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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제사에 관한 규례
레 17:1-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
3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4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5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6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문 여호와의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7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8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번제나 제물을 드리되
9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레 17:1-9 / [피는 거룩하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러주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이 말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이다. 3)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이스라엘 진영 안에서든지 또는 진영 밖에서든지간에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으려면 4) 그 소나 양이나 염소를 여호와께서 계시는 거룩한 장막 문간으로 끌고 와 예물로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흘린 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사람은 공동체에서 제거될 것이다.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들판에서 잡으려던 그 짐승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거룩한 장막 문간으로 끌고 와 제사장에게 화목제물로 바쳐야 한다. 6)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계시는 거룩한 장막 문간에 놓여 있는 번제단 아래에 그 제물의 피를 쏟고 그 제물에서 떼어 낸 기름 덩어리를 불에 태워 향기로운 냄새를 풍겨야 한다. 그리하여야 여호와께서 그 냄새를 맡으시고 흐뭇해하시리라. 7) 그들은 더 이상 숫염소 귀신에게 희생제물을 잡아 바쳐서는 안 된다. 이 규정은 오고오는 세대마다 대대로 지켜야 할 규정이다. 8) 너희 이스라엘 집안 식구이든 또 너희들 가운데에서 몸붙여 사는 나그네이든지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은 9) 반드시 여호와께서 계시는 거룩한 장막 문간으로 끌고 와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이 규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될 것이다.
본문은 각종 율법의 수여를 다루는 레위기 전반부도 주로 제사 및 정결예식 등 종교의식과 관련된 율법을 제사장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17장은 정결의식과 동물의 피에 대한 교훈과 그 규례를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동물을 잡아 제사를 드리며 식용으로 먹는 과정에 있어서도 규례를 지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라 하십니다. 그 대상은 대제사장으로부터 제사장 또한 모든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명령은 절대로 지켜져야 하며 그 내용은 조금도 가감이 없어야 합니다. 그 명령을 지키는 자만이 여호와의 백성이요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3-4) 이스라엘의 집의 모든 사람들이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는 이유는 여호와 앞에 제사의 제물로 드리기 위한 것과 자신들의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라는 말은 공식적인 목적이든지 아니면 가정의 식용으로 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제사장에게 주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광야 생활에서의 한시적 명령이었습니다(신 12:15-18). 이를 통하여 생명의 근원이 여호와이심을 인정하고 일용한 양식을 공급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올려드리며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는 단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4).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5-9) 단일 성소인 회막이 지정되었습니다.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들에서 잡던 동물들을 이제는 회막 문 여호와께 끌고와 화목제로 드리며 그 피와 기름을 태워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명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였지만 400년 동안이나 보고 듣고 체질화 되어진 애굽의 문화와 애굽의 종교적 행위를 떠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그 분만을 섬기고 예배하는 백성들로 회복하여,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는 관계를 유지하라는 명령입니다.(참고 살전 5:22)
적용: 당신은 당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까?
사탄이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질투하여 당신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 물질의 부함과 세상의 즐거움을 불어 넣어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시험'이라 부르시지만, 당신은 '축복'이라 불렀습니다. 당신은 세상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바라보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오해하고 잘못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기준으로, 아버지의 계획하심과 뜻하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고 어두워진 눈을 밝혀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 설 교 >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5-16 / 피영민 목사
서 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피’입니다. 성경 전체에 총 460번 사용되었고, 구약에 362번, 그중에서도 레위기 17장에 13번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를 ‘푸줏간의 종교’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푸줏간의 종교는 원시 종교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종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피 없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상이며, 성경 전체를 부정하는 매우 악한 주장입니다.
레위기 17장을 성경 전체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말씀이라 하여 학자들은 ‘Foundational Chapter’라고 부릅니다. ‘근본이 되는 장’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레위기 17장을 ‘구약성경 가운데 있는 신약성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11절은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죄인 된 인간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피 밖에 없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인간이 천국 갈 수 있는 길도 피 밖에 없고,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도 피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피는 1차적으로 짐승의 피를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킵니다. 짐승의 피는 예표요, 그리스도의 피가 실체라는 것입니다. 결국 레위기 17장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의를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속죄의 대원리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원리를 선언하기 위해 먼저 세 가지 전제조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을 잡을 때는 오직 한 장소에서만 죽일 수 있습니다. 4~5절에 “먼저 희막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희생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회막문’에서만 죽일 수 있었습니다.
짐승을 잡을 수 있는 장소는 정확하게 한 곳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가 오직 한 장소, 즉 갈보리 언덕에서 드려질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많은 종교가 그들만의 성지를 만들어놓고 성지순례를 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질 장소는 여러 곳이 아닙니다. 오직 한 곳,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다 언덕 밖에는 없습니다.
