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사에 간 민수와 병덕이
민수는 집을 나섰습니다.지난 밤에 늦게까지 삼촌과 이야기하느라 잠을 늦게 자서 피곤하였지만,친한 친구가 된 병덕이가 보고 싶어서 아침 일찍부터 병덕이네 집으로 놀러 가는 것입니다.
요즘 병덕이가 몹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민수는 잘 알고 있습니다.엄마가 없는 집 안에 아빠마져 아파서 누워 계시니 병덕이가 혼자서 너무나 힘이 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산길로 접어들자 상수리나무 위에서 노란 꾀꼬리들이 마중하여 청아하게 노래합니다.기분이 좋아진 민수의 발걸음이 힘차게 변했습니다.힘차게 앞뒤로 내 흔드는 양 손에는 무엇인가가 들려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작은 통이 들려 있습니다.할머니께서 챙겨 주신 반찬거리입니다.또 한 손의 작은 손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민수는 산길을 걸으면서도 연방 가방을 들어보며 싱긋싱긋 미소짓고 있습니다.
병덕이네 집 마당에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집니다.마당가 밤나무 이파리도,감나무 이파리도 햇살이 따가로운지 연신 몸을 뒤채니 은빛 햇살이 화살처럼 반짝입니다.
"병덕아! 뭐하니?"
"......,"
마당으로 들어선 민수가 병덕이를 찿았으나 병덕이는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응? 아침부터 어디 갔지?'
민수는 뒤곁을 돌아서 뒷산으로 올라가 봅니다.많은 염소들이 칡넝쿨에 우르르 달라 붙어 있습니다.
동산 꼭대기의 왕소나무 아래에도 병덕이는 없습니다.왕소나무 아래에 앉아 민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침 햇살이 사방을 비추며 사위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동산 건너 멀리 절암산까지 이어진 산줄기를 따라 아침 기운이 뻗쳐오르 듯 희미한 운무의 잔해가 스르르 피어 오르고 있었습니다.그 모양이 지난 날 서울 집에서 꿈을 꾼 승천하는 용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민수는 서서히 스러지는 산줄기의 희미한 운무를 바라보며 절암산의 전설과 꿈 속에서의 세 마리 용들,그리고 조각품 속의 세 마리 용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신기해.절암산 용굴의 전설과 내가 꾼 용꿈도 그렇고,우연히 갖게 된 용조각품도 어쩜 그리 똑 같을까?'
그러다가 불현듯 생각이 난 듯,민수는 왼손에 들고 있던 손가방을 열었습니다.그리고는 가방 안에서 거무튀튀한 세모꼴의 나무 조각품을 꺼내 들었습니다.세 마리의 용 조각품입니다.
보면 볼수록 생동감 넘치는 용들의 몸놀림입니다.금방이라도 살아서 솟아오를 것 같은 황홀하도록 힘찬 몸놀림은 사람의 정신을 빼앗을 것만 같습니다.
"어? 민수야."
난데없이 병덕이의 놀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병덕아."
병덕이는 민수를 보자 놀라워 합니다.
갑작스런 병덕이의 출현에 민수도 놀랐습니다.민수와 병덕인는 나란히 왕소나무 아래에 앉았습니다.염소들의 야물야물 풀 뜯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입니다.
"병덕아,아침 일찍부터 어디 갔었니?"
"응.절암산 서쪽 절벽 아래에 흑룡사라고 절이 있어.그곳 스님을 만나고 오는 길이야."
"스님을?"
"응. 그 절에 스님이 딱 두 분이 사셔.한 분은 할아버지 스님이시고,또 한 분은 히히히..."
병덕이가 말을 하다말고 무엇이 우스운지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아니,병덕아.왜 그래? 또 한 분의 스님이 어떤 분이시길래?"
민수는 얘기 하다말고 웃어대는 병덕이가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재촉하였습니다.가까스로 웃음을 참은 병덕이가 재빨리 한꺼번에 말을 쏟아냈습니다.
