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지 못하는 오랜지 나무의 노래
가르시아 로르카
나무꾼이여.
내 그림자를 나한테서 잘라내 줘요.
열매 없는 자신을 보는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줘요.
왜 나는 거울들 속에서 태어났죠?
낮은 나를 에워싸 맴돌고
별 많은 밤은
나를 판에 박듯 복사해요.
나는 나를 보지 않고 살고 싶어요.
그리고 꿈꿀 거예요.
개미들과 엉겅퀴 내
잎이며, 새이기를.
나무꾼이여
내 그림자를 나한테서 잘라내 줘요
열매 없는 자신을 보는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줘요.
장석주 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세계 명시 100선 중 098
[작가소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Federico Garcia Lorca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는 20세기 스페인이 낳은 가장 사랑받은 시인. 초등학교 여교사인 어머니와 부자 농군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라나다 대학 문과를 다니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동시에 음악가 마누엘 데 파야에게 기타와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나 곧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고 시에 전념하게 되었다. 스무 살인 1918년 시적인 산문집인 『풍경과 인상들』을 출간하고 마드리드에서 대학 공부를 계속했다. 이때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시인 에밀리오 프라도스, 호세 모레노 비야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1920년 최초의 극작품 「나비의 저주」를 무대에 올리고 실패를 맛 본 뒤, 1921년 첫 시집 『시 모음』을 출간했다. 1928년 『집시 이야기 민요집』으로 스페인 국가 문학상을 받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29년의 미국 여행 체험은 시집 『뉴욕에 온 시인』의 집필로 이어졌다. 스페인 공화국이 수립되자 로르카는 자신의 극단을 조직하고 전국을 순회했다. 연극은 그의 시들 못지않게 대성공을 거두었다. 로르카 자신은 이데올로기를 의식하지 않았고 작품에 특별한 정치색을 입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몇 명이 공산주의자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우익 민병대에 대한 조롱은 내전으로 치닫는 스페인 정세에서 그의 목숨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36년 위험을 느낀 로르카는 마드리드를 떠나 고향 그라나다로 내려갔다가, 내전 발발과 함께 체포된 뒤 총살되었다. “소련의 스파이”라는 죄목이었다. 로르카는 이상하리만큼 인기가 있었다. 특히 그가 『집시 이야기 민요집』을 내고 스페인 국가 문학상을 받으면서부터 인기가 대폭발하였다. 로르카의 비극적 죽음은 그의 시를 미국에서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의 위치로 올려는 데, 그리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막상 로르카의 좋은 시들은 시인의 설명처럼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Federico Garcia Lorca] (해외저자사전, 2014. 5.)
첫댓글
열매 없는 나무
서러움에 우는구나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