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훈이가 충권이 정숙이한테 밥을 몇번 산 모양이다.
기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으니 매곡동에서 셋이 만나기로 했다고 나도 오란다.
기훈에게 자주 얻어막기만 한 나는 사양하지만 정숙이도 연락을 했다.
1일 천운회 만남에서 무등산 아래를 걸었기에 이번엔 서석대를 들렀다 버스로 오치로 가려 맘 먹는다.
점심으르 조금 일찍 먹고 나서도 증심사 정류장에 내리니 벌써 한시 반이 다 되어간다.
서석대는 포기하고 장군봉으로 올라 오치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6시 넘어 약속이니 5시간 정도면 충분하겠다.
조용한 편백숲으로 들어서 앞쪽 골짜기로 오른다.
새로운 길이다. 난 항상 다닌 길만 다녔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만 살아 눈이 단순하다.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장군봉에 닿았다.
이제 내리막이다. 조대 뒷사나이 행로봉이던가?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전망대 모노레일엔 젊은이 몇이 내린다.
리프트카도 뽕짝을 울리며 운행중이다. 아직은 바람이 찬데 더러 사람이 보인다.
장원봉을 돌지 않고 바로 오르는데 장원지맥 걷는 이들 힘힘힘 내라고 종이가 소나무에 붙어 있다.
장원봉에 이르러 배낭을 벗고 막걸리를 꺼낸다.
옛도청 정류장 편의점에서 얼른 사온 큰 병이다.
14라는 글자가 보여 14도짜리인가 했더니 잘 보니 쌀 함량이 14%다.
잔이 없어 병째 들고 마신다.
정상은 보이지 않고 새인봉 능선과 만연산 일부가 보인다.
바람없이 따뜻한 햇볕에 앉아 푹 쉰다.
내리막을 걸어 잣고개를 넘어 무진고성으로 오른다.
군왕봉 가는 길엔 더러 혼자 오는 산객들이 보인다.
운동기구에 매달려 있는 이도 보인다.
군왕봉을 못 미쳤는데 충권이 전화가 온다.
기훈이가 아파 못오니 다음에 만나자고 한다.
그러라고 하고 기훈에게 전화하니 힘없이 전화를 받는다.
군왕봉에서 흐린 남서쪽을 본다. 연실봉이 보인다.
각화저수지까지는 가 본적이 있다.
4시 반이다. 오치는 안 가도 되니 바탈봉이라도 가 봐야겠다.
각화 저수지 둑을 건너 서쪽으로만 산을 걷는데 충권이가 또 전화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아는 두부집에 가 막걸리 한잔 하잔다.
그러자고 하며 바탈봉으로 오르는데 또 전화가 와 자기도 산으로 오겠다고 한다.
바탈봉이 어딘지 모르겠다. 서쪽 봉우리를 보고 걸으니 태봉 표지석이 크게 서 있다.
못마땅한지 누군가 긁어 놓았다.
올라오는 충권이를 만나러 돌아오는데 전화가 와 왜 보이지 않냐고 계속 그길 따라 오란다.
다시 봉우리 지나 태봉에 가니 충권이가 올라온다.
남은 막걸리를 그가 가져 온 귤안주로 마신다.
정숙이와 전화하더니 일 마쳤다며 셋이라도 보자 했단다.
각화사 사당을 지나 충권이가 사는 아파트를 지나 모정에 간다.
오리로스에 소맥을 마신다.
술을 사양하던 충권이도 소주를 마신다.
두병이면 좋겠는데 세병까지 마시고 일어난다.
정숙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걸어나와 6번을 타고 풍암동까지 온다.
차에서 잠들지 않으려고 눈을 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