"또 한 분의 스님은 까까머리~ 땡중.히히히......,"
"나참,어이가 없어서.대체 왜 그러는 거니? 병덕아!"
이젠 민수가 슬슬 짜증이 나는지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 민수를 보며 조금은 미안하였던지 병덕이가 정색을 하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그 흑룡사에는 연세가 팔십이 넘으신 스님과 열 살짜리 꼬마 스님이 살고 있어.그런데 그 꼬마 스님이 얼마나 웃기는지 아니? 며칠 전에는 바위 위에 앉아서 똥을 싸는 꼬마 스님 엉덩짝을 봤다구.그 뿐인지 알아? 아,글쎄 할아버지 스님이 곡차를 사 오라고 심부름 시키면 자기가 한모금,한모금 마시면서 돌아와서는 할아버지 스님께 술주정을 한단 말이야.히히히......,"
"으이그,내 차암~"
또다시 병덕이의 웃음보가 터지자 민수도 어쩔 수가 없는 듯 피식 웃고 맙니다.그리고는 '병덕이가 본래는 저렇게 성격이 밝은 아이였구나.그동안 너무 외로웠는가 보다.앞으로 내가 친한 친구가 돼 줄거야.'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아침 일찍부터 흑룡사에 왜 갔다 온 거야?"
"사실은 우리 아빠가 그 절에 자주 다니셨어.지금 아빠가 아프신 걸 아시고 스님이 나에게 뭔가 주신다고 하셔서 갖다 오는 길이야.그런데 아침에 가 봤더니 스님께서 급한 일로 외출하시고 꼬마 땡중만 혼자 있더라구.너 그 꼬마 땡중이 얼마나 웃기는지 모를거야.이따가 다시 오라고 했으니 너도 같이 가자."
병덕이가 길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민수는 자기보다 한 살이 어린 꼬마 스님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이따가 꼭 같이 가야해?"
"알았어.어? 그런데 이게 뭐니?"
민수의 같이 가자는 다짐에 기쁜 얼굴로 대답하던 병덕이가,민수가 아직도 들고 있는 세모꼴의 용조각품에 눈이 갔는지 냉큼 조각품을 잡으며 물었습니다.
"응.이것은......,그래서 너에게 보여 주려고 가지고 왔어."
민수는 서울 집에서 용꿈을 꾼 이야기,아빠와 함께 우연히 골동품점에 들렀다가 사게 된 용조각품에 대해서 병덕이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절암산 용굴의 전설과 꿈 내용이 하도 똑 같아서 신기하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민수가 이야기 하는 동안 정신없이 듣고 있던 병덕이는 입을 딱 벌린 채 믿어지지 않는지 말문을 열지 못합니다.
"어,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용굴에서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으니 그것도 참 이상스런 일이야."
"맞아.혹시 그 뱀이 용 새끼가 아닐까?"
"나도 그렇게도 생각해 봤어.그렇지만 용이 진짜로 살고 있을까?"
민수와 병덕이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바라봅니다.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한참 만에 병덕이가 말문을열었습니다.
"이것과 같은 그림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병덕이가 세모꼴의 용 조각품을 두 손으로 요리조리 살펴봅니다.작은 물건이 돌처럼 단단하고 무겁습니다.병덕이는 머리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며 뭔가를 생각해 내려는 듯 고심합니다.그러나 끝내 생각이 나지 않는가 봅니다.
야산자락을 타고 흑룡사를 향해 민수는 병덕이를 따라 나섰습니다.절암산 큰 골짜기 앞에서 용굴가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병덕이가 앞장서서 나아갑니다.신나게 하모니카를 불어댑니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꽅밭에
채송화도 봉숭화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동요도 두 곡씩이나 연달아 불어대는 병덕이를 따르며 민수는 싱긋싱긋 웃습니다.병덕이에게 하모니카를 선물한 것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여간 대견한 게 아닌가 봅니다.
