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 바보한테 도시락을 싸 달라고 했다.
집을 일찍 나서 범재등으로 물통을 들고 올라간다.
과수 9그루, 어린 황칠 두 그루, 남천 네 그루에 작은 바가지로 물을 준다.
심은 지 한참 후에 찔끔 물을 주며 잘 자라주길 바라는 난 양심불량이다.
시누대 우거진 속 옛샘엔 흙과 낙엽으로 반쯤 메워졌지만 물이 차 있다.
비끼골로 돌아 봉두산을 오르면 좋겠지만 뒷길로 마서 돌아가기도 길이 없다.
마을 앞 벌판의 농로를 걸어가긴 싫지만 마동 앞을 지나 마서로 간다.
회고정 앞의 노거수를 가까이서 보지 못하고 금당으로 걷는다.
하늘은 흐리고 벌판엔 비닐 하우스가 조망을 가린다.
내가 다녔던 대서중학교는 뒷쪽에 흉한 건물을 거느리고 서 있다.
개명으로 건너가는 길에서 대서면소재쪽을 잘 찍어보고 싶은데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우리네 자연은 이제 자연스럽지 않다.
골목엔 생명의 어린 목소리가 사라지고 들판엔 비닐하우스와 전봇대가 가득하다.
개명 안길을 도니 저수지가 나타난다.
2층 회관엔 유모차가 처마 밑에 다 차 있다.
4륜 오토바이 한대는 주차선 위에 있다.
그나마 이 동네는 할머니들이라도 많이 살아 계신가 보다.
제석사 올라가는 가파른 길은 시멘트로 많이 넓어졌다.
걸어오르기 힘들다.
중학교 때 풀 베러 왔던 농장길로 들어서니 남정임도가 싸목싸목길이라고 안내퍈이 서 있다.
누가 이 길을 걸었을까?
칡넝쿨이 하얗게 사그라져 있는 농장길을 오르니 곧 끝나고 나무숲이 가로막는다.
왼쪽을 보니 사람 다닌 흔적이 있어 따라 들어간다.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고 썩어가는 음료수 캔도 보인다.
관일스님의 목소리인 듯한 염불과 목탁소리가 낭낭하게 들려온다.
그 분과 붙어다닐 때도 이제 옛일이 되었다. 사람 참 의리없다.
길은 없다. 나무 사이로 미끌어지며 오르니 칡을 캐낸 구덩이들이 여럿이다.
왼쪽 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이제 멧돼지들이 땅을 파헤쳤다.
그들이 다닌 길이 낙엽사이에 보인다.
짐승의 길을 따라 땀흘려 오르다보니 대밭이 나타난다.
국민학교 떄 소풍오면 정상 아래 한사람이 살았고 그 주변에 대나무가 있었던 것도 같다.
기대를 갖고 대밭을 오른쪽으로 가르며 걸어도 제석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없다.
배가 고프다. 힘이 떨어진다. 아직 한시도 되지 않았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니 갑자기 능선의 등산로가 보인다.
왼쪽에 제석사 매곡리 정상 이정목이 서 잇다.
제석사 가는 길은 또렷하다.
정상족으로 가 바위에 배낭을 벗는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인가 창욱 등 친구들과 추석날 밤에 올라와 씨름을 했떤 무덤은
이제 산딸기가시나무들이 가득 차 무덤의 흔적조차 알기 어렵다.
큰 캔맥주를 마시며 보온통의 비빔밥을 먹는다.
며칠 전 보아둔 사초길을 따라 내려간다.
산딸기가시가 길을 막기도 하지만 풀을 베어낸 자국이 남아 있다.
푸석한 길ㅇ을 열심히 내려가니 황칠나무 심은 개간지가 나타나고 곧 시멘트 임도다.
지난번 내가 올라왔던 길과는 다르다.
사초마을을 지나 조성으로 가는 아스팔트를 걷는다.
봄볕이 따뜻하다. 철길을 건너 정류장으로 가는데 건널목 가로막이 닫히며 떙땡거린다.
기관차에 객차 두량, 화물 한칸을 단 기차가 들어온다.
창문 밖으로 사람의 머리는 두어개만 보인다.
사라져가는 우리네 농촌의 모습을 또 확인한다.
3시 45분 차여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30분 정도에 군내버스가 와 달려가 탄다.
국도의 동네마다 쉬는데 그래도 버스는 빨리도 간다.
보성읍 동윤에서 내려 걸으며 바보에게 도서관에 있겠다고 하며 향교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