 눕는것을 보고,다시 간호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간호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조희정 간호사는 오랫동안 날 기다렸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어떤 아이인것 같냐고 물었다.나는 지극히 조용한것 빼고는 평범한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자 이내 조희정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다시 컴퓨터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고 일에 열중했다.
아우 정말…저 진지함.
나는 재밌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조희정 간호사의 맞은편인 내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일을 하려고 하는데,그 아이의 진료기록이 궁금해졌다.그 아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다.나는 하던 일을 잠시 미루고,'김주연'이라는 아이의 관한 진료보고를 읽었다.이름 김주연.나이 18세.성별 여자.이건 다 아는 내용인데….지루하고 뻔한 내용에 그만 읽을까 하고 몇번이나 생각했다.하지만 아이에 대해 알고싶다는 바램 하나로 그 지루한 얘기들을 읽어나갔다.그리고 드디어 상담내용과 진료내용에 관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병명: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어떤 외상때문에 장애가 온걸까.
궁금증은 더욱더 커져갔고,나는 서둘러 상담내용을 읽었다.
'저는 아버지가 싫어요'.이게 첫 문장이었다.아이가 처음부터 상담실에 들어가자 말자 대뜸 이 말을 꺼냈을까,아니면 의사가 자기 멋대로 중요한 말을 추려 쓴것일까.또 궁금해졌다.그 상황이.아이와 의사가 단 둘이 앉아있었을 그 상황이.아이는 어떤 표정으로,어떤 말투로,어떤 음성으로 의사와 얘기했을까.그 아이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다음 글을 읽었다.'사람이 싫고 무서워요.살기도 싫구요.웃기도 싫고,화내기도 싫어요.매일마다 기도해요.오늘 밤에 잠이들면,내일 아침 눈떴을때 하늘에 떠있는 해를 보지않게해주세요…하고'.그저 말이 없는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전혀 알지 못했다.저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나있는지….알 수가 없었다.아이의 얼굴에 힘들다는 표정은 어려있지 않았으니까.그저 조용한 아이라고만 생각해 버렸던 내가 한심했다.아직도,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내 모습이 그대로라는것에 대해서….그렇게 나는 내 자신을 꾸짖으며 글을 계속 읽었다.
'아빠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엄마가 불쌍해요.엄마가 울 때 마다 죽고싶었어요.항상 마음속으로,머릿속으로만 죽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하루는 정말로 죽고 싶었어요.그래서 처음으로 자살시도를 했어요.그런데요 죽는게 더 어렵더라구요.늘 자해에서만 끝나고 말았어요.부끄럽지만 지금도 이렇게 멀쩡히도 살아있어요.숨쉬고,걷고,말하고….학교도 싫었어요.그 곳에 다니면 뭐해요.얻는게 없는데.그런 곳따위….가기 싫었어요.그렇게 한두번 결석하던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자퇴가 되어있더라구요.무슨 생각으로 자퇴를 했는지는 모르겠어요.친구들이 저에게 했던 행동들,말들,부모님때문에 힘들었던 날들….조금이라도 잊고싶어서 자극적인것들은 다 해봤어요.오토바이도 타봤고,싸움질도 하고 다녀봤고,술도 마셔봤고,담배도 펴봤고,본드도 불어봤고,남자랑 잠도 자봤어요.근데 다 그때 뿐이었어요.그 순간은 잊혀지는데,그 순간에서 벗어나면 더 큰 어둠이 몰려오곤했어요.저는 죽는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근데 죽어지지가 않아요.그렇게 죽고싶은데,죽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젠 잠도 안와요.'
'이젠 그 어떤 자극이 들어와도,반응을 안해요.슬픔도,아픔도,기쁨도,분노도,행복도,사랑도…다 똑같은 느낌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아무 감정없는 병신이 되어버렸다구요…내가….'
의사가 써놓은 보고서에는 아이가 힘들어하는 이유가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하고있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에요.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요.그래서 가출을 하는거에요.저 입원시켜주시면 안될까요?차라리 이곳이 좋아요.'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길래 입원을 시켜달라고 말한 것일까.마음이 조금 쓰렸다.