둘째로, 피의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 임명하신 제사장뿐입니다. 6절에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피를 회막문 단에 누가 뿌리라고 하셨습니까? 제사장입니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뿌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임명하신 제사장만 가능합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격자가 되신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죄인들이 아무리 갈보리 언덕에서 피를 흘린다고 해도 그것은 십자가 좌우편에서 흘린 강도의 피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강도의 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희생제사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7~9절에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수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시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번제나 희생을 드리되 회막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죄 제사를 드리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대상인 숫염소는 올바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숫염소에게 음란하게 제사했습니다. 창기를 동원한 성적인 행위를 통해 제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숫염소에게 하는 제사는 음란한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숫염소에게 음란하게 제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속죄의 대 원리는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원리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Ⅰ. 피의 가치
그러면 왜 피 흘림이 있어야 할까요?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14절에도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의 가치는 생명의 가치입니다.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피와 생명은 동일한 것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피를 흘렸다는 것은 생명을 드렸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짐승의 피가 소중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9장 3~4절에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짐승의 피도 소중한데, 하물며 사람의 피는 얼마나 더 귀하겠습니까? 사람의 피는 더욱 고귀합니다. 창세기 9장 6절에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려 생명을 앗아간 사람은 그 사람의 피도 흘려 가해자의 생명도 빼앗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조금의 양보도 없으십니다. 그만큼 사람의 피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인권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남의 생명을 빼앗은 가해자에게는 인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피해자가 죽었다면 그 사람도 죽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생명과 피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죄인 된 사람의 피도 이처럼 소중하다면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소중하겠습니까? 성자 예수님의 피는 얼마나 더 귀중하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보통 피가 아니라 보배로운 피입니다. 성경에 보배롭다고 기록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피요, 둘째는 신명기 26장 18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이며, 마지막은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기록된 성도의 믿음입니다.
구약성경에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모두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10장 4절에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짐승의 피는 능히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표라는 것입니다.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사람의 죄를 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려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가 여러분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 주겠습니까? 돈 몇 만원도 그냥 주지 않는 세상입니다. 수혈을 원해도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생명을 주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려 생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자기 생명을 주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로마서 5장 7~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을 위해서 대신 죽겠다는 사람도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시 있을지 모르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이를 잊어버린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돼지 피와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치러야 할 지옥 형벌을 대신 받아주신 줄로 믿습니다.
Ⅱ. 피의 다섯 가지 능력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베드로전서 1장 19절 말씀을 본문으로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라는 제목의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에게 수백, 수천 가지의 유익을 준다고 말씀하며, 그 가운데서도 다섯 가지 중요한 피의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피는 ‘속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속죄’는 ‘카파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어의 ‘Cover’가 되었습니다. 속죄는 한 마디로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속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덮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죄를 찾으시려고 해도 그리스도의 피가 다 덮어버렸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를 1년 동안 덮어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단 번에 영원히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지 않으신다면 강단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덮어주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26장 28절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사람의 죄를 덮어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물론 법원에 보석금을 내고 석방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보석금제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석금을 받지 않으십니다.
에스겔 7장 19절에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과 금이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스바냐 1장 18절에도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도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고, 왕이나 권세자도 우리의 죄를 덮어줄 수 없고, 지혜자도 죄를 용서해 줄 수 없고, 부자도 그 재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 동창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부자로 사는 것은 행복하지만, 부자로 죽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참 지혜로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로 하나님 앞에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은이나 금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덮어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는 보배로운 피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피는 ‘재앙으로부터 보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 열 번째 재앙으로 장자가 죽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앞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문설주에 피를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재앙이 시작되자 집집마다 장남이 다 죽었습니다. 애굽 사람들 집에서는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놓은 집들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갔습니다. 재앙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재앙을 넘어가게 하는 보호의 능력이 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피 발라진 집을 넘어갔다고 해서 이 절기를 ‘유월절’(Passover)이라고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에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심판의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능력도 그리스도의 피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업장이나 직장, 가정에 갖가지 재앙이 밀려올 때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주시도록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자녀들을 지켜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귀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죽음의 천사, 재앙의 천사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변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4절에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벨의 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도 말을 합니다. 더 낫게 말을 합니다. 창세기 4장 10절에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벨의 피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저는 가인에게 억울하게 죽었나이다! 저는 죽을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나이다!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는 억울함을 풀어주시도록 간구하는 정도의 말이 아니라 더 좋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아버지가 택하셔서 제게 주신 백성들의 죗값을 갚기 위해 제가 대신 피를 흘렸나이다! 저들에게 죗값을 묻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 피를 보시고 아버지의 진노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의 허물을 대신 갚았나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바로 이런 사실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살다가 죄를 짓더라도,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위해 변호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제가 흘린 피를 보시고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피가 이렇게 우리를 위해 중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피는 ‘마귀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저’는 옛뱀이라고도 하고 큰 용이라도 하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이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면 도망갑니다. 또 성도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벌벌 떨며 굴복하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방종교에는 뱀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엊그제 꿈을 꾸는 데 큰 뱀 두 마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뱀이 다른 뱀을 잡아먹더니 먹힌 뱀도 죽고, 먹은 뱀도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두 마리 모두 죽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꿈을 꿨습니다.
