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이후 반미 감정 피해가려는 미국 관광객들
분노보다는 ‘우리가 더 낫다’는 우월감…자조 섞인 반응도
세계 무대에서 캐나다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미국인 여행객들에게 뜻밖의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 자국 국기 대신 캐나다 국기를 내걸어 캐나다인 행세를 하는 ‘플래그 재킹’ 현상이 그것으로, 국가적 자부심이 높은 캐나다인들이 이를 분노가 아닌 관용과 자부심으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문화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플래그 재킹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관행이지만,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당시 고조된 국제 사회의 반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캐나다 국기를 ‘보호막’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방이나 옷에 작은 단풍잎 국기 패치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오해나 비판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유럽 등지에서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을까 우려해 캐나다 국기를 달았다는 미국인들의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는 캐나다에 대한 연대의 표시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자국의 상징이 이런 식으로 ‘도용’되는 것에 대해 캐나다인들이 불쾌감을 느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온라인상의 여론은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고 유머러스하다. 분노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미국인이 아니어서 다행일 뿐”, “미국인들이 우리 국기를 사용한다는 건, 세계적으로 캐나다의 이미지가 더 좋다는 증거 아니겠냐”며 내심 자부심을 느끼는 듯한 반응이 주를 이룬다.
나아가 미국 정부의 정책과 개별 미국 시민을 분리해서 보려는 성숙한 시각도 나온다. ‘모든 미국인이 비판의 대상은 아니며, 선량한 개인 여행객이 단지 국적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들의 ‘국기 위장’을 묵인해 주자는 관용적인 태도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 현상은 한 가지 아이러니한 상황을 낳는다. 본래 많은 캐나다인은 미국인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국기를 달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 때문에 오히려 캐나다인 행세를 하는 미국인으로 오해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짜 캐나다인이 ‘가짜 캐나다인’으로 의심받는 역설이 발생한 셈이다.
결국 온라인에서 많은 이들이 내놓는 해법은 국기라는 상징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진정한 ‘캐나다다움’은 겉으로 보이는 상징이 아닌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타인을 존중하는 예의 바른 태도와 방문하는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국적을 떠나 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