나는 아이가 잘 자고있는지 보기위해 모니터로 몸을 이끌었다.아이가 자고있을 병실에 설치되있는 카메라화면을 확인했다.그런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어야 하는 아이가 없었다.나는 다른 카메라 화면들을 살펴봤다.그리고 곧 아이를 발견했다.아이는 큰 마루-거실이라고 부르는-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잠이 안오는걸까.다가가 왜 나와있냐고 묻고싶었지만,아이에게 다가가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괜히 섣불리 다가갔다가,경계심만 생길 것 같았다.쓸쓸해 보이는 아이의 뒷모습이 담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자리로 걸어와 다시 일에 집중하려 노력했다.하지만 자꾸 아이가 떠올라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 일을 붙잡고 끙끙대길 두시간이 가까워오자,다시 아이가 잘 있을지 궁금해졌다.지끔즘 들어갔겠지,생각하고 다시 카메라 화면 모니터로 다가갔다.모니터가있는 책상앞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쓸쓸한 아이가 담겨있었던 카메라 화면을 보았다.어....?!여전히 아이는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
1시간 30분 전과 정확히 똑같은 모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문득 궁금해졌다.어차피 내가 병동 순찰 아닌 순찰을 돌아야 하는 시간이었다.나는 순찰 표를 들고 간호사실을 나왔다.
탁.
간호사실 문을 닫고 병동을 돌았다.활동마당쪽 여자 병실쪽 환자부터 한명 한명 살폈다.모두들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그렇게 쭉 병실을 살펴보고,다른 병실을 살펴보기위해 걸음을 옮기던 나는 큰 마루를 지나치고 있었다.그 때 매우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무언가 계속 웅얼대고있었다.나는 신발을 벗고 큰 마루로 올라갔다.마루에 올라서자,그제서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창가에 올라가,무릎을 감싸안고 앉아있었다.아이는 달빛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병원 밖 도로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을 내려다보고있는 듯 했다.나는 천천히 다가가,조심스레 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러자 아이는 놀란듯한 표정으로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똘망한 눈.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듯한 하얀 피부.연한 눈썹.정말 아기같다.아이가 아닌 아기.
"여기서 뭐해..요?"
"......"
"시간이 늦었는데,들어가서 자야죠.."
"그냥 가슴이 답답해서요."
"...가슴이 답답해요?"
"네."
"음...여기서 이러고 있으면,가슴이 좀 나아요?"
"네."
"....그렇구나..."
"비."
"...네?"
"비와요 밖에."
"아...."
아이가 창문밖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비'라고 했다.
비 온다는 뜻이었구나….몇 시간 전에도 비는 내리고있었는데.오면서 비 오는거 못봤나….
천천히 땅을 향해 떨어지는 비을 보고있자니 또 울적해졌다.어두운 조명과,조용하고 무거운 공기가 나를 더욱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나는 자신과 맞닿아 자신을 부셔버릴 땅이 좋은 것 마냥,천천히 땅을 향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고있었다.그러자 나와 같은 쪽을 바라보고있던 아이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나는 아이의 움직임에 아이를 바라봤다.아이는 탈의실에서 그랬던것처럼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또 아이가 눈물 가득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씨익-하고 웃어버릴것만 같아 고개를 돌렸다.아이의 쓸쓸한 웃음을 다시 보기는 싫었다.그냥.왠지….내가 고개를 돌린 후에도 한참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아이는 입을 열었다.
"이세연…"
"......"
"이름이 참 예뻐요."
내 이름을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내가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니?'라는 질문을 품고 쳐다보자 아이는 내 마음을 읽은건지,창밖으로 향했던 그 하얀 손가락으로 내 가슴께를 가리켰다.아.명찰카드….손가락으로 내 가슴에 붙어있는 카드를 가리키며,이름이 예쁘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것만 같았다.
울적했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고,행복했다.그냥 기뻤다.대답조차도 하지않던 조용한 아이가 내 말에 대한 대답도 아닌,내 이름을 칭찬해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그 기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나는 아이에게 활짝 웃어줬다.
"고마워."
"......"
"주연이..ㄴ...."
