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학적으로 크게 하드류, 콘류, 쭈쭈바류, 시모나류의 4대 카테고리로 나뉘는
빙과류 중, 그 격전의 시절 여름철에 주도권을 장악하는 진정한 빙과계의 쟁패자는
이론의 여지없이 쭈쭈바류다.
직육면체 아니면 원통형이라는 하드류의 기본 포맷에 일대 변혁을 가지고 온 하드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죠스바>,
콘류의 맛은 '뜯는곳' 화살표를 따라 살며시 종이포장을 벗겨먹는 맛이라는 남성
중심주의적 고정관념을 일거에 타파한 <빵빠레>,
자칫 결정적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냉/온의 경계를 허무는데 성공한 <붕어빵 시모나> 등,
타 카테고리 출신 간판스타들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도전을 받아오면서도
쭈쭈바류가 빙과계의 권좌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여름철에 빈번하게
발생, 사용자의 의상에 치명타를 입히는 '국물 흐름'이라는 하드류와 콘류의 근본적
결함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를 반영하듯 근래 쭈쭈바류가 이룩해온 일견 눈부셔 보이는 진보과정은, <뽕따바>,
<땡겨바>의 '땡겨따기'에서 <거북알>의 '고무장갑(이라기 보다는 콘돔) 재질
도입'까지 껍디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기능성 향상에만 집중되어 왔다.
하지만 무릇 중요한 것은 쉽게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법.
과거 <서주 아이스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즉석 구강 염색 빙과류'계를 양분했던
쭈쭈바류의 본류 <아이차>와 <쭈쭈바>(이하 <쭈쭈바>로 통일)가 확립한 '쭈쭈바
스피리트'는 단순히 사용자의 의상보호라는 기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쭈쭈바>의 기본 껍디 디자인은, 원칙적으로 도구의 힘을 빌지 않고는 꼭지를
딸 수 없도록 미끈둥하게 설계되어 있음으로써, "아저씨 따주세요"로 대표되는 가게
주인과의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주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판매되던 <쭈쭈바>의 유통구조상,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곧바로 준비물을 깜빡 잊고 학교에 가게 된 아동에게 '외상(또는 가리)'을 허용하는
신용관계로 발전하였다. 즉, <쭈쭈바>의 일견 불친절해 보이기까지 한 꼭지 디자인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대 신용사회에 요구되는 기본적 소양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디자인이, 일부 대가리 좀 굵은 또는 성격 급한 아동으로 하여금
'앞이빨로 물고 돌려 뜯기'를 유도함으로써 치아 차력 단련의 장을 마련하였음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때 합법적 불량식품의 반열에 까지 올랐던 <쭈쭈바>는
사실 음지에서 국민건강 증진의 본의아닌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탱크보이>등이 주도하고 있는 작금의 직경 비만화
경향과는 달리, <쭈쭈바>는 절단이 용이한 슬림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까만색 고무줄로
묶여있던 도루코 연필 깎는 칼을 이용한 자유로운 쭈쭈바의
분배를 촉진한 바, <10원씩 공동투자/한입씩 공동분배>로
요약되는 저예산 간식문화와 향약의 상부상조 정신 계승을
가능케 하였다.
이것이 하드류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부작용인 <한
입만 먹겠다고 해놓구선 전체에 침 떡칠해 버리기>라는
파렴치한 불법 독과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투자할 돈 10원이 뭔지조차 몰랐던, 그러나
<쭈쭈바>의 그윽한 딸기맛은 익히 알았던 극연소자는, 꼭지
부분을 개평으로 분양받음으로써, 경제적 약자가
당해야하는 일방적인 소외를 피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튜브에 바람 집어넣어서
마지막 내용물을 털어 먹고, 그러고도 남은 마지막 국물을 진공 튜브 순환 흡입식으로
빨아먹는 그 마무리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심폐기능은 자연스럽게 향상 되었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쭈쭈바>는 자신의 껍디는 물론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바치며 사용자의
지적, 신체적 향상을 위해 헌신하는 품위와 덕목을 고루 갖춘, 명실상부한 빙과류의
제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위에서 언급한 <쭈쭈바>의 덕목은 모두 사라진채, 단순히
홀라당 깨는 겉모양과 기능상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사이비 쭈쭈바류들이 <쭈쭈바>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다.
도루코 연필칼을 통한 가게주인과의 교감의 기회를 애초에 허용하지 않는, 손으로
기냥 따면 되는 뚜껑의 편리함은 우리의 개인주의적 단절에 다름이 아니다. 도루코
연필칼의 길이로는 턱없이 버거운 그 비대한 직경 아래서, 아무리 코딱지만한
것이라도 나누며 즐거워했던 작은 아름다움은, 그만 짜부가 되고 만다.
심지어는 오토매틱하게 내용물이 뿜어져 나오는 지정꼭지 이외의 어떤 다른 칼집도
허용하지 않는 콘돔 재질의 쭈쭈바마저 등장한 지금, 쭈쭈바류는 더 이상 <쭈쭈바>의
쭈쭈바 스피리트를 계승하기를 포기한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것을.
이에 본지는, 지금까지의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인 쭈쭈바 외형경쟁에서 벗어나,
<쭈쭈바>의 정신 계승을 위한 '<쭈쭈바> <아이차> 부활 프로젝트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을 업체제위에 제안하는 바이다.
그리고, 기왕 한김에, 아웃도어/인도어 가릴 것 없이 어떤 장소에서도 이들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까만 고무뚜껑 달린 '원통 아이스박스'의 부활도 함께 추진하자.
기억하시는가? 허리높이 전봇대 모양의 그 전천후 휴대용 아이스박스를..
이 원통 아이스박스의 부활과 함께, 그의 측면에 아로새겨져 있던, 한 손에
<아이차>를 들고, 그 자세도 경쾌하게 10시 방향으로 고개를 틀어 미소짓고 있는
아이차 아가씨도 함께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 그 옛날, <쭈쭈바> 1/3 조각과 아이차 아가씨의 미소만으로도 우리의 여름은
충분히 즐거웠다.
이제, 그 여름을 돌려다오. 졸라!
- 쭈쭈바 스피리트 계승을 위한 범국민 연대
위원장 겸 딴지 영진공 사무총장 한동원
(sixstrings@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