"자,민수야.이제 네가 한 곡 불어봐."
병덕이가 갑자기민수에게 하모니카를 내밀었습니다.엉겹결에 하모니카를 건네받은 민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얼른 어떤 곡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붕붕붕~~~"
민수가 한 발 한 발 쿵쿵쿵 땅에 발을 내딛으며 하모니카를 신나게 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곡입니다.
한참을 듣던 병덕이가 민수를 툭치며 말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곡이니?"
"응.이것은 '승천하는 용의 노래'라는 곡이야.방금 내가 작곡 했어."
"뭐라고!"
"하하하!"
"하하하!"
장난끼 섞인 민수의 대답에 병덕이는 어이가 없습니다.둘은 서로를 툭 툭 쳐대며 시원하게 웃어댑니다.
활기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병덕이를 따르며 민수는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맨 처음에 병덕이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삼촌과 민희누나와 함께 도시에 가서 수박을 팔고 돌아오던 날 병덕이네 집에 들렀을 때,민수와 민희에게 사납고 거칠게 대했던 병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민수와 얼마나 친한 친구가 되었는지 모릅니다.또한 항상 어둡던 얼굴 표정도 밝게 변하였고,사람을 꺼리는 버릇도 없어졌습니다.그런 병덕이가 민수는 좋아서 요즘도 틈만 나면 병덕이와 어울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절 앞에 다다랐습니다.
바위 절벽들이 에워싼 분지 같은 곳에 작은 기와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참 아늑한 곳이라고 민수는 생각하며 병덕이를 따라 절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민수와 병덕이는 작은 절 내를 한바퀴 빙 돌았습니다.법당에도,뒷마당에도,그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스님! 꼬마 스님!"
"......,"
병덕이가 꼬마 스님을 불러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 때 민수의 눈에 띄는 아주 작은 집이 있었습니다.뒤곁 절벽 밑을 살짝 돌아 낭떠러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조그만 기와집 한 채였습니다.
"병덕아,저 집은 어떤 곳이니?"
"맞아! 저 집 안에 용 그림이 있다."
민수의 물음에 그때서야 생각이 난 듯,병덕이는 무릎을 탁 치며 팔짝 뛰었습니다.
"용 그림이 저 집에?"
둘은 뛰었습니다.문 앞에 선 민수와 병덕이는 잠시 난감했습니다.아무도 없는 집 안을 들어가는 것이 께름칙했기 때문입니다.
"어떡하지? 스님들이 안 계시니."
"그럼,얼른 그림만 보고 나오자."
살며시 문을 열고 민수와 병덕이가 집 안으로 들러섰습니다.
중앙 정면에 불상이 모셔져 있는 아주 작은 법당이었습니다.
있었습니다.병덕이가 말한 용 그림이 왼쪽 벽면에 커다랗게 붙어 있었습니다.
"와,저기다!"
"정말이네."
민수와 병덕이는 커다란 용 그림에 그만 멍해지고 말았습니다.구름 사이를 휘돌며 황룡 두 마리와 흑룡 한마리가 뒤엉켜 싸우는 모습이 민수가 갖고 있는 조각품과 똑 같았으며,민수가 꿈 속에서 본 장면과 똑 같았습니다.
"세상에......,"
민수는 순간 뒤통수가 차갑게 느껴졌습니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꿈을꾸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민수는 머리를 흔들어 봤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네 이놈들! 어찌하여 이곳에 들어왔느냐?"
난데 없이 문쪽에서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어느 샌가 문 앞에 할아버지 스님이 서 계셨습니다.
----------------감사합니다.다음회에 뵙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아파서.....)
2013.1.23. 조성덕.
첫댓글 잘보고갑니다,,몸이 다 나아지셔서 다행입니다,
녜.안녕하셨어요?
비오니 날이 푹합니다.
고맙습니다.
즐감
민수의 재치가 여간 아닙니다..ㅎㅎㅎㅎ
감사합니다.수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