본문에 보니 옛뱀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패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증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도나 목사라고 해도 죄와 허물이 있는 한 마귀와 담대히 싸우기 어렵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고 아무리 소리쳐 봐도 사단은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죄가 있는 한 담대해지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물리쳐야 합니다. 설령 우리에게 죄가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주시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허물을 보려다가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마귀와 싸우는 무기입니다.
삶에 우환질고가 일어나고, 자녀들이 방황하고, 사업이 힘들어지면 그것이 귀신의 역사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사단을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서 자꾸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피가 그 능력으로 마귀를 완전히 물리쳐 주실 줄 믿습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성화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자꾸 씻어내고, 우리가 점진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합니까? 속죄의 능력으로 죄를 덮어주시고, 재앙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우리를 변호해 주고, 마귀와 싸울 때 무기가 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멀리하지 말고, 항상 그리스도의 피를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Ⅲ. 피를 흘려야 하는 이유
그러면 예수님이 피를 흘리는 방법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용서가 가능하실텐데, 왜 하필 피를 흘리셔야만 했을까요? “나는 하나님이라. 내가 너희의 모든 죄를 용서하노라!”고 선포하시면 될 일을 왜 하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야 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히브리서 9장 22절 말씀 때문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에 ‘피’라는 단어가 460번이나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온통 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위반한 죄인이고, 하나님의 법을 침범한 범법자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서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죄 용서가 필요하고, 하나님과 화목 됨이 필요하고, 성화의 능력이 필요하고, 천국에 들어갈 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시되, 피의 속죄가 없이는 아무것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피의 속죄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죄 사함도 받을 수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불가능하며, 예배를 드려도 열납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피를 흘려 생명을 주셨고, 이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만 알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결 론
여러분, 천국 가는 길은 금으로 만들어진 황금 길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길은 꽃길도 아닙니다. 천국 가는 길은 하얀색으로 포장된 길도 아니고, 검정색 길도 아닙니다. 아스팔트길도 아니며, 돌로 된 길도 아니고, 파란색 길도 아닙니다. 오직 천국 가는 길은 빨간 길(Scarlet Road)인줄 믿습니다. 이 빨간 색 길만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발라져 있는 길, 그 피가 뿌려져 있는 영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메시지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에게 복을 열어주시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복을 열어주는 관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내 죄를 덮어 주시고, 내 죄를 씻어 주시며, 재앙으로부터 보호하사 마귀를 이기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내 삶이 거룩해 지게 하옵소서!” 이것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공자와 실패자
레 17:17-18 / 최병남 목사
지금 세계 인구가 60억이라고 합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 지금까지 이 땅 위에 태어났다 죽은 사람들의 모든 숫자를 합하면 약 800억이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세상에 오면 가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복을 누리면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실패자로서 저주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성공하기를 원하고 복 받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자기가 재능이 있고 많이 배웠고 또 똑똑하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 중에 도 실패하고 고통 중에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비록 가난하게 어렵게 힘들게 태어났지만 나중에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이명박 당선자 같은 사람, 참 어렵게 살았지만 이렇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당선이 됐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인가? 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복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5절과 6절, 7절과 8절이 아주 대조적으로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자의 삶과 그 결과, 7절과 8절에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의 삶과 결과, 다시말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아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과 하나님께 복을 떠나서 저주적으로 사는 삶의 사람, 이 두 가지로 완전히 명백하게 구별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실패자입니까?
1, 사람을 믿는 자입니다.(5절)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그랬습니다. 누가 실패자인가 하면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실패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실패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능해서 실패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는 사람이 실패자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왜 사람을 믿으면 실패합니까?
