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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내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는 딱 한곳. 명문 고등학교.
중학교 2학년서부터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내신 성적을 좋은 쪽으로 쌓아뒀다.
그 덕분에 좋은 성적으로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 할 수 있었다.
다른 고등학교에 비해 가기 어려운 곳이라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는 헤어져 새 학기,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나랑 연애 해 보자.”
여태껏 남자 한 명 사귀어 보지 못 한 내가 딱히 고등학생 때 남자 친구를 사귈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저 아이의 이름이 ‘강승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눈동자를 굴려 강승현을 올려다보았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얼굴.
그 얼굴이 지금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왜?”
연애생활이라….
“넌 남자 안 사귀어 봤을 것 같아서.”
그것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 한 내게 찾아 온, 호기심이라는 조금 특별한 녀석.
“좋아. 우리… 연애 해 보자.”
그것은… 17살의 내가 시작한 조금은 위험한 연애.
너의 시선 끝에…
W. 상사화、
“우린 3년 내내 같은 반이네?”
3학년 반 배정을 받은 승현이가 내게 한 말인 듯 했다.
… 아닌가? 내가 한 말인가? 아, 맞아. 내가 한 말이었다.
승현이는 내 말에 맞장구를 쳤었지.
“그러게. 그것도 짝꿍이야.”
승현이와의 연애는 즐거웠다.
이제는 학업에 충실해야 해서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 조금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이미 애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연인사이라는 사실이 떠돌아 다녔으니까 굳이 교실에서 반 친구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승현이와 사귄지 2년하고도 7개월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마주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하교를 했다.
아무런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딱히 우리 둘은 어색하지 않았다.
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고, 불편함이 아닌 편함을 느끼니까.
“넌 어디 대학 갈 거야?”
조용한 적막을 깨고 내게 물어온 승현이의 질문이었다.
그의 질문에 “음….” 조금 시간을 끌었다.
대학? 그러고 보니 이제 수능도 얼마 안 남았구나. 4달은 남았을까?
“글쎄? 너와 같은 대학 갈까?”
승현이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럴까? 너와 나는 성적이 비슷하니까 같은 대학에도 갈 수 있을 거야.”
“모의고사 성적이 안 나오는데 내가 너랑 같이 갈 수 있을까?”
내 손을 잡은 승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 불안하면… 내가 너에게 맞춰서 대학원서 쓰면 되지.”
그의 대답에 쿡쿡 웃었다. 왜 웃냐고 묻는 승현이의 말에 작게 답했다.
“그냥…. 너랑 같은 대학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3년처럼 너와 또 같이 생활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서.”
나의 질문에 승현이는 아무 말 없이 또 한 번 내 손을 꽉 잡았다.
… 그래. 우린 이렇게 행복하면 되는 거야. … 그래. 우린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면 되는 거야.
“너네 되게 오래 간다? 그런데 그거 아냐? 고등학교 때 사귀던 애들은 대학가서 깨진대.
뭐, 다른 학교가 이유가 되겠지만 같은 학교 가는 애들도 깨진다는데?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솔직히 그렇게 오래 사귀면서 한 번 도 안 싸운게 말이 되냐? 서로 좋아하긴 하냐. 뭐, 내 생각이야. 신경 쓰지 마.”
반에서 꽤 친한 친구의 말을 그때는 흘려들었는데 집에 오니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그가 질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옆에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고, 편했다.
하지만,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어디 아파?”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다.
이게 질린 것이 아니면 대체 뭐지?
두근거림이 없다. 그저 그렇다.
“아니. 어제 잘 못자서 그래.”
“어쩌다가. 1교시 자습시간이니까 그때 조금만 자.”
“응. 그래야겠어.”
이제는 익숙하게, 당연한 듯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승현이의 손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승현이의 손이 닿는 곳이면 불에 덴 듯 뜨겁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 그래, 아니다. 아니겠지 승현아? 나는… 난 여전히 널 사랑하는 거겠지?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다.
아니라고 계속 부정해도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하는가 보다.
난… 이상하게도 승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 승현이와 사귀기 시작한 것은 호기심이었지.
규현이와 같이 있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그가 그저 친한 동성 친구처럼 편했기 때문이었고.
그가 날 만졌을 때 불에 덴 듯 뜨거웠던 이유는…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어.