내가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자,나를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왜 그러지….나는 괜시리 기분이 이상해,'주연이는 원래 조용한가봐?'라고 물어보려고 했다.그런데 아이는 내가 말을 꺼냄과 거의 동시에,창가에서 내려와 나를 스치듯 지나치고는 자신의 병실이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뭐…뭐지….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혹시,내가 반말로 고맙다고해서 그런가….나는 나한테 먼저 말을 꺼내길래,어느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서 말을 놨던건데….머릿속이 더욱더 혼란스럽고,복잡했다.나는 그렇게 아이가 사라져버린 어두운 복도만 계속 바라보고있었다.이상해…몇 마디밖에 나누지 않은 사이인데,아이가 없으니까 허전하고,공허해서…불안해서 미칠것만같아….나는 그렇게 계속 어두운 복도만 바라보았다.그리고 한참 후 조희정 간호사가 나를 조심스레 부르자,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간호사실로 돌아갔다.의자에 털썩,하고 앉자마자 또 다시 그 아이가 떠올랐다.하….왜 이러는걸까 대체.나는 이유없이 계속 떠오르는 아이를 무시하려 애쓰며 일에 집중했다.아이는 잘 자고있으려나….걱정이 됬지만,애써 신경쓰지않기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그렇게 주연이라는 아이와의 첫 날은 지나가고있었다.
김주연.
작고,조용한 아이.
난 왜 자꾸 네가 생각나는걸까?
네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가슴 속 상처를 알고있기 때문일까….
앞으로는 너의 쓸쓸한 미소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자,
주연아.
+아아....첫글인데 너무 무겁나요....................................................................................돌던지지마삼
안그래도 머리아파죽겟심
이거 장편인디...언제 다쓴댜
어쨋든!이게 끝나면 달달물로 가보지요
그리고 이 소설은 제 경험이 70퍼센트 섞여있슴므니다.그래서 더더욱 저에겐 특별하다는.........
단지 절 닮아서 소설이 무겁다는 흠이....어쨋든요 수고하삼요
밤공기가 쌀쌀하네요
이럴 때 따끈한 오뎅국물에 소주한잔?캬!
첫댓글 선리플...ㅎㅎ 잠이와서 ^^ 처음 뵙는분 앞으로 잘 부탁할께요 ㅎㅎ
헤헤헤~선리플도 감사해요!네네 저 낯선 행인이랍니다!!!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용!ㅎㅎ
오오오~~ 잘 읽었습니다.. 부디 건필하시구요.. 홧팅~~!!!
감사합니다!페이 발렌타인님도 화이팅입니다!!
흠~주연인 사랑이 마니 필요한 아이..!!세연이를 통해서 맘의 상처가 치유되길..^^
아아 벌써 주연이를 파악해버리셨군요!ㅠㅠㅠㅠ장편이라 글읽다가 지치시더라도 열심히 쓸테니 예쁘게 봐주세용!
~~와아아!! 무지무지 잘읽었어요!^^ 헤헤 담편이 많이 많이 기대되요~!! 건필하시고 반갑습니다~~
맥커천님~감사합니다!^^열심히 쓸테니 열심히 읽어주시구요~저도 무척 반갑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익숙한 이름들이라, 멈칫했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아,그런가요?사실은 등장인물 이름은 실제인물 이름에서 한글자씩 바꾼거랍니다!하하하핫 멈칫했다니 즐겁네요!
아!!! 잘 읽었습니다....달달한 것을 좋아하지만 왠지 무거우면서도 빠져들어 읽게 되는....앞으로 마니마니 기대되네요...*^^*
아아,ㅠㅠ너무 기대는 하지마세요!첫작인데다.....아직 미숙하답니다~열심히 쓸게요!재미나게 읽어주세요^^*
오 - 제게 짧다는 리플을 남기셨던데, 그럴만 하시군요 ;;;; 전 요정도 길이로 쓰려면... 쓸수는 있지만... ㄷㄷㄷㄷ 잘 읽었어요 ㅎ 무거운 글이 너무 없어요 여기엔, ㅎ 앞으로 잘 부탁해요. ㅎㅎ 제가 달달물은 쓰겠음다. ㅋ
ㅋㄷㅋㄷ 소아님은 글이 좋아서 짧아도~~ ㅋㅋㅋ 근데 좀더 더 길었으면 ~~ ㅋㅋㅋ
=ㅁ=! 아..네.. ㅋㅋㅋ 2편은 아무래도 엄청 나중에 올리겟네요 ㅋㅋㅋ
으핫,제가 무거운거 담당이 되어버리는건가요?!저도 밝은 것좀 쓰고 싶습니다만은...제인생이 그닥 밝지 못해서 ㅎ 어쨌든 우리 잘 해봐요^^*친해지자구요
술술 읽히는 류의 글은 아닌데도 흡입력있는것같아요! 잘봤습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