1)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약4:13-14)에 이 점에 대해서 신랄하게 밝히는데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랬습니다. 자,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 같은 우리들이 뭐 일 년을 계획해서 이렇게 저렇게 혹은 일평생을 계획해서 잘 살 줄로 생각하지만 그 모든 인간의 계획은 다 헛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요?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인간은 변하기 쉽습니다.
우리 말에 '조석변'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옛말입니다. 지금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앞에서 말할 때 다르고 돌아서면서 다릅니다. 얼마나 변화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3)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데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의지할 존재가 못됩니다. 사실 이 인간은 이기적이니 동물입니다. 그렇게 부부간에 맹세하고 사랑하면서 서약하고 결혼하지만 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왜 변하고 돌아서는가 그 마음 속에 결혼의 목적이 이기적인데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해서 내가 행복하게 살고 결혼해서 내가 좀 서비스 받고 결혼해서 내가 좀 도움을 받아서 성공하고...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부부간에 문제 뿐 아니라 이웃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의 행동반경이 어디에 기본적인 동기를 갖고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결혼도 하고 나를 위해서 친구도 사귀고 나를 위해서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자기 이권에 반하는 것은 모두 버리게 되고 배신하게 되고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시저와 부르투스가 그런 관계입니다. 가장 친한 친구, 믿었던 친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 사회의 현실입니다.
4) 인간은 무능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도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의지하면 안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인간은 무능하고 무력합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누가 저주의 대상이 되느냐? 누가 복을 못 받고 실패자가 되느냐?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그랬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결국 그 의지하는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절망에 빠지고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명령하십니다.
2. 육신으로 그 힘을 삼는 자입니다.
어느 새 번역에는 본문 5절에 "자기의 혈기를 권력으로 삼는다" 또 "육신의 힘을 의지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자기를 의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능력, 자기의 재주, 자기의 재물, 이것을 의지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건 아주 능력이 많은 것 같지만 갖아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가 가진 재물, 내가 가진 건강, 내가 가진 명예, 그것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곧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시146:3-4)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 의지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호흡이 끊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계획을 세워서야 뭐합니까? 그것 아무 의미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도 의지하지 말고 나 자신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니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자, 여호와를 떠났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 예를 한번 들어봅시다. 지금 부부간에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남편이나 아내에게 애인이 생겼단 말입니다. 자, 애인이 생기니까 사랑이 남편에게 아내에게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사랑이 떠나버리니까 이제는 남편이나 아내를 위한 모든 행동들이 부담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이것이 부담이 되고 하난미의 전에 나와 봉사하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떠나면 나와서 기도생활 하는 것, 전도하는 것, 주님을 위한 영적인 모든 활동들, 헌신의 상황들이 모두 부담이 되어버립니다. 왜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떠난 실패자들이 어떻게 되어집니까?
1)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집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니까 "떨기나무 같다" 그랬습니다. 사람이 떨기나무 같다, 삐쩍 말라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떠나고 범죄하면 말라갑니다. 건강도 말라가고 물질도 말라가고 평화도 말라가고 다 말라간다는 것입니다.
2)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떠나고 인간 의지하고 자기 의지하고 살면 좋은 일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웬일인지 계속해서 시련이 끊이질 않고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3)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산다고 했습니다.
6절을 계속 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랬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늘 고통스러운 생활하면서 외롭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로해주는 참 친구, 이웃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마음 속에 늘 고독감이 찾아오고 외롭고 힘들고 답답하게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복받는 자는 누구입니까?
본문 7, 8절에는 참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어떠한 복을 받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참 성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 예수님과 딱 붙어사는 사람, 그 사람이 참 성공자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했는가 하니 7절에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여기 의지하고 의뢰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정도 하나님 의지하고 어느 정도 세상 의지하고 물질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100%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을 그렇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 의지하는 자는 어떠한 복을 받습니까?
1) 걱정과 두려움이 없습니다.(8절)
놀라운 복이 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그랬습니다. 뿌리를 강변에 뻗쳤습니다. 그래서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안한다, 이러한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뭄이 왔습니다. 모든 나무가 다 말라비틀어졌습니다. 더워서 모든 잎사귀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강변에 뿌리를 박은 이 나무는 그 밑에서 물이 올라와 계속해서 이파리가 파릇파릇합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 세상 환난의 가뭄, 질병의 더위, 시련의 가뭄이 우리에게 계속 몰려와도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 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요? 생명수 되신 우리의 여호와께 삶의 뿌리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날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싸워 이길 수 있는 은혜의 생수가 솟아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희망이 있습니다.