그와 키스를 하면서 설렜던 그 기분은… 그것 역시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너 왜 나랑 대학이 틀리지?”
“… 미안, 승현아. 내가 가고 싶은 과 때문에 너랑 다르게 썼어.”
“그래. 하긴. 나 때문에 네가 네 꿈을 포기하는 것은 영 그러니까.”
미소를 짓는 승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미안, 승현아. 나… 너랑 같은 대학 갈 자신이 없다. 졸업을 하고나서 네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새 하얀 하늘에서 새 하얀 눈이 내리던 그날. 명문 고등학교는 제 56회 졸업식을 맞이했다.
졸업식을 마치고 승현이에게 다가갔다.
승현이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도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 얘기가 있어. 밖에서 좀 나눴으면 해.”
내 목소리가 너무 어두웠을까. 승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내게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승현이의 시선을 피했다.
도저히 저 아이의 얼굴을 바라 볼 자신이 없다.
운동장 옆에 있는 벤치위에 쌓인 눈을 탈탈 털고 그 위에 앉았다.
우리 둘은 늘 그렇듯 아무런 말없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 우린 언제나 말이 없었다.
… 우린 언제나 서로의 기척으로 시간을 보냈다.
… 우린… 그저 서로가 옆에 있으면 편했을 뿐이었다.
… 우린… 연인이 아닌 친구가 더 잘 어울렸다.
“승현아.”
“응….”
“나….”
“응.”
“너랑 다른 대학 쓴 이유. 과 때문이 아니야.”
“…….”
“너랑… 같은 대학에 갈 자신이 없었어.”
날 바라보는 승현이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굳이 나 역시 고개를 돌릴 필요를 못 느꼈다.
아니, 승현이와 눈을 맞출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꿋꿋이 하얀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승현이가 교실에서 내게 연애를 하자고 말을 꺼내던 그날 역시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지….
“사랑하지 않는 너와 함께 같이 할 자신이 없었어….”
“…… 한마음.”
“미안해. 대학이 다르니까 서로를 빨리 잊을 수 있을 거야.”
“…….”
“우리 사랑은… 그저 한순간의 호기심이었어.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러길 바랄게. 그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현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슬쩍 그를 바라보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굳은, 차가운 그의 눈동자와 짧게나마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안녕.”
내 말을 끝으로… 승현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3년 동안의 연애를 끝마쳤다.
… 그래. 우리는… 이러면 되는 거야. 우리는 그저 짧은, 한순간의 호기심이었어.
우연찮게 대학교에서 중학교 동창생을 만났다.
고등학교 때도 종종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었는데 이렇게 같은 대학이었을 줄이야.
그 친구와 같이 지내면서, 그 친구의 친구들과 새로 인연을 갖으면서 나는 승현이를 완전히 잊은 줄 알았다.
… 아니, 나는 완벽히 그를 잊었다. 가끔씩 떠오르기는 해도 그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립다면 그것은 그저 고등학교 동창생을 그리는 마음이랄까?
그렇게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를 잊은 듯 했다.
아.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한테 가끔씩 승현이의 안부를 듣고는 했는데 그도 잘 지내는 듯 했다.
그래, 다행이다. 나만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게 나의 대학 생활은 물 흘러가듯 빠르게 흘러갔다.
“으악! 지각이잖아?!”
28살의 한마음.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 준비를 했고, 오랜 준비 끝에 대 기업 중 하나인 J기업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서다.
그래, 그건 좋다. 센 곳이긴 하지만 월급도 잘 나오고 사람들도 좋다고 하니까.
그런데 출근 첫 날부터 지각하는 건 대체 뭐하자는 거지.
개인차가 없는 관계로 택시를 타고 출발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생활 때 면허라도 따 놓을 걸 그랬나.
7,50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자동 회전식 문이 눈에 들어오자 온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덜덜 떨고 있는 다리를 진정시킨 후 건물 안에 들어섰다.
그래, 한마음.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지각을 해서 조금 꾸중은 들었지만 그렇게 심하게 혼나지는 않았다.
아마, 처음이라서 그러는 것 같았다.
신입사원인 내가 맡은 임무는 전화와 함께 잦은 임무였다.
택배가 오면 내가 1층 로비에서 그 택배를 받아 각 주인에게 돌려주고, 서류 복사라던가 하는 아주 사소한 잡일이었다.
