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 밀직부사와 상호군을 역임하신 밀직공 박수 선조께서
3남 2녀를 두셨다.
장남 문정공 박상충 선조는 1332년생이시다.
차남 판서공 박상진 선조는 1339년생이시다.
삼남 직장공 박상경 선조는 1346년생이시다.
장녀는 안길상공과 혼인하셨다.
차녀는 유백유공과 혼인하셨는데, 목은공 이색 선생의 문인이시다.
여기서 목은공은 평도공 박은 선조의 외숙이시면서 6세에 부친을 잃은
평도공의 강력한 후견인이 되어 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문정공이 1남 1녀를 두셨다.
장남 평도공 박은 선조이시다.
장녀는 김기공과 혼인하셨다.
판서공이 3남 3녀를 두셨다.
장남 군사공 박여항 선조는 생몰연도를 모른다.
차남 현감공 박여위 선조도 생몰연도를 모른다.
삼남 감찰공 박여해 선조도 생몰연도를 모른다.
장녀는 민약손공과 혼인하였는데,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차녀는 이조공과 혼인하였는데, 세종대왕의 스승이셨으며,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삼녀는 고려말의 충신 암탄 이양몽공과 혼인하였다.
직장공이 2남 2녀를 두셨다.
장남 부령공 박좌명 선조이신데 생몰연도를 모른다
차남 문과공 박힐 선조이시며, 1390년생이시다.
장녀는 현감을 역임하신 윤설공과 혼인하였다
차녀는 부사를 역임하신 이종공과 혼인하였다.
이상과 같이 감찰공의 가계를 간략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부터 본 칼럼의 주제인 감찰공과 평도공의 연관성에 대해 분석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다.
당시 감찰공과 평도공이 친사촌형제가 되는 것인데 평도공은 감찰공의
백부이신 문정공의 장남이 되시니 감찰공이 평도공의 사촌동생이 되는
것이다.
평도공의 공식적인 기록은 1370년생이며, 자(字)는 앙지(仰止)이고
1422년 향년 53세로 별세하였다.
이에 비하여 감찰공 같은 경우는 생몰연도를 정확히 몰라서 추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속에 처해 있다.
감찰공의 부친 판서공이 1375년에 귀양을 가시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는데 감찰공은 판서공이 귀양가시기 전에 탄생하신 것을 근거로 하여
필자가 1373년으로 추정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감찰공과 평도공의 연배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본다.
평도공은 동생이 없고 누님만 한분 있었기에 사촌동생이 되는 감찰공과
각별한 관계였을 것으로 추정하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
평도공은 관례를 거행하면서 앙지(仰止)라는 자(字)를 부여받은 반면에
감찰공은 자(字)를 부여받은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덧붙이면 사촌형이 자(字)를 부여받았다면 사촌동생도 당연히 부여받았을
것으로 심증이 가지만 이를 입증하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볼 때 필자가 그리도 찾고 싶어하는 감찰공의 자(字)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줄 수 있는 인물은 바로 평도공이기에
앞으로 평도공의 생애를 추적할 생각이다.
또한 박여해 선조의 유일한 기록인 감찰이란 관직을 제수받게 된 경위 또한
오리무중인데, 이 또한 대사헌을 두차례나 역임한 평도공의 행적을 통해 그
단서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평도공은 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태종과 의기투합하였으며, 1차,2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의 참모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여 3등 공신에 책봉되기도
했다.
태종의 최측근으로서 국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세종 재위시에
설치한 집현전의 수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태종과 관련된 기묘한 일화가 있어서 이를
소개한다.
평도공은 1422년 5월 9일 향년 53세로 별세하셨는데, 놀랍게도 그 이튿날에
오랜 세월 주군으로 모셨던 태종이 승하하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겠으나 조선왕조사에 있어서 왕과 신하가 하루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경우가 흔한 사례는 아니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감찰공의 생애를 복원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평도공이라고 확신하며, 앞으로 평도공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감찰공과 교류하신 흔적이 있는지 여부를 규명할 것이다.
2024년 9월 17일(화) 문 암 올 림.
첫댓글 역사공부 확실히 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암의 칼럼에 좋은 댓글을 올려주신
김성남 첼레스티노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