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검은 하늘에 비가 내렸다. 밤이다 무척이나 짙은.
무슨 마음일까 무슨 생각일까 보이질 않는다, 보여주질 않는다, 보려고 하지 않았다.
비가 계속 내린다. 마음이 푸근해져오는 기분. 내 마음도 짙어진다.
[Nobody Know]
오늘은 참 온 세상이 검었다. 비가 오고, 어두운 내가 사는 세상. 그리고 습관처럼 카페에 섰지만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카페는 없었다. 자주 들렸던 카페인데. 없어졌다는 사실마저 모르고 바쁘게 살아왔던 내 자신. 매일 이 옆을 지나가지만 그 날이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느낀다. 몇 년 전이었는지 날짜에 무감각한 나는 손가락을 들어 세어보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곤 말았다.
언제나 이 맘 때쯤, 하늘은 어둡고, 칙칙한 빗소리가 들려오는 날이면 그날만큼은 꼭 버스 정류장에서 비 떨어지는 것을 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버스가 오면 그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작고 아담하고 예쁜 카페에 들렸다. 그리고 꼭 창가에 앉았고, 그 창가에서 커피나 음료를 시켰고, 그리고 언제나 이 시간에 흘려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으면 다가와 조용히 앞에 앉아 날 지켜봐주던 그 사람. 아니 그것은 단순히 나의 상상일 뿐.
내가 말하려고 하는 그 사람은 아마 나의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그저 밤 같은 세상이 싫어서, 어두운 세상이 싫어서, 그리고 이 어두운 세상에 있을 때 방 안에만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보여서 이 날에 항상 카페에 와서 ‘사람들 구경’을 하다보면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던 그 사람. 그 사람이 내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뭐 구지 따지자면 ‘단정한 외모’ 정도. 항상 앉아있는 모습을 보아온 나였기에 그 사람의 키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사람의 어떠한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길고 긴 손가락을 마음에 들어 했다. 변태 같은 취향일진 몰라도 곧고 고른 그 손가락이 너무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손가락은 그 사람의 분위기마저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은 언제나 감고 있던 눈을 뜨면 언제나 연필을 짚고 무언가 써내려갔다. 나는 그 모습에 끌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언제나 무언가 적어 내려갔다. 매일 같은 시선에 그 사람도 알아차렸던 걸까? 가끔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던 상냥한 모습에 나는 언제나 두근거렸다. 그땐 어렸으니까.
그리고 흔치 않은 어느 겨울날. 며칠 동안이나 어두운 날이 계속되었다. 추운 겨울에 내리는 비. 내리는 눈에 방긋 짓는 하얀 세상이 아니라 짙은 그 날이 계속 되었다.
“안녕하세요.”
마음이 커지고 커져서,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무슨 대답을 해줄까. 마냥 마음이 설레져왔다.
하지만 그는 나의 인사에 조용히 웃어줄 뿐이었다.
“앉아도 되요?”
“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 나직하고 나직한 음성. 우리 둘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둘의 만남도 그리 길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 만났을 뿐이고, 나는 언제나 그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의 앞에 앉아 그 사람이 하던 ‘끄적끄적’을 마냥 지켜볼 뿐이었으니.
기다란 선이 다섯 개. 그리고 검은 콩나물들. 그리고 적어 내려가는 가사.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그저 그 사람이 ‘작곡가’나 ‘작사가’가 아닐까 대충 짐작하는 정도다. 매일매일 그는 적어 내려갔다. 무언가를 열심히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나는 그저 그런 그의 모습이 왠지 좋아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말이 많은 내가 지켜보기만 한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었지만 빗소리와 함께 보이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날 묵묵히 지켜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를 따라 눈을 감아버렸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날의 빗소리와 그날의 하늘을 잊지못한다. 그날의 빗소리는 그날따라, 아니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감미롭게 다가왔다. 꿈꾸는 듯한 기분, 아마도 그 사람과 함께여서겠지 나는 눈을 감고 들려오는 연필소리와 빗소리의 어우러짐를 듣고 있었다.
그날따라 왜이리 난 감상적이었던걸까.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환상’이 아니란 걸 알게 해주는 건 단지 나의 앞에 있는 몇 장의 악보.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조용히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그 날 이후로 어두운 날에도, 밝은 날에도, 비가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악보를 쳐보고 싶어서 피아노 연습을 거듭했다. 그의 악보는 왠지 어려워보였거든.
하지만 정말 어리석은 나는 피아노를 배웠음에도 그 악보를 쳐보지도, 그 악보의 가사조차도 되짚어볼 수 없었다. 그 노래의 제목이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에 고이 접어두고 싶었다, 꿈만 같은 며칠의 나날들. 대화 없는 우리 둘이었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대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어떤 곡인지도 모르는 악보지만, 그의 악보를 볼 때면 언제나 눈물이 나왔다. 보고 싶기도 하고, 악보만으로도 그의 다정함과 긴 손가락이 떠올라서. 제목을 볼 때면 나름 소중한 첫사랑을 소중이 간직하고 싶어서. 어릴 적 내 아름다웠던 그 사람.
‘Nobody Know’
첫댓글 잘봤습니다. ^^
아무도 모른다라는 뜻인가요? 조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