회사 직원들 역시 내게 잘 대해주었다. 금세 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오전에 나름 잡일을 하고 난 후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디를 가도 점심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마음씨, 명문 고등학교 나오셨다고 했죠?”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쩌다가 각자 나온 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자연스레 난 명문 고등학교라고 했고,
또 다른 주제로 넘어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은 사무실의 동료인 여직원 한 명이 내게 다시 되 물었다.
그렇다고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왜 그러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 전무님도 명문 고등학교 나오셨어요.”
“아, 맞아. 나도 그렇다고 들었어.”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맞장구를 쳤다.
명문 고등학교라.
“지금이 28살이니까 마음씨랑 같은 동창이겠다.”
호기심이 갔다.
누굴까? 내가 아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말이지.
“전무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아직 마음씨 이름 모르나? 전무님 성함이….”
여직원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서 날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옆자리인 같은 신입시원인 유리나씨였다.
“마음씨! 나 이거 좀 도와줘요!”
“어후, 알았어요! 저 그럼 먼저 갈게요. 다들 커피 다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
손에 들린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단번에 들이키고는 리나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언가 하고 보니 서류를 각 직책마다 나누는 것이었는데 혼자서는 무리여서 날 부른 듯 했다.
이 많은 서류를 혼자서 어떻게 다 하겠어. 나라도 도와서 빨리 끝내야지.
“고마워요, 마음씨.”
“뭘요. 같은 신입사원인데 서로서로 돕고 살아아죠.”
내 대답에 리나씨는 조만간 밥 한 끼 사겠다고 말을 했고, 이 작은 일로 밥을 얻어먹기에는 좀 그런 것 같아서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기어코 사주겠다는 리나씨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내일 점심시간으로 약속을 잡고야 말았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직원들 모두 각자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한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볼펜을 돌리며 시계의 초바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는데 회의에 늦은 듯
다급하게 뛰어가던 우리 팀 내 부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를 했다.
“마음씨. 나 지금 회의에 늦어서 빨리 가야하는데 이 서류 들고, 전무님한테 좀 가주겠어?”
“네? 제가요?”
“그래. 서명만 받는 거니까 마음씨가 가도 상관은 없어. 그럼 부탁할게.”
내게 노란색의 파일철을 던지듯 맡긴 후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부장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내 노란색 파일철을 들고 전무가 있을 사무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 문득 점심시간 때 들은 여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전무. 그러고 보니 성함을 못 들었네.
엘리베이터를 내려 불빛으로 반짝이는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이 전무는 좀 특이하네. 사장실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말이야.
노크를 하자 안에서 누구냐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영 팀, 최부장님 대신 결재 받으러 왔습니다.”
안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잘 못 들었나하는 생각에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전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감미로운 목소리. 어딘가 익숙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전무라는 사람은 의자에 앉아 내게 등을 보인 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까지도 전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순간 이 사람의 이름이 궁금해서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이름 팻말을 바라보았다.
[ J기업 전무 강승현 ]
강승현… 설마 그 강승현?
“결재를 받으러 온거면 그 파일철이나 주지?”
그의 목소리에 퍼득 정신을 차리고는 바라보았다.
졸업식 날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그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 죄, 죄송… 합니다.”
조심스레 그에게 파일철을 건넸다.
내게서 파일철을 받고 그 안에 있는 새 하얀 A4용지에 인쇄되어 있는 까만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던
그가 까만 펜을 들어 맨 아래에 서명을 한다.
강승현이라고 이름을 적는 그의 필기체는 고등학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멍하니 그의 필기체를 바라보다 흠칫 거렸다.
난 아직도 이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어. 승현이는… 날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자.”
파일철을 받아들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가지 않는 내가 거슬리는지 나를 올려다본다.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고, 매섭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네? 아, 아니… 아무것도. 그럼.”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사무실을 나왔다.
문을 닫은 후 발을 질질 끌며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도 누르지 않고 멍하니 서있기를 한참.
“안 내려 갈 건가?”
익숙한 목소리와 내 옆으로 뻗어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는 긴 팔을 바라보다 그 팔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강승현 전무였다.
“아.”
