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금사 4권 세트를 산 기념으로 올려 봄.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函普)이다. 고려에서 처음 올 때 나이가 이미 60여 세에 이르렀다. 형 아고내(阿古迺)는 불교를 신봉했으며, 고려에 남아 따라오지 않았다. 아고내는 말하기를 “후세 자손이 유능하다면 반드시 서로 만날 것이다. 나는 떠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오직 아우 보활리(保活里)만이 시조와 행동을 함께 하였다. 시조는 완안부의 복간수 물가에 거주했고, 보활리는 야라에 거주했다. 그 뒤 호십문이 갈소관을 태조에게 바치며 귀부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조상 세 분 형제가 서로 헤어져 떠나갔는데, 자신은 아고내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 금사 본기 제1 세기/ 국역 금사 1권 31~33쪽
호십문(胡十門)은 갈소관 사람으로 아버지 달불야는 요나라를 섬겨 태위가 되었다. (중략) 호십문은 족인들을 불러 모아 모의하여 말했다.
“우리의 먼 조상의 형제 세 사람이 함께 고려에서 나왔다. 지금의 대성황제(大聖皇帝)의 할아버지는 여진으로 들어갔고 나의 할아버지는 고려에 남았다가 고려에서 요나라로 귀부하였다. 나와 황제는 모두 세 할아버지의 후예이다.”
시조의 형 아고내(阿古迺)가 고려에 머물렀는데, 호십문이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스스로 아고내의 후예임을 말하는 것이다.
- 열전 4 시조 이하 여러 아들, 종실/ 국역 금사 3권 83쪽
4년(1216년) 2월에 당시 상서성이 보고하였다.
“요동선무부사 완안해노가 말하기를, 참의관 왕회(王澮)는 일찍이 본조(本朝 금나라)가 고신(高辛)을 계승하였으니 황제(黃帝 중국 한족의 전설적인 시조이자 신)의 후예라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조서를 내려 유관부서에 물었고 장행신(張行信)은 보고하여 말하였다.
“시조실록(始祖實錄)을 살피건대 단지 (금나라의 시조가) 고려로부터 왔다고 일컬었을 뿐이고 고신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중략) 왕회가 말한 것을 돌아보건대 다만 광망(매우 잘못된)한 언어일 뿐입니다.”
황제(금나라 선종宣宗)는 그(장행신)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 열전 제 45 장행신/ 국역 금사 4권 214~215쪽
첫댓글 고신은 어느 나라죠??
지식이 부족해서....
중국 한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후손인 제곡 고신씨(帝嚳高辛氏)입니다.
@화염폭탄 아 그렇군여 감사합니다
금사에도~~~
결국 고려에서 금나라가 나왔다는게
공식적인 그시대의 금나라 지도층
당사자들의 생각이군여
@김영일 네, 그런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