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된 대로..
하나님께서 남 유다 아사 왕의 기도를 들으시어 구스의 백만 대군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물리쳐 주셨고, 살아남은 자가 없을 정도로 패망케 하셨으며, 더 나아가 블레셋 땅 그랄 사면의 모든 성읍 이방인들까지 두렵게 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따지고 봐도 아무나를 통한 기도 및 간구라거나, 아무렇게나 주신 응답이나 승리들이 아닌 것이고, 결코 맹목적으로 두렵게 할 자들을 두렵게 하신 것이거나 평안케 할 자들에 있어서의 사면을 평안케 하시며 형통케 하신 것이 아닌 것이며, 무엇보다 사실상 말씀을 먼저 강조하지 않고 말씀의 신앙과 분리되며 각성과 자복과 돌이킴이 제쳐 진 기도에 대한 강조는 문제가 될 수 있고 오용될 수 있으며 샤머니즘에 가깝게 되고 이단 사이비들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것인데..
아래 본문의 바로 앞인 역대하 14장 2~7절에서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라고 잘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다른 그 누구나가 아닌 바로 말씀대로 선과 정의를 행했고 말씀 그대로 이방신들의 제단과 산당들, 주상과 우상들을 제거했던 아사 왕, 곧 다시 말해 그 정도까지의 신실하고 치열했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아사 왕의 기도와 전쟁들에 있어서의 응답과 승리들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 여러 모양의 기도의 응답들, 크고 작은 승리들 등을 위시해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면 그 위치와 역할 상 그와 같은 모든 응답과 승리들 등과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에 그 아사 왕과 같은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야 말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응답과 승리들에 크게 합당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응답과 승리들 등과 같은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마다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과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에 다른 그 누구보다 아사 왕과 같이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그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 및 그 누구든지 어떻게 해서든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이름에 있어서도 심히 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및 그 이름과 결부된 여러 모양의 기도들의 응답들에 있어서, 크고 작은 전쟁 같은 일들의 승리들에 있어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하면 말씀의 영이 아니실 수 없는 분인 것이기에 다른 그 무엇보다 아사 왕과 같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인한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 생각 이상으로 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바로 그러한 아사 왕, 진정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아사 왕이라 하더라도 늘 그렇게 깨어 있었고 계속해서 변함없이 승리하는 신앙이었다기보다는 아래 본문 뒤의 역대하 16장 7~10절에서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결코 작을 수 없는 악과 죄와 불신앙들을 범했고, 그로 인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이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며, 사실 그러한 면들에 있어서는 가장 대단해 보이는 믿음의 선배들이라 할 수 있는 다윗 왕도, 솔로몬 왕도, 심지어는 예수님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도 근본적으로 다를 수 없었던 것일 뿐 아니나 실제로 결코 가벼울 수 없었던 죄악들, 심지어는 있을 수 없는 죄악들까지 범하기도 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참으로 그 어떤 인생들이라도, 그 누구라도, 실상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특히 아무리 대단해 보이고 특별한 직분이나 지위나 쓰임들 가운데 있는 자라 할지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한 그 누구라도 인간적인 힘과 세상적인 방법들로는 바로 서기 힘든 것이고, 오히려 넘어지기 쉬운 것이며, 결코 그 자체로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자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날마다 순간마다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됨을 방증하는 것인데..
실제로 이 세상에서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유혹과 시험과 시련들 등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면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해 더더욱 죄악들이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치열해 지고 절실해 지며 뜨거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여호와께서 그랄 사면 모든 성읍 백성을 두렵게 하시니 무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치고 그 가운데에 있는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또 짐승 지키는 천막을 치고 양과 낙타를 많이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역대하14:9~1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5월 17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