잎이 파릇파릇합니다. 아무리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니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환난, 시련 당해도 여러분이 정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삶' 이라는 책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거기에 '스티븐 호킹' 이라는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분은 물리학 교수였습니다. 그가 20세에 그만 뇌경색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쇠약해지면서 말도 못합니다. 몸이 틀어져 걷지도 못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습니다. 한때는 절망에서 자살할 생각도 있었지만 하나님 의지하는 믿음으로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원리를 발견하는 유명한 물리학자가 된 것입니다.
3)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오늘 본문을 보니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그랬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겠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의지하고 나아가게 될 때에 물질의 열매, 인격의 열매, 성령의 열매, 명예의 열매, 건강의 열매, 이 열매가 한해도 주렁주렁 맺혀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이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으로 사람 의지하지 말고 나 자신 의지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인하여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을 받아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지 않는 뿌리
레위기 17:1-9 / 행복한 순례자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짐승 도살 금지에 대한 규례로,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을 때 반드시 회막문 앞에서 잡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무분별한 도살행위를 막음과 동시에 고기섭취를 매개로 한 이방신과의 고리를 끊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의 핵심 키워드는 회막문(광야시대를 나타내는 말), 화목제물(백성들을 위한 고기제공 용), 숫염소(염소형상 우상)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규례의 출처, 도살 금지령, 별도의 화목제, 규례의 적용범위 등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을 중심으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나 양 같은 가축을 잡을 때에도 회막 문 앞에서 잡아야 했습니다. 회막 문 앞이란 정확히 말하면 회막 바깥 뜰에 위치하고 있는 번제단의 희생제물을 잡는 곳입니다. 그 짐승의 피와 기름은 먹을 수 없었는데 이는 여호와께 화목제물로 드리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은 번 제단에 그 피를 뿌리고 그 기름은 모두 태웠습니다. 회막문 앞에서 짐승을 잡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함입니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숫염소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에게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인들은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아 숫염소에게 희생제물을 바쳐 섬겼던 것입니다. 희생제물을 잡을 때 회막문에서 잡게 함으로 이런 불상사를 사전 차단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화목제물은 정식제사의 제물이 아닌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제물입니다. 일반적으로 화목제물은 제사장이 거제 혹은 요제를 드리고 취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제물의 피와 기름만 제사를 드리고 나머지 고기 등은 제사 드린 사람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이는 피와 기름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백성들로 하여금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이유로 백성들의 식용목적으로 잡는 짐승도 희생제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규례는 후에 수정되었습니다. 광야시대에는 잘 지켜 질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거주하는 곳이 그렇게 넓지 않았고 광야에서는 회막이 잘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입성하여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12지파가 광활한 영토를 얻어 흩어져 살게 됨에 따라 짐승을 잡을 때마다 중앙 회막으로 올 수 없기에, 이 규례는 수정이 불가피 하게 된 것입니다. 각 지파가 속한 성에서 짐승을 잡되 대신 1년에 3회씩은 중앙 회막에 와서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장소만 바뀌어 진 것이지 그렇다고 하여 기름과 피의 식용을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이 규례는 신약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유대민족의 성지순례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문에서 짐승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밝혀 주는 말입니다. 여호와 외에 숫염소 같은 우상들에게 제사를 지냈기 때문인데, 애석하게도 이 규례는 번번히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 법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여호와로부터 모세를 통하여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금송아지를 만들고 음란이 섬겼습니다. 그 때가 B.C. 약 1450년경입니다.
그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약 500년이 지난 후 그 고질병이 재발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엄연히 신성국가로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다윗에 이어 솔로몬의 전성기를 구가한 직후입니다. 남 왕국과 북 왕국이 갈리면서 북 왕국의 왕 여러보암이 예전과 같이 금송아지와 숫염소 우상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다름이 아닌 애굽의 신입니다. 400년 노예생활로 익숙했던 그 신이 망령처럼 이스라엘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세대가 수 없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마음에서 그런 것들이 부활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 악한 뿌리가 깊었다는 증거입니다. 마치 죽지 않는 뿌리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모든 중심이 이동해야만 그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동물을 회막문에 잡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뼈속 깊이 파고 든 노예근성과 죄악들을 회막을 통해 회복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깊은 죄의 뿌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하루 빨리 제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성령의 조명을 받으며 성경 속에서 살아야 하지요. 세상의 노예살이로부터 우리의 삶이 하나님 백성으로의 제 자리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법과 하나님 우선의 삶을 훈련 할 때라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학습된 나쁜 관행을 되돌리기 위해선 엄격한 규칙과 피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제 그것을 감수하더라도 죄 짓는 자리에 단 한 순간이라도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았고, 말씀으로 우리는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죄 된 옛 습관을 끊지 못하는 연약함으로 인해 또 다시 죄의 노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