“뭐, 여기 있으려면 계속 여기 있던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그를 바라보다 나도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가 피식하고 웃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가 그의 웃음에 신경을 쓸 만큼 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긴장한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 문에 비춰지는 그를 흘끗 바라보기를 한참. 승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입사한지는 얼마나 됐지?”
“아. 저. 오늘이… 처음이에요.”
“처음이라… 그럼 신입사원?”
“네, 네.”
“그래….”
또 한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서로가 아무런 말이 없어도 오히려 그런 점까지 편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불편하다.
지하를 뚫고, 맨 바닥까지 내려 갈 것 같은 엘리베이터가 3층에 머물렀다.
그가 내려야 할 층이었다.
“그럼.”
“아, 안녕히 가세요.”
“이번 주 회식자리에서 보자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승현이와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그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차가운 눈동자가 아니었다. 그 눈동자는….
“…아.”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허나 내 손 끝에 닿는 느낌은 차가운 쇠의 엘리베이터 문.
“슬픈… 눈동자.”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향했다.
1층 로비에서 택배를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와 택배 주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잠깐만, 마음씨.”
“네? 왜요?”
점심시간 때 같이 커피를 마시던 여직원이었다.
“지금 바빠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왜요?”
“아까 들어보니 최부장님 대신 전무님한테 서명 받으러 갔었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어머, 그럼 전무님 만났겠다!”
“어때요? 아는 사이였어요?”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아. 난… 승현이를 뭐라고… 무슨 관계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아니, 그냥 아는 체 해도 되려나?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반이 달랐나? 아는 얼굴이 아니였어요….”
나는 겁쟁이였다.
나는 또 한 번 승현이에게 죄를 지었다.
“전무님은 어떤 사람이세요?”
내가 J기업에 입사한지 3일이 되었다.
여전히 즐거운 점심시간.
이제는 어느 정도 친해진 직원들과 리나씨와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가는 그 시각 어떤 여자와 함께 건물을 나서는 승현이를 떠올라서 여직원인 서하라씨에게 물었다.
하라씨는 나의 질문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후후 웃었다.
“전무님이요? 전무님은 저 같은 여성분들에게 말 그대로 백마 탄 왕자님이죠.”
“…….”
“전무님이 이 회사 회장님의 손자라는 것은 알고 계셨어요?”
“네? 아니요. 처음 들어봐요….”
잘 산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여기.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J기업의 손자라니.
고등학교 연애를 할 때에 승현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은 많아도 내가 그의 집에 놀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여튼. 무엇하나 빼먹는 분이 아니죠. 나이도 아직 젊고, 여자 친구도 안 계시고.”
“여자 친구가 없다고요?”
“네. 왜요?”
“아니. 아까… 어떤 여성분과 밖에 나가는 것 같아서….”
나의 말에 하라씨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녀의 옆에 있던 세연씨도 한숨을 내쉰다.
왜 그러지?
세연씨가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아 완벽한 그는 나쁜 남자.”
“그게 무슨….”
“말 그대로요. 아. 순진한 마음씨를 위해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동경의 대상인 강승현 전무님은 바. 람. 둥. 이.”
바람둥이… 바람둥이… 에엑? 승현이가?!
“에이, 설마요….”
옆에서 하라씨가 혀를 차며 손가락을 내젓는다.
“마음씨가 아직 전무님의 실체를 몰라서 그래. 오늘 여자랑 나갔다고?
그거 분명 마케팅 팀 내 사람일거야. 내일 봐라. 분명히 여자 또 바뀌어있다고요.”
“…….”
“소문에 의하면… 우리 회사 내에서 전무님이랑 잔 여자가 한 둘이 아니라고….”
끝없이 말 하는 세연씨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라씨와 세연씨, 그리고 리나씨 외에 다른 직원들이 날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저. 먼저… 갈게요. 그럼 나중에 봬요.”
내 이름을 외치는 리나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못 들은 척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2층 휴게실에서 나와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아무도 안 올 비상구에 가고 싶었다.
계단에 앉자 차가운 복도의 느낌이 엉덩이에 느껴졌다.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저도 모르게 자꾸 한숨이 나온다.
승현이를 떠오르니 자연스레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아, 그래. 그래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었지.
“잠깐, 잠깐만 승현씨.”
그래. 잠깐만 승현… 응? 승현씨?
인상을 찌푸리고는 발소리를 죽이고는 계단을 두 칸 내려갔다.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 보니 맙소사.
하얀 벽에 양 팔을 짚은 채 서 있는 승현과 그의 팔 안에 있는 긴 생머리의 여자.
아까 점심시간에 같이 나갔던 여자와… 다르다?!
승현이와 여자의 얼굴이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고, 내 입에서는….
“으득.”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흠칫 놀라 난간에서 물러섰고, 놀란 가슴 진정 시키고 다시 내려다보니 승현이는 벽에서 물러나서 삐딱하게 서 있었고,
여자는 비상구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자와 승현이가 떨어져 있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승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굳은 나의 표정을 본 듯 그가 피식 웃는 것이 보였다.
승현이 역시 비상구를 나섰다.
“이렇게 몰래 훔쳐보는 취미가 있을 줄이야.”
라는 말을 남기고는….
내가 여기에 입사한지 6일이 지나 오늘은 황금 같은 토요일이 되었다.
“마음씨, 오늘 회식이 있데요!”
“아. 그러네요.”
저녁에 있을 회식이 기대되는지 리나씨는 아까부터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
회식. 그래, 오늘 회식이 있구나.
3일 전 비상구에서 우연히 승현이를 만나고 나서 그 후 승현이와 만나기가 어려웠다.
아니, 만났어도 그냥 형식적인 인사였을 뿐.
그 이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려웠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를 피하는 거였지만.
2일 전 퇴근을 하려는 승현이를 만나기 위해 그의 차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15분쯤을 기다리다가 그를 만날 수 있었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강승현 전무님. 저… 전무님과 같은 명문 고등학교 나왔는데…. 저 기억 하세요?’
‘…… 글쎄. 잘 모르겠는데. 같은 고등학교라. 그것 참 우연이군.’
나를 기억 못 했다.
아니, 그건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는 채 하지 않았다.
하긴. 내가 그런 말로 이별을 한 후 말없이 떠났는데.
그 때문에 내가 대학도 다른 곳으로 갔는데…. 날 좋게 볼 리가 없지.
기어코 회식 자리가 되었다.
도저히 승현이와 마주앉아 밥을 먹을 자신이 없어서 빠지겠다고 하니까 모두들 날 붙잡는다.
“신입이 어딜 빠져!!” 라고 외치는 그들은… 무서웠다.
우선은 갈비 집으로 가서 배를 채웠다.
숱하게 오고가는 고기들과 회식 자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술.
술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아주 곤혹이었다.
그래서 대학생활 MT때에도 술을 거부했었는데.
지금은 뭐, 거절 할 수도 없고….
맥주를 마시면서 흘끗 저 멀리 앉아있는 승현이를 바라보았다.
여직원들 사이에서 아주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래, 아주… 즐겁다는 듯이.
순간,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건 나의 착각인 듯 정신을 차리고 보면 승현이는 옆에 여직원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 가슴이… 아프다.
“어디가, 마음씨?”
“아. 잠시… 화장실 좀….”
차오르는 술기운을 감당하지 못 해 화장실로 왔다.
붉어진 얼굴에 화장실로 오자마자 찬 물을 얼굴에 껴 얹었다.
그나마 술기운이 가라앉는 듯 했다.
화장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바람 좀 쐴 겸 밖으로 나왔다.
“후우.”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다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
“강, 강승… 아니, 전무님.”
내 뒤 벽에 기대어 선 승현이가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왜….”
내 물음에 그는 아무런 말없이 주머니에서 담배 곽을 거내 들었다.
아. 담배 피러왔구나…. 고등학교 때 내가 피지 말라고 한 거… 그거 잘 지켰으면서. 하긴. 지금은 남이니까.
그를 지나쳐걸었다. 가게로 들어가기 전 승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 못 마시면서. 많이 마시지 마.”
…… 너도… 날 기억하고 있는 거 맞지?
“2차 가자!”
“꺅! 최부장님이 쏘는 거 에요?!”
“에잇. 까짓 거 내가 쏜다! 전무님! 2차는 제가 쏠 테니 같이 갑시다!”
“그래요, 그래요. 마음씨도 가는 거지?”
“아. 뭐….”
까짓 거. 입사하고 나서 첫 회식인데 끝까지 즐기지.
“저도 가죠, 뭐.”
“좋아요. 전무님은?”
“… 저도 가죠.”
몇몇 사람들이 빠지고 30명의 인원 중, 22명이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2층과 3층을 같이 운영하는 이 주변에서는 꽤 유명한 호프집이었다.
둥근 탁자로 6명씩 3테이블, 한 테이블에는 4명이 앉아 술을 시켰다.
승현이와 나는 한 테이블을 남겨두고 따로 떨어져 앉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 승현이와 나는 어색하니까.
한참을 무르익어 갔을까…. 아마, 호프집에 1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았다.
“꺅!!”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술자리와 서로 놀기에 바쁘기에 그 목소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예외였다.
허나, 머지않아 다른 사람의 비명소리 또한 들려왔다.
“으악!”
“불이야!”
우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도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불을 피하기 위해 밖으로 빠져나가 정신이 없었을 때였다.
나도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술기운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 그래, 사람들 다 빠져나가서 나도 나가면 괜찮겠지. 연기도 없고, 아직 불도 없으니까 시간은 충분 할 거야.
허나, 그것은 나의 커다란 실수이자 착각.
“콜록. 콜록.”
연기가 호프집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손으로 입을 가려 최대한 바닥에 주저앉아 눈동자를 굴렸다.
아직 빠져나가지 못 한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나가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아아. 괜한 힘 소비하지 말자. 지금쯤 소방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겠지.
“콜록. 콜록….”
연기에 이제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 승현이가 보고 싶어. 승현아… 강승현….
한 번만.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 이름을 불러줘….
“한마음!”
그래. 그렇게 날 불러줘… 어? 한마음?
눈물로 앞을 가린 시야를 옷소매로 훔치니 시야가 잘 보였다.
그리고 내 눈에는 저 멀리 다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승현이가 보였다.
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승현이가 와 줬어…. 승현이. 나의 강승현.
“하, 한마음!”
날 발견했나보다.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오는 그 순간에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니까.
내게 다가온 승현이는 내 손목을 잡고 날 일으켰다.
많이 들이킨 연기로 현기증이 일어나고,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인 내 어깨를 감싸 걸음을 옮겼다.
내 어깨에 닿은 따뜻한 승현이의 손.
그의 체온. 난… 역시 이 사람이 그리웠었어.
쾅! 쾅!
화재로 무너져 내린 지붕이 비상구 문을 막았다.
창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빠져나가기는 글렀다.
연기는 점점 이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승… 승현아….”
“마음아. 마음아, 정신 차려. 정신 잃으면 안 돼. 콜록.”
주위를 둘러보던 승현이 날 이끌었다.
날 바닥에 앉힌 승현이는 의자를 가져와 내 주변에 쌓아, 최대한 연기가 들어오지 않게 했고,
겉옷을 벗더니 사람들이 시킨 얼음물로 자신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젖은 옷을 내 머리 위로 덮더니 그대로 날 끌어안는다.
“승현아….”
“마음아. 넌… 넌 무조건 살아야 해.”
“… 놔. 이거 놔! 승현아. 너도… 너도 빨리. 너 이러면 연기 마시잖아! 제발… 흑. 제발, 승현아….”
이러지 마. 왜 내게 이러는 거야? 왜… 왜 계속 날 모른 체 하지 않은 거야?
왜… 왜 나를 살리려고 하는 거야? 살아도 같이 살자. 응? 너도, 나도.
나 예전에 너한테 잘 해주지 못 한 거… 그거 너한테 다 해주고 싶단 말이야.
난 네가 그리웠었어. 승현아… 강승현….
사랑해.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너를 잊었다는 것은 다 거짓이었어.
“너를 잊었다는 것은 다 거짓이었어.”
이렇게나 너를 사랑하는데….
“이렇게나 너를 사랑하는데….”
한 순간이나마 널 잊어서 미안해.
“한 순간이나마 널 잊어서 미안해.”
정말로….
“정말로….”
강승현 너를 사랑해.
“한마음 너를 사랑해. 사랑해, 마음아.”
사랑해, 승현아.
화재사건은 정작 1시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진압되었다.
호프집에서 빠져나가지 못 한 29명의 사람들은 모두 질식사로 사망.
아니, 그 29명 중 단 한 여성만이 생존.
그녀는 한 남자의 품에 있었으며, 그녀는 젖은 옷으로 입과 코를 막아 그나마 연기를 덜 마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연기를 마신 덕에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그녀는 화재의 충격이 컸는지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창문 밖으로 보며 ‘강승현’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댔다.
“마음씨.”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던 마음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리나는 야위어진 마음의 얼굴에 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가오는 리나를 바라보던 마음은 그녀가 가까워지자 작게 중얼거렸다.
“리나씨….”
리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마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음씨! 저 알아 보겠어요? 저 유리나예요. 알겠어요?”
마음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흐느낌이 세어나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음씨…. 다행이에요. 정말… 정말…난 그 화재사건에서….”
기어코 눈물을 흘리는리나를 바라보던 마음이 손을 들어 리나의 눈가를 훔쳤다.
햇빛을 받지 않아 타지 않은 그녀의 하얀 손이 리나의 얼굴에 닿았다.
리나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힘겨운 듯 입을 열었다.
“리나씨. 전무님…. 강승현 전무님…. 우리 승현이 어떻게 됐어요?”
“아. 전무님은….”
“승현이…. 우리 승현이… 나의 승현이…. 어떻게 됐어요? 네?”
리나의 눈가에 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무님… 마음씨를 구하기 위해서….”
“…….”
“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마음씨 단 한명 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마음이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하얀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리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두 눈을 떴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마음이 입을 열었다.
“강승현. 나의 승현이는 말이죠. 눈이 내리던 날 내게 말 했어요. 우리 연애 해 보자고.
연애를 한 번 도 해 보지 못 한 저는 호기심에 승낙했죠. 저희는 17살에 해서는 연애를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그 순간까지 저희는 연애를 계속 했어요. 서로가 같이 있으면 즐겁고, 편했어요.”
“…….”
“전 어리석었어요. 승현이가 주는 사랑에 너무 익숙해져서. 제가 그 아이를 버렸어요.”
“…….”
“같은 대학에 가자고 약속했는데 제가 먼저 깼어요. 그 아이를 피해서 다른 대학에 갔고. 졸업식 날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렇게 8년을 지내다가 회사에서 승현이를 만났어요.
기뻤는데… 그건 그냥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향한 마음인 줄 알았어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난… 그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거 에요. 난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
“이제야 알게 됐는데…. 흑. 승현이를 향한 내 마음… 이제 알았는데.”
“…….”
“사랑한다고 말하는 승현이에게 나도 사랑한다고 말 했어야 했는데….”
“마음씨….”
“그 아이의 시선의 끝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는데 왜 전 그것을 몰랐을까요.”
너의 시선 끝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는데 난 왜 그것을 몰랐을까….
그런 승현이는… 왜 제 옆에 없는 걸 까요.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
하얀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청하던 마음이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마음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실내화를 신지 않은 맨발로 차가운 병원 바닥 위를 걸어 비상구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한 마음은
자신의 까만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옥상을 걸어가 난간에 도착한 마음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가로등과 몇몇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세상이 까맣다.
난간을 넘어 옥상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선 마음이 까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11년 전 그 시절이 떠오른다. 미소를 지은 마음이 두 팔을 양쪽으로 올려 발을 한 발 내딛었다.
그녀의 몸이 끝도 없는 어둠으로 추락한다.
‘한마음. 나랑 연애 해 보자.’
‘좋아. 우리… 연애 해 보자.’
너의 시선 끝에
The End
전... 사실 해피엔딩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사실... 이 단편은 'Twins'보다 먼저 쓴 거라..(비록 늦게 올렸지만)
뭐.. 이미 정해놓은 결말을 바꿀 수는 없었잖아요?-▽-
나는햐 해피엔딩을 사랑하는 싸람.
첫댓글 안타깝긴해도.. 결국 둘은 행복해졌겠죠???ㅜ 이런식의 해피엔딩은 안좋아하는데.. 잘봤습니다~!!!
: 사실 이게 세드엔딩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을 바탕으로 쓴 거라서요.. 저도 이런 식의 엔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ㅠㅠ 마음이와 승현이는 어디선가(..)만났을거예요 ㅎㅎ..
아우ㅠㅠㅠㅠㅠㅠ어떻해요 재밌게 봤습니당~~>ㅡ<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제 소설을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