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 포구
구월은 첫날부터 가을장마로 시작하고 있다. ‘가을장마’는 공식 기상 용어가 아니지만 가을 초입에 한동안 강수대가 지속되는 현상이란다. 출근해 몇몇 지기들에게 안부 문자를 넣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구월 첫 주 아침입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파래져 먼 산이 가까워보여야 하는데 가을장마라네요. 바깥으로 나갈 때 우산 잘 챙기시고 환절기 건장은 더 잘 챙기십시오.”라고.
여름에 지나간 장마는 뒤늦게 왔지만 연일 계속 내린 비는 아니었다. 지역마다 강수량 편차가 커 중부권에서 가뭄 현상도 겪는다는 보도를 본 적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이번 주 주간 일기는 한 주 내내 비가 그려져 있었다. 장마철에도 이렇게 날마다 비가 그려지진 않았더랬다. 제주와 남녘 해안으로는 예상 강수량도 상당할 듯했다. 내가 주중 머무는 거제도 마찬가지지 싶다.
학교에서 근무 중 일과 시간은 동료와 학생들을 대면해 그런대로 소일하며 보낸다. 그런데 퇴근을 해서 와실로 들면 고립무원 적막강산이다. 어디 찾아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갑갑하게 지낸다. 그래서 와실 근처는 물론이고 시내버스를 타고서라도 갯가 산책이나 산자락을 누비기도 했다. 날씨가 맑으면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낸다만 비가 오게 되면 길을 나서기가 머뭇거려졌다.
월요일 일과를 끝내고 교내 급식소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비는 오다가 그치길 반복하면서 하늘은 잔뜩 흐리고 가까운 산은 운무에 가려 있었다.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우산을 챙겨 들고 연사삼거리로 나갔다. 고현을 출발 장목 해안을 둘러오는 31번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몇 차례 둘러본 연안이지만 비 오는 날은 산책도 어려운지라 버스로 해안을 한 바퀴 두를 셈이었다.
연사정류소에선 내가 근무하는 학교 몇몇 아이들이 같이 탔다. 저녁 공부와 통학버스를 이용하지 않은 학생들인 듯했다. 연초삼거리에선 고현부터 타고 온 여러 손님이 내리고 새로운 손님들이 다수 탔다. 하교하는 중학생이 있고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향해 가는 길이었다. 달리는 차창엔 스치는 비가 부딪혀 물방울이 맺혔다.
장목은 거제 북부로 진동만과는 창원과 인접하고 진해만은 가덕도에서 부산과 연결된다. 바다가 내해인지라 파도가 잔잔해 호수 같다. 올망졸망한 해안선에선 점점이 뜬 섬들이 시야를 가려 수평선은 볼 수 없다. 창원과 가깝다는 지리적 유대감에 내가 퇴근 후 틈을 내어 시내버스 투어를 나섰다. 여러 차례 거친 연초삼거리에서 다공리를 지나 덕치고개를 넘으니 하청 면소재지다.
버스는 칠천도로 건너가는 실전삼거리에서 장목으로 돌아갔다. 면소재지 근처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부연구소가 있다. 거기는 해양 자원과 극지를 탐사하는 기관이다. 남극의 세종기지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부서로 알고 있다. 나는 지난 늦은 봄날에 장목진 객사를 둘러본 바 있다. 객사는 조선시대 중앙 관리가 지방을 행차할 때 들리는 숙소였다. 주로 변방에 위치한 관청이었다.
장목에서 파출소와 농협을 지나니 다시 삼거리가 나왔다. 왼편으로 돌면 내해로 황포에서 구영을 돌아 유호로 가고, 오른편으로 가면 관포고개를 넘어 간곡포구와 농소 몽돌해변을 돌아 유호와 구영으로 가는 길이다. 31번은 오른편으로 돌아 구영으로 향해 갔다. 농소를 지날 즈음 근년에 개관된 리조트가 드러났다. 바깥바다 외포는 아까 지나온 내해보다 파도가 높게 일렁거렸다.
유호 전망대를 지날 즈음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 거가대교는 야광 조명등이 반짝거렸다. 하유와 상유를 지나 구영에 닿으니 기사는 잠시 내려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나는 그 틈새 해질녘 한적한 포구를 폰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 시동을 건 버스가 황포를 지날 때 마지막 승객으로 자매로 보이는 여중생 둘이 내렸다. 연초로 가는 버스는 어둠 속 흩날린 빗방울이 차창에 부딪혔다. 1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