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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한니발은 15년 동안 이탈리아를 휘젓고 다녔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지휘 아래 로마와 그 동맹자들은 한니발과의 접전을 피한 채 곡식이 익은 밭을 태워버리며 요새화된 도시 안으로 피했다. 이와 같은 초토화 작전으로 서서히 굶주려가며 로마의 거듭된 기습공격에 시달리던 한니발의 군대는 어쩔 수 없이 작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7쪽)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혜성의 출현은 당당하게 ‘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한 바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뒤이어 일어난 내전에서는 이처럼 인상적인 칭호에 의해 신의 은총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있음이 강조되었다. 또한 그의 승리 역시 ‘신의 아들’이라서 얻은 승리로 해석되었다. 패배한 안토니우스에게 옥타비아누스는 “이름 덕분에 모든 것을 손에 쥔 젊은이”였다. 이 아우구스투스의 신성은 화장용 장작더미 꼭대기에서 독수리가 날아오름으로써 확인되었다. 독수리는 신들의 왕인 유피테르 신의 신령한 새로 여겨졌다. (57쪽)
로마 제국의 성공 열쇠는 지방 엘리트층에 있었다. 정복 초기의 정신적 충격을 견뎌내고, 조직적인 저항은 가망이 없다고 단념해버린 사람들은 지배 권력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분명 이득을 챙겼다. 실제로, 많은 속주민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지역에서 기존 과두지배자 그룹이 경쟁자 없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강화한 것에서 로마의 지배를 실감했다. (87쪽)
각 인물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그리스적인 윤리관과 철학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러한 전기를 통해 로마의 역사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적인 관점 때문이라는 급진적이고 흥미로운 주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발생한 역설은 실로 유쾌하다. 플루타르코스의 관점에서 보면, 뛰어난 로마인이란 실은 전통적인 그리스의 미덕을 체현하는 사례로서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존재였던 것이다. (129∼130쪽)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제국에 희생된다.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흔적을 다른 어디보다도 깊이 새겨놓은 아테네에서는 황제의 자선 행위를 기념하는 멋진 아치문이 올림피에이온 신전 근처에 세워졌다. 그 서측 전면에 새겨진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여기는 지난날 테세우스의 도시였던 아테네이다.” 이해가 더딘 사람을 위해서 반대편의 비문이 요점을 다시 말해준다. “이곳은 테세우스의 도시가 아니라, 하드리아누스의 도시이다.” (136쪽)
https://www.youtube.com/watch?v=UrMHzJ4sLZw
로마 제국의 주민들 대다수는 농촌에 살면서 일했다. 고대 세계에서 토지는 주요한 생계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의 크기를 재는 지표이기도 했다. 다만 토지는 부유한 계층의 손안에 집중되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리구레스 바이비아니라는 지방 도시에서 출토된 2세기 초반의 한 목록에는 일부 시민의 자녀들을 지원하려고 황제 트라야누스가 추진한 사업에 찬동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실려 있었다.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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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로마인들에게 지중해는 ‘우리의 바다’였다
오늘의 우리에게 로마 정신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생각 단추, 〈첫단추〉 시리즈 제5권 『로마 제국』
이 책은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펴내는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의 로마 제국 편을 옮긴 것이다. 저자는 제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31년부터 서기 192년까지 약 200년 동안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 장차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될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맞서 승리를 거둔 악티움 해전에서 코모두스 황제의 암살에 이르는 기간이다. 저자는 일곱 가지 주제―정복, 황제 권력, 제국의 운영과 속주 엘리트들, 역사 전쟁, 제국과 기독교도들, 평범한 로마인들의 삶과 죽음, 현대 세계 속의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제국의 건설과 운영뿐만 아니라 제국의 구성원들이 직면했던 복잡한 현실의 문제들, 그리고 현대 세계와 고대 로마 제국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펼쳐놓는다.
제국의 건설은 놀라운 위업이었다
제국의 전성기인 서기 2세기에는 약 6,000만 명의 인구가 500만 제곱킬로미터(오늘날 영국 국토 면적의 약 20배)에 달하는 영토 전역에 퍼져 있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잉글랜드 북부를 가로지르는 하드리아누스의 방벽에서 시리아의 유프라테스 강변까지, 그리고 유럽의 광대한 라인 다뉴브 강 일대에서 북아프리카 해안의 풍요로운 평원과 이집트 나일 강의 기름진 협곡까지 뻗어 있었다. 제국은 지중해를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지중해는 로마인들에게 내륙의 호수나 다름없었고, 이 정복자들은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다.
제국 로마에 관한 주제별 서술
이 책은 먼저 제1장에서 무자비한 정복 과정과 제국의 확립, 그리고 로마인들에게 ‘제국의 사명’이라는 의식이 있었음을 살펴본다. 제2장에서는 황제의 권력이 표현된 모습을 고찰한다. 신으로서의 황제상과 인간으로서의 황제상을 검토한다. 제3장에서는 관점을 바꿔, 지중해 도시의 특권 엘리트층의 시각에서 제국의 운용 방식을 이해해보려 한다. 속주의 질서 잡힌 통치를 책임지고 있던 주체는 광대한 제국의 행정 기구가 아니라 바로 이 부유한 도시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이다. 제4장에서는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인들이 남긴 저작들을 다룬다. 거기에서는 피정복자들이 새로운 제국 틀 안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역사 서술은 고립된 학문적 활동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을 둘러싼 언설과 직접 맞물려 있는 것임을 아울러 알 수 있다.
사회 주변부와 기독교도들의 성장
제5장에서는 로마 제국의 아웃사이더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도들의 성장을 살펴본다. 제6장에서는 체제 내에 속한 사람들의 시각을 제시하여,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훨씬 전의 이 거대한 제국에 속해 있던 도시와 농촌에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살핀다. 제7장에서는 근현대의 세 가지 관점, 즉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英)제국의 관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관점,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의 관점에서 로마를 되돌아본다. 이러한 관점들은 현대에도 로마 제국을 상상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타키투스의 역사서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플루타르코스와 수에토니우스의 전기물 등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속주 도시들의 실상과 검투 경기 장면까지 묘사
저자는 속주의 도시들에 새겨진 비문과 건축물, 축제와 행렬, 조각품, 모자이크나 벽화 등에 기록된 이미지나 상징을 통해서 속주민들이 황제의 권력을 이해하고 새로운 제국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와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했던 시도들을 추적하고 재구성한다. 또한 사회 주변부에 위치한 기독교도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검투 경기의 의미를 되새겨봄으로써 로마 제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를 체계화하고 질서를 부여했는지,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어려웠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도 주목한다. 화산재에 파묻힌 폼페이의 한 저택, 건조한 기후 덕분에 살아남은 파피루스 조각의 인구 데이터, 어린 자녀를 잃고 상심한 한 아비의 편지, 농촌의 식량부족에 대한 갈레노스의 기록 등이 그러한 당대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