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려인마을은 지난 2021년 5월 월곡고려인문화관 개관에 맞춰 고려사범대학 특별전을 개최해 연해주 거주 고려인 교육기관의 흥망성쇠에 대해 관람객들의 많은 관심을 끈 바 있다.
고려인문화관에 따르면,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이전까지 연해주 고려인 거주지에는 380여개의 모국어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 학교들은 수준이나 숫자에 있어서 한반도에 존재했던 교육기관들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 학교들은 거의 대부분 한일합병 이듬해인 1911년 설립되었다.
권업회를 중심으로 한 애국지사들이 후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올바른 지식으로 교육하기 위해 학교 건립에 매진한 결과였다.
또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가 의무교육 시행을 선포함에 따라 학교는 더욱 늘었고 교육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가정의 부녀자들도 저녁에 문맹퇴치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1928년-1933년 사이에 존재했던 고려인 학교 숫자는 일급학교 351개에 학생 수 28,846명, 공장제조소 7년제 학교는 4개교 976명, 9년제 학교는 4개교 700명, 집단농장 청년학교 21개교 3,073명으로 총 학교 수 380개교에 학생 33,595명이 교육을 받았다.
또한 1924년 고려인 문화의 중심지 우수리스크에 3년제 고려사범전문학교가 설립되어 교원을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1931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780명 정원에 4개 학부를 둔 고려사범대학이 정식 개교했다. 이는 당대 명실상부한 고려인 최고의 학문기관이자 세계 유일의 우리 민족 사범대학교였다.
이 학교 졸업생은 교원이나 모국어 신문사기자, 한글 문단의 시인이나 소설가로 일했다. 이들의 노고는 소비에트의 강력한 탄압 속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남아 우리의 모국어를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계통의 삼일여학교를 비롯해 천도교와 대종교 계통의 학교들이 무수히 설립되어 활동했다. 아울러 1937년 강제이주의 절망 속에서 눈물겨운 휴먼 드라마도 생겨났다.
연해주 고려사범대학교는 많은 타민족 교원들이 함께 교육에 참여했다. 이중 타민족 교원 5명의 휴먼드라마가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아끼던 제자들을 차마 버려둘 수 없다’ 며 자발적으로 강제이주 열차를 탔다.
1937년 9월 10일 고려사범대학교 시당 위원회는 학생총회를 개최한 후 연해주 거주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사실을 알렸다. 고려사범대 재학생 역시 25일 강제이주 열차를 타게 된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타민족 교원 중 5명이 한 지리에 모여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 “너희들은 우리의 제자다. 우리는 제자들을 버려둘 수 없다. 우리는 너희와 함께 가겠다.” 고 밝혔다.
이때 강제 이주되는 학생을 따라나선 타민족 교원은 유대인 사범대학장과 러시아어문학박사로 세계문학 및 문학원론을 강의했던 보이찌크 유대인 교수와 그의 아내 러시아어 교수, 수학교수 등 5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식당에서 일하던 러시아인 처녀도 합세했다.
이 처녀는 울면서 “나에게 가장 좋은 인상을 준 백성은 고려인이다. 나도 당신들과 함께 가겠다” 며 따라나섰다.
그들은 가족과 지인들의 눈물어린 만류도 뿌리치고 고려인 학생들과 강제이주 열차를 타고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끝까지 고려인과 함께 살았다.
고려방송: 안엘레나(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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