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주말도 없이 일하며 잦은 술자리로 부정맥 발병 퇴사 후 장수에 새 보금자리 마련
집 앞 텃밭서 땅콩·옥수수 키우며 건강 되찾으려 자연의학도 공부
건강상담·자연의학 강의 등 재능기부하며 농촌생활 만끽
쉬지 않고 꼬박 일한 햇수가 20년이었다. 이수재씨(57·전북 장수군 계남면 호덕리)는 서울에 있는 대기업의 부장이었다. 소위 잘나가는,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 그의 일터였다. 그러나 뭐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는 법. 그는 저녁도 주말도 없는 회사생활과 잦은 술자리에 자신을 헌납해야 했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부정맥이란 심장 질환을 앓을 만큼 건강이 악화한 것이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빡빡한 일상은 병을 도지게 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인생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었다. 2007년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그대로 살다간 몸이 더 망가질 것 같았어요. 심신의 여유를 찾을 방법을 생각하다 자연스레 시골살이를 떠올리게 됐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작은 밭을 가꾸면서 나름의 수행을 하고 싶었어요.”
회사생활밖에 한 적 없던 그가 작게나마 농사를 지으려면 배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남원에 있는 실상사귀농학교였다. 9주 동안 합숙을 하며 귀농·귀촌에 대한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았다. 그 후 1년 정도 농촌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자리 잡을 터를 찾아 충북 보은과 전북 진안 등 전국 곳곳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장수에 보금자리를 튼 건 인연이 만든 우연 때문이었다. ‘사과 수확할 일손이 부족하다’는 귀농학교 선배의 도움 요청에 장수에 첫발을 들이게 된 것. 이후 이사를 하게 된 선배의 옛집을 사들이게 됐는데, 그곳이 마침 귀농·귀촌인들이 모여 사는 하늘소마을이었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그와는 아무 연고가 없는 고장이었지만 새로운 삶을 펼치기엔 이만한 데도 없었다.
농촌마을에 짐을 푼 그는 집 앞 밭에 땅콩이며 옥수수·고구마 등의 작물을 심고 가꿨다. 흙과 풀을 만지고 땀을 흘렸더니 도시생활에 대한 미련과 잡념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촌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시골살이를 시작했으니 이젠 뒷전으로 미뤄뒀던 건강을 챙길 차례.
그는 자신의 몸을 잘 알기 위해 자연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연의학은 자연철학에 바탕을 둔 동양의학이다.
“귀농학교 동기의 추천으로 경남 함양에 있는 온배움터에서 2년반가량 자연의학과정을 밟고 강사자격증을 땄어요. 몸의 원리를 깨닫게 되니 그간 제가 앓았던 병의 원인은 물론이고 스스로 치유하는 법도 터득할 수 있었죠. 거기에다 꾸준히 요가를 하고, 농사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더니 이젠 아픈 것도 거의 나았어요.”
건강을 되찾은 그는 2013년부터 온배움터 교육생을 대상으로 봄가을 학기마다 자연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장수군귀농귀촌인협의회 재능기부사업의 하나로 지역민들에게 건강상담도 하고 있다.
그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부터 장수군귀농귀촌인협의회 회장직을 맡게 된 것. 앞으로는 지역을 홍보하고 귀농·귀촌인의 교육과 정착을 돕는 데도 부지런히 힘을 쏟을 예정이다.
“노년까지 쭉 장수에서 시골살이를 할 겁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내 역시 시끌벅적한 도시보다 고즈넉한 이곳을 훨씬 좋아하거든요. 예전만큼 돈을 많이 벌진 않아도 직접 키운 농산물로 끼니를 해결하고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며 사는 게 오히려 행복해요. 직접 경험해보니 귀농·귀촌이 꿈처럼 아득한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큰 걱정과 욕심을 접으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죠. 특히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은퇴세대에게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