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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 세계화 시대에도 인간 정신과 문화는 단일하지 않다
얼마 전엔 유명한 모델이 거식증에 걸려 죽은 일이 화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고 현대사회에 만연한, 비만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와 날씬한 몸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사건으로 정리했다. 1994년 11월 홍콩에서도 한 소녀가 음식을 거부하다가 죽었다. 그 소녀도 같은 이유로 음식을 거부했을까? 저자는 소녀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서양의 거식증 개념이 중국 문화의 심층에 깔린, 자발적 기아의 미묘하고 특이한 형태들을 덮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식사 거부 이면에 놓인 구체적인 문화적 의미를 살피고, 정신질환 증상들이 특수한 시대, 특수한 장소의 문화와 믿음이 빚어내는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가부장적 문화와 서양적 가치 들이 혼재하던 홍콩에서 음식 거부란 청소년이 주변 사람들에게 조난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불명확하거나 꼭 집어서 표현할 수 없어 암담한 감정과 내면의 갈등을 그 문화에서 고통의 신호로 인정받고 있는 증상이나 행동으로 증류시켜낸다. 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당대의 의학적 진단과 일치하는 증상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1990년 중반, 홍콩에서는 주권 반환 시기, 불안한 홍콩에서 거식증은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시대의 변화 앞에 놓인 청소년들의 사회적 스트레스는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사춘기의 성격조차 변한 것이다. 그렇듯,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방식으로 거식증이 생겨나고 호명된 것이다.
역사상 다른 어떤 시대라면, 괴로움을 겪는 10대 소년들은 다른 무의식적 행동을 통해 내적 고통을 표현할지 모른다. 그러나 1994년부터 홍콩 문화에는 새로운 믿음이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거식증을 젊은 여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표현하는 타당하고 극적인 방법으로 묘사하는 모든 신문기사, 잡지논평, 텔레비전프로가 그 결론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67쪽)
저자는 또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일본에서 벌인 우울증 마케팅을 조사하면서 우울증에 관한 일본인의 태도가 미국인과 달랐음을 보여준다. 즉 그동안 일본인들은 우울 상태를 이상화하고 높이 평가했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일본인들의 질병 경험을 변화시켜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로 포장해 팔아먹은 이야기는 그들이 어떻게 거대서사를 만들어 질병을 팔아먹는지, 미국이 다른 세계의 문화적 서사를 제거하고 자신의 것을 부과하며 비인간화하는지를 생생히 폭로한다.
2. 자신만이 '진리'라는 믿음에서 폭력은 시작된다
만일 9/11테러 후에 모잠비크사람들이 날아와서 생존자들에게, 일련의 의식들을 거행해서 사망한 가족구성원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해보라.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것이 말이 되는가? (139쪽)
2004년, 쓰나미가 스리랑카를 휩쓸자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정신건강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들은 신속한 개입과 치료가 필요하다며 마치 참전(參戰)하듯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적 심리 개입'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런 참여가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사실 스리랑카는 수십 년에 걸친 전쟁, 폭동, 가난 속에서도 외부의 격려나 상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풍부한 문화적 전통에 의존하여 고통을 극복한, 놀라운 심리적 회복력을 가졌다. 외상 이후 곧바로 개입을 통해, 금욕적 침묵보다는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서양의 방식이 통할 수 없는 곳이었다. 스리랑카인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심적 고통을 치유하고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PTSD라고 불리는 미국식 치료법이 물밀듯이 밀려와, 부지불식간에 현지의 견해와 관습 들이 열등하다는 파괴적인 메시지가 전달되고, 식민주의를 통해 이식된 열등감을 강화시켜, 스리랑카인들이 스스로 긍정적인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약화시키고 말살했다.
저자는 스리랑카와 잔지바르의 사례를 통해 서양식 진단과 치료 방식, 감정적 과잉관여가 지닌 모순을 지적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서구에서 보통 감정 표현이 활발한 가족들과 사는 환자들의 재발률은 나머지 경우에 비해 3~7배나 높다. 또 다른 연구에서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즉시 심리치료를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의외로 심리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더 불안과 우울증, 두려움에 시달리는 경향이 높았다. 초기 개입(치료)이 마음의 자연적 치유를 방해했던 것이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런저런 심리적 증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 다음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면 그 자리는 감정이 전염되고 강화될 수 있는 환경으로 변질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2Hf7vZMjt1E
3. 고통과 치유에 관한 다른 생각
나아가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인간 정신의 고통과 치유에 관한 다른 차원의 생각을 보여준다. 서양이 질병을 만들고 분류하여 정신질환자로 낙인찍고 격리하는 방식이라면, 잔지바르의 한 가족은 정신분열병을 겪는 딸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이들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존재들이 있다고 믿고, 그런 정신적 고통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서양식 질병 개념으로 분류하여 격리하지 않고, 또 자신의 딸을 영구적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즉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서양과 달리 잔지바르인들의 문화에서 신의 축복과 짐은 개인이나 가족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었다. 이밖에도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일화들은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약을 통해 뇌의 화학적 균형을 맞추고 통제하려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리며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이것은 좋은 기회였다. 맥그루더는 그녀에게 정신분열 경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좋은 때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때 맥그루더는 그 순간의 평화를 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병든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과 인식이 감시당하고 평가받고 있음을 일깨우는 것은 감정적 과잉관여의 한 징후였다. 그래서 많은 것을 묻고는 싶었지만, 맥그루더는 그 가족의 낮은 감정적 강도를 기록하는 대신 단지 그것을 확인하면서, 대화 주제를 산들바람의 상쾌함과 처마 밑 그늘의 선선함으로 되돌렸다. (202쪽)
에단 와터스는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독창적으로 다루었다. 그의 책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믿음들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는 매력을 지녔다.
- 페기 오렌스타인 (《데이지를 기다리며Waiting for Daisy》의 저자)
에단 와터스는 세계화가 경제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에까지 침투해 있는 양상을 관찰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한다.
- 애덤 호크쉴드 (《레오폴드왕의 유령King Leopold's Ghost》의 저자)
흥분과 놀라움을 주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책이다. 에단 와터스는 우리가 스리랑카에 수출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부터 일본에 가져가 ??마음의 감기??라고 마케팅하는 우울증까지, 세계화가 빚어낸 막대한 피해들을 예리한 눈으로 파헤친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아메리칸드림의 수출로 왜곡되고 암울해진 새로운 지구적 정신을 일주하는 책이다.
- 제이슨 로버츠 (《세계의 의미A Sense of the World》의 저자)
미국이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심리학적 모험들에 관한 통렬한 보고서. 와터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를 자극하고, 놀라게 하고, 때로는 분노케 할 것이다. 또한 문화, 인간 본성, 정신에 대한 우리의 사고 방식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 폴 터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Whatever It Takes》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