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멈추는 곳(103)
ㅡ작은 '인간승리'/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
지난 달 7월 1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4번째 챔피언에 오른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올해 결승전에서는 두 선수와 싸워야 했다. 상대 코트에서 뛰고 있는 전(前) 세계 챔피언이자 테니스 '황제'로 불리는 로저 패더러(Roger Federer) 외에 '잔인한 영국 팬들'이었다.
한때 '신사의 나라' 영국, 그러나 이날 윔블던 테니스 코트를 매운 영국 사람들은 '신사'답지 않았다. 자국 선수도 아닌 스위스 출신 세계 3위 로저 패더러를 일방적으로 응원한데 비해, 세계 1위이자 챔피언인 세르비아 출신 조코비치에게는 야유와 조롱을 일삼았고 인종차별적 모습도 보였다. 남아프리카 식민지 시대가 21세기 초에 환생한 것도 아닌데 이들 영국의 테니스 팬들은 잠시 19세기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듯했다.
어느 스포츠 기자가 보도한 이날 대회 스케치 기사를 보면 조코비치가 좀 안스럽기도 하다.
"조코비치가 심판에게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면 야유가 퍼부어지고 실수하면 박수가 터지고 심지어 땀을 닦으면 비아냥까지 쏟아졌다. 살기(殺氣)마저 느끼게 했다. 한마디로 조코비치는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위스 선수 페더러의 승리를 위해 피를 흘려야 하는 짐승'이었다. 보안요원들은 페더러 가방은 한번 만져 보는 것먄으로도 감격했다. 페더러가 인터뷰를 하면 밥을 먹다가도 뛰어나가는 영국 기자들은 조코비치 회견은 중계화면으로 대신했다".
이 정도면 영국팬들의 몰상식(沒常識)한관람 태도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조코비치는 그때마다 씩 웃고마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결국 4시간 57분의 혈투 끝에 조코비치는 자신에게 쏟아졌던 저주를 박수소리로 바꾸고 야유와 비아냥을 환호성으로 돌이키는데 성공했다. 영국 팬들의 일방적 응원과 사랑을 받은 폐더러를 꺾은 것이다.
조코비치는 이날 자그만 '인간승리'도 거머쥔 셈이다. 유럽의 변두리에 있는 가난한 나라, 역사적 변천이 아주 심했던 나라, 공산주의 독재자 티토 대통령의 유고슬라비아에 복속됐던 나라. 이런 세르비아국의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끝없이 몸을 단련하고 기량을 닦은 끝에 세계 프로테니스의 정상에 우뚝 섰다. 인간승리라고 할 만하다.
그럼 영국 팬들은 왜 이렇게 노박 조코비치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걸까.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영국, 특히 대영제국으로 세계를 이끌었던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 위치해 있고 경제격차가 크게 벌어진 동유럽, 특히 공산주의체제였던 유고슬라비아나 세르비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인종, 종족, 지역, 빈부, 소국(小國)이란 이유 등으로 편견과 차별이나 대국 의식을 갖는 건 아무리 선진국이나 대국이라고 해도 이해될 수 없다. 스포츠 팬의 태도는 더욱 그렇다.
이런 당위와 진리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편견은 오늘의 국제사회에선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예삿 일'이 되고 있다. 바로 우리 옆 '대국'이란 나라도 이웃 작은 나라에 자주 보여주는 맨얼굴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작은 나라지만 부자 나라, 강한 나라,민주주의 나라로 만들어야 나라 대접을 받고 또 한 나라 국민으로서 존중을 받는다. 우리가 지금 그런 나라인지, 또 그런 나라로 가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미국 중국 간의 무역과 패권 전쟁, 일본과의 무역 마찰, 북핵 위협과 미사일 발사, 국내외 경제 부진 등 여러 심각한 악재들에 노출되고 있다.
2019.8.30
묵혜